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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형도 20주기를 기해 만들어진 문집으로, '기형도의 삶과 문학'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이 책을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구입해서 가지고 있었지만, 그동안 서가에 꽂아두고 읽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기형도 시에 대한 작품론을 쓰게 되면서, 그의 시집과 함께 비로소 읽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모호한 표현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기형도의 시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는 것이 오랫동안 이 책을 방치했던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더욱이 기념 문집의 특성상 지인들의 상찬이 많을 수밖에 없으니, 그 내용들에 대해서도 거북하게 느껴졌던 나의 인식도 작용했을 터이다.
이 문집이 출간된 지 10여 년이 흘러, 기형도가 죽은 지 벌써 30년도 더 지났다. 1989년 종로의 허름한 영화관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어, 사후에 지인들에 의해 출간된 시집이 바로 <입 속의 검은 잎>이다. 나이 30이 못 되어 죽은 것을 '요절'이라고 한다면, 기형도가 전형적으로 그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최근 그의 시를 다시 읽으면서, 나이를 먹은 탓인지 조금씩 그의 시와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이 문집에 실린 글들은 시인에 대한 상찬으로 일관되어 있기에, 기형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그의 시집을 옆에 두고 이 책에 거론된 작품들을 다시 읽으면서, 그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냈던 터라 시의 내용들이 어느 정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기형도의 시는 198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좀처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시인의 개인사를 다룬 작품들도 적지 않기에, 그의 생애와 연보를 통해서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시는 비유와 은유가 많아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점들이 그의 시를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점, 그리고 시인의 생애나 창작 배경을 무시하고 독자의 입장에서 읽어내려고 노력할 때 그렇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나친 상찬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 책을 읽지 않고, 그의 시를 직접 읽는 것이 훨씬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목차에서, 제1부는 ‘질쿠는 나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기형도를 읽는 시간’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여기에서는 후배 세대 시인들의 좌담을 통해서, 그들에게 끼친 기형도의 형향이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다. 이밖에도 기형도의 문학적 연대기와 그의 시 세계를 간략하게 정리하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기형도와 개인적 인연이 있었던 이들의 추모의 글들을 모아놓았다. 여기에 ‘먼지 투성이의 푸른 종이’라는 제목의 3부에서, 기형도 문학에 대한 비평들이 배치되어 있다. 조금은 거리를 두고 읽으면서, ‘동료’ 문인들의 기형도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인의 생애나 창작 배경을 안다면, 작품이 더욱 잘 이해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그러한 배경 지식을 떠나서 작품을 먼저 내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작품은 시인의 손을 떠난 순간 독자들이 자유롭게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상찬 위주의 글이 수록된 이 책을 읽으면, 오히려 작품에 대한 선입견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어쨌든 최근 그의 시를 다시 접하면서, 몇몇 작품들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시의 본질이 '모호성'으로 운위될 수 있다면, 기형도의 시는 모호성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해준다고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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