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여행 트랜드는 관광만이 아닌 체험 속에서 자신의 재발견에 이르는 에코투어의 걷기문화가 주조를 이뤄간다고 할 것이다. 세계적인 명 순례길인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800km는 제주도에 ‘놀멍 쉬멍 걸으멍’이란 올레길을 탄생시켜 제주도의 관광 아이콘으로 자리잡아가고 있고, 남원 지리산 두레길, 부안, 고창, 익산에서도 도보길 만들기에 각 지자체에서 심혈을 쏟고 있다. ‘영광불빛길’은 여타 지자체가 추진하고 있는 길에 비해서 월등한 비교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수려한 자연환경, 독특한 역사문화, 육해공의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최초 불교 도래지에 이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인 불갑사,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의 출생성지, 일본 주자학의 시원인 강항의 내산서원, 수려한 불갑산, 호남의 둘째였던 불갑저수지, 염산의 기독교 순교지, 광활한 천일염전, 끝없는 지평선의 백수 간척농장, 칠산도와 갯벌과 서해, 우리나라 10대 아름다운 길인 백수해안도로, 법성굴비, 수은선생 피랍지, 해수찜과 해수욕장, 영광원전에 이르는 다양한 역사문화와 천혜의 자연이 어우러진 빛고을이기 때문이다.
그간 보름여 동안에 걸쳐 10여 코스로 나눠 답사한 소회는 영광불빛길은 모든 조건이 도보순례길에 이은 자전거도로로서도 너무나 완벽한 조건을 다 갖췄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조성만 된다면 영광의 관광아이콘으로 세월과 함께 더욱 진가를 발휘할 것이란 점이다.
때마침 전남도에선 영광~광양 해안도로 2500km를 600억원을 투입해 2010~2017년까지 생태탐방길로 ‘남도바닷길 삼천리’조성사업을 입안 추진 중이다. ‘영광불빛길’이 선도적으로 만들어져갈 때 자연스레 전남도의 유기적인 협조도 수월하게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희망근로프로젝트’사업을 영광지자체에선 불빛길 만드는데 선용한다면 다다익선이 될 것이란 생각에서 발 빠른 추진을 기원한다.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도보길에 병행하여 자전거길을 조성할 수 있으며 많은 경비가 소요되지 않고도 가능한 사업이란 확신이 들었다.
오늘은 사는 영광군민은 우리의 향토 후예들에게 ‘영광불빛길’이란 훌륭한 유산을 남겨줄 의무가 있지 않겠는가. 앞으로 영광불빛 10길을 차례로 연재 희망을 만들고자 한다
5.5매
(1)영광불빛길 선비길은? : 불갑사 천왕문-불갑사 천변 길-단산정-삼수정-운재앞 논두렁길-내산서원-박산-불갑저수지 수변 길-금계교-전촌-유봉산 임도-유성교-진천-만남의광장‘요나’-연두개재-불갑저수지수중보-수변공원
"고매한 선비의 고향찾아" 선비길 답사기
영광불빛길 시발점인 불갑사 천왕문 사천왕상을 뒤로하고 불갑사 천변 길을 따라나선다. 짙은 녹음 속의 물 흐르는 소리는 갈수기 탓인지 바위와 돌멩이 사이를 힘겹게 빠져나가는 만큼 가늘다.
선비길은 천변을 따르는 내림 길이라. 1600여 년 전(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인도 승 마라난타가 동진에서 배를 타고 한양으로 오다 풍랑에 남하하여 법성나루 곶에 기착하여 모악산에 이르고 불터를 닦아 최초로 창건한 사찰이 불갑사라. 그 마라난타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찾아가는 여정이 영광불빛길의 한 축인 것이다.
오전 8시가 안된 산사 앞의 녹색터널 길은 엷은 안개가 아직껏 아장거리고 있다. 실 날 같은 물 흐름소린 아침의 고요를 깨우겠다는 깜냥인가? 500m쯤 걷다보면 잘 다듬어진 잔디공원이라. 천변 오솔길도 뱀처럼 굽이치며 빨간 상사화가 핏빛으로 불빛 길까지 물들어 불빛으로 타오른다.
