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3)
#추월관 매향천
내로라하는 기생 모두 섭렵한
강릉 최부자 둘째 아들 최훤
평양기생 매향천 못 안아 몸이달아
최부자가 집 비운 사이
아비 곳간을 몽땅 털어
평양으로 줄달음쳤는데…...
색향 평양에서도 으뜸가는 색줏집은 추월관이요,
이 집에서 독보적인 존재는 매향천이다.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한량입네 으쓱대는 사람도 평양 기생
매향천을 품어보지 못한 사람은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다.
강릉 천석꾼 최부자의 둘째 아들 최훤은 관동 일원의
내로라하는 기생들을 모조리 섭렵했지만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평양 기생 매향천을 안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지난봄 최부자가 외종 장례에 가느라 삼일 집을
비운 사이 최훤은 제 아비 곳간을 몽땅 털어 거금을 마련해
평양으로 줄달음쳤다.
그 놈이 돌아오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겠다고 용을 쓰던
최부자도 여름이 가고 가을이 깊어도 집 나간 탕아가
소식이 없자 근심이 커졌다.
평양의 추월관은 오늘도 처마 끝마다 청사초롱 불 밝혀 놓고
방 안에서는 가야금 열두줄에 권주가를 엮어 질펀한 주연이 벌어졌다.
쌀쌀한 마당에서는 추월관 마당쇠인지 삐쩍 마르고
꾀죄죄한 젊은이가 뒤꼍에서 장작을 한아름씩 안고 와
아궁이마다 군불을 지피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쉰다.
오늘 밤 매향천이 점찍은 손님은 거부의 아들답게 망건의
관자도 번쩍이는 금이요, 술상을 나르는 시동에게도
대수롭지 않게 열냥을 던져준다.
어깨가 떡 벌어진 팔척장신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이글거리는 눈빛이 매향천을 사로잡았다.
돈 많고 잘생긴 남자, 이런 것이 매향천에게는 금상첨화다.
남자가 볼품없어도 돈이 많으면 매향천은 하룻밤 몸을 팔지만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그녀가 먼저 달아오르는 것이다.
오늘 손님이 바로 그녀를 달아오르게 하는 그런 남자 다.
이경이 지났을 때 술판이 끝나고 시동이 청사초 롱을 들고
추월관을 나서자 매향천은 술 취한 손님을 부축하여
자신의 집으로 갔다.
열두폭 화조 병풍 앞에 비단 금침이 깔리고 천하일색
매향천이 치마를 벗자 촛불 역광에 그녀의 몸매가 드러났다.
손님도 갓을 벗어던지고 두루마기를 벗고 두 남녀는 펄펄
끓는 정염으로 한몸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매향천의 요분질에 떨어져 나가지 않은
남자가 없었는데 이 손님은 도리어 “천하의 매향천이
이 정도인가?”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 손님의 정력은 끝 간 데가 없었다. 매향천이 온몸에 땀을 비 오듯 쏟고
하늘을 찢듯이 신음을 토해내도 그 손님의 힘은 아직도 넘쳤다.
파르르 경련에 떨던 매향천이 마침내 혼절을 하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매향천이 정신을 차렸지만
아직도 온 세상이 흔들리고 있었다.
“악!” 매향천이 비명을 질렀다.
비단 한필에 사지가 묶여 대들보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이다.
벌써 옷을 입은 손님은 술상을 앞에 놓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서방님, 이 무슨 야릇한 장난입니까?” 손님이 벼락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이년, 내 말을 잘 들어 라.
최훤은 내 친구다! 그 많은 돈을 다 빼앗은 것도 모자라
마당쇠로 부려먹기까지 했느냐?”
그녀가 서슴없이 대답했다.
“술값, 해웃값으로 돈을 다 썼으면 집으로 돌아갈 것이 지,
괜히 외상술을 마셔 외상값을 못 갚고 잡혀 있는 것입니다.”
최훤의 친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매향천의 치마와 저고리를
대들보에 매달린 그녀의 배와 가슴에 올려 놓았다.
흘러내린 옷고름이 방바닥에 닿았다.
최훤의 친구는 촛대에서 초를 빼 방바닥에 닿은 옷고 름에
촛농을 떨어뜨리고 그 위에 초를 세웠다.
초가 다 타면 매향천의 몸을 덮고 있는 옷에 불이 붙을
참이다.
손님이 나가려 하자 매향천이 고함쳤다.
“최훤의 돈을 다 돌려드리겠습니다. 사람 살려 주십시오.”
최훤과 그의 친구는 묵직한 전대를 차고 고향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