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퇴직을 선택한 지도 만 일년이 지났습니다.
학교가 그리울 때도 있고, 문자로 오는 학생들의 소식이 1년이란 시간을 없애버린 듯 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던가요?
안식년처럼 보내고 싶다고 시작한 3월. 읽기 시작한 책은 [기독교강요]이었습니다. 영어로 된 것과 우리말로 번역된 것 두 가지, 그리고 성경책을 합하여 네 권, 아니 영어사전까지 다섯 권을 들고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쯤이면 다 읽었어야 하는데 중간에 마음이 변하여 열심히 읽던 것을 중단한 채 천천히 읽다보니 이제야 제 3권을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과 만나서 공부를 하면서 [한국기독교의 역사] 세 권을 다 읽었습니다. [한국기독교와 민족의식]도 읽고, [한국교회사]와 [한국장로교 신학사상]도 읽었습니다. 그리고 F.브루스의 [구약사]와 [신약사]를 읽었습니다. 대학시절에 사 놓고서 지금까지 읽지 못하던 책들을 이제야 읽으니 너무 좋았습니다. [위대한 순교자들]도 읽고, [천지창조와 예수 그리스도]라는 책도 읽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손 댄 책들이 프란시스 쉐퍼 전집이었습니다. [기독교 찰학 및 문화관], [기독교 성경관], [기독교 영성관], [기독교 교회관], 그리고 [기독교 사회관]이었습니다. 모두가 두툼한 책들이어서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집 가까이에 있는 엄사도서관에 가서 읽기도 하고, 시청쪽에 있는 계룡도서관에 가서 읽기도 하고, 집에서도 읽었습니다. 학원에 가는 아들을 생각하며 나도 일찍 일어나서 시험공부하는 비장한 마음으로 읽었는데, 혼자서 읽고 끝나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적은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성약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장로], [집사와 장로] [요한계시록강해] 등은 나오자마자 읽었습니다. 최근에는 [칼빈의 갈라디아서 강해] 상권을 다 읽고, 하권을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박경리의 [토지]를 9권째 읽고 있습니다. 문학작품을 마음껏 읽고 싶었는데 아직은 그렇게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있어서 마음을 느긋이 먹고 멀리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3월이 끝나가는 시기에 산기슭에 밭을 만들어서 채소를 심었습니다. 작년 봄엔 가뭄이 심하여서 물을 주느라고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했습니다. 상추와 고추는 정말 많이 수확하여서 교인들에게도 나눠주었고, 호박도 그리하였습니다. 가지와 오이, 땅콩, 옥수수, 피망과 파프리카, 도라지, 열무와 배추, 마늘과 파와 양파 등 제법 많은 것들을 심고 수확하였습니다. 지치고 힘든 마의 마음을 달래주는 농사-이것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감나무, 대추나무, 매실나무, 포도나무, 모과나무, 무화과나무 등도 심었으니 금년에는 그 모습이 확연히 드러날 것입니다. 올해는 땅을 더 넓혀서 콩과 고사리와 미나리 등도 심어볼 생각입니다.
10월에는 탁구사랑이라는 동호회에 가입하여서 화목토요일에 탁구를 치고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가서 운동을 하는 것이라서 여러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이렇게 운동을 하니 몸도 마음도 기쁘고 건강합니다. 그전에는 등산이나 산책을 하거나 수영장에 갔는데 지금은 탁구를 치는 것이 유일한(?) 운동입니다. 물론 자전거를 타고 밭에 갔다오면 그것이 큰 운동이 되기도 합니다.
9월과 금년 1월에는 물류운송교환센터에 가서 돈 버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밤에 가서 밤새도록 하는 일이라서 고된 정도로는 난생 처음으로 해 보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어서 유익한 것도 많았습니다.
교회에서는 일하지 않고 지내는 동안이기에 시간 여유가 있다고 해서 1학기에는 수양회에 관한 일을 많이 맡아서 처리했습니다. 계절학교 일은 가끔 도와주기만 했습니다. 화단을 파고 개나리를 심는 일 등, 육체적으로 힘을 사용해야 하는 일도 도와주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한글 수업을 이끈 것도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쉽고도 어려운 일이 이것인 듯합니다. 취학 전의 아이들에게 한글을 지도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그들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경험이 되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나의 세계를 좀더 넓혀준 경험이 되었습니다.
11월에는 원격수업으로 심리상담사 강의를 듣고 자격증을 받기도 했는데 공인자격증이 아니지만 심리학 부분에 대한 공부를 조금 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두 아들들과의 문제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제 둘째의 입학식이 있어
서 태워다주고 돌아오는 저의 마음은 착잡했습니다. 아들을 삼았을 때부터 어제까지 한 묶음의 삶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작년만 보면 처음엔 수학과외에, 그리고 6월부터 5개월 동안은 학원생할에 바쁠 때 우리 부부도 덩달아서 그의 일어나고 눕는 시간과 함께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밤에 물류운송교환센터 일을 다닐 때는 거기에도 맞춰야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앉아 있으면 두 아들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작년에 어느 문제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멀기만 한 그들, 그러나 가장 가까운 그들.
그래서 명예퇴직을 하고 난 후의 일년은 길고도 짧았습니다. 기쁜 일도 많았고, 괴로운 시간도 많았습니다. 영혼의 성숙함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은 물론 교인들과의 원만한 관계 형성도 하지 못한 채 상처가 남은 부분도 있습니다. 이사를 하면 그런 부분에서 대단한 발전이 있을 줄로 알았지만 사실은 이사하기 전에 하던 생활이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서 사모하고 기대할 때가 제일 좋은가 봅니다.
하지만 일년 동안 열심히 산다고 살았기에 크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올해는 3월부터 농업기술센터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4개월간 일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끝나면 다른일을 알아보면서 금년엔 돈을 버는 일을 계속해 보려고 합니다. 안식년의 경험을 밑바탕으로 하여서 금년에는 조금 더 정리된 삶을 살아보렵니다. 그러려면 현실적으로 잠 자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조금 더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느껴져서 거실에서 독서를 하여도 크게 춥지 않으니 가능한 일입니다. 이제 둘째가 비어놓은 방에서 밤 늦도록, 혹은 아침 일찍 공부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어쨋든 요즘 도서관에 간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집에서라도 열심히 독서를 하고, 가끔 이렇게 글도 써야 하겠습니다. 작년에 하지 못해서 아쉬운 것들 중 한 가지가 바로 글쓰기입니다. 올해는 일을 하면서도 생각을 많이 하고 가끔 글쓰기로 정리하여 여기에 올리고자 합니다.
무엇보다도 기도하고 사랑하는, 용서하고 이해하는 훈련을 더 하렵니다. 여전히 비판적이고 반발을 잘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주님의 긍휼하심을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작은 일에 좌우되지 말고 웃어 넘기는 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우리의 적은 연약함이 많은 우리 교인이 아니고 사탄과 세상임을 항상 기억하면서 싸움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