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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시대의 상속제도에 대해 연구한 내용으로, 저자가 연구 대상으로 삼은 자료는 고전소설로 알려진 <유연전>이다. <유연전>은 조선시대 문인인 이항복(李恒福)에 의해 지어진 작품으로, 주인공 유연의 잘못된 재판에 의한 억울한 죽음과 오랜 시간이 지나 진실을 규명하려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누명을 벗는다는 내용이다. 유연의 재판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던 시기가 1564년(선조40)이고, 억울한 누명을 벗고 임금에 의해 사건의 전말을 밝히라는 명이 내려져 이항복에 지은 것은 그보다 40여년이 지난 후였다.
작품의 주인공인 유연은 셋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첫째 형은 일찍 죽고 둘째 형 유유가 어느날 행방불명이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유유가 바로 행방불명되었던 인물이며,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자형인 왕족 이지에 의해 유유가 살아있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그렇게 등장한 유유는 행방불명 당시의 모습과 판이하게 다른 형용이었지만, 같이 살던 때의 기억을 생생하게 토로하여 주변 사람들이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유연이 서울에 가서 형을 만나고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진짜 형이 아님을 알고 감영에 신고함으로써 사건이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일종의 병보석으로 풀려난 가짜 유유가 다시 사라지면서, 유유의 첩인 춘수에 의해 유연은 살인죄로 고발되게 된다.
마침내 유유의 부인이자 유연의 형수인 백씨도 이에 동참하여 유연이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형을 죽이고 증거를 인멸하였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르자, ‘가짜 유유 사건’은 뜻밖에도 유연이 형을 죽인 ‘강상죄(綱常罪)’로 둔갑하여 조정에서 재판을 받고 증거도 없이 거짓 자백으로 사형을 당하게 된다. 훗날 유연의 부인과 주변 사람들의 노력으로 옥에서 도망갔던 ‘가짜 유유’의 존재가 확인되고, 유연 집안의 재산을 노린 자형 이지(李?)와 종매부 심융(沈?)에 의한 모함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진짜 유유가 나타나고 다시 재판이 열려 유연의 누명이 끝내 밝혀지게 된다는 결말의 작품이다.
이 작품과 더불어 이지의 후손들에 의해 지어진 <이생송원록>에는 이지의 무고함을 강변하는 상반된 내용이 담겨있다. 저자는 이 두 문헌을 근거로 <유연전>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핵심은 결국 당시 장자상속이 일반화되지 않은 상속제도의 허점에서 비롯된 사건이라고 강조한다. 아들과 딸이 부모의 재산을 고르게 물려받는 ‘균분상속(均分相續)’이 시행되고 있었던 시기에, 사위들이었던 이지와 심륭이 가짜 유유를 내세워 재산을 탈취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라고 하겠다. 즉 재판에 의한 ‘유연의 억울한 죽음’에는 조선시대 상속제도의 문제가 얽혀 있으며, 그러한 문제를 <유연전>을 포함해 다양한 역사적 자료들을 근거로 밝혀내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라고 하겠다.
오늘날 아주 오래된 전통처럼 여기고 있는 장자 상속제가 실은 법에 근거하지 않은 문화일 뿐이며, 한 집안의 운영을 책임지는 종가나 종손 등의 명칭도 17세기 이후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관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전통은 아들과 딸을 구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상속했던 ‘균분상속제’가 법에 근거한 제도이며, ‘장자상속제’는 특정 가문의 재산이 균분에 의해 흩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관습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상속제도로 인해서 빚어진 ‘가짜 소동’은 조선시대의 <유연전>에서도 나타나지만, 프랑스에서 소설로 창작되어 영화화되기도 했던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라는 작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작품은 할리우드 버전으로는 <서머스비>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졌으며, 리차드 기어가 열연햇던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저자는 고문서와 고전소설을 깊이 있게 검토하면서, 조선시대의 상속제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실증을 통해 밝혀내고 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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