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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바쁘다는 핑계로 영화를 잘 보지 못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때 주말이면 비디오 테잎을 쌓아놓고 정신없이 영화를 보던 때가 생각났다. 문득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존재하듯이, 영화를 보는 방법도 그만큼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스토리 위주로 영화를 감상하는 편이지만, 때로는 영상이나 음악 그리고 인물들의 연기에 초점을 맞추어 봐야 재미있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들이 있다. 예컨대 <미션>이나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같은 영화들은 그 영상미와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이 너무 좋아서, 어딘지 엉성하게 느껴지는 스토리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리빙 라스베가스>도 줄거리는 평범하지만, 도심의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흐르는 영상에 매료되었던 영화였다.
간혹 영화를 보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같은 영화라도 서로 느끼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소설가인 이 책의 저자는 음악에 초점을 두고 영화를 설명하고 있다. '소설가 오성은의 영화 소리 산문'이라는 설명이 붙은 이 책에는 '사랑하거나 고독하거나'라는 또 다른 부제가 달려있다. 자신이 본 영화를 그 속에 흐르는 음악을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때로는 스토리와 함께 논하고 때로는 인물들의 연기와 함께 작품에 대한 감상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나로서는 아직 보지 못한 영화가 적지 않지만, 나중에 보게될 영화 목록을 선정하는데 저자의 설명들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영화에 대한 생각과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간단히 밝히고 있는 프롤로그에 이어, 각 장의 제목은 마치 영화의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듯하다. 'intro, 사랑이란'이란 항목에서는 <비포선라이즈>와 <베티 블루>를 비롯한 6편의 영화를 중심으로, 작품에 그려진 사랑의 모습들을 영화 음악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각각의 영화에서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고, 영화 음악이 각 작품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저자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상대에게 끌려 다음날 아침이면 헤어져야 하지만, 함께 하룻밤을 지내는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비포 선라이즈>의 내용을 읽으면서 마치 그 영화의 음악이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를 촬영할 때 여러 개의 샷이나 장면을 멈추지 않고 촬영하는 일련의 동작을 일컬어 ‘테이크(tak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용어를 사용해서 목차를 구성한 첫 번째 항목인 'take1, 사랑하거나'에서는, 항목에서는 <퐁네프의 연인들>을 비롯해 모두 10편의 영화에 드러난 사랑과 이별의 문제를 역시 음악과 함께 서술하고 있다. 사실 여기에 소개된 영화들 대부분을 아직 보지 못했기에, 나로서는 저자의 설명에 대해서 뭐라 덧붙일 내용이 없다. 다만 이 항목의 마지막에는 영화음악의 거장인 엔니오 모리꼬네를 통해서, 저자 자신이 영화에 탐닉하게 되었던 시절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부산영화제에서 먼 발치로 보았던 모리꼬네의 모습, 그리고 영화제 기간 중에 수많은 영화들을 보고 리뷰를 썼던 기억들을 통해 자신의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이 영화에 빠져들었던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책에는 음악과 대사를 통해서 영화를 '듣는' 저자의 감상법이 흥미롭게 제시되어 있다. 'take2, 고독하거나'라는 항목에서는 <본 투 비 블루>를 포함한 10편의 영화와 음악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다행스럽게 이 항목에 소개된 작품들 가운데 <리플리>를 비롯한 몇 작품은 나도 이미 보았던 것들이었다. 그래서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 음악을 함께 떠올릴 수 있었다. 저자는 소설을 쓰기 위해 밤을 지새우면서, 쳇 베이커의 음반을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것이 아마도 자신에게 가장 큰 고독의 순간으로 기억되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이해된다. 이 항목들에서는 저자가 생각하기에 고독을 잘 그려냈다고 생각하는 다양한 영화들을 소개하면서, 그 속에 삽입된 영화 음악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누군가를 닮기 위해 노력하다 끝내 파멸의 길에 접어든 <리플리>의 주인공 역시 저자의 관점에서는 고독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단지 영화와 음악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저자 자신의 경험을 적절히 녹여내어 풀어가는 내용도 흥미롭게 여겨졌다. 마지막 영화인 <라라랜드>를 소개하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밴드를 조직해 활동을 하고 음대 진학을 염두에 두었지만 부모님의 눈물로 포기해야 했던 자신의 아픈 기억을 반추하기도 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영화들 가운데 아직 보지 못한 작품들이 적지 않지만, 만약 보게 된다면 그 음악들을 유심히 들으면서 감상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책을 통하여 영화를 이해하는 다양한 방법 가운데 하나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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