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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48) - 너희가 바로 보물이다(마6:19-21)
(마태복음 6:19-21)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자, 우리는 지난주에 땅에다가 그 보물(寶物)을 쌓는 게 뭔지, 그리고 하늘에다 보물을 쌓는 게 무엇인지, 자세하게 공부를 했습니다.
땅에다가 그 보물을 쌓는다는 거, ‘축적(蓄積)한다.
쌓다’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데사우리조’(θησαυρίζω/G2343)인데 데사우로스(θησαυρός/G2344)가 ‘보물’이거든요. 그러니까 ‘데사우리조’라는 건, 단순히 뭐 ‘쌓다’ ‘축적하다’이런 말이라기보다는, 그 ‘보물이 되게 하다’ 이런 뜻이에요. 어떤 것을 계속 가져서 보물이 되게 하다.
그 ‘데사우리조’라는 말은, 땅에다가 보물을 이제 ‘데사우리조’한다는 말은, 자신이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것 들을 ‘열심히 축적했더니, 땅이 되더라.’ 이런 말이죠. 그리고 ‘하늘에 보물을 축적한다.
’는 말은 ‘진리라는 보물을 열심히 축적을 해서 하늘이 된다.
’라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그 진리의 보물을 담은 하늘이 되어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이제 그 하늘 안에 담으면, 그게 바로 하늘에 쌓이는 보물이 되는 거고, 하늘과 보물이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여전히 땅적 존재로서의 그 세계관으로, 그 노미조(νομίζω/G3543/법에 따른)하는 마음으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게 되면, 그 말씀은 이제 율법으로, 내 안에, 땅인 내 안에 쌓이게 되고, 그것 자체가 땅이 되는 거예요. 그들이 모인 곳을 ‘지옥(地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이 되어서, 그 안에 진리라는 보물, 그 생명의 보물을 쌓는 이들은, 그 자체로, 그 빛을 발하는 보물이 되는 거고, 여러분 자신이 보물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 못하는 이들은 흙으로 돌아가는 그런, 저주의 땅으로 돌아가는, 저주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 보물(寶物)이라는 단어, ‘데사우리조’라는 단어는, ‘티데미(τίθημι/G5087/배치.진열하다)’라는 단어에서 나온 단어거든요. 그러니까 ‘티데미’가 뭐냐면? 하늘의 그 진리, 하늘의 그 보물을, 이 땅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이렇게 ‘횡적’으로 배열해 놓은 거 있죠? 진설(陳設)해 놓은 거, 그게 ‘티데미’잖아요? ‘그렇게 놓아 둔 것’ 그게 성전(聖殿)이죠? 그렇게 놔둔 게 율법(律法)이잖아요? 그것으로 우리가 그 하늘의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되면, 그것 자체가 보물이 되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그 하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그게 흙이에요. 티끌이란 말입니다.
그것이 모래 같은~, 비로 내리는 데, 모래로 받게 되는, 그러한 저주의 말씀이 되는 거죠.
사실, 그 보물이라는 말, 그 ‘데사우로스’라는 말은, 다른 곳에서 ‘리도스 티미오스’라는 그런 말과 혼용(混用)이 되어서 사용되기도 하는데요. 그 뜻은 ‘가장 귀한 돌’이라는 뜻이에요. ‘가장 귀한 돌’ 이렇게 ‘보석(寶石)’이렇게 번역이 되곤 하는데 ‘보석’이라는 말이 한문으로도, 그냥 ‘귀한 돌’이에요. 돌 귀한 돌! 그 돌은 그 지성소의 언약의 법궤 안에 들어가 있는, 그 언약의 ‘돌’ 있죠? 그게 최고 중요한 ‘돌’이거든요. 가장 귀한 돌! 그런데 그게 뭔지를 알면 그게 진리거든요. 그래서 그 가장 귀한 돌! 그게 보물이 되는 거예요. 보석이 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것이.
그것은 당연히 진리(眞理)로 오신 그 ‘뜨인 돌!’ 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거죠, 그죠? 우리가 그 아들이라는 말, 아들이라는 말이 뭐라고 그랬어요? 제가 예전에도 몇 번 설명해 드렸는데, ‘돌’이라는 말이, ‘에벤(אבן/H68/돌)’이라는 말이에요. 이게 ‘돌’이에요. ‘에벤에셀’ 아시죠? 그런데 ‘에벤,’ 이게 돌인데, 이걸 이렇게 나누면? אב/ן אב 아부가 뭐예요? 아버지죠? 아버지가, 아랫것으로 내려오면, 그걸 ‘돌’이라고 그래요.
א/ב א 이렇게 나누면 벤이 아들이거든요. 알레프가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돌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예수님을 구약에 보면, 돌이라고 하는데, ‘뜨인 돌’, ‘산돌’, ‘모퉁이 돌.’ 그런데 그 돌이, ‘거치는 돌’도 됩니다.
그러니까 그게 산돌이 되고, 뜨인 돌이 되고, 그렇게 되면 나에게 보석이 되지만, 그 돌은 나에게, 나를 부서트리는 저주의 돌도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거예요. 한번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지난번에도 제가 한번 말씀을 드렸는데~
‘아다마(אךמ)’ ⟶ ‘아파르(עפר)’
‘아다마(אךמה)’라는 것에서, 뭐가, ‘아파르’라는 것이 나온다고 그랬죠. [아다마(אךמה)] 이거를 성경이 땅이라고 하고, [아파르(עפר)] 이것을 티끌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걸로 뭘 만들어요? ‘아담(אךם)’을 만들죠. 성경에 이렇게 기록돼 있단 말이에요. [아다마(אךמה)] 이거를 그냥 땅, 흙 이렇게 번역을 하고, [아파르(עפר)]이거는 티끌, 먼지 이렇게 번역하고, [아담(אךם)]이건 그냥 사람 그렇게 번역을 했는데, 그렇게만 알고 계시면, 여러분은 그냥 땅에서, 그 땅위에 먼지들을 이렇게 모아서, 물을 넣어서 반죽을 한 다음에, ‘아담(אךם)’ 이렇게 만들었구나. 이렇게 생각 한단 말이에요. 그죠?
그런데 이거는 성경이 말하는 것은, 그런 말이 아니라 자 ‘아다마’가 뭐예요? 아담! ‘아담’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렇게 나누면, 이렇게 한번 나누어 보면, ‘담’이라는 게, 피고, 이게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의 피!’ 그것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이제, 요 아담이에요. 그러니까 이 아담은 ‘하나님의 피’ 그 하나님의 생명이 아니면, 아예 존재일 수도 없는 자예요. 그런데 이 [아다마(אךמה)] 여기에서 이제 이 [아파르(עפר)]라는 게 나오고, 여기에서 [아담(אךם)]이 나오는데, 이 ‘아파르’라는 건 티끌이죠? 티끌. 티끌이고 먼지란 말예요. 그런데 [아다마(אךמה)] 이걸 갖다가 파자(破字)를 하면 어떻게 되냐면?
자, 하나님께서 분석하신 그 진리가, 하나님께서 그 구별하신 그 진리를 그 말로, 소리로 주면, 그게 이제 [아다마(אך )]예요. 그 말씀에 의해서 이것[아파르(עפר)]이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이게 뭐냐면 [아파르(עפר)]가 이게 율법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나중에 보면, 너희들에게 비가 내리는데, 그 비가 티끌이나 모래로 내리면, ‘너네 다 죽는다.
’라고 할 때 티끌이 이거예요. [아파르(עפר)]! 그러니까 이렇게 내리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아다마(אךמה)]에서 이것이 이제 이렇게 [아파르( עפר)]율법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아다마(אךמה)] 진리라고 해 보자고요. 그 진리가 율법으로 주어지는데, 그 율법으로 우리가 ‘아~ 그게 그거군요’ 이렇게 그걸 내 안에 담잖아요? 그러면 그것이 ‘아담’이라는 존재예요. 그런데 [아담(אךם)]여기에는 말이 없네요. 소리가 없네요. 진리로 그냥 끝나버리네요.
그래서 나중에 보면 창세기에 여기(ה )관사가 하나 붙어요. 그래서 ‘하 아담(האךם /G120/아담/인간)’ ‘그 진리를 말하는 소리!’ 그게 우리거든요. 그게 나중에, 인자라는 개념. 여기에서 계속 그 후손들이 하나씩 하나씩 나오는데, 그 아담의 그 아들, 그 아담의 그 아들, 그 아담의 그 아들, 그 아담의 그 아들 그걸 뭐라고 그래요? ‘그 사람의 그 아들’이니까, 그걸 ‘인자(人子)’라고 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그걸 먼지로, 티끌로, ‘아파르’로 받아 버리면, 여러분은 이 아담이 될 수가 없어요. 아니 아담이 돼요. 아담이 되는데, 어떤 아담이 되냐면? 그냥 ‘붉다’라는 뜻이에요. 이건[아담(אךם)] 또. 그냥 ‘붉은 아담,’ 죄가 되는 거예요. ‘성전의 아담’이 되는 거죠. 그러나 이것[아파르 (עפר )]으로 여러분이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됐을 때, 여러분이 ‘하 아담(אךם)’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 아담’이라는 관사가 붙은 사람과 그냥 아담과 완전히 달라요. 성경에 보면. 이걸 여러분이 숙지하고 이해를 하고 계시면, 성경을 읽는데 많이 도움이 될 거예요.
자, 그 돌! 지금 돌 얘기를 하다가 저 얘기를 했는데, 그 돌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게 돌이에요. 그런데 그 돌 역시, 어떤 이들에게는 가장 귀한 진리의 보석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파괴하는 돌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서에 보면, 느브갓네살 왕의 꿈속에 등장하는 그 ‘뜨인 돌’ 하나가,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서 환장하는, 그 세상이라는 ‘신상’ 있죠?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신상을, 때려 부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역사다! 꿈이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은 자기가 꿈을 살고 있는데, 그 꿈이 뭔지도 모르고 내용도 모른단 말예요. 그런데 다니엘(ךניאל/H1840/하나님의 재판관), 하나님의 사람이, 그 꿈을 분석 해주는데, 어떻게 분석해 주냐면, 그 꿈이라는 거 이 세상 역사라는 건 뭐냐면, 하나님의 그 뜨인 돌, 말씀에, 의해서 세상이 박살나는 거야~ 그런데 그 돌에 의해 모든 건 박살납니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박살이 나는 거, 자기부인이라고 그러죠? 그게 뭔지를 알면 구원이지만, 그게 뭔지를 모르면 그 자체가 박살나는 거예요. 그게 멸망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게 역사의 실체라는 겁니다.
자, 아무튼 우리가 우리 안에, 그 진리의 ‘돌’을 마음으로 갖게 되면, 우리가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귀한 보물이 되는 거고, 그 ‘돌’을, ‘티끌,’ ‘아파르’로 이렇게 받게 되면, 모래로 받게 되면, 먼지로 받게 되면, 우리 자신이 흙이 되는 것이란 말예요. 그러니까 율법을 흙이라고 한다.
먼지라고 한다.
모래라고 한다.
이건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구약 성경을 원문으로 잘 읽어 보면, 전부 그렇게 표현하고 있단 말이에요, 성경이.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보물이 되느냐’ 아니면, ‘저주 받을 티끌로 돌아가느냐’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의해, 판가름이 나는 거예요.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는 건, 여러분이 열심히 교회에 헌금을 해서, 하늘에서 쓸 사유재산을 축적(蓄積)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가장 귀한 ‘돌!’ ‘하늘의 보석!’ ‘돌’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니까. 그게 보석이란 말예요. 귀한 돌. 사실 사람들이 그게 가치 있다고 자기들끼리 합의 안 하면, 그게 돌이지 뭐냐고요? 여러분 달고 다니는 그게. 어디다 써 먹냐고요? 그걸 배고플 때 먹을 수가 있어요? 뭐로 쓰냐고, 그거를?
그래서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입고 들어가는 ‘에봇’ 위 그 보석에, 하나님 백성들의 열두 아들의 이름, 열둘의 이름이 기록 되어 있는 거예요. 어디에? 보석에~. ‘내 아들들이 보석이다.
’ 이런 말이에요. ‘가장 귀한 돌이 내 아들이다.
