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의 수필 문단에서 ‘수필’이라는 용어가 ‘essay’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용어의 내포적 개념은 상당히 다르다. 수필보다는 에세이가 보다 폭넓은 개념을 지니고 있다. 칼럼이나 논설과 같은 짧은 산문은 물론이고 정해진 체제를 갖추지 않은 비평문이나 소논문까지 에세이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essay’라는 용어는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의 수상록(les Essais, 1588)에서 처음 나타난다. 몽테뉴는 자신의 사사로운 일상에 대한 체험과 사유를 포착하여 생생하고 인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후에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의 수상록(The Essays, 1597)이 출간되면서 근대 유럽의 에세이 역사가 출발한다. 베이컨은 몽테뉴와는 달리 매우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를 포착하여 장중하고 사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수필(隨筆)’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남송 사람 홍매(洪邁, 1123~1202))의 용재수필(容齋隨筆)에서였다. 홍매는 “생각나는 대로 그때그때 기록하고, 기록한 순서를 따랐을 뿐 가리고 묶어서 차례를 매기지는 않았으므로 수필이라 했다.”(意之所之 隨卽記錄 因其後先 無得詮次 故目之曰 隨筆)고 한다. 수필이란 용어는 편집 특성에 의해 붙여진 책 이름임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도 수필이라는 말은 17세기 이후에 서명으로 사용되었는데, 윤흔의 도재수필(陶齋隨筆), 이민구의 독사수필(讀史隨筆), 조성건의 한거수필(閑居隨筆), 박지원의 일신수필(馹迅隨筆), 안정복의 상헌수필(橡軒隨筆) 등이 그것이다. 수시로 써 놓았던 일기, 기행, 제문, 시화 등과 같은 다양한 형식의 산문을 모아서 엮은 서명으로 사용한 것이므로, 수필이란 말은 잡록 정도의 개념이었다.
수필이 장르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에 들어와서였다. 우리 고전 가운데 수필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 있었으나, 이들을 통괄하는 장르의식이나 명칭이 그동안에는 없었다. 그래서 외국문학 전공자들이 수필을 서구의 에세이와 같은 개념의 장르 명칭으로 규정해 나갔다. 김광섭은 <수필문학 소고>(1933)라는 짧은 평문에서 “엣세이를 수필이라고 역하는 데는 자못 주저가 생겨진다.”고 하면서도 수필과 영국의 essay를 동일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여 수필을 소논문이나 비평문과 같은 비문학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아주 넓게 잡았다. 임화는 <수필론>(1940)에서 “장르로서의 문학과 논문이나 저술의 중간”에 수필이 위치해 있다고 하여, 우리 수필을 informal essay쯤으로 그 범위를 잡고 있다.
수필과 에세이의 차이에 대한 인식은 해방 이후 좀 더 구체적인 논의로 이어졌다. 곽종원은 《문예학 개론》(서라벌예대출판국,1948)에서 수필에 해당하는 용어로 essay와 miscellany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수필은 미셀러니에 속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피천득의 <영국 인포멀 에세이>(《자유문학》,1958)에 의하면 우리 수필은 내용이나 표현방법에 있어서 informal essay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 수필은 miscellany나 informal essay의 개념과 같다고 가르치고 배웠다.
크게 잘못되었다. miscellany는 장르 명칭이 아니며 informal essay는 우리 수필보다 개념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미셀러니는 여러 주제의, 또는 여러 종류의 글을 모아놓은 잡록을 지칭하는 용어이며, informal essay는 정형화된 형식의 학문적 글쓰기와 비교해서 비정형을 추구하는 글쓰기 양식으로 종교적 믿음, 낙태나 안락사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 또는 어떤 개인적인 경험을 주제로 다룬다. 그러므로 장르로서의 수필을 미셀러니라고 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며, informal essay라고 하기에도 개념 범주의 차이가 너무 크다. 우리 수필 문단에서 신문의 사설이나 칼럼, 사회적 이슈에 대한 논평 등은 수필의 영역에서 제외시키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장르의 개념이나 범주는 문학작품들이 모여서 구축한 하나의 관습적 틀이다. 이러한 문학적 관습은 작품 창작의 원리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학 장르의 개념범주나 형식은 고정되지 않고 항상 유동적이다. 장르적 관습은 작가의 작품 창작을 규제하려 들지만, 작가는 장르의 관습적 틀을 깨트릴 수도 있다. 수필 창작에서도 장르의 이러한 성격을 이해하고 창작 방향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유병석은 <수필과 상상력>(<<수필문예>>3호, 1972.4)에서 이미 '미셀러니'라는 용어의 부당석을 지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