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 앞가슴털, 칡뿌리로 만든 붓도 있다[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95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가무형유산엔 없지만, 시도무형유산에는 ‘필장(筆匠)’이 있는데 필장은 문방사우(文房四友)의 하나인 붓을 만드는 사람 또는 기술을 말합니다. 붓은 털의 품질이 가장 중요한데, 붓끝이 뾰족해야 하는 첨(尖), 가지런해야 하는 제(濟), 털 윗부분이 끈으로 잘 묶여서 둥근 원(圓), 오래 써도 힘이 있어 한 획을 긋고 난 뒤에 붓털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건(健)의 네 가지 덕을 갖추어야 한다고 하지요.
털의 재료로는 염소(백모)ㆍ여우ㆍ토끼ㆍ호랑이ㆍ사슴ㆍ이리ㆍ개ㆍ말ㆍ산돼지ㆍ족제비 등의 털을 쓰며, 특히 노루 앞가슴 털로 장식용 붓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를 ‘장액붓’이라고 합니다. ‘제작과정은 우선 털을 고르게 한 뒤에 적당량을 잡아 말기를 한 다음 털끝을 가지런히 다듬는 ‘물끝보기’ 과정을 거친 뒤 대나무와 맞추고 마무리 작업을 하는 등 100여 번의 손이 가야만 하지요.
▲ 필장이 만드는 붓들 노루털붓, 볏짚붓, 양털붓(왼쪽부터)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글씨를 잘 쓰는 이는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경지에 오른 사람은 도구나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고 하지요. 선무당이 장구 나무란다는 말도 있고, 훌륭한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력이 중요한 만큼 그에 못지않게 붓도 중요합니다. 거친 갈필(葛筆, 칡뿌리로 만든 붓)로 위대한 작품을 남기는 사람도 있지만, 좋은 붓이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