’ 출애굽기 28장 9절 보세요.
(출애굽기 28:9)
9 호마노 두개를 취하여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그죠? 아들, 이게 ‘벤’이에요.)
10 그들의 연치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11 보석을 새기는 자가 인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테에 물리고
12 그 두 보석을 에봇 두 견대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어서 기념이 되게 할찌며
그거 메고 어디로 들어 가냐면?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간다니까요. 아들들, 열둘이, 그 보석들이 그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존재들인 거예요. 그러니까 아들이란 말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가보면 좀 더 분명해집니다.
(요한계시록 21:1-2, 10-12)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이 왔네요.)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면, 우리 얘기 하는 거 아닙니까. 신부니까. 하나님의 신부, 우리 얘기.)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이게 출애굽기에 나오는 그 이야기와 그냥 똑같은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천국이, 뭐 보석으로 되어 있다.
라는 뜻이 아니라, 여러분이 보석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천국에 갔더니, 무슨 뭐 화장실 변기도 금으로 되어 있고, 뭐 길도 다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고~. 그거는 자기 환상이에요. 인간들이 꿈꾸는 천국이란 말예요. 그거는. 그거는 인간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곳이라니까요. 그런 곳은 천국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건 다 사기(詐欺)예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리의 말씀으로 그 하늘들 안의 보물이 되어 가는 거예요. 내가 하늘들이 되어서 그 진리의 말씀, 그 말씀이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을 가지면, 내가 보물이 되는 거라니까요. 그걸 가진 나, 껍데기로서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 안의 ‘질그릇’이라는 보물이 들어 있기에, 질그릇 툭 치면 깨질 그 질그릇, 옛날 질그릇은 유약도 안 바른 질그릇이란 말이에요. 애들이 장난감 그 소꿉장난 할 때 진흙으로 이렇게 덕지덕지 만들어서 햇빛에 말려놓죠? 그런 거라니까요. 옛날 질그릇은. 툭 치면 깨는 거예요. 그래서 토기장이 이야기 많이 나오잖아요? 우리 로마서 9장 공부하고 있는데. 그 토기장이가 하는 일이 뭐냐면? 그때는 100개를 넣으면 99개는 다 깨버려야 될 그릇들이었단 말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토기장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다 깨버려야 한다는 그런 의도로 우리를 만들었다는 의도로 쓴 거예요. 당시에는.
자, 우리는 그렇게 깨진, 쉽게 깨지는 질그릇인데, 그 안에 하나님이 보물로 담기면, 내가 보물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은 그 보물을 ‘(발란티온/βαλάντιον)’ 주머니라고도 표현하세요. 주머니하고 보물이 어떻게 이게~ 섞일 수 있는 개념입니까? 그런데 주님이 보물을 주머니라고 한다니까요. 진리를 담은 그릇! 주머니가 되면, 그 주머니가 보물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누가복음 12장 33절 보세요.
(누가복음 12:33-34)
33 너희 소유를 팔아 (이건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산상수훈입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그게 어떻게 바뀌어서 기록이 되어 있는지 보세요.)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만들라는 make 하라는 게 아니라, ‘포이에오’ 주머니가 되어라~예요.)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너희 보물, 그게 네 마음이다.
그랬단 말예요. 지금. 그런데 여기 보면, 네 소유를 팔아 주머니가 돼야 되는데, 그 주머니가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이게 영원한 이런 말이죠. 낡아지지 않는, 그게 영원한 보물이다.
그래버려요. 주머니가 되어라~ 그게 보물이다.
하늘에 담겨있는 보물이다.
이렇게 이야기한단 말예요. 그러면 주머니가 보물이라는 게 무슨 말이냔 말예요.
여기 보시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주머니가 될 수 있다고 그래요? 잘 보세요. 이렇게. 우리의 소유(所有)를 팔아~ 그죠? 너희 소유를 팔아~ 소유라는 건 뭐죠? 율법적 행위(行爲), 그것으로 ‘나는 이렇게 괜찮은 존재이고, 이렇게 풍성(豊盛)한 자입니다.
’라고 우리가 쌓아 갖고 있는 것을 소유라고 하죠? 우리의 행위를, 어떤 재화(財貨)로 환산했을 때, 돈이라는 거 자체가, 우리의 어떤 행위나, 생각이나, 지혜, 지식, 이런 것들, 우리의 땀과 노력을 재화로 환산해 놓은 게, 돈이죠? 그러죠? 그러니까 재물(財物)이라는 거, 소유라는 거 자체가, 성경에서 말하는 재물, 소유라는 건 뭐냐면? 내가 내 힘으로 내 놓을 수 있는, 만들 수 있는, 그래서 쌓아놓을 수 있는, 어떤 것들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주님이 ‘팔아라~’하는 소유는.
그런데 그렇게 그 소유를 팔려면, ‘이 소유는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진리를 만나면, 그 소유는 당연히 팔리겠죠? 팔아서 딴 걸 산다는 게 아니라~ 진리를 갖게 되면, 그걸 내 놓는단 얘기예요. 그렇게 그 진리를 내가 마음으로 담아서, 그 소유를 팔 수 있게 되면, 그러면 내 안에는 진리가 있는 거네요. 진짜 가치 있는 것이. 그러면 그것을 갖다가 남들에게 이렇게 전해주는 걸, 뭐라고 한다고 그랬어요?
우리가 산상수훈 6장 서두에서 배운 게, ‘엘레모수네’ 구제잖아요? 그게. 여기서 나오는 게, 그게 구제예요. ‘네 소유를 팔아 네 안에 있는 그 진리로 이제 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구제해라~. 그러면 그것이 주머니가 되는 거야~’ 왜? 내안에 전해 줄 진리, 그 보물이 있으니까, 나는 주머니란 말예요. 그런데 그걸 전해 줄 수 있는 자가 되면 ,그 주머니가 보물이다.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예요. ‘팔라이오.’ 그러니까 옛 것의, 구식의 이런 말이죠. 그러니까 새 것과 대조되는 것의 개념. 그러니까 새 언약과 대조되는 옛 언약 그렇죠? 그러니까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라는 건, 새 주머니라는 뜻이에요. 새 주머니! 새 주머니가 되어라! 그러면 그것이 다함이 없는 보물이야! 거기서 하늘들도 복수예요, 여러분. 복수! 그러니까 하늘들 안에 보물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당연히 진리를 담은 성도들 이야기 하는 거죠.
그 하늘들 안에 보물이 담겨져 있는데, 영원한 보물이에요. 변치 않고, 낡지도 않고, 영원 그 자체인 보물! 진리의 말씀이신 하나님이에요. 영원이신 분은, 하나님 밖에 없거든요. 그걸 보물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잡혀 가시던 그 즈음에, 이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는 그 즈음 있죠? 그 즈음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들 이제 주머니를 가져라~’ 그래요. ‘주머니를 가져라~’ 그 전에는 십자가 지시기 전에는, 주머니가 될 수 없죠. 왜냐면? 예수가 살아 있거든요. 그 예수가 죽어야 진리가 되어, 당신의 백성들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단 말이에요. 안 그러면은, 그들이 주머니가 될 수 없다니까요.
그들은 여전히 자기 밖의 예수를 보고 섬길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능력에 놀랄 수밖에 없다니까. 그렇지 않아요? 그 예수가 내 밖에 있으면, 그러면 그 어마어마한 능력을 행한 그 분의 그 능력 때문에 놀라고, 그것에 경외감을 갖고, 거기에 감사하고, 그 수준이라면, 나는 예수를 믿는 게 아니라, 그렇게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진, 그런 기능을 행사하는, 그 분 앞에 쫀 거예요, 나는. 그걸 믿음이라고 하지 않아요.
믿음은, 반드시 연합이라는 사랑이라는 개념을 동반하는데, 내 밖의 어떤 존재가, 나를 구원할 수 있고, 이거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지 마시란 말예요. 정신을 똑바로 차리시라니까. 내 밖의 어떤 분이, 큰 능력을 행하고 있고 대단한 힘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래서 나의 구원까지도 의뢰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저기 있으면, 나는 그 분에 의해 살아날 수도 죽을 수도 있지만, 그 분이 내 밖에 존재하는 한, 나는 그분을 믿을 수가 없다니까요.
내가 그 밖에 있는 그 존재를 믿는다는 건, 역시 그 믿음에 주체는 나란 말예요. 나! 그건 믿음이 아니란 말예요.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 그거는 엄청난 힘을 가진 나를 지옥에도 보낼 수 있는 어떤 존재에 대해, 존재 앞에서 쫄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하기 싫어도 열심히 그냥 해 보는 거고, 하다보니까 보람도 느껴서 계속 하고, 이러는 걸 믿음이고 신앙생활이라고 착각(錯覺)한다니까요. 그런 건 신앙생활이 아니란 말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주님이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에, ‘너희들 주머니 가져야 돼~ 전대 가져야 돼~’ 이게 다 주머니란 말예요. 이게요. 돈 주머니 이렇게 생각들 하시는데, 돈 주머니 맞아요. 그런데 그 돈 아니에요. 그리고 ‘너희들 이제 신 신어야 돼~’ 이렇게 이야기 한다니까요. 한번 볼까요. 누가복음 22장 35절.
(누가복음 22:35-38)
35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찌어다
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
38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여기서 전대라고 번역이 된 그 단어가, ‘발란티온’ 그 누가복음에 산상수훈에 있는 그 주머니예요. 보물! ‘주머니가 되어라~’ 그랬잖아요? ‘포에이오’ 그 단어예요. 전대! 그리고 주머니라고 번역된 단어 ‘페라’가, 주머니예요. 그것도 주머니인데, 그건 양식을 담는 주머니예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보물의 이야기하기 전에 먹는 이야기 했죠? 우리가 진짜 양식을 진리로 내가 먹게 되면, 내가 그 진리를 양식으로 먹어 그걸 생명의 에너지로 삼는 존재가 되는 거잖아요? 그때 그걸, ‘페라,’ 주머니라고 그래요. 그 주머니나, 진리를 보물로 담은 주머니나, 같은 주머니란 말예요. 그 진짜 그 양식! 금식해서는 안 될 그 양식을 보물로 다시 설명해 주고 있는 거잖아요? 지금. 그러니까 그 주머니나 그 주머니나, 같은 주머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왜 전에는 가져가지 말라고 그러고, 십자가 지시기 바로 전에는 가져가라고 그런다고요? 이제 가져라~ 그런다고요? 예수님이 죽으셔야, 비로소 너희들은 주머니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말을 하는 거예요. 내가 들어가겠다는 거예요. 이 보물이 너희들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들은 그 보물을 구제로 ‘엘레모수네’ 나눠 줄 수가 있겠죠?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신은 뭐예요? 신발. 그것도 같은 의미여야 되잖아요? 신도 주머니예요. 그 신은 바울이 잘 설명해 주는데. 이 누가복음 22장 35절 이하는 제가 계속 설명할거니까 찝어 두세요. 에베소서 6장 15절.
(에베소서 6:15)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전신갑주 중에 하납니다.
여기서 ‘신을 신다.
’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휘포데오’인데요. 그 단의 명사형이 ‘휘포데마’ 신이에요. 여기선 신이라는 단어는 안 나와요. 안 나와요. 그냥 ‘신을 신다’라는 말만 나와요. 그런데 그 원문을 보면, ‘휘포데오’라는 동사 다음에, ‘호프스’ 발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요. 그러니까 신이라는 건 뭐예요? 발이라는 걸 감싸는 거죠? 여기에 그렇게 되어 있다니까요. 그 발을, 신이라는 것으로 감싸라~. 이렇게 되어 있단 말예요. 그게 신을 신는 거죠. 뭐.
자, 그러면 발은 뭐예요? 그 ‘호프스’ 라는 단어를 수식하고 있는 그 다음 단어들을 원문으로 보면요, ‘헤토이마시아 호 유앙겔리온 호 에이레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아주 ‘예비한~’이 아니라 ‘정확하고, 적확한’ 그 평안 ‘에이레네’라는 ‘유앙겔리온’ 복음! 이런 말이에요. 그것이 발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 발을 신으로 감싸라! 이런 말이에요.