깔끔한 상가들을 옆에 끼고 천을 따른 선비길은 단산정을 지나 몇백 년은 됐을 느티나무가 수호신처럼 동구를 지키고 있는데 모정엔 인기척이 없다. 여기다 나중에 무인가게를 설치하고 이곳 청정지역에서 생산되는 토종농산물을 판매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심을 잡은 벼이삭이 초록 손짓을 무수히 해대는 들판을 조망하며 때고봉 품에 깊숙이 파고든 삼수동의 당산나무 두 그루의 영접을 받는다.
난 이맘때쯤 이곳에 사는 친구의 복분자 밭에 있기 일 수였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손을 거든다고 내 딴엔 농활을 나온 셈이지만, 이곳 복분자는 유기농청정지역이라서 값이 센대도 없어서 못 판단다. 불빛길이 트이면 여기 농산물도 더 많은 인구에 회자되리라. 운재 재를 넘는다. 잘 다듬어진 농로를 따라 내산서원에 닿았다. 한 시간쯤 소요됐다.
수은 강항(1567~1618) 선생의 청동상과 홍살문이 서원입구에서 래방객을 맞는다. 경내 푸른 잔디밭의 구릉엔 소나무가 재롱을 떨고 앙증맞은 호수 옆엔 팔각정자가 날아갈 듯하다.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강간회요 원판을 소장한 서원은 젖가슴처럼 오붓한 방마산을 뒤로 저윽히 평온하다.
호수 옆 정자에서 휴식을 취하는 불벗(불빛 길을 걷는 사람들)들에게 선생의 우국충정과 선비정신을 되새김질 해 줄 수 있는 길 -역사문화의 전당을 고민해 볼일이라.
선생은 형조좌랑이란 몸으로 휴가차 향리에 머물다 정유재란(1570)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집하여 항전을 독려타 이순신장군의 휘하에 들기 위해 서해로 나갔으나 왜구에 붙잡혀 3년간 적토에서 포로생활을 해야 했다. 형극의 억류생활 속에서도 적의 지리, 군세와 파벌, 적정 등을 염탐 기록하여 주상께 세 번이나 은밀하게 상소를 올렸다. 우국충정의 일념뿐 이였던 것이다.
선생의 동짓날 임금(선조)을 향한 단심 한 편을 옮겨본다.
去歲玆辰捧御床 : 지난해 이날엔 우리 님 뫼셨는데
戴星先捧祝堯觴 : 엎드려 올린 술잔에 태평을 빌었나니
今年流落丹心在 : 임 그린 일편단심 어디선들 잊으리오
一日愁隨一線長 : 한줄기 솟는 시름만 가슴속에 어리누나
선생의 고매한 인품과 출중한 학문은 적의 식자들을 감화시켰고, 특히 왜장 광통의 스승인 순수좌는 선생보다 6세 연상 이였으나 제자로 자청하여 유학을 사사하여 일본주자학의 효시가 됐다. 이때 선생께서는 사서오경, 근사통록, 소학, 곡례전경, 근사별록, 통서정몽 등을 필사해 줬는데 이 책들은 지금 일본내각문고에 보관 돼 있다.
선생께서 괴수 히데요시가 죽어 묻힌 황금전을 지나다 대문에 일필휘지 격문을 썼다.
半世經營土一坏 : 반평생동안 경영한 게 흙 한줌이라
十層金殿漫崔웨 : 십층의 금전이 부질없구나
彈丸亦落他人手 : 총알만한 권력도 남의 손에 갔으니
可事靑丘犈土來 : 뭣하려 우리땅 권토하러 왔던고
따르던 순승이 기겁을 하였지만 선생의 기개와 학문에 감흡하여 귀국길을 후원했다. 선생께선 귀국하여 순조를 배알하고 죄인이라 자청, 관직을 사양한 채 낙향하여 학문과 후학양성에 매진하였다.
선생은 나라의 록을 먹는자(공복)의 우국충정과 선비정신이 어떠해야 함인지를 실천함에 오늘날 더 절실히 본받아야할 귀감이라 하겠다.
