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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사랑 전도서 6장 6절
가을의 시작입니다. 여름 내내 온갖 풍성한 작물들이 생명의 힘을 뻗혔다면 가을은 그 열매들을 맺는 계절입니다. 가을이 풍성한 이유는 그 결실이 풍성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결실을 놓고 이곳저곳 형편을 살피는 마음들이 있어서 풍성한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추석을 지내고 나면 우리는 만든 적이 없는데 온갖 종류의 떡들이 다 들어와 있어요. 우리 집에 없는 콩고물이 들어가 있는 송편도 있고 모양도 생김새도 전혀 우리 집에서는 만들 수 없는 모양의 떡들도 들어와있고, 분명 그런 떡은 하지 않았는데도 집에 못보던 떡이 있어요. 동네 다른 집에서 명절을 지내면서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떡 했다고 드셔보시라고 갖다 주신 것들입니다. 저희 집 주인은 동네 새로운 가게가 생기면 그 집에서 하는 음식을 사가지고 오셔요. 동네에 잔기지 떡집이 새로 생겼는데 저희는 그냥 생겼나보다 하는데 주인아주머니는 그 집에 가서 떡을 사가지고 오셔서 홍보대사가 되주세요. 어떤 날은 누가 농사 지어서 옥수수를 주셨다고 혼자 먹기에 많다고 하시며 옥수수를 주시고 들어오다가 사셨다고 참외를 한 봉지 갔다가 주시고 수박을 샀는데 우리 식구가 먹기 많다고 반덩어리를 랩씌워서 갖다 주셔요. 고맙잖아요. 그래서 저희 텃밭에서 나는 이런 저런 것들을 갖다 드려요. 텃밭오이는 사는 것과 다르다고, 상추와 부추가 색깔이 다르고 씹는 맛이 다르다고 갖다 드려요. 그렇게 10여년 동안 오고간 것들 트럭으로 싣으면 족히 한트럭은 넘을 거예요. 사실 주고 받은 걸 따져보면 의좋은 형제처럼 총량은 비슷할텐데 두 집 사이의 신뢰와 행복의 에너지는 만땅입니다.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만들어가는 것도 복중의 복입니다.
요즘은 교회 일로 차를 쓸 경우가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평소에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지 않기에 모르는게 많아요. 어제도 마을 버스를 타는데 생각보다 배차간격도 그렇고 불편해요. 10여분 기다렸는데 도착한 버스 기사가 식사를 하셔야한다고 하시며 어디가시냐고 몇 번 타시면된다고 하시면서 바로 도착할거라고 기다리시라고 그렇게 친절하게 안내해 주세요. 생각보다 우리 일상은 수없이 많은 친절한 안내와 도움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요즘 캘리를 시작했는데 김미선 집사님 수업을 진행하시는데 얼마나 유머러스하게 하시는지 몰라요. 저는 흉내도 못내요. 옆에 있는 사람 무장해제를 시켜요. 캘리모임을 2시간 하고 나면 별풍선이 몇 개인지 몰라요. 때지를 얼마나 하시는지 몰라요. 윤영학 집사님은 김미선 집사님이 하는 때찌를 무한대로 맞고 싶어하세요. 윤영학 집사님은 쓰시는 캘리마다 대박이예요. 지난주에 쓰신 캘리 "딸이 이야기하기를 우리 부부는 불륜처럼 보인데요" 얼마나 잉꼬면 불륜처럼 보일까요? 이런 문구 하나하나로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켜요. 병이 생기다가도 도망가게 생겼어요. 참 고마운 분들이예요.
살면서 고마운 마음을 찾아 발견하고 기억하고 되새김질 하면서 산다는 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귀한 일 같습니다. 생태철학자 조안나 메이시는 일기를 쓰는 방식이든, 밤자리에서 하루의 일들을 회상하면서든 살면서 미소가 떠오르는 순간을 자주 기억하고 소환하는 일들을 자주 가지라고 권합니다. 그것도 습관이어서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들이 생겨나고 그러면 그럴수록 삶의 질적인 행복감을 더 키워준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그는 고마움을 일컬어 소비문화의 해독제라고 이야기합니다. 피지에 TV가 처음 들어온 때가 1990년대 중반인데 그 전까지만 해도 그 섬에는 식욕이상 항진증(폭식을 하거나 토하기를 반복하는 증세)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이 들어온 이후 3년도 못되어서 이곳의 젊은 여성 중 11%가 식욕이상 항진증으로 고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갑작스레 텔레비전을 통해서 계속해서 좋고 아름답고 이런 문화들을 접하고 나면서 스스로와 비교하게 되면서 삶에 대한 만족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거식증, 폭식증 다양한 형태로 그 불만들이 표출되기 시작하더라는 겁니다. 실제로 텔레비전을 통해 예쁜 모델이 많이 나오고 홍보되면서 사람들은 자기 외모에 대한 만족도가 급격히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삶의 고마움이 충분하고 그래서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소비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더 이상 뭔가를 사들여 채우지 않아도 더 이상 뭔가를 소비하지 않아도 그냥 이대로 충분하고 고마운 겁니다.