다시요. 아주 정확하고, 적확한 그 복음! ‘에이레네’ 평안이라는 복음! 그 발을 신으로 감싸라! 이런 말이에요. 자, 그 평안 ‘에이레네’ 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제가 로마서 강의 때 주일에 자세하게 설명해 드릴 거니까, 지금은 그냥 그 ‘에이레네’ 그것이 그냥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라는 정도만 알아 두시면 돼요.
자, 그 평안이 복음이며, 그 복음이 아주 정확한 발! 그 정확한 복음이 발이라고 하는 거예요. 성도는 그 발을 감싸는 신이에요. 신! 그런데 히브리어는요. 그 신이라는 단어를요 ‘혀’라는 말로도 씁니다.
혀! 신발 밑창이 혀같이 생겨서 그런가? 하여튼 혀라고 써요. 혀!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발은 진리의 복음을 말하는 거고 그 발을 감싸는 게 신 ‘휘포데마’예요. 그러니까 역시 신은 발을 담고 있는 껍데기에 불과한 거예요. 그러나 그 신이 올바른 발을 담고 있을 때, 그 신을 발이라고 불러 주는 거예요.
우리가 마태복음 5장에 맹세하지 말라~라는 부분을 공부할 때도 배운바가 있죠? 주님은 그 땅으로 ‘호게’ 그게 ‘하 에레츠’를 헬라어로 바꾼 거니까, 성전이겠죠? 그 땅으로도 맹세하지 마~ 왜? 그 성전은 하나님의 발을 두는 곳이니까. 발등상 이렇게 해 놨지만, 발이 들어 있는 곳이니까. 이런 말이에요.
따라서 성전은, 발 즉, 진리의 하나님을 담은 그릇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발은 모르면서, 그 발등상에다가 대놓고 맹세하면 뭐 하니~? 이러는 거예요. 발이 뭔지를 알아야지~. 그런 말이잖아요? 자, 그 발을 담고 있는 그것을 신이라고 하고, 올바른 발을 가진 신을 성도! 보물!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나 여호수아를 불러서 진리의 전쟁을 치르게 하시기 전에, 항상, ‘네 발에서 신 벗어~’ 그런 거예요. 고대시대 때에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거는, ‘나를 너에게 양도한다.
’라는 뜻이에요. 내가 누구 앞에서 신을 벗는다는 건 나를 너에게 양도한다.
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진리의 전쟁을 치르러가는 여호수아나 모세에게, ‘여기는 거룩한 아다마’ 그냥 땅 아닙니다.
이 ‘아다마’예요. ‘아다마’니까. 이게 거룩한, 깨끗한, ‘아다마’니까. 깨끗한 말, 진리니까. ‘너는 네 신을 벗어라~’ 이런 말이에요. 너를 나에게 양도하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 신은 곧 혀를 이야기한다고 그랬습니다.
내가 내 혀를 빼앗기는 거예요. 신을 벗는 건, 내가 내 발을 포기하는 거란 말예요. 내 발을 포기하는 거. 그러면 내가 내 발을 포기하고, 나를 다른 이에게 그냥 양도를 해버리면, 누군가 나의 발이 되어줘야 되잖아요? 그러면 그 발이 내게 와서 발이 되면, 내가 그 발을 감싸는 신발이, 신이 되는 거예요. 다시~ 신은 뭐라고요? 혀요? 혀라고 했습니다.
내가 내 발을 빼앗겨요. 양도됩니다.
너 신 벗어! 내 앞에서 신 벗어! 그건 내가 네 발을 차압한다, 몰수한다.
그리고 내가 내 발을 너에게 줄 거야~. 그러면 너는 나를 담은 신. 신은 뭐? 혀 나를 담은 혀가 되어 이제 나를 말하고 나를 전하는 자가 될 거라는 뜻이에요. 그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나의 혀가 다른 내용을 담게 되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 앞에서, 그 거룩한 진리 앞에서, 내 신을 벗는다는 건, 내 신이, 내 혀가, 다른 발을 담는다는 거예요. 그게 영적 전쟁이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 백성들의 존재 양식 아니에요? 내가 내 내용을 빼앗기고, 하나님이라는 내용을 받아, 그 내용을 영광, ‘독사’ 이렇게 비추는 자로 사는 거! 그걸 성도라고 그래요.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발!’ 이렇게 불렀어요. 발! 로마서 10장 15절 보세요.
(로마서 10:15)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이거 이사야 52장 인용한 거죠. 한번 가보죠. 7절.
(이사야 52:7)
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복음이죠.)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그 발이 아름답다 이런 말이에요.)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발이 아름다워요. 발이. 복음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이라는 진리, ‘레길’ 발이라는 말은 ‘인도하다’라는 말도 되거든요. 그럼 발. 하나님의 그 인도하심, 하나님의 이끄심, 그 진리를 담은 신발이 되어서 그 발을 담아, 다른 이에게로 뛰어가는 발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걸 아름답다.
이렇게 칭해 주시는 거예요. 그것이 아름다운 거예요. 그렇다면 전대나, 주머니나, 신의 역할을 하는 그러한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보물인거죠.
그래서 주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제, 너희는 주머니, 전대, 신 가져라~’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 전에는, 가질 방법이 없다니까요. 그러면 뭘 가져갈까요? 자기들이 생각하는 땅적 차원의 주머니, 전대, 신을 가져가요. 그러니까 껍데기가 부정이 되고, 그 알맹이의 진가가 드러나면, 그 부정된 껍데기를, 알맹이로 여겨 주시는 게 구원이에요.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에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머니, 전대, 신이 되어라!’ ‘가져라!’라기 보다는 ‘신이 되어라!’라고 당부를 하신 거죠.
그러면 그게 ‘의(義)’의 겉옷을 입은 자죠? 그래서 거기에 겉옷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이 마련하시고 하나님이 입혀주신, 그 의의 옷을 입은 자들이잖아요? 그게 겉옷이죠? 그러니까 반드시 그들은 겉옷을 입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들이 보물이 되었다면, 주머니가 되었다면. 그렇죠? 그런데 그 옷을 자기만 입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예수님처럼 넷으로, 넘겨줘야 되죠? 자,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을, 누군가에게 이 세상에게 넘겨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쟁이 일어납니다.
충돌이 일어나게 돼 있어요.
그러면 이 겉옷이라는 걸 다른 이들에게 넘겨줄 때, 이 겉옷은 뭐로 주어지게 되냐면, 성령의, 말씀의 검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겉옷을 검으로 바꿔라!’ 이러는 거예요. 엿 바꿔 먹듯이, ‘겉옷 팔아 검 사!’ 이런 말이 아니라, 그러면 어떻게 돼야 되냐면? ‘너희들은 그 겉옷을, 이제 내가 없어지고 너희들 안으로 들어가니까, 너희들이 내 역할을 해야 될 거 아니야? 그러면 너희들은 그 검이 되어서 가야지, 너희들만 입고 있으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겉옷을 검으로 바꿔라!’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서 뭐라고 그러냐면, 내가 ‘아 노모스’ ‘노모스’가 율법이죠? ‘아’는 뭐예요? ‘율법에 지배당하지 않는’ 이런 말이에요. 그거를 여기에서는 불법자라고 그랬나 뭐~ 뭐라고 그랬어요? 여기요? 뭐와 동류가 된다고 그랬죠? ‘불법자?’ 그러니까 강도나 도둑놈 이런 거! 그렇게 보이지만. 맞아요. 예수님이 이사야서에서 그렇게 예언이 되었거든요. 예수님이 그러한 자들과, 동일하게 취급이 되어 죽을 거라고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지만, 이게 무슨 단어냐면, 그분이 이제 율법으로 오셨지만, ‘불법자!’ 율법과 무관한,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가 된다는 건, 이제 죽어서, 율법으로 육체로 죽어서, 진리로, 영으로, 오신다는 얘기죠? ‘그럴 거니까, 너희들은 이제 주머니가 되어라!’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야기가 그대로 매끄럽게 이어지잖아요? ‘너희 이제 주머니를 가져! 신을 가져! 전대를 가져야 된다.
왜? 내가 이제, ‘아노모스’ 율법에 지배를 받지 않는 그 상태로 이루어질 거거든.’ 그래요. 보면.
그럼 뭐예요? 내가 이제 죽어서, 율법으로, 육체로 죽어서, 진리로 너희들 안으로 들어올 거란 뜻이에요. 그러니까 너희들 이제 주머니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들어오게 되면, 너희들은 의의 겉옷을 입게 되는 건데, 그러면 이제 너희들이 내 역할을 해야 되니까, 그걸 전해주기 위해선, 그 겉옷을 검으로 바꿔야지~. 검으로 갖고 있어야지~. 그 겉옷을~. 그런데 너희들이 그걸 끝까지 율법으로 갖고 있으면, 그거는 율법의 ‘헤레브’라는 검이 될 것이고, 너희들이 그걸 성령의 검으로 갖게 되면, 너희들은 그걸 구제를 행하는 검으로 갖게 될 거란 뜻이에요. 그래서 두 검, 두 검도 아니에요. 짝인 검. 이렇게 이야기해요. 짝인 검이 등장을 하는 거예요.
그걸 제자들이 이렇게 내놓으니까, 주님이 뭐라고 그러냐면 ‘그래, 이게 예로 적당하다.
’ 그렇게 이야기 하신 거예요. ‘칼 두 자루면 족하다.
’ 어떻게 두 자루면 족해요? 그런 얘기 아닐 거 아닙니까? ‘그게 적당하다.
’ 이렇게 이야기 한단 말입니다.
제가 로마서 강의 때도 말씀 드렸지만, 이 땅의 검은 두 종류의 검으로 갈린다고 그랬어요. 하나는 ‘헤레브, 가뭄’이라는 칼이고, 이거는 하나님의 심판의 현장에 항상 등장하는 거예요. 칼! 이게 가뭄이에요. 가뭄! 가뭄은 뭐죠? 그 진리의 비가 오지 않아서, 양식도 될 수 없고, 열매도 맺을 수 없는, 그 상태(狀態). 그건 다른 이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칼이에요. 그렇죠? 그게 ‘율법의 칼’이라는 거예요. 심판의 칼! 왜 칼이라는 개념을 쓰냐면, 성령의 검과 대조시키기 위해, 자꾸 그 가뭄이라는, ‘헤레브’라는 칼을 등장시키는 거예요.
율법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그 율법이 유일한 공격 무기라니까요. 자기가 행해 놓은, 그러한 많은 열매들! 그게 자기들의 공격 무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걸 가뭄이라, 그래요. 저 물도 없는 푸석푸석한 거. 저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 다시 누가복음 22장 37절 다시 보세요.
(누가복음 22:37-38)
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아 노모스’라고 그랬죠.)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당연히 그 불법자의 동류, 그 불법자,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가 되어야죠? 이루어져야죠? 그 약속이. 이루어져야죠? 그래야 주머니가 되니까. 그 내게 관한 일이 이제 이루어 간다.
내가 죽을 거야~ 이제)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감이니라
38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짝검이 있습니다.
)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아주 좋은, 적당한 ‘히카노스’ 적당한 예구나!’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이거 참 적당한 예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죠.
그러면 이제, 그 검을 엉뚱하게 쓰는 자의 모습이 등장해야 되잖아요? 이 성경의 독자는 우리니까. 그래서 바로 그 다음에 이제 잡으러 와요. 그 중에 ‘말고’라는 자가 나온단 말예요. ‘말고’가 누구냐면? ‘멜기세덱’의 그 ‘말라크’ 있죠? ‘멜기세덱’의 그 ‘멜기’예요. 그게 ‘말고’예요. 그런데 그게 뭐라고 그랬어요? 의의 사자, 의의 왕이라고 그랬죠? 그렇게 사자! 하늘의 왕이 되어야 할 어떤 자가 오는데, 물론 모형(模型)이고 상징(象徵)이죠.
그런데 엉뚱한 검, 베드로가 가진 검, 베드로가 어떻게 말렸어요? 주님의 그 십자가로의 행진을, ‘죽으면 안 됩니다.
내가 목숨 걸고 말릴 거예요.’ 그랬어요. 목숨 걸고 그분의 죽음을 말리면, 이 세상은 끝장나는 거예요. 보물로 그 분이 들어와야 되는데, 그게 율법이죠? 그분의 죽음을, 여전히 그래서 살려 놓고 있잖아요? 그리고 계속 빌고 있잖아요? 거기다가!