서원에서 20여m을 산길로 접어들면 선생의 묘역이 좌측에 은거하고 얕은 오르막 임도를 오르면 박산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허나 비포장·포장한 길도 거기서 끝이라. 난 낫을 들고 숲을 헤치며 박산 가는 길을 찾는다. 100m쯤 새로 길을 만들고 나머진 비포장의 임도를 사용하면 훌륭한 불빛길이 돼 불갑저수지 수변도로에 닿을 수 있음을 알아냈다.
금계교를 건너 전촌을 향하는 수변도로를 따라가다 고샅길을 지나 유봉산 자락 임도를 걷는다. 멋대로 자란 육송의 몸매와 울창한 녹음 숲길은 인적이 없어 고적하다. 숲 사이로 언뜻언뜻 얼굴 내미는 불갑저수지 속살을 들어보고, 장끼새끼 몇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황급히 숲으로 달아난다.
이렇게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산길이 몇 군데나 될까? 허나 그 숲을 파헤치고 몇 개의 별장이 이미 들어섰고 공사 중인 곳도 있었다. 이런 우리들의 욕심이 더 수려한 경관을 망가뜨리기 전에 불빛길이 조성되고, 시멘트길이 되기 전에 흙과 풀을 밟는 원래의 자연길을 만들고 지켜야 함이다. 이 호젓한 길을 사람들은 얼마나 그리워하는가! 얼마나 인성을 살찌우게 할 것인가!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한 달여 남짓 걸은 모든 사람들의 이구동성이라. 포장된 그 산길은 한참을 굽이치다 끝났다. 허나 여기서부터 유성교까지의 임도 만들기도 그렇게 큰 토목공사랄 것도 없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되돌아서 유성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진천마을 앞을 지나는 수변도로를 따라 저수지변의 ‘요나’에서 커피 한잔의 정겨움을 뒤로하고 연무개재를 넘는다. 불갑천 천변 벚나무의 가파른 계단오름길을 숨을 헐떡거리게 오르니 검푸른 저수지는 바다가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끝이 없다.
방마산 자락의 수변공원길은 불벗들에게 최고의 휴식공간으로, 로망스를 꿈꾸는 장소로 태어날 것이다. 여기서 하룻밤을 머무는 불벗들이 맞을 오색가로등, 그 불빛이 있게 한 풍력발전 바람개비, 회전하는 바람개비를 그대로 담은 호수의 검푸른 물결위에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오색불빛은 일류미네이션의 황홀경에 빠지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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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여행 트랜드는 관광만이 아닌 체험 속에서 자신의 재발견에 이르는 에코투어의 걷기문화가 주조이다. 세계적인 명 순례길인‘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800km는 제주도‘올레길’을 탄생시켰으며, 남원 지리산 두레길을 비롯해 부안과 고창, 익산에서도 도보길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이제 수려한 자연환경과 독특한 역사문화를 품에 안고 있는 영광도 ‘불빛길’을 만들어 월등한 비교우위를 차지해야한다.
때마침 전남도에선 영광~광양 해안도로 2500km를 600억원을 투입해 2010~2017년까지 생태탐방길로 ‘남도바닷길 삼천리’조성사업을 입안 추진 중이다. ‘영광불빛길’이 선도적으로 만들어져갈 때 자연스레 전남도의 유기적인 협조도 수월하게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사는 영광군민은 우리의 향토 후예들에게 ‘영광불빛길’이란 훌륭한 유산을 남겨줄 의무가 있지 않겠는가. 앞으로 강대화씨의 답사기를 토대로 영광불빛길을 차례로 연재 희망을 만들고자 한다. <편집자주>
●영광불빛길 (3) 염산소금길은 ?
