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랑생맥주에 취하다 – 금주일지 118일(2023.1.9.)
코로나로 인해 코이카 봉사의 길을 접게 되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2020.9.1일부터 광주푸른꿈창작학교에 출근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코로나가 한창이어서 학생들을 볼 수가 없었고(학교 등교가 금지된 상황이었기에) 원격수업으로 겨우겨우 교육과정을 운영하였다.
그로부터 지난 2년 반 동안 코로나로 인해 많은 야외 교육활동을 제한할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고, 그로 인해 교사들의 피로와 스트레스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쌓여갔다. 아직도 몇몇 선생님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으러 다니기도 하고 있다.
지난 2년 반 동안 선생님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교육청으로부터 계약 기간을 2023년 3월부터 2026년 2월까지 3년 더 연장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선생님들의 수고와 헌신 덕분이라고 여기고 어떻게든지 작게라도 보상하며 격려해 주고 싶었다.
마침 코로나의 상황도 조금 느슨해져서 선생님들의 의견을 모아 진도 쏠비치 리조트로 1박 2일 동안 나들이를 결정하였다. 일정과 내용을 모두 선생님들이 짜도록 하였고, 비용도 최대한 학교의 운영비로 지원하도록 하였다.
아침 9시에 출발하는데 한 분도 지각자가 없었다. 출발하여 강진 무위사에 들렀다가 해남에서 아구찜으로 점심을 먹을 때까지도 아직도 서먹한지 별로 말이 없었다.
점 심 식사 후 진도대교 옆 카페에서 차를 한 잔씩 마시며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기다가 울돌목 스카이워크 산책을 하고, 이어서 케이블카를 타고 울돌목을 건너 진도 전망대 쪽으로 건너갔다. 일부 선생님들은 고소공포증으로 스카이워크나 케이블카 탑승을 거부했으나 끝내는 서로 부추기고 얼러대어 함께 걷고 탑승하며 깔깔거리며 재미있어 했다.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폼도 수정해주면서 분위기가 점점 부드럽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팽목항으로 달려가서 아직도 차가운 물속에서 ’가만히 있는‘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 앞에서 머리 숙여 묵념을 함께 올렸다. 우리들의 선생님 된 마음처럼 강하게 몰아치는 겨울바닷바람이 우릴 제자리에 오래 서 있지 못하도록 등을 떠밀었다.
시간이 좀 이르긴 하지만 쏠비치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예약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다.
’어, 이젠 술 한 잔씩 하겠는데!‘
그런데 의외로 술을 별로 마시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리고 저년에 숙소에 짐을 풀어놓은 후 다시 회의실에 모여 공동체 놀이를 했다.
각 부서별로 놀이를 준비해 왔는데 너무 재미있고 즐거워했다.
내가 지금까지 푸른꿈창작학교에서 본 선생님의 얼굴들 중 가장 밝고 환하고 즐겁고 행복한 모습들이었다.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버렸다.
땀이 나도록 신나게 놀았으니 이제 맥주를 한 잔씩 하겠다며 웰컴센터 지하 1층 더펍(치킨&호프) 가게로 이동했다. 홀이 제법 넓은데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미리 예약을 해 둔 관계로 준비된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의 테블릿으로 주문을 하였다. 젊은 선생님들은 너나없이 블랑생맥주를 주문하였다. 거기에 양념(?)으로 소주까지(소주는 셀프로 가져온 후 후불 결재) 가져왔다.
난 또 맥주 대신 따뜻한 물 한 컵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함께 건배를 하였다.
여행지에서 땀 흘려 놀이한 후 마시는 생맥주의 맛이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그런데 그 블랑생맥주가 향이 독특하다며 또 좋다며 맛만 보시란다. 눈으로, 코로만 향을 훔치며 많이 실컷 드시라고 권했다.
술이 한 잔씩 들어가니 드디어 감추었던 끼와 흥들이 외출을 시작하여 이리저리 꿈틀대기 시작하였다. 평소에 조용하던 분들이 일어나 이 자리 저 자리로 옮겨가면서 ’드세요‘, ’마시세요‘, ’좋네요‘, ’그러네요‘ ’멋져요’, ‘재밌어요‘ 등등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흥과 끼들을 감추고 사느라고 애썼을 직원들을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영업 종료시간인 11시가 가까워지자 선생님들은 숙소에서 2차를 하자면서 우의를 다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경비를 십시일반 할 모양 같았다. 평소에 술을 마실 때 같으면 나서서 주도했겠지만 술을 안 마시는 데다가 나이(위치?) 등을 고려하여 자리를 비켜주기로 했다.
그리고 슬그머니 친목을 담당하시는 선생님을 불러서 2차 비용을 후원해 주었다. 감사하다면서 기쁘게 받으니 그도 흐뭇하였다.
이튿날 들으니 밤늦은 시간에 시끄럽다며 옆방에서 민원이 들어와 리조트직원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는 후문을 전해 들었다. 그렇게 신나고 좋았을까.
나는 더펌에서 블랑생맥주를 냄새만 맡았지만 선생님들이 흥겹게 마시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에 취하였다.
’다행이다. 좋아하니까. 올해는 더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어야지‘ 하고 마음을 다져 먹는다.
첫댓글 블랑생맥주의 냄새라도 맡고싶네요. 어떤 느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