그분은 죽었다니까요. 죽어서 이 안에 들어와 있는데, 여전히 내 밖에다가 놓고, 뭘 빌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이러고 있으니까. 그게 베드로가 보는 예수님이었단 말이에요. 죽으면 안 되는 분! 나를 도와줘야 되는 분! 나를 구원해 줘야 되는 분! 아니 주님은 내가 네 안에 들어가서 내가 생명이 될 거라니까 그랬더니, ‘아니, 그런 거 말고요. 아니, 나는 그런 거 모르니까, 그런 거 말고, 살아서 나를 도와 달라니까’ 그랬단 말예요.
그러면 그런 자가 가진 말씀, 그 분에 대한 이해가 뭐겠냐고요, 말씀이? 당연히 율법이잖아요? 그러면 그건 ‘멜기세덱’의 그 ‘말라크’ ‘말고’라는 그 의의 사자가 되어야 할 이들의, 오른편 귀라고 그러죠? 오른 귀를(여기가 오른쪽인가?), 오른 귀, right ear, 오른 귀를, 잘라 버리는 거란 뜻이에요. 그러면 큰일 나는 거죠.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이라니까요, 이게. 들어야 할 귀를, 내가 가진 잘못된 말로, 닫아 버리고 잘라 버리면, 그건 나쁜 검이에요. 그래서 주님이 뭐라고 그러냐면, ‘그 검을 가진 자는 그 검으로 망한다.
’ 그랬단 말이에요.
그러면 어떤 검 가지라고? 말고의 귀를 자르는 검이면, 안 되는 거예요. 성경이 재미있는 게요, 그렇게 귀가 잘린 이들의 일가가, 대제사장의 뜰에서 베드로에게 와서, ‘네가 귀 잘랐지?’ (내 다리 내놔라 이렇게) 쫓아다닌다니까요. 굳이 성경이 말고의 일가가 찾아가서 ‘너 예수 편이지?’ 물어봤다라고 그래요. 큰 일 나는 거예요. 여러분. 마태복음 26장 51절 보세요.
(마태복음 26:51-52)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무슨 말인지 이제 이해가 가시죠, 여러분? 자, 우리는 진리라는 보물을, 주머니와, 전대와, 신안에 담은, 성령의 검, 그 하나님의 무기! 그래서 우리를 군병이라고 그러잖아요? 그 분을 ‘만군의 주’라고 하잖아요. 만군이라는 것은, 만 군대의 대장이라는 뜻이니까, 우리가 성령의 검이란 말이에요. 그 검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나는 너희에게 검 주러 왔다.
’ 그러는 거예요. ‘아주 죽여 버릴 거야!’ 이런 말이 아니라, 좋은 말이에요, 그거는요. ‘내 검 받아라!’라는 거예요. 내 검! 그 검은 요한계시록에 아주 훌륭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요. 계시록 1장 13절.
(요한계시록 1:13-16)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진리죠.)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
‘좌우에 날선 검’ 뭡니까?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에요. 자, 그 진리의 말씀이 검이니까, 그 말씀을 이렇게 담고 있는 건, 뭐가 되겠어요? 칼집이죠? 그래서 성전을 가리키는 ‘토퍼스’라는 단어가 칼집이라는 말로도 쓰여요. 재밌지 않아요? 칼집에 칼이 없는 칼집은, 어디다 써 먹어요, 그거요? 뭐로 쓸 수 있어요? 거기는 반드시 검! 말씀! 진리! 칼이 꼽혀 있어야 완성인 거예요. 성전이 칼이 빠져 버리면, 그냥 칼집이에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
이렇게 주머니와 전대와 신과 겉옷과 검! 이건 전부 예수 그리스도가 육으로 죽으시고, 영으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백성 안으로 들어오셨을 때, 완성이 되는 그런 은혜의 선물인 거예요.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너희는 전대와 주머니, 신 이런 거 가지지 마!’ 이렇게 이야기 하신 거예요. 십자가 지기 전에는 못 가지니까.
거기에는 두 가지 깊은 뜻이 숨어 있었어요. 하나는, 복음이 올바로 전해지기 위해서는, 분명히 제자들을 ‘하나님나라를 전파하라!’하고 보낸단 말예요. 그런데 그 제자들이 뭘 알았냐고요? 자기들도 하나님의 나라가 뭔지 몰랐다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잡혀가는 그 날 밤에, 누가 큰지 쌈박질하다가 예수님한테 혼났다니까요. 누가 영의정 할 건지 싸우다가. 그런 사람들이 무슨 하나님의 나라를 알았어요? 그리고 심지어 주님이 부활했는데, 못 알아봤다니까요. ‘호라호’ 못했단 말예요. 다 도망갔단 말입니다.
그러면 그들을 하나님이 열둘(12)로 그리고 칠십(70)으로 이렇게 파송한 건, 어떤 모형이고, 상징으로 보여준 거지, 그들에게, ‘나가서 너희들 복음 전해서, 한 사람이라도 구원시키고 와!’ 이건 아닐 거 아닙니까? 아무도 몰랐다니까요. 그들도 몰랐다니까요. 그러니까 복음이 올바로 전해지기 위해서는, 제가 지금 말씀 드린, 그러한 영적 개념의 전대와 주머니와 신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나 두 번째는, ‘너희들의 그 전대! 너희들이 생각하는 주머니! 너희들의 신! 너희들의 지팡이! 이런 건 절대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될 수가 없는 거야!’라는 걸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건 가져가지 마! 내가 가지가라고 해 봐야~ 너희는 내가 말하는 그거 아닌,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 주머니! 그 전대! 그 지팡이! 그 돈! 가져갈 거니까, 그거 가져가지 마! 그러나 너희들은 반드시 그게 뭔지 알았을 땐, 반드시 그 주머니! 그 전대! 그 돈! 가져가야 한다.
’라는 이 두 가지 의미를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 놓은 거예요, 거기다가. 그래서 거기 쓰인 단어 자체를, 헷갈리게 집어넣어 놨어요, 성경이. 누가복음 9장 1절 한번 보세요.
(누가복음 9:1-4)
1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여러분 이게 다 복음을 전하여, 생명으로 완성하라는 의미죠? 그러나 이걸 그렇게 못 보면, 그저 귀신이나 쫓아내고, 병이나 고치고 오는 거예요. 그건 표적이라고 그래요. 표적!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고 그러느냐면, ‘표적을 구하는 자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다.
’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그냥 문자적으로 보고, 그런 기적들을 교회에 와서 원하면, 그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인 거예요.)
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여기 여행을 위하여가, 어디 뭐 무전여행, 무슨 여행, 이런 여행이 아니라 ‘그 길에 있을 때에’ 이런 말이에요. 그 길이 뭡니까? 내가 길이라고 하는 그 예수! 그 길에 있을 때에, 우리는 그렇게 읽을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요.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자,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는데, 이걸 ‘전파복음’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전파복음으로는 절대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어요. 가르치는 복음! 그러니까 전파복음은 뭐냐면, 예수 천당! 불신 지옥!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뭐 그래, 어떻게 하라고요? 그걸로 구원이 돼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나는 그 말 듣고, 교회에 와서 구원받았는데요.’ 아니요~ 그 때 조금 외롭고 쓸쓸하고 슬픈 일이 있어서, 그런 거지~. 여러분이 그 말이 뭔지를 배워 깨닫기 전에는, 여러분이 절대, 여러분 자신이나, 이 ‘호 코스모스’의 세상의 죄 자체를 용서할 수 없다니까요. 그러면 그건 구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반드시 가르치는 자가 있어야 돼요. 그게 뭔지. 그건 과정(過程)으로는 쓰일 수 있어요. 과정으로. ‘아, 저 노인네가 도대체 뭐가, 뭐가 있길래 저렇게 저 무거운 걸 짊어지고 다니면서 저렇게 빽빽 1년 365일 소리 지르나? 한번 가볼까?’ 이거는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고, 절대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니까요.
저는 여기서 수요일 날 예배 끝나고 가면, 내 차 앞에, 그 스타렉스 봉고에다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뭐 이렇게 하고 마이크로 크게 뭐 설교를 하고 다니는 어떤~ 우리교회 교인이에요? 왜 매주 만나 왜? 그것도 항상 내 앞에, 얼마나 큰지 라디오를 크게 틀어나도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다 들려요.) 그런데 그게 쓸데없다는 게 아니에요. 그게 과정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그렇게 해 놓고, ‘나는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라고는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제자들이 그렇게 지금 보내진 거예요. 왜? 뭔가를 이 성경의 독자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분명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일은 열심히 하다가 왔어요. 그래서 자기들도 놀랬다니까요. ‘야! 귀신이 나가더라~. 병자가 일어나더라~.’ 이렇게 자기들도 놀랬어요. 깜짝 놀랬다니까요. 그래서 나중에 귀신 들린 웬 애가 찾아왔는데, 변화산 아래에서 아무리 기합을 줘도 안 나가는 거야~. 얘가~. 얼마 전엔 됐는데. 왜 안 되죠? 이렇게 물어봤다니까요. 주님한테. 그렇게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걸 구원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니까요.
자, 하나님은 그러한 표적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와 영생이라는 진리를 전파하시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어요. 그러나 그 일은, 주머니와 전대와 양식과 속전, 돈이라는 단어가 그 은이라는 뜻이거든요. 은은 항상 속전입니다.
그냥 돈 지폐 아니에요. 그리고 두벌 옷이죠. 두벌 옷이 뭐냐면, 짝으로서의 옷 겉옷, 속옷 이야기 하는 거예요. 가져가야죠. 겉옷을 주려면 내가 속옷밖에 없는데. 아래에는 성경, 율법밖에 없는데. 어떻게 겉옷을 주냐고요. 속옷을 줘야, ‘이게 그거예요?’라고 알면, 그게 겉옷이 되는 건데. 그러니까 두벌로 반드시 가져가야지. 주머니 반드시 가져가야지. 전대 반드시 가져가야지. 떡, 양식 반드시 가져가야지. 지팡이 반드시 가져가야죠.
그런데 왜 가져가지 말라고 그러냐고요? 너희들은 내가 말하는 그걸로서 그걸 못 가져갈 거라는 거예요. 아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라는 그 어구가 ‘메데이스 아이로’인데요. ‘아이로’라는 말이 ‘가져라, 취하라’라는 말도 있지만 ‘치워버려라’라는 말도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무덤에 돌이 이렇게 치워줬죠? 그 때 쓰이는 말이 ‘아이로’예요. 그러면 ‘메데이스’ 절대 부정이거든요. 그걸 무덤의 돌이 저렇게 치워진 거, ‘절대 치워지지 않게 해라!’가 ‘메데이스아이로’일거 아니에요? ‘치워라’라고 쓰인 게, ‘치워졌다’라고 쓰인 게, ‘아이로’니까. ‘메데이스’가 절대 부정이 붙으면‘ 절대 치우면 안 돼’ 이렇게 번역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 단어는 ‘절대로 취하면 안 돼’라고 번역해도 돼요. 동일하게 쓰인다니까요. 그렇게 이단어가요. 그러니까 어떻게 번역해야 되냐고요? 그러면은. 그러니까 그 원문을 번역한 이들이, 영어 성경이나 뭐 한글 성경을 번역한 이들이, 어떻게 해야, 이것이 우리의, 우리 인간들의, 그 도덕과 윤리 혹은 인간들의 가치나 아니면, 그 열심을 이렇게 풍성하게 포장할 수 있을까를 염두에 두어서, ‘야, 전도하러 가는데, 뭘 가져가? 하나님이 다 들어주시지’ 이런 의미를 담고 싶었기 때문에, ‘너희들 절대 가져가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해줄 게’ 이런 의미로 번역한 거예요. 그런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맞아요. 그런 거 가져가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서 해줘요. 왜? 다른 주머니, 다른 전대, 다른 지팡이, 다른 돈, 다른 떡이 있거든요. 그것만 가지면, 그까짓 거 안 가져도 된다니까요.