상오마을 - 오산마을 - 오동저수지 - 설도포구 - 기독교인 순교탑 - 봉양저수지 - 대흥염전 - 월평마을 - 가음산 - 야월교회 - 운곡마을 - 묘도 - 죽도 - 당두,상정마을 - 백바위해수욕장 - 창우선착장 - 동일염전 - 불갑방조제둑길 - 동산교
기독교와 소금 정신이 살아있는 염산소금길
월암산 자락에 자리 잡은 상오마을을 시작하는 염산소금길은 오산마을을 거쳐 오동저수지를 만난다. 오동저수지에 손을 씻고 77번 해안도로에 들어서 설도기독교순교지에 다다랐다. 염산은 일찌기 기독교복음이 전한 복전으로 독실한 신자들을 배출하였고, 6.25전란 땐 공산인민군에 77명의 목자가 목에 큰 돌을 매달고 설도포구 수문통에 수장당하는 참극에 이어 목자들의 순절이 194명에 이르렀다. 그 순교자를 기리는 순교자탑이 군의 상징처럼 포구에 있고, 이리엔 유물과 기록을 전시한 순교기념관이 있어 많은 기독교인들의 순례지가 됐다.
독실한 신앙인의 자세와 그런 신자를 낳게 한 목회자의 사도정신을 생각해 보게 한다. 오늘날의 교회는 부와 명예만을 좇는 데 경도 되지는 안했음인지, 가난하고 낮은 자들을 챙기는 교회의 순수성을 일탈하지는 안했는지를 돌이켜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그날의 순교자들과 목자는 가난하고 낮은 자들 이였던 것이다. 지금 지구상엔 3초마다 한 사람씩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고 세계식량기구(FAO)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만에 하나 교회가 눈총을 받는 게 있다면 영적성찰 보다는 외형확장을 선도하려는 일부 목자들의 전도된 포교 때문이려니..... 방문하는 순례자에게 교회는 항상 친절한 안내를 해주고 있었다.
설도포구의 상가들은 이곳 특산의 젓갈과 건어물과 활어를 즐비하게 진열하여 불벗들을 반긴다. 상가도 일부 매립지에 깔끔하게 단장을 했다. 염산은 소금동네이다. 예부터 천일염으로 유명한 고장인 것이다. 낙후된 교통으로 옛명성을 잃었으나 소금의 맛은 진짜라고 염부는 기세를 꺾지를 않고 있었다. 그 소금으로 맛깔낸 젓갈과 각종 건어물이 늘비한 장터에서 어물류 쇼핑에 눈 팔다가 봉양저수기 둑 옆길을 거쳐 310번 제방 길에 들면 넓은 평야와 바다에 접하게 된다.
대흥염전과 백산양어장 한 복판을 지나다보면 비로써 염산바다의 품에 안기기 시작했음을 알게 된다. 종패류부화장인 아세아수산이 한창 증설을 하고 있었는데 불벗들에게 종패류 학습체험장으로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10분쯤 걷다보면 군유염전과 바다를 막아 만든 내해의 아득함에 눈길을 뺏기게 되는데 다시 20여분을 걸어 월평마을에 들어선다.
마을안 나무그늘에 마련한 플라스틱 의자에서 읍에서 사온 모싯잎 송편으로 허기를 때웠다. 상고름한 모싯잎 특유의 향은 천연향이 그대로 베어있어서 여느 떡과는 맛이 다르다. 모시대 자체가 야생(요즘은 밭에 식재하기도 한다)이고 쌀과 버무려 찧어서 찐 웰빙음식이다 보니 영광의 대표먹거리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10여 년 전부터 난 고향에 올적마다 읍 터미널 길가에서 커다란 양은다라에 가득 담아갔고와서 팔던 할머니에게 송편을 사먹곤 했었다. 이젠 영광읍의 상가는 몇 백 미터 간격으로 모싯잎떡집이 들어섰는데, 간간히 농촌마을에서도 모싯잎떡 공장이 눈에 띈다. 영광의 모싯잎떡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증거라. 불빛길이 트이면 시골의 떡공장도 더 바빠지겠거니.
월평마을뒷산, 한 시간 남짓 가음산(歌音山)을 오르면 서해바다 염산의 산야와 염전을 조망하고 하산할 수 있다. 등산길 인적이 뜸해 수풀이 우거져 불편했으나 앞으로 불벗들에겐 멋진 코스일 것이다.
