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에 대하여 / 이영광 시창고
비누에 대하여 / 이영광
(비누칠을 하다 보면
함부로 움켜쥐고 으스러뜨릴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비누는) 조그맣고 부드러워
한 손에 잡히지만
아귀힘을 빠져나가면서
부서지지 않으면서
더러워진 나의 몸을 씻어준다
(샤워를 하면서 생각한다)
힘을 주면 더욱 미끄러워져
나를 벗어나는 그대
나는 그대를 움켜쥐려 했고
그대는 조심조심 나를 벗어났지
그대 잃은 슬픔 깨닫지 못하도록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었지
끝내 으스러지지 않고
천천히 닳아 없어지는 비누처럼 강인하게
한번도 나의 소유가 된 적 없는데
내 곁에 늘 있는 그대
나를 깊이 사랑해주는
미끌미끌한 그대
이영광 시인
1967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고려대 영문과 및 동대학원 국문과를 졸업. 199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빙폭>외 9편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출처] 비누에 대하여 / 이영광|작성자 마경덕
첫댓글 사람이란게 우직하고 강직해야 할때도 있지만..비누처럼 유연하고 부드러워야 할때도 있는 법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