그러니까 성도는, 진리를 깨달은 이들은,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 단순히 ‘야~ 하나님이 선교는 자비량으로 하라는 거구나~’ 이렇게 읽고, 그냥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가서 남 등골 빠지게 하는, 이렇게 이해하는 게 아니라, 준비를 하고 가세요. 왜 그냥 무작정 가서, 남들 등골 빠지게 하냐고~. 다 준비해서 계획 세워서 가야 돼요, 선교는. 그런 말이 아니라고요. 내가 그냥 막 가 가~ 가면, 알아서 다 해 줄 거야~. 이런 말이 아니라니까요. 어디에 그런 말이 있어요. 그러면 나중에 예수님이 돌아가시면서, ‘너희들 전대, 지팡이, 주머니 반드시 가져가야 돼!’ 이런 말 하고 가면 안 되죠. 그런 거는 쏙 빼 먹고 말이죠. 반드시 가지라고 그랬다니까요.
그러니까 진리 깨달은 이들은 이런 구절이 읽으면서, ‘아~ 그렇지 그 아래의 그 주머니 그거는, 아니지~. 그러니까 ‘메데이스 아이로’ 가지지 말라~. 맞아! 그러나 없애버리지 말아라, 치워버리지 말아라 라고도 읽을 수 있는 게 뭐냐면, 그거 안가지고 어떻게 가서 복음을 전해? 여기까지 아셔야 된다니까요.
누가복음 10장으로 가면, 70으로, 그 제자들을 70으로 보낼 때도, 역시 똑같이 헷갈리는 단어를 써 놨어요. 한번 보세요. 누가복음 10장 1절.
(누가복음 10:1-5)
1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70은 이제 7이라는 단어와 똑같은 단어예요. 12, 12지파 다음에 70장로 나오고, 12제자 다음에, 70 나오고~. 다 그냥 그 이야기예요. 12은 반드시 7로 완성이 돼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다른 7, 차원이 다른 7로 세워, 이제 짝으로 보내요. 보내는데 뭐라고 그러냐면~) 친히 가시려는 각 동 각 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3 갈찌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4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찌어다 하라
여기에 전대, 주머니, 신 앞에, 가지지 말며 이게 ‘메 바스타조’인데요. 이게 ‘제거하지 말아라~’ ‘너희들 전대, 주머니, 신 반드시 가져가야 돼!’ 이렇게 해석해도 맞고요. ‘너희들 전대, 주머니, 신 절대 가져가면 안 돼!’ 이렇게 해석해도 맞아요. ‘바스타조’라는 단어 자체가. ‘아이로’와 똑같이 쓰인다니까요.
그러면 여러분께 여쭤 보게요. 복음 전하기 위해서 전대와 주머니와 신으로 대표되는, 지팡이, 돈, 양식, 두벌 옷, 이런 것 가져야 되는 거예요? 가지지 말아야 되는 거예요? 심지어 마가는요. 마태는 ‘아무것도 가지지 마!’ 그랬죠? 분명히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 그런데 마가는 어떻게 썼는지 아세요? ‘지팡이하고 신만 가져가!’ 이렇게 썼어요. 어떤 사람 말을 믿어야 돼요? 마가복음 6장 7절 보세요.
(마가복음 6:7-9)
7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똑같은 얘기잖아요?)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8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9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여기는 신은 가져가라고 그러네요. 그죠? 지팡이도 가져가라 그러고. 어떻게 해야 되는 거예요? 누구 말을 들을까요? 누가 더 높아요? 마태하고 마가 하고. 성경이 이렇게 어긋나게 기록을 하고 있는 건, 주머니나 전대나 신이나 지팡이나 두벌 옷이라는 것이, 이 역사 속 아담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 아님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런 것 갖고 헷갈리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 건, 가져도 되고 안 가져도 된다는 거예요. 이 역사 속 그것들은. 가지면 좀 편하고, 안 가져간다고 전해질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반드시 가져가라는 거예요. 신 안에 담긴 발, 주머니 안에 담긴 보물, 주머니 안에 담긴 돌, 보석, 주머니 안에 담긴 양식! 이건 반드시 가져가라는 거예요.
주님이 말씀하시죠? ‘내가 그런 것 없이 너희들 보냈을 때, 너희들에게 결핍이 있더냐?’ 그래요. ‘부족한 것이 있더냐?’가 ‘결핍이 있더냐?’ 이런 말이거든요. 결핍이 있더냐? 그랬더니 제자들이, ‘아니요, 전혀 없었습니다.
’ 그래요. 그것도 우리가 두 가지 메시지로 이해를 할 수 있어야 돼요. 그 첫 번째가, 그 유물론적 개념의 그 아래의 땅적 개념의 그런 것들은, 진리를 전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결핍을 초래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가르침이에요. 그런 것들은 안 가지고 간다고 그래서, 아무런 복음이 전해지는 데에 아무런 결핍을 초래할 수 없다는 거예요. 없어도 돼요.
그러나 두 번째는 그와 반대로, 진리로서의 주머니와 전대와 신이 없이, 아무런 결핍이 없는 자들에게, 무슨 열매가 맺히겠니? 그러니까 가서 귀신이나 쫓아주고 왔지~. 그런 말이란 말이에요. 어떻게 너희들은 그것이 없이 결핍을 못 느끼고, 귀신이나 쫓아주고, 병이나 고치고 와서, 어떻게 그걸 자랑하고 있니? 이런 말과 말임과 동시에, ‘그래, 아래의 그 주머니, 전대, 신이라는 건, 복음이 전해지는데 있어서, 아무런 결핍을 초래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이런 두 가지 메시지가 같이 들어 있는 거란 말이에요. 여기에요. 그게 그 말이잖아요?
그래서 주님이 그 말씀을 하신 후에, ‘그러나 이제는 반드시 주머니와 전대와 신을 가져라. 겉옷 검으로 바꿔!’ 이렇게 이야기한 거예요. 이제는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왜? ‘내가 ‘아 노모스’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육체에 매이지 않는 ,그 존재로 너희에게 갈 거야~ 보물로, 양식으로, 발로, 너희 안으로 갈 거다.
’라는 것입니다.
자, 쉽게 말해, 이 땅의 보물은, 절대로 하늘에 쌓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진리가 사랑으로 흘러가는 데에도, 전혀 무익한 거란 그런 말이에요. 따라서 자신이 하늘들 안에 그 보물이 되지 못한 자들은, 그 어떤 훌륭한 도구들을 동원하고, 멋진 외모로 치장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복음 전파의 도구로는, 절대 사용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뭐 선교회 전략이니, 선교회 뭐 방법이나 도구들의 개발이라느니, 이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들이라는 겁니다.
그 내용을 갖고 있으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의를 하지 않고, 순 전략만 짜고 앉아 있어요. 땅 아래에 그 주머니, 그 전대, 그 지팡이만 준비하고 있다니까요. 주님은, ‘그거 안 가져가도 아무 결핍 없어!’ 그러는데. ‘네가 보물이 되어서 가야지~ 네가 검이 돼야지~’ 이러는데.
그래서 주님이 마치 일구이언 하신 분처럼, 어디에서는 이런 것들을 가져가지 말라고도 하셨다가, 어디에서는 반드시 가져가라고 하신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런 구절들을 표피적으로만 이렇게 이해를 해서, 엉뚱하게 뭐, 하나님이 다 해주셔. 그런 식으로 가면 안 돼요. 진짜 가실려거든 제일 먼저 여러분이 그 진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이가 돼야 되고, 그리고 재정적으로도 충분히 준비가 되었을 때, 멋지게 떠나는 거예요. 잘 준비해서.
그래서 저는 그래요. 가까운 이들에게 어디 가서 전도를 할 때, 성경을 펴 놓고, 그에게 충분히 성경을 봐가면서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으면, 입도 뻥긋하지 말라고 그래요. 함부로 가서 엉뚱하게 예수 믿으면 이렇게 됩니다.
저렇게 됩니다.
이딴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러죠. 그거는 침략이에요. 침공이에요. 그렇게 선물 싸 들고 바리바리 싸 들고 가서, 그냥 즐겁고 행복하게 그렇게 살던 그들에게, 문명의 맛을 보여주고, 오히려 그들을 문명의 중독자로 만들어 버린 거 아닙니까? 뭐하는 짓이에요, 그게요?
자, 진리를 전하러 갈 때에, 지팡이를 가져가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이것만 규명을 해드리고. 하여튼 본문의 이야기는 제가 정리를 해서 마쳐 볼게요.
그 지팡이라는 단어, ‘마켈/מקל/’이라는 히브리어는, ‘진리를 아래의 것으로 가르치다’라는 뜻이에요. 지팡이라는 뜻의 그 단어 문자가, ‘라메드’거든요. 그것도 지팡이에요. ‘가르치다, 인도하다’ 이런 뜻이에요. 그런데 그 지팡이라는 그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뭔지 아세요? ‘싹트다.
’라는 뜻이에요. ‘싹트게 하다.
’ 지팡이는 반드시 싹트게 하는 역할을 해야 돼요. 마른 나무에, 저주받은 나무에, 싹이 트게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튼 거예요. 그게 진짜 지팡이에요. 다른 지팡이는, 죽은 지팡이에요. 지팡이를 생나무로 가지고 다니는 거 보셨어요? 잘 말려서 딱딱하게 해서 가지고 다녀야 돼요. 그거는 싹이 틀수가 없는데, 진짜 지팡이는, 반드시 싹이 트게 하는 가르침의 지팡이여야 되는 거예요.
지팡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시도 놓아서는 안 되는 진리의 말씀이요. 그게 나에게 가르침이고, 나를 인도 하는 거니까. 그게 지팡이에요. 그리고 그들을 인도하고 가르치는 선생의 의미로 쓰이는 거예요. 지팡이에요. 지팡이!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너희들 지팡이, 신, 진리의 띠는 반드시 갖고 오라고, 그리고 그 재물을 먹어, 마음으로 갖고 나오라 그래요. 애굽에서 나올 수 있는 자는 지팡이, 신, 띠 반드시 가져야 되고, 그 재물을 먹어, 네 안에 품고 나와야 된다.
이런 말이에요. 출애굽기 12장 11절 보세요.
(출애굽기 12:11)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찌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그러면, 거기서 나와야 하는 자들은 전부 이렇게 먹어야 되는 거죠. 그러면 전부 지팡이를 갖고 나와야 되는 거예요? 그럼 한 200만이 전부 지팡이 짚고 다녔겠네요. 그런 말이겠어요? 그들이 다 죽었을 때 지팡이 200만개? 그건 아닐 거 아니에요. 그럼 옷이 해지지 않고 신이 낡아지지 않았다는 말도 그런 말이겠어요? 생각을 해 보세요. 시편 23편 4절 보세요.
(시편 23:4)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여, 어디로 끌고 가죠? 쉴만한 안식의 물가로 끌고 가요. 물이 있는 곳으로. 지팡이는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반드시 지팡이는 가져가야죠. 아니, 내가 지팡이로 가야죠. 그래야 그들을 인도하죠. 이 지팡이가! 그런데 왜 주님은 어떤 곳에서는 지팡이를 가지고 가지 말라고 그랬을까요?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자기의 육신을 의지하는 지팡이! 그게 뭐냐면 자기의 행위이기도 하고, 자기의 스펙이기도 하고, 뭐 이 세상의 물질이기도 하고, 그게 우리가 의지하는 지팡이잖아요? 그걸 가져가서, 그걸 근거로 내 나라를 전파할 생각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지팡이 가져가지 말라는 거예요.
