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史記 49회》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1. 척(戚)부인과 여의(如意)를 죽이다.
속담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동양사회는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의 사회였으므로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여러가지면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고 살아왔습니다.
특히 유교사상이 지배했던 중국과 우리의 경우는 더욱 심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섬뜩한 속담이 생겼다고 생각됩니다.
한고조 유방이 죽고 어린 혜제가 황제로 등극하였으므로 황후 여치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치는 태후가 되어 수렴청정을 하면서 승상 소하와 좌승상 진평 등 대신들을 완전히 손아귀에 넣고 좌지우지 하였습니다. 보통 수렴청정을 하는 태후들은 신하들에게 대부분의 정사를 맡기고 결재만 하는 정도였지만, 여치는 달랐습니다.
대표적으로 소하를 시켜 한신을 유인해오게 하여 남편 유방도 모르게 살해한 사건을 보더라도 여치가 얼마나 신하들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유방에게는 젊어서 부터 척(戚)씨 성을 가진 첩(妾)이 있었습니다.
유방은 전쟁터를 전전하면서도 이 척부인을 항상 데리고 다녔으며 많은 사랑을 주었습니다.
더구나 척부인의 소생인 여의(如意)를 태자로 삼으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니 본부인인 여치는 뼈에 사무치도록 유방을 원망하며 척부인과 그녀의 소생 여의를 미워하며 한(恨)을 품었습니다.
더구나 유방이 가족을 팽개치고 항우에게 쫓겨다닐 때는 늙은 시아버지와 식솔들을 거느리고 항우에게 포로가 되어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겼는데 자기 가슴에 못질을 하는 유방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유방이 죽은 뒤 제1순위로 손을 본 것이 척부인과 그녀의 아들 여의였습니다.
척부인은 코를 자르고, 손발을 자르고, 눈알을 뽑아 돼지 우리속에 던져버렸고 그녀의 아들 여의는 사약을 먹여 죽여버렸습니다.
여치는 만일 자신의 소생인 효제가 태자에서 밀려나면 죽는다는 각오로 장량을 붙들고 꾀를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이때 장량은 "태자로 하여금 자기를 가르쳤던 스승들 네분을 찾아가서 자신이 태자 자리를 잃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방법이 제일입니다. 그분들 외에는 황제를 설득시킬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여 네분 스승이 황제 유방을 알현하고 태자 유영을 후궁의 소생인 여의로 바꾸는 일은 전통적인 長子 승계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강력히 건의하여 설득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여치의 밀명을 받은 소하, 진평 등 신하들이 계속 태자 바꾸는 일을 반대하니 유방은 어쩔수 없이 태자 바꾸는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치는 유방의 사후에 태후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