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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느껴 읽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작가의 <삼국유사>에 대한 일종의 독법(讀法)이라고 이해되었다. 주지하듯이 <삼국유사>는 고려시대 승려인 일연이 편찬한 책으로, 단군신화를 비롯하여 삼국시대까지의 중요한 문화적 기록을 전하고 있다. 일종의 야사라고 칭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국문학적으로 더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책이기도 한다. 아마도 국문과 출신이라면 한번쯤은 읽어야 하는 정도의 필독서이기도 하다. 예컨대 <삼국유사>에 수록된 14수의 향가에 대한 국문학 분야의 연구 논문은 이미 3천여편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그 작품들에 관한 연구들이 쏟아지고 있을 정도이다.
이미 적지 않은 논문이나 저술들이 제출되어 있기에, 작가는 소설 형식을 빌어 <삼국유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고자 했던 것이 이 작품의 창작으로 이어졌다고 짐작된다. 내가 읽은 것은 작가의 전집 가운데 한 권이지만, 작품이 발표된 시기는 2005년이라고 한다. 따라서 당시에 작가가 북한을 방문했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즉 남북교류가 활발하던 무렵,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된 작품이라고 하겠다. 지금은 남북 관계가 단절되어 북한으로의 여행이나 방문이 불가능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과거 남북이 왕래하던 시절의 북한 방문기라는 소재를 취하고 있다. 주인공인 ‘나’는 북한 방문 기회를 잡고, 평양 대동강 한가운데에 있는 섬인 양각도 호텔에서 3박 4일 일정으로 머물게 된다.
외부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환경에서, ‘나’는 우연히 호텔의 서점에서 <삼국유사> 번역본을 구입하게 된다. 방문 지역이 북한이라는 것과 휴식 시간에 자유로이 왕래하기 힘들다는 조건이 등장인물로 하여금 책을 읽고 그에 관한 생각을 펼쳐내도록 하는 동인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호텔방에 머물면서 틈틈이 <삼국유사>를 읽고, 그에 관한 자신의 생각들을 펼치게 된다. 국문학을 전공한 작가 역시 <삼국유사>와 관련된 장소들을 적잖이 답사했을 터인데, 작품 속에 그에 관한 경험과 기억들이 함께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삼국유사>에 대한 작가의 독법은 주로 국문학적인 관심 분야와 소재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학술적인 글에서라면 쉽지 않을 주장들을, 소설의 등장인물의 발언을 통해 과감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작품에는 몇 명의 주변 인물들과 과거 답사를 함께 했던 옛 연인이나 지인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작가의 <삼국유사> 독서와 나름의 해석이 주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주인공인 ‘나’의 북한 방문에 대한 간략한 경과도 소개되고 있지만, 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작품은 철저하게 <삼국유사>에 대한 감상과 해석에 집중되어 있다. 목차의 소제목들도 ‘양각도 호텔, 첫째 날 -<구지가>를 읽다’ 등으로 자신이 읽은 <삼국유사>의 내용들을 내세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삼국유사>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들었던 내용이 김수로왕의 탄생을 다룬 ‘가락국기’에 수록된 <구지가>였던 것이다. 특이한 것은 '거북'이 아닌 '가락'이라는 나라이름에서 검다는 의미의 '가라' '검' 등의 의미를 유추하여, 북방계 설화와 연결시키고 있다. 그동안 '가락국'의 신화는 남방계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작품 속의 이러한 해석은 아마도 소설이기에 가능한 상상과 해석이라고 하겠다. 이를 전제로 '단군신화'와 '석탈해' 관련 기사는 물론, 김수로의 후손인 신라의 김유신과 관련된 내용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내용들을 엮어서, ‘나’의 생각과 경험을 빌어 작가만의 해석을 취하고 있다.
둘째 날의 소재는 ‘동식물의 시간’이라는 부제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각종 동식물들에 관한 내용과 이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이어진다. 예컨대 신라 박혁거세 설화에 등장하는 ‘흰 말’을 포함하여, 자신이 답사했던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나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어지는 셋째 날에는 ‘불교의 발자취’라는 제목으로, 불교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다. <삼국유사>의 편자가 승려이기에, 당연히 불교 관련 기사들이 많다는 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대체로 <삼국유사>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작가가 다시 윤문을 해서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삼국유사>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국문학에 대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넷째 날의 ‘노래여, 영원한 노래여’에서, 14수에 이르는 향가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부분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특히 향가를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전체적으로 소설의 흐름과는 별도로 그저 향가 작품과 그에 관한 해석들 그리고 작가의 견해가 주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대복>이란 향가집이 왕명에 의해서 편찬되었으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그나마 <삼국유사>에 14수라도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 학문적으로는 고마울 따름이라고 여겨진다. 비록 오늘날 일부분이나마 향가의 아름다움을 접할 수 있는 것도 다 <삼국유사>라는 책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국문학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책이 바로 <삼국유사>이다. 아마도 작가는 이 책이 갖는 의미를 자기의 관점에서 풀어내고자,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형상화했다고 짐작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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