어떤 지팡이 가져가라는 거예요? 싹 트이는 지팡이!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지팡이! 그 지팡이 가져가라는 거예요. 육적 지팡이가 있는 이들이 어떻게 그 영적 지팡이인 진리를 의지 하겠습니까? 의지 안한다니까요. ‘그 지팡이 치워라!’ 그러는 거예요, 어디에서는. 어디에서는 ‘지팡이 가져야지~’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애굽 술사들이 똑같이 지팡이를 가졌는데, 그 지팡이가 뱀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모세의 지팡이가 뱀이 되어서, 그걸 먹어 버리죠? 그러니까 애굽 술사들이 가진 지팡이, 그런 지팡이는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마가가 ‘지팡이는 가져가야지’이렇게 기록 한 거예요. 그러니까 ‘가져가라’, ‘가져가지 말라’의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게 위의 것이냐 아래 것이냐가,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어디서는 지팡이를 가져가랬다가, 어디서는 가져가지 말랬느냐~ 그런 질문 할 게 아니라니까요, 그거는. 그건 유치원 수준의 질문인 거예요, 그거는요. 대단한 거 발견한 것처럼 말이지~ 어디 성경에 이렇게 모순되는 것들이 적혀 있다고. 전혀 모순될 거 없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영적 의미의 지팡이와 주머니는 가져가야죠. 그리고 귀하고 귀한 보물 같은 ‘돌’ 즉 그리스도로 해석된 예수라는 ‘돌’도 가져가야죠. 그 돌이 뭐예요? 양식이니까. 그리고 그것이 속전이니까. 그런 주머니 속의 그 양식! 주머니 속의 그 돌! 그 보물! 그거 가지고 아무도 물리치지 못한, 철옹성 같은 장군 하나를 물리친 존재가 있으니, 다윗이죠? 다윗이 몇 번째 아들? 일곱 번째 아들이에요.
자, 칠(7)이 기름 부음을 받으면 팔(8)이 됩니다.
제가 나중에, 주일날 설명해 드릴 건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게 다윗이에요. 다윗이, 칠(7)이 기름 부음을 받으면, 완성이 되는데, 그게 샬롬이에요. 누구예요? 솔로몬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성전이 완성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이제 다윗 이야기하는 거니까. 다윗이 그 누구도 무너트릴 수 없는, 이 ‘호 코스모스(κόσμος/G2889)’의 그 세상, 그 뜨인 돌이 부셔버린 그 신상 있죠? 그것과 같은, 그 ‘골리앗’ 있죠? 그걸 갖다가 박살을 내는데, 뭘로 박살내는지 아세요? 지팡이! 주머니! 돌! 이걸로 부수는 거예요. 사무엘상 19장 39절.
(사무엘상 19:39-51)
39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누구의 칼이에요? 사울의 칼입니다.
그건 안 되죠?) 시험적으로 걸어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사울의 옷과 칼을 벗었습니다.
그 세상의 지팡이, 주머니, 전대로는 안 되는 거죠. 그럼 뭘 가지고 가는지 보세요.)
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이게 지팡이입니다.
) 시내에서 (시내라는 건, 흐르는 물이란 뜻이에요. 흐르는 물에서) 매끄러운 돌 (흐르는 물에서 매끄러운 돌, 이게 ‘벤’이에요. ‘벤!’ 흐르는 물에서 나온 돌은 진리겠죠? 당연히) 다섯을 골라서 (다섯으로~ 하나님이 열의 계명을 우리에게 던져 주실 때는 다섯, 다섯으로 줍니다.
다섯을 골라) 자기 목자의 제구 (이 제구라는 단어가, 성전에서 쓰이는 그릇, 기명 이런 뜻이에요.) 곧 주머니에 넣고 (주머니 나오네요. 주머니에 뭐가 들어가요? 물에서 나온 다섯이라는 그 돌! 그 돌이 주머니에 들어가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물매라는 건, 휘장이라는 단어예요. 이게. 휘장! 희한하죠?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휘장, 열 폭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어요. 어떻게? 다섯 다섯으로 찢어졌어요. 그런데 이 휘장이라는 단어가 어떤 뜻을 담고 있냐면, ‘새기다, 던지다’ 이런 뜻이에요. 그걸 ‘물매’라고 하는데, 물매가 난 뭔지 모르겠어요. 하여튼 돌을 묶어서 던지는 이렇게 돌리는 건가? 그런 건가 보죠? 물매! 잘 모르면서 아는 척 하고 있어요. 뭐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물매가 뭐예요? 하여튼 던지고 새기는 거예요.
그런데 잘 보세요. 새긴 걸 던진 적이 있어요. 시내산 아래에서. 돌에 새긴 걸, 던진 적이 있어요. 어디에? ‘금소’에게. 율법이죠. 그죠? 거기에다가 던져서 심판이 일어났던 적이 있는데. 그걸 물매라고 그래요.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블레셋은, 지금도 저 팔레스타인이 블레셋이거든요. 아직도 자리를 못 잡고 저렇게 헤메고 다니죠? 이렇게 ‘굴러다니다.
정착하지 못하다.
’ 이런 뜻이에요.)
41 블레셋 사람이 점점 행하여 다윗에게로 나아오는데 방패 든 자가 앞섰더라
42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이 ‘아름다움’이, ‘그 발이 아름답다’의 그 아름다움이에요. 자, 아름다운 어떤 이가, 기름부음을 받아~, 기름부음이라는 것은 진리! 기름! 같은 말이니까. 자, 진리를 가지고 아름다운 어떤 이가 팔(8)이 되어 가는 거예요.)
43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44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공중의 새와 들짐승은, 아래 세상의, 그 옛 성전과, 그리고 그 진리를 갖지 못한 ‘네페쉬 하이’를 짐승이라 그래요. 다윗 보고, ‘내가 너를 그 먹이로 주겠다.
’ 이게 율법주의자들이 우리를 보고 하는 말인데. 아니죠? 우리는 그들에게, ‘너희들이 공중의 새, 옛 성전, 그 들짐승의 먹이지!’ 이렇게 얘기해야 되는 거죠. 보세요)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이 칼이 ‘헤레브’예요. 율법주의, 네가 나에게 공격무기로 쓰는 건 그 칼 밖에 없지~ 그런데 나 칼 없어~ 그 칼 없다.
그런 말예요.)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쉠’ 뭐예요? 분석된 그 진리, 그 말씀, 나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너한테 간다는 거예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이스라엘 군대가 ‘나’라는 거예요.. 내가 성령의 검으로 가는 거예요. 내가 간다.
말씀으로 너한테 간다)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여기도 ‘헤레브’예요.)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자, 그 주머니예요. 오늘 우리가 공부하는 그 주머니에 넣어서) 돌을 (‘벤’) 취하여 물매로(휘장, 그리고 율법에게 던져진 새겨진 그 돌 이야기 하는 거죠)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땅과 하나가 되었어요.)
50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어떤 칼을 쓰는지 보세요.)
51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내어 (그럼 율법의 칼이네요.)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율법의 칼이 율법이라는 가뭄, 그 칼이 율법주의자에게 들리면, ‘말고’예요. ‘말라키’의 귀를 자르는 칼이 되지만, 진리의 사람들에게 그 율법이 들리면, 그 율법주의자들을 공격하는 진리의, 성령의 검이 되는 거예요. 목을 잘라 버리는 거죠.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이 골리앗, (골’야트/גּלית/H1555) 이 말이 ‘벌거벗다.
’ 이런 말이에요. ‘벌거벗은 포로’, ‘수치스런 포로’, ‘선악과 먹고 벌거벗은 아담과 하와’ 그 이야기 하는 거죠. 발가벗은 자 하나가, ‘내가 이세상의 왕이고, 나를 이길 자는 없다.
’ 하나님처럼 되어 있는 거죠. 그것을 기름 부음 받은 자가, 그 주머니! 그 보물! 그 신! 그 지팡이가 되어, 그 앞으로 가는 거예요. 가서 그 돌을, 물매! 그 다섯으로 그의 머리를 쳐 죽여 버리는 거죠. 그리고는 그의 칼을 빼어, 내가 진리의 성령의 검으로 갖는 거죠. 그죠? 그것으로 그 상대의 목을 자르는 게, 여러분의 역사 속 인생인 거예요.
그게 칠(7)의 사람들의 인생이에요. 그러면 그를 팔(8)이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래서 노아의 방주에서 나온 사람들이 ‘팔(8)’인 거죠. 그리고 그들을 팔(8)의 날에 할례 받은 자라고 하는 거예요. (왜 난지 팔일 만에 할례하는 지 아세요? 거기까지 하면, 또 밤새워야 되니까 나중에~)
자, 그렇게 죽은 율법주의자들은,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먹이가 되는 거예요. 이렇게 주머니와 지팡이와 전대와 보물! 즉, 가장 귀한 돌을 담는 그릇임과 동시에, 보물인 것이고, 그것을 마음으로 가지면, 그게 양식인 거고, 그게 바로 이웃의 죄를 대속하는 속전! 돈이라고 번역 되었지만, ‘은!’, 속전인 거고, 그리고 그것이 속옷과 겉옷 즉, 짝으로서의 옷인 거죠. 그러니까 지팡이! 주머니! 전대! 돈! 양식! 두벌 옷! 이건 반드시 가져가야 되는 거죠. 그러나 아래의 것은 아닌 겁니다.
그래서 ‘가져가지 마라’도 맞고 ‘가져가라’도 맞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그게 그건지 알죠? 누가 뭐라고 그래도~.
그런데 그러한 것들을 아래의 것들로 가지고 가면, 자신의 능력과 재주만을 자랑하면서, 실컷 자기의 의만 쌓다가 오는, 엉뚱한 일만 하게 되는 거예요. 따라서 말씀을 땅에 쌓은 보물로 가지고 있는 이들은, 평생 자기의 의만 열심히 쌓다가, 멸망의 나라로 들어가게 되는 거고, 말씀을 하늘의 보물로 쌓아서, 그 보물을 가진 주머니가 되어, 보물이 되는 이들은, 그 주머니 안의 보물, 그 신발 안의 발, 칼집 안의 검, 주머니 속의 양식을, 올바로 전하면서, 하나님의 귀한 보물로 살게 되는 거예요. 그게 보물이에요.
그래서 요한 계시록에 여러분을 보석으로, 보물로 그려놓은 거예요. 하나님이 그러는 거예요, ‘이게 내 보물이야’ 내가 보물인데, 내 밖에, 내 환경이 그까짓 거 보물 좀 아니면 어때요? 내 하나님이 나보고 가장 귀한 돌, 가장 귀한 보물이라는데. 그 의식이 없으니까, 내 밖의 것을 자꾸 귀한 보물로 만들어 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내 껍데기를 귀한 보물로 만들어 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아닌 겁니다.