오늘 전도서 기자는 말합니다. 비록 사람이 천년씩 두 번을 산다고 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즐거움을 누리지도 못하면 별수 없다. 마침내 둘 다 같은 곳으로 가지 않는가! 여기에는 전도서 기자의 안타까운 절규가 절절히 들어있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살아도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소중한 선물들을 가지고 그걸 누릴수 없다면 그 시간들이 너무 안타깝다는 겁니다. 이 예기는 거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짧지만 소중한 시간들을 허락하셨는데 비록 얼마되지 않는 시간들일찌라도 우리가 존재하는 그 순간순간을 충만한 시간으로 삼아갈 수 있다면 비록 찰라와 같은 순간일찌라도 영원과 같은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하고 가치있는 시간이겠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희 교회에 화분들이 있어요. 어떤 분들은 매주일 교회에 왔다가 가시는데 화분이 있는지 없는지 인식을 못하고 가셔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어머나 세상에 어쩜 이렇게 특이하죠. 새순나오는 것좀 봐, 어머나 신기하네. 하면서 그 아이들이 뿜어내는 생명의 기운을 듬뿍 가지고 가셔요. 존재해도 누리지 못하면 없는 거죠. 그러나 존재하는 것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존재의 가치를 온전히 발휘하면서 진실로 존재하게 만드는 거죠. 마찬가지로 고마운 조건들이야 온 세상 천지겠지요. 그러나 그 고마움이 이렇듯 자존감을 키우고 심지어 온전한 존재로까지 나아가게 하는 풍요로운 삶의 에너지로 활성화시키는 것은 각자의 몫이겠지요. 누리고 활성화시키는 만큼 우리의 삶인 거지요.
그래서 중병에 걸린 환자들에게 추천하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지요. 마음의 건강을 위해 명상, 몸의 순환을 위해 건강한 먹거리와 운동 등 많이 있지요. 그 중에 하나가 감사 일기를 쓰는 겁니다. 감사할 것들을 생각하다보면 처음에는 없는 것 같은데 하다보면 사소한 감사까지도 다 들여다보게 되고 그러다보면 에너지가 바뀌게 되고 감사할 일들이 많아지다보니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게 되고 그 친절이 또 다른 감사를 불러오고 그런 몸의 체험이 더 일글어져 인생의 큰 숙제였던 관계를 풀어내기도 하고 그러면서 삶의 활력을 찾고 그런 에너지가 병을 치유합니다. 고마운 삶을 내 삶에 활성화시키는 겁니다.
인디언들의 기도중에는 호오포노포노라는 기도가 있습니다. 남태평양 중심으로 있는 수없이 많은 섬에 사는 인디언들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법은 매우 단순합니다. 우리가 의식을 집중하고 침묵 속에서 내면의 나를 향해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네 마디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기도입니다. 이게 의식 무의식에 잠재적으로 왜곡되어져 있는 자신과 끊임없이 화해와 용서와 감사로 이어지게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각종 트라우마와 상처로 왜곡되어져있는 자신과 화해를 하고 내 안의 신성, 신성한 존재와의 연결됩니다. 호오포노포노라는 의미가 온전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 결국 신성과 결합되어 있는 자신의 가장 온전한 모습을 찾아가는 거죠. 우리 삶에 고마움과 사랑을 기억하고 소환하는 일을 통해 온전한 나를 만나가는 과정입니다.
이런 방식도 있습니다. 비폭력대화법을 주창하는 마셜은 고마움을 표현하는 색다른 제안을 합니다. 우리는 보통 표현을 할 때 뭉둥거려서 대충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맛있네요. 정말 맛있네요. 내 생의 최고의 맛이네요. 그런데 사실 이런 표현들은 그냥 입바른 말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가고 그래서 사람들에게서는 쉽게 그러려니 하면서 잊혀지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가끔식 음식을 먹으면 제가 이 세상에서 먹어본 카레 중에 최고였습니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런 표현도 마찬가집니다. 화려한데다가 뭔가 과장되어 있는 듯하고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셜이라는 사람은 서로 대화를 할 때 솔직함과 진실이 뭍어나는 대화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마움을 표현할 때 자신이 직접 보고 느끼고 그것을 통해서 채워진 것들을 담아서 표현을 하라고 제안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아 샐러드를 먹어봤는데 그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내 우울했던 감정을 확 바꿔주네. 오늘 하루종일 우울했는데 당신이 준비해준 샐러드가 저녁의 기분을 바꾸어 놓았네 고마워, 잘 먹었어. 매우 구체적이면서 주관적이라도 느낌을 잘 표현하면서 당신의 행위가 내 어떤 부분을 채워주었는지 생생하게 들어가 있어요. 투병생활을 하는 제 후배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들어가 생이 얼마남지 않았던 때, 저희 부부는 그 후배와 있던 기억들을 다 소환시켰습니다. 그 친구가 소설책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책을 읽고 나면 제 아내에게 언니언니하면서 착달라붙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언니에게 예기해줘요. 언니는 밤새는 줄 모르고 듣다가 먼저 잠이 들어요. 아버님 돌아가시고 헛헛해 하던 시절 자취방에서 밤새는 줄 모르면서 언니를 재미있게 해주었던 그 후배가 그런 삶이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졌어요. 그시절 그때 자네가 우리 언니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어떤 의미였는지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마움들을 좀 더 우리 삶에 생생하게 활성화시키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시간이야말로 전도서 기자가 그토록 간절히 염원했던 <삶을 온전히 누리는 시간>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픈 사람들이 많습니다. 코로나로 지쳐있는 이들도 많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원치않는 피할 수 없는 그저 맞이하며 살아가야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시간속에서도 삶은 소중한 것이고 소중한 만큼 그 삶을 촉촉이 풍성히 느끼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한주간동안도 이런 신비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