사람이란 자고로 두 번 같은 실수를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백설공주는 한 번도 아니고 같은 실수를 몇 번이나 거듭합니다. 그 실수란 바로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방물장수 할머니였습니다. 반갑게 문을 열어주고 기꺼이 집 안으로 불러들였고, 예쁜 레이스를 구경하다 허리가 조여 기절하는 변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일곱 난쟁이들이 때맞춰 집에 돌아왔기 망정이지 큰일 날뻔했습니다. 그런 일을 겪었으면 다음부터 조심해야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다른 장사꾼에게(그래봐야 변장한 왕비지만) 문을 열어줘서 독 묻은 빗으로 머리를 빗다 죽을 뻔합니다. 그래도 정신 못 차린 백설공주는 결국 세 번째에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이번엔 정말로 죽은 듯 깊은 잠에 빠져버립니다.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줬을까요?
박현희의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줄까》라는 책이 있습니다. ‘동화로 만나는 사회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요. 저자는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야 백설공주를 이해하게 됐다고 합니다.
백설공주는 외로웠던 것이다. 난쟁이들과 함께 살게 된 백설공주의 하루는 어땠을까? 그는 난쟁이들이 일터로 나간 사이에 집안일을 한다. 혼자서. 외로움은 난쟁이들이 백설공주에게 얼마나 잘 해주었느냐와는 관계가 없다. 친밀한 경험을 공유한 사람과의 교류 없이 지내는 백설공주의 일상을 생각해보라. 그러니 아무리 위험이 입을 벌리고 있다고 해도 백설공주는 열 번 스무 번 문을 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박현희,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서열어줄까》 중에서
백설공주의 일상에는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습니다. 바로 ‘관계’입니다. 그 결핍을 예쁜 레이스나 머리빗, 사과 같은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로 채우려 했습니다. 호객행위에 쉽게 유혹당했고, 그래서 두 번이나 죽을 뻔했으면서 또 문을 열어줬습니다. 흥미롭게도 외로울 때 문을 두드리는 낯선 자는 대개 지갑을 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을 쓰면 내가 예뻐지고 근사해져서 친구가 많아지고 외로움이 사라질 것처럼 TV에서, 인터넷에서 자꾸 유혹합니다.
이런 백설공주의 성향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금방 사랑에 빠지거나 SNS에 중독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로움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나를 외롭지 않게만 해준다면 무엇이든 다 받아들일 태세가 돼 있고, 언제든 문을 열어줄 자세가 돼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외로움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공격적인 성향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큽니다. 난쟁이들에게 욕을 하거나 발로 걷어찰지도 모르지요.
외로움을 느낄 때 많은 사람이 취하는 자세는 두 가지입니다. 채우려 하거나, 피하려 하거나. 우리는 그동안 외로움에 대해서 표현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는 말로 적당히 얼버무리는 것이 다였지요.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외로움은 일종의 금기였습니다. 나의 외로움을 알려서도, 타인의 외로움을 알아서도 안 되는 것. 설령 알더라도 모르는 체 하는 것. 외로움은 실패와 동의어였습니다.
현실이 동화나 드라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외로울 때 만나는 이성은 절대 왕자님이 아니라 예쁜 레이스와 머리빗, 독사과의 연장선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외로울 때는 아무거나 사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거나 먹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나 만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나’라는 섣부름은 더 좋은 것을 살 수 있고, 더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앞서 차단해버립니다. 외로움은 병이 아니라 신호입니다. 이제야말로 너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세상과 진실한 관계를 맺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는 신호 말이지요. 그런데 잘못 해독해서 자꾸 엉뚱한 것으로 채우려 하니 제대로 채워질 리 없습니다. 갈증 나서 물 달라는 데 떡 먹이는 격입니다. 얼굴을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은데, 문자질만 하는 격입니다.
내가 나 자신과, 다른 사람과,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소통해야 하는지는 평생의 화두입니다. 그 이유와 의미와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비록 두렵더라도 나의 외로움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황동규 시인의 말처럼 ‘초강도의 외로움이 순간적으로 환한 홀로움으로 바뀌는 체험’을 할 수 있다면 목표 달성입니다. 백세 시대에 왕자님(혹은 공주님)보다 훨씬 더 귀중한 인생자산이 되어줄 것입니다.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 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그러한 고독의 맛을 결코 음미해본 적이 없다면 그때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박탈당했고 무엇을 놓쳤으며 무엇을 잃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을 것이다.
- 지그문트 바우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