여러분이 보물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보물입니까? 아니면 티끌로 돌아갈 땅입니까? 잘 고민해 보세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그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아파르’로, 티끌로 받고, 땅을 구축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는 이들이, 이렇게 부지기수인 이때에, 그것을 우리 하늘들 안에 보물로 쌓게 하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이 진정, 진리를 사는 하나님 백성들의 삶인 줄 깨달아 알게 하시고, 그것이 행복이며, 그것이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山上の垂訓(48) - あなたがたこそ宝である(マタイ6:19-21)
(マタイによる福音書 6:19-21)
19 あなたがたのために、宝を地の上に積んでおいてはならない。そこでは虫やサビがそれを損ない、盗人が穴を掘って盗み入るからである。
20 むしろ、あなたがたのために、天に宝を積みなさい。そこでは、虫もさびも害をなすことはなく、盗人も穴をあけて盗むこともできない。
21 あなたの宝のあるところ、そこにはあなたの心もあるのである。
さて、私たちは先週、地に宝を積むとはどういうことか、そして天に宝を積むとはどういうことかを詳しく学びました。
地に宝を積むとは、「蓄積する。積む」と訳される単語「テサウリゾ」(θησαυρίζω/G2343)であり、テサウロス(θησαυρός/G2344)が「宝」を意味します。
ですから「テサウリゾ」とは、単に「積む」「蓄積する」といった意味ではなく、「宝物となるようにする」という意味です。何かを継続的に持ち続け、宝物となるようにする。
その「テサウリゾ」という言葉は、地に宝を「テサウリゾ」するということは、自分が宝だと思うようなものを「一生懸命蓄積したら、地になってしまった」という意味です。
そして「天に宝を蓄える。」という言葉は、「真理という宝を一生懸命蓄積して、天になる。」という意味だと言いました。
言い換えれば、私がその真理の宝を宿す天となって、神の言葉をその天の中に収めれば、それがまさに天に積まれる宝となり、天と宝が一つになるのです。そして依然として地的な存在としての世界観で、nomizo(nomizo/G3543/法に従って)する心で、その神の言葉に接すると、その言葉は今や律法として、私の中、地である私の中に積まれ、それ自体が地となるのです。(nomizo/G3543/法に従う)心で、その神の言葉に向き合うならば、その言葉は今や律法として、私の内、地である私の内に積まれ、それ自体が地となるのです。彼らが集まる場所を「地獄」と呼ぶのです。
したがって天となり、その中に真理という宝、その命の宝を積む者たちは、それ自体が、その光を放つ宝となるのです。皆さん自身が宝となるのです。それができない者たちは土に帰る、あの呪いの地に戻る、呪われた者となるのです。
その宝物という単語、「テサウリゾ」という言葉は、「ティデミ(τίθημι/G5087/ 配置・陳列する)」という言葉から派生したものです。つまり「ティデミ」とは何か?天の真理、天の宝物を、この地の見えるものとしてこのように「横的に」配列したものでしょう?陳設したもので、それが「ティデミ」ですよね?「そう置いてあるもの」それが聖殿ですよね?そう置いてあるのが律法じゃないですか?それによって私たちがその天の真理を悟って知るなら、それ自体が宝物になりますが、それによって私たちがその天の真理を悟れないなら、それは土です。塵というものです。
それが砂のような~、雨として降るのに、砂で受け止める、そのような呪いの言葉になるのです。
実は、その宝物という言葉、その「テサウルス」という言葉は、他の箇所では「リドス・ティミオス」というそのような言葉と混用されて使われることもあります。その意味は「 最も尊い石」という意味です。「最も尊い石」このように「宝石」と訳されることもありますが、「宝石」という言葉は漢字でも、単に「尊い石」です。石、尊い石!その石は至聖所の契約の箱の中にある、あの契約の「石」ですよね?それが最も重要な「石」なのです。最も尊い石!しかしそれが何かを知れば、それが真理なのです。だからその最も尊い石!それが宝物となるのです。宝石となるのです、それが。
それは当然、真理として来られたあの「打ち出された石!」あのイエス・キリストを指すのです、そうでしょう?私たちがその子であるという言葉、子という言葉は何と言いましたか?以前にも何度か説明しましたが、「石」という言葉は、「エベン(אבן/H68/石)」という言葉です。これが「石」です。「エベン・エゼル」ご存知ですよね?しかし「エベン」、これが石なのですが、これをこう分けてみると?אב/ן אב アブガは何ですか?父ですよね?父が、下の方へ降りてくると、それを「石」と言うんです。
א/ב א こう分けてみるとベンが息子なんです。アレフが神ですから。神の子を、石と言うんです。だからイエス様を旧約で見ると、
石と言うんですが、「打ち出された石」、「生ける石」、「隅の石」。でもその石が、「つまずきの石」にもなります。
つまり、それが生ける石となり、切り出された石となり、そうなれば私にとって宝石となりますが、その石は私にとって、私を砕く呪いの石にもなり得るのです、皆さん。こういうことです。一度考えてみてください。前回も私が一度お話ししましたが~
‘アダマ(אךמ)’ ⟶ ‘アファル(עפר)’
『アダマ(אךמה)』というものから、何かが、『アファル』というものが生まれると言いましたね。
[アダマ(אךמה)]これを聖書は地(土)と言い、[アファル(עפר)]これを塵(ほこり)と訳しました。
これで何を作るのですか?『アダム(אךם)』を作ります。
聖書にこう記されているのです。[アダマ(אךמה)]を単に地、土と訳し、
[アファル(עפר)]を塵、埃と訳し、[アダム(אךם)]を単に人と訳したのですが、そうだけ知っていれば、皆さんは単に地から、その地の上に埃を集めて、水を加えて練り、 アダム(אךם)’って作ったんだな。って思うでしょう?そうでしょう?
でも聖書が言ってるのは、そういうことじゃなくてさ、『アダマ』って何?アダム!『アダム』って単語自体をこう分けてみると、
こう分けてみると、『ダム』ってのは、血で、これが神だから。『神の血!』それで作られた存在が、このアダムなんだ。ですからこのアダムは『神の血』その神の命でなければ、そもそも存在すらできない者です。
ところがこの[アダムア(אךמה)]から今、この[アファル(עפר)]というものが現れ、ここから[アダム(אךם)]が現れるのですが、
この『アファル』というのは塵ですよね?塵。塵であり、埃だということです。
しかし[アダム(אךמה)] これを破字(文字を分解)するとどうなるか?
さて、神が分析されたその真理、神が区別されたその真理を、言葉で、音で与えると、それが今や[アダム(אך )]です。
その言葉によってこの[アファル(עפר)]が私たちに与えられるのですが、これは何でしょうか?
[アファル(עפר)]は律法なのです、皆さん。
だから後で見てみると、あなたがたに雨が降る時、その雨が塵や砂として降れば、『お前たちは皆死ぬ。』と言う時の塵がこれです。
[アファル(עפר)]!だからこのように降ってはならないのです。
ですから、ここ[アダマ(אךמה)]でこれが今こうして[アファル(עפר)]律法として私たちに与えられるのですが~[アダマ(אךמה)]を真理だと言ってみましょう。
その真理が律法として与えられるのですが、その律法によって私たちが「ああ、それがそれだったのか」と、それを自分の中に受け入れるじゃないですか?そうすると、それが「アダム」という存在です。しかし[アダム(אךם)]ここには言葉がありませんね。音がありませんね。真理でただ終わってしまいますね。
だから後で見ると創世記にここ(ה )冠詞が一つ付きます。だから「ハ・アダム(האךם /G120/アダム/人間)」 『その真理を語る声!』それが私たちです。それが後に、人の子という概念。ここからその後継者たちが一人また一人と現れますが、そのアダムのその息子、そのアダムのその息子、そのアダムのその息子、そのアダムのその息子、それを何と言うでしょう?『その人のその息子』ですから、それを『人の子(人子)』 と言うのです。
ですから、皆さんがこの神の言葉を、それを塵として、微塵として、「アファル」として受け入れてしまうなら、
皆さんはこのアダムになることはできません。いや、アダムにはなります。
アダムにはなるのですが、どんなアダムになるのか?ただ「赤い」という意味です。
これは [アダム(אךם)]です。ただ「赤いアダム」、罪となるのです。「聖なるアダム」になるのです。
しかしこれ[アファル(עפר)]によって、あなたがたが真理を悟り知った時、あなたがたは「ハ・アダム(אךם)」となるのです。
だから「ハ・アダム」という冠詞が付いた人と、ただのアダムとは全く違います。
聖書を見ると。これを皆さんが熟知し理解していれば、聖書を読むのに大いに役立つでしょう。
さて、あの石!今、石の話をしていて、あの話をしましたが、その石はイエス・キリストだと言いました。神の子です。しかし、それは石です。しかし、その石もまた、ある人々にとっては最も貴重な真理の宝石となることもありますが、ある人々にとっては破壊する石になると言いました。
だからダニエル書を見ると、ネブカドネザル王の夢に登場するあの「打たれた石」 が、自ら王になろうと狂ったように、あの世という『像』がありますよね?
途方もなく強力な像を、打ち砕くのです。
それがまさに歴史だ!夢だ!それがまさに!人々は自分が夢を生きているのに、その夢が何なのかも内容も知らないというのです。
ところがダニエル(خنيאל/H1840/神の審判者)、神の人物が、その夢を分析してくれるのですが、どう分析するかと言えば、
その夢というものはこの世の歴史とは何かと言えば、神のその打ち出された石、 御言葉によって、世界が粉々に砕かれるのです~しかしその石によって、全ては粉々に砕かれます。
ある人々は、そうして砕かれることを、自己否定だと言いますか?それが何かを知れば救いですが、それが何かを知らなければ、
それ自体が砕かれるのです。それが滅びだというのです。皆さん。それが歴史の実体なのです。
さて、とにかく私たちが私たちの内に、その真理の『石』を心で持つようになれば、私たちがまさに神の目には、最も尊い宝物となるのです。そしてその『石』を、『塵』、『 アパール」として受け取ること、砂として受け取ること、塵として受け取ること、それこそが私たち自身を土へと変えるのです。だから律法を土と呼ぶ。 塵と呼ぶ。 砂と呼ぶ。
これは私が言っていることではなく~旧約聖書を原文でよく読んでみると、全てそう表現しているのです、聖書が。
ですから私たちが「神の宝となるか」それとも、 『呪われる塵へと戻るか』は、神の言葉を私たちがどう受け入れるかによって、決まるのです。改めて申し上げます。天に宝を積むとは、皆さんが熱心に教会へ献金して、天で使う私有財産を蓄積するという意味ではありません~それはとんでもない話です。
神の言葉を通して、その自身がキリスト者であるという最も尊い『石!』 『天の宝石!』『石』という言葉自体が神の子という意味ですから。それが宝石なのです。尊い石。実際、人々がそれが価値あるものだと互いに合意しなければ、それはただの石に過ぎません。
皆さんが身につけているそれは。どこに使うというのですか?それを空腹時に食べられるでしょうか?何に使うというのですか、それを?だから大祭司が至聖所に入る時に着る『エポテ』の上にある宝石に、神の民である十二人の息子たちの名前、十二人の名前が記されているのです。どこに?宝石に~。「わが子らは宝石である。」というわけです。
「最も尊い石こそわが子である。」出エジプト記28章9節をご覧ください。
(出エジプト記 28:9)
9 二つの砥石を取り、その上にイスラエルの子らの名を刻んだ(そうでしょう?息子、これが「ベン」です。)
10 彼らの年数に従い、六つの名を一つの宝石に、残りの六つの名は別の宝石に
11 宝石を刻む者が印を刻むように、あなたはイスラエルの子らの名をその二つの宝石に刻み、金の枠に嵌め込み
12 その二つの宝石をエポテの二つの肩当てに付け、イスラエルの子らの記念の宝石とし、アロンが主の御前で彼らの名をその二つの肩に負って記念とするためである。
それを負ってどこに入るのか?至聖所に入るのです。十二人の子ら、その宝石たちは至聖所に入り、神と共にいることができる存在なのです。つまり、子らという意味です。
ヨハネの黙示録を見ると、より明確になります。
(ヨハネの黙示録 21:1-2, 10-12)
1 また、わたしは新しい天と新しい地を見た。最初の天と最初の地は過ぎ去り、海もなくなった。(今や新しい天と新しい地が来たのです。)
2 また、見ると、聖なる都、新しいエルサレムが、神のもとから天から下って来る。それは、花嫁が夫のために飾ったように、備えられたのである。(聖なる都、新しいエルサレムとは、私たちのことではありませんか。花嫁ですから。神の花嫁、私たちのことです。)
10 聖霊が私を連れて、大きく高い山に登らせ、神から天から下って来る聖なる都エルサレムを見せた。
11 神の栄光があり、その都の輝きは、非常に貴重な宝石のようで、碧玉や水晶のように澄んでいた。
12 そこには大きく高い城壁があり、十二の門があった。門には十二の天使がいて、門の上には十二のイスラエルの子らの部族の名が記されていた。
これは出エジプト記に出てくるあの話とまったく同じ話です。つまり天国が、宝石でできているという意味ではなく、あなたがたこそが宝石なのです。だから天国に行ったら、トイレの便器まで金でできていて、道も全部ダイヤモンドでできていて~なんて。それは自分の幻想です。人間が夢見る天国というものです。
あれは。あれは人間が作り出せる場所だと言っているのです。そんな場所は天国ではないのです。
あれは全て詐欺 (詐欺)です。
神の民たちが真理の言葉によって、あの天にある宝物となっていくのです。私が天となって、その真理の言葉、その言葉が神ですから、神を持てば、私が宝物になるというのです。それを得た私、殻としての私は何ものでもありませんが、私の内にある『土器』という宝物が宿っているからこそ、 土器は軽く叩けば割れるあの土器、昔の土器は釉薬も塗っていない土器だと言っているのです。子供たちが玩具でごっこ遊びをする時、泥でこんな風にベタベタ作って日光に干すでしょう?そういうものだと。昔の土器は。軽く叩けば割れるんです。だから陶工の話がよく出てくるじゃないですか?私たちがローマ人への手紙9章を学んでいるところですが。その陶工の仕事とは何でしょうか?当時は100個入れても99個は全部割れなければならない器だったんです。つまり神が陶工という言葉で表すのは、神が私たちを必ず全部割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意図で私たちを作ったという意味で使ったんです。当時は。
さあ、私たちはそうやって割れた、簡単に割れる土器なのに、その中に神が宝物として収められるなら、 私が宝物になるのです。だから主はその宝物を『(ヴァランティオン/βαλάντιον) 」袋とも表現されます。袋と宝物がどうして~混ざり合える概念でしょうか?しかし主が宝物を袋と言うのです。真理を納めた器!袋となれば、その袋こそが宝物である。
このように語られます。
ルカによる福音書12章33節をご覧ください。
(ルカによる福音書 12:33-34)
33 あなたがたの持ち物を売り払って(これは ルカ福音書に記されている山上の垂訓です。私たちが学ぶ。それがどう変化して記録されているか見てください。)施しをして、朽ちることのない財布を作りなさい(作れというmakeではなく、『ポイエオ』財布になれ~です。)それは天に置かれた尽きることのない宝である。そこには盗人も近づくことがなく、虫も食い荒らすことがない。
34 あなたがたの宝のあるところ、そこにはあなたがたの心もあるのだ。
あなたがたの宝、それがあなたの心だ。
そうだったんです。今。しかしここを見ると、自分の所有物を売って袋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その袋が天に置かれた、尽きることのない~これが永遠という意味です。古びない、それが永遠の宝だ。
そうなるのです。財布となれ~それが宝物だ。
天に蓄えられた宝物だ。
このように語っているのです。では、財布が宝物だとはどういう意味でしょうか。
ここを見てください。私たちがどうすれば財布になれると書いてありますか?よく見てください。こうです。私たちの所有物を売り払って~そうでしょう?お前たちの所有物を売り払え~所有物とは何でしょう?律法的な行為、それによって「私はこんなに立派な存在で、こんなに豊かな者です。」と私たちが積み上げて持っているものを所有物と言うでしょう?私たちの行為を、ある財貨に換算したとき、お金というものが、私たちの行為や、考えや、知恵、知識、そういったもの、私たちの汗と努力を財貨に換算したものが、お金ですよね?そうでしょう?だから財物というものは、所有というものは、聖書が言う財物、所有とは何か?私が自分の力で差し出せる、作り出せる、 だから積み上げられる、何かを意味するのです。主が『売れ~』と言われる所有とは。
しかしその所有を売るには、『この所有は何でもないのだな~』と悟らねばならないのでは?つまり真理に出会えば、その所有は当然売れるでしょう?売って別のものを買うという意味ではなく~真理を得るとは、 それを差し出すということなんです。そうしてその真理を私が心に抱き、その所有を売れるようになれば、そうすれば私の内には真理があるんですね。真に価値あるものが。そうしたらそれを持ち出して他の人々にこう伝えていくことを、何と言うと言いましたか?