야월리에 도착해 기독교인들의 순교 터인 야월교회를 찾아 참배하고 박물관을 관람하는 순례는 빼놓을 수 없는 코스라. 이 순교의 터에서 발아한 신앙은 이후 불빛길 도처에 세워진 교회가 수난의 역사를 반추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음을 목격케 된다. 여기 순교의 터에서 하루일정을 마무리하는 민박을 찾아 휴식을 취함도 최상의 장소라 하겠다.
194명의 가난한, 허나 마음은 부자였던 순절자들을 추념하며, 죽음을 직시하며 읊은 남효은(1454~1492.조선의 문인)의 자만(自滿 내 스스로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떠올려본다.
"개미들은 내 입에 들어오고, 파리모기는 내 살을 물어뜯으며, 새로 꼰 새끼줄로는 내 허리를 조르고, 헤진 거적은 내 배를 덮었다. ---일곱 구멍이 모두 막혔구나."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 부자나 높은 자도 일곱 구멍은 막힐 거고, 곤충들의 먹이로 제공될 뿐이다. 가진 것을 나누는 삶에 의미 있는 길을 후예들에게 남겨야 함이라.
야월교회를 나선 소금길은 가음산의 반대편을 관망하며 지금은 염전으로 변한 묘도와 죽도를 잇는 314도로에 들어서 당두까지 일직선상을 걷게 되는데, 수평선과 지평선의 실체를 실감케 된다. 가없이 펼쳐진 염전갓길의 너와집 같은 고만고만한 소금창고는 우리를 40-·50년 전의 사회교과서 그림에서 보았던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추억여행을 하는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강산이 몇 번은 변했음인데 왜 소금창고는 그대로일까?
바다와 태양과 염전이 변할 수 없음이라 창고도 변하면 안 되는 걸까? 변함이란 염전바닥이 타일과 고무판으로 바뀜인가? 난 염전바닥이 타일과 고무판으로 됐음을 이제야 알았다. 이 드넓은 염전이 타일과 고무판으로 도배됐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 천일염전은 불벗들에게 산교육장이 될게 틀림이 없겠다.
천일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애타게 태양을 갈구하고 불볕 태양과 싸우며 하얀 다이아몬드를 일궈내는 구릿빛 사내들과의 얘기 속에서 그들의 순박함도 짙게 묻어나 우릴 감화시킨다. 당두·상정마을을 들락거리며 농촌의 풍경과 이웃한 바다를 숨바꼭질하다보면 두우리해수욕장과 어깨 한 백바위 송림모래톱에 안기게 된다.
모래사장에서 해수욕을 즐기거나 해발 100m쯤의 백바위 정상에 오르면 짙푸른 바다는 코밑에 인경도를 하나 띄우고 뒤론 칠산도를 점점이 뿌려놓곤 아스라이 송이도를 선뵈고 있다. 칠산도 조기는 법성굴비로 재탄생하여 명품이 되고, 법성은 전라도의 조창으로 조선조 때부터 명성을 날리니 불교도래지요 수은선생의 섭랍지란 역사성까지 더해 불빛길의 발화점이라!
백바위 정상에서 무한대의 바다에 빠져보라. 그리고 내려와 송림 밭의 민박촌에서 하룻밤을 잠들라. 푸른 바다란 캔버스에 제멋대로 휜 아름드리 해송사이로 붉게 타는 해넘이를 그려보라. 푸른 캔버스는 주황으로 물들다 빨갛게 이글거리는 무안홍의 신비경을 연출한다. 대한민국 어디에 이토록 한적하고 기막힌 팬션(민박)단지가 있을까보냐.
두우리쉼터는 불빛 오백길의 절반쯤 되는 지점일 테다. 바다를 안은 풍광이 너무 멋있어 불빛길의 또 하나의 명품장소가 될게 틀림없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은 썰렁해서 폐가 된 숙박시설의 을씨년스럼이 곧 활기를 찾게 될 것이 눈에 선하다.
백바위 솔밭에서 창우마을 선착장으로 이동하면 통통선들의 갓 잡아온 싱싱한 어물들에 눈길을 팔다 동일염전을 지나 야월염전을 끼고 가는 315번 길에서 검은 옥토에서 일궈내는 하얀 다이아몬드의 집산을 다시 목격케 된다. 불갑방조제길을 따라 녹색들판을 한 시간쯤 걷다보면 백수읍으로 통하는 동산교를 만나면 염산소금길을 뒤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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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불빛 오백리길 이렇게...
작금의 여행 트랜드는 관광만이 아닌 체험 속에서 자신의 재발견에 이르는 에코투어의 걷기문화가 주조이다. 세계적인 명 순례길인‘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800km는 제주도‘올레길’을 탄생시켰으며, 남원 지리산 두레길을 비롯해 부안과 고창, 익산에서도 도보길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이제 수려한 자연환경과 독특한 역사문화를 품에 안고 있는 영광도 ‘불빛길’을 만들어 월등한 비교우위를 차지해야한다.
때마침 전남도에선 영광~광양 해안도로 2500km를 600억원을 투입해 2010~2017년까지 생태탐방길로 ‘남도바닷길 삼천리’조성사업을 입안 추진 중이다. ‘영광불빛길’이 선도적으로 만들어져갈 때 자연스레 전남도의 유기적인 협조도 수월하게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사는 영광군민은 우리의 향토 후예들에게 ‘영광불빛길’이란 훌륭한 유산을 남겨줄 의무가 있지 않겠는가. 앞으로 강대화씨의 답사기를 토대로 영광불빛길을 차례로 연재 희망을 만들고자 한다. <편집자주>
●영광불빛길 (4) 백수 해안길은 “
동산교 - 불갑방조제길 - 함평염전 - 백수농장방파제길 - 지산교 - 답동 - 석구미찜질방 - 동백마을 - 교동 - 순절비 - 노을전시관 - 대치미
“전국 10대 아름다운길 백수해안길 답사기 ”
염산면과 경계지점인 동산교를 시작하는 백수 해안길은 불갑방조제길에서 서해의 수평선을 이어 놓은 백수농장의 초록지평선을 바라보게 된다.
우는 녹색, 좌는 청색물감을 풀어헤쳐놓은 끝없는 수·지평의 원심점에 서면 비로써 나의 실체에 대해 자문케 된다. 무한대 우주 속에서의 점 하나인 자신을 발견하고 초라함에 자조하다가 언뜻 우주의 중심이 자신임을 자각하게 된다. 나 없는 우주는 의미가 없음이라. 나(自我)의 지존을 체감하고 생의 의의와 목적을 반추하게 될 것 같다.
그 세상의 중심에 서서 두서너 시간을 걸어보라. 시원한 바닷바람이 폐를 후비고, 풍요로운 들판의 녹색 일렁임이 물결처럼 시선을 붙들다 이따금 먹구름 가득 몰고 온 하늘은 머리위의 따가운 햇볕마저 거둬가는 망망한 지·수평 속을 몇 시간째 걸어보라. 그대는 여길 왜 왔던가? 단조롭고 그래 심드렁해지다 짜증나는 고행의 뒤안길을 찾아보기 위해 일상을 탈출하지 않았던가?
그 뒤안길을 빨리 찾고 싶다면 여기 백수농장방파제 길을 걸을 일이다. 그 길이 마무리 될라치면 바닷물은 깊숙이 파고들어 갯벌에 통통마디와 칠면초를 키우고 농개를 비롯한 수많은 수생곤충의 또 다른 세계를 발견케 될 것이다. 불과 몇 미터 앞의 농게가 뻘을 열심히 정화하다 인기척에 놀라 줄행랑치더니 점하나 되어 사라지는데 내가 정화할 곳은 어디일까를 자문해 본다.
보다는 행여 내가 세상에 쓰레기만을 보태는 농개만도 못하는 자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지산교를 건너 좌측 해안길을 따라 곧바로 올라가면 답동이 나온다. 지산교에서 대전리 쪽으로 향하면 백수서초등과 백수중 백수읍사무소를 거쳐 천마저수지부터 시작하는 갓봉 등산길을 택할 수도 있다. 이 등산로 가닥이 여러 가지지만 답동으로 나오는 코스가 일품이다. 갓봉길은 오두재를 넘고 길용저수지를 지나는 사이로 넘나드는 풍광에 경탄케 한다.
해안길을 걷는 동안 푸른 바다는 쉬지 않고 달려와 절벽 따라 굽이친 해안도로를 잡으려다 바위에 부딪쳐 산산이 부셔진다. 그 흰 포말을 잡으려 괭이 갈매기는 곤두박질을 하는 걸까. 해안도로는 흰 구렁이처럼 기고 있다.
백수해안도로가 왜 전국 10대 아름다운 길인지를 실감케 된다. 절골로 이은 하산에 들면 야동마을에서 유명한 백수해안도로(77번도로)와 만나게 되는데 도로변에 ‘석구미찜질방’이란 입석이 안내를 하고 있다.
십 여분 숲길 포장길을 내려가다 보면 답동부락이 푸른 서해바다를 보며 산비탈에 매달려있다. 마을 고샅 여기저기서 조망하는 서해바다는 한 폭의 그림이다. 썰물 땐 깊숙이 뻗은 갯벌에서 조개류를 채취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으로 다가온다.
바닷가에 내려서면 해수찜을 하는 손님들을 마주하게 된다. 바다에서 끌어온 해수를 가마에서 끓여 옷이나 수건 따위를 적셔 찜질하는데 옆의 천연바위 탕에 드러누워 서해바다를 조망하는 완전 노천 찜인 것이다. 관광버스로 온 손님들의 활기가 노천에서 가관이라. 깎아지른 바위벼랑 앞에 들어선 민박숙소는 이미 성업중이였고, 일부 손님들은 썰물의 갯벌에서 바지락 채취에 흠뻑 빠졌다. 막 잡은 바지락을 삶아서 바위웅덩이에 누워 찜질하며 먹는 여유로움과 낭만은 여기 석구미가 아니곤 어디가 있으랴?
석양의 낙조가 수평선과 갯벌을 달구면 서해는 온통 황금빛으로 눈부시다. 이토록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가장 편한 자세로 완상할 수 있는 장소가 어디 있을까. 몸은 찜 속에 시선은 해넘이를 쫓는 불벗은 정녕 혜택 받은 사람이란 걸 자각하게 될 것이다.
영광불빛길이 트면 가장 붐빌 데가 여기다 싶은 생각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찜질방을 나선 해안 길은 영화 ‘마파도 촬영지’로 유명한 동백마을에 들어선다. 완만한 언덕골자기에 듬성듬성 자리한 어촌이 망망 서해를 달려온 파도에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유명세를 탄 해안도로엔 해당화가 해맑게 웃고 있고 낙화한 놈은 도톰한 씨방을 달고 하늘거린다. 해당화와 송림과 바다와 동무하며 교동마을 향해 걷다보면 현대식 레스카페가 하나 둘씩 해안 바위에 그림처럼 나타난다. 창해를 바라보며 차 한 잔, 솔향 한 옴큼을 음미하며 시원한 해풍에 찌든 응어릴 씻는 낭만을 즐기는 멋은 좋은 추억 쌓기라 할 것이다.
해안갈 따라 가자골과 교동을 지나 열부순절지를 참배하여 정유재란시의 질곡의 참상을 되새김질 해 본다. 1597년 9월 왜구의 침략으로 이곳 동래진주정씨 문중의 부인 12명은 포로가 되느니 죽는 게 낫다고 바다에 투신한다. 붙잡혀 능욕당하거나 굴욕적인 죽음 후에 코나 귀를 베어가는 만행을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한 시간 남짓 절경에 취하며 길에 몸을 맡기면 두순정진에 이르고 잠시 숨 돌리곤 다시 반시간을 걸으면 안장바우를 지나니 서해 절경을 담은 노을전시관과 해수탕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올해 말 안으로 개장한다니 해안도로의 아름다움과 해수탕의 웰빙이 합해지면 그야말로 대단한 명소로 기대된다.
굽이굽이 해안길을 몇 굽이 지나오니 돔배섬이 나타나고 그 뒤로 멀리 홍농 원자력발전소가 보인다. 큰 굽이를 돌아 나오니 대치미 앞바다 속에 작은 포구와 고기잡이배 서너 척이 파도에 들썩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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