私たちが山上の垂訓6章の冒頭で学んだのは、『エレモスネ』救済ですよね?それが。ここから出てくるのが、それが施しです。「あなたの所有物を売って、あなたの内にあるその真理で今与えられるようになったのだから、施しなさい~そうすればそれが財布になるんだよ~」なぜ?私の内に伝える真理、その宝物があるから、私は財布だということです。しかしそれを伝えられる者になると、その財布が宝物なのです。
こういうことです。
しかし古びない袋です。「パライオ」。つまり古いもの、旧式のという意味です。つまり新しいものと対比される概念。つまり新しい契約と対比される古い契約ですよね?だから古びない袋とは、新しい袋という意味です。新しい袋!新しい袋になれ!そうすればそれが尽きることのない宝物だ!そこで天々も複数形ですよ、皆さん。複数形!つまり天々の中に宝物がある。
このように語っているのです。当然、真理を宿した聖徒たちの話です。
その天の中に宝が収められているのですが、永遠の宝です。変わることなく、古びることなく、永遠そのものの宝!真理の言葉である神です。永遠なる方は、神以外にいませんからね。それを宝と言うのです。
だから主が捕らえられて行かれたあの頃、十字架を背負って死なれるあの頃がありますよね?あの頃、あなたの弟子たちに たちに、『お前たち、今こそ袋を持て~』と言われました。『袋を持て~』と。それ以前、十字架を担がれる前には、袋になることはできません。なぜなら?イエスが生きているからです。そのイエスが死ななければ真理となり、御自身の民の心に入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そうでなければ、彼らが袋になる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
彼らは依然として自分以外のイエスを見て仕えるしかありません。そしてその力に驚かざるを得ないのです。そうではありませんか?そのイエスが私の外にいるなら、その途方もない力を行使した方のその力に驚き、それに畏敬の念を持ち、それに感謝する。そのレベルなら、私はイエスを信じているのではなく、それほど途方もない力を持つ、私を救うことのできるそのような能力を持つ、そのような機能を行使する、
その方の前にへつらうのです、私は。それを信仰とは言いません。
信仰とは、必ず連合という愛という概念を伴うものです。私の外にある何らかの存在が、私を救うことができ、これが良い言葉だと思ってはいけません。正気を取り戻してください。私の外にある何らかの方が、大きな力を働かせ、偉大な力を所有し、それゆえ私の救いまでも委ねることができるような存在 がそこにいるなら、私はその方によって生き返ることも死ぬこともできるが、その方が私の外に存在する限り、私はその方を信じることができないと言っているのです。
私がその外にいる存在を信じるということは、やはりその信仰の主体は私だということです。私!それは信仰ではないのです。聖書が語る信仰ではないのです、皆さん!それは途方もない力を持つ私を地獄にも送れるような存在に対して、存在の前で怯えているに過ぎないのです。だから、こうしたくなくても一生懸命やってみるし、やっているうちにやりがいも感じて続ける。これを信仰だと思い込んでいるんです。そんなものは信仰生活じゃないんですよ、皆さん。
だから主が十字架を背負われる直前に、「お前たち、財布を持て~帯袋を持て~」と言ったんです。これ全部「袋」なんです。これがね。金袋って思うでしょうが、金袋です。でもその金じゃないんです。そして「お前たち、靴を履かねばならん」って言うんです。見てみましょう。
ルカによる福音書22章35節。
(ルカによる福音書22: 35-38)
35 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遣わしたとき、財布も袋も履物も持たずに遣わしたが、何か不足したことがあったか。」彼らは「ありませんでした」と言った。
36 イエスは言われた。「しかし、今は、財布を持っている者はそれを持っていきなさい。袋も同様にしなさい。また、剣を持っていない者は、上着を売ってそれを買いなさい。
37 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う。書かれているところ、『彼は不法者の一味と見なされた』という言葉が、わたしについて成就しなければならない。わたしについて
ことわざに『彼は不法者の仲間と見なされた』とあるが、それはわたしについて成就するのだ。
38 弟子たちが言った。「主よ、ご覧ください。ここに剣が二本あります。」主は言われた。「十分だ。」
ここで「帯」と訳されているその言葉は、『バルティオン』――あのルカによる福音書の山上の垂訓にあるあの袋のことです。宝物!『袋となれ~』と言ったでしょう?『ポエイオ』という単語です。帯袋!そして袋と訳された単語『ペラ』が、袋です。それも袋ですが、それは糧を入れる袋です。
ところでよく考えてみてください。私たちが宝物の話をする前に、食べる話しましたよね?私たちが真の糧を真理として食べる時、その真理を糧として食べ、それを命のエネルギーとする存在になるでしょう?その時それを「ペラ」、袋と言うのです。その袋も、真理を宝物として収めた袋も、同じ袋だということです。その真の糧!断食してはならないその糧を、宝物として改めて説明しているのです。今。だからあの袋もあの袋も同じ袋だと言うのです。
ではなぜ以前は持って行くなと言い、十字架を背負われる直前に持って行けと言うのですか?今こそ持て~と言うのですか?イエス様が死ななければ、初めてあなたがたは袋になれるのだと。そのことを言っているのです。私が入り込むのだと。この宝があなた方の中に入っていくというのです。そうなれば彼らはその宝を救済として『エレモスネ』分け与え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そうではありませんか?では靴は何ですか?靴。それも同じ意味であるべきでしょう?靴も袋なのです。その靴についてはパウロがよく説明してくれています。このルカによる福音書22章35節以下は私が続けて説明するから覚えておいてください。エペソ人への手紙6章15節。
(エペソ6:15)
15 平安の福音の備えをもって、靴を履き全身の武具を身に着けなさい。
ここで「靴を履く。」と訳されている単語が「ヒポデオ」です。その名詞形が「ヒポデマ」靴です。
ここでは靴という単語は出てきません。出てきません。ただ「靴を履く」という言葉だけが出てきます。
しかし原文を見ると、「ヒポデオ」という動詞の後に、「ホプス」という「足」という単語が入っています。
つまり靴とは何でしょうか?足を包むものですよね?ここにそう書かれているのです。
その足を、靴というもので包め~と。こう書かれているのです。それが靴を履くということですね。まあ。
さて、では足とは何でしょうか?その「ホプテス」という語を修飾している次の語を原文で見ると、「ヘトイマシア ホ ウアンゲリオン ホ エイレネ」とあります。つまり、単なる「予備的な~」ではなく、「正確で、適切な」その平安「エイレネ」という「ウアンゲリオン」福音!こういうことです。それが足だ!こう言っているのです。その足を靴で包め!こういうことです。
繰り返します。非常に正確で、的確なその福音!『エイレネー』平安という福音!その足を靴で包め!そういうことです。
さて、その平安『エイレネー』という概念については、私がローマ書の講義で日曜日に詳しく説明しますので、今はただその『エイレネー』がそのまま神であるということを覚えておいてください。
神を内容とするものだという程度だけ覚えておいてください。
さて、その平安が福音であり、その福音がまさに正確な足!その正確な福音が足だと言うのです。聖徒はその足を包む靴です。靴!しかしヘブライ語では。その靴という言葉を「舌」という言葉でも使います。
舌!靴底が舌のように見えるからか?とにかく舌と書きます。舌!全て理由があるのです。
足は真理の福音を指し、その足を包むのが靴『ヒポデマ』です。つまりやはり靴は足を包む殻に過ぎないのです。
しかしその靴が正しい足を包んでいる時、その靴を足と呼ぶのです。
私たちがマタイの福音書5章で「誓ってはならない」という部分を学ぶ時も教わりましたよね?主はその地を『ホゲ』と呼びました。
それは『ハ・エレツ』をギリシャ語に変えたものだから、神殿でしょう?その地でも誓ってはならない~なぜ?その神殿は神の足を置く場所だからです。足台のようにしてありますが、足が入っている場所だからです。そういうことです。
したがって神殿とは、足、すなわち真理の神を宿す器なのです。ところが足を知らずに、その足台の上で公然と誓うとは何事か~?というわけです。足が何であるかを知らねば~という話ですよね?さて、その足を宿すものを神と呼び、正しい足を持つ神を聖なる者!宝物!と称えるのです。
だから神がモーセやヨシュアを呼んで真理の戦いを戦わせる前に、常に「お前の足から靴を脱げ~」と言うのです。古代において足から靴を脱げと言うのは、「私をあなたに譲る」という意味です。
私が誰の前で靴を脱ぐということは、私をあなたに譲るという意味なのです。
という意味です。ですから神様が真理の戦いを戦うために赴くヨシュアやモーセに、「ここは聖なるアダマ」ただの地ではありません。
この『アダマ』です。『アダマ』ですから。これが聖なる、清い『アダマ』だからです。清い言葉、真理だからです。
「あなたはあなたの靴を脱ぎなさい~」というこの言葉です。あなたを私に譲り渡すというのです。
ですから、その靴はすなわち舌を意味すると言いました。
私が私の舌を奪われるのです。靴を脱ぐとは、私が自分の足を放棄するということです。私の足を放棄する。そうすれば私が自分の足を放棄し、私を他人にただ譲渡してしまうと、誰かが私の足になってく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よね?そうするとその足が私のところに来て足になると、私がその足を包む靴が、靴になるのです。再び~靴とは何ですか?舌です?舌だと言いました。
私は自分の足を奪われます。譲渡されるのです。
お前、靴を脱げ!私の前で靴を脱げ!それは私が君の足を差し押さえる、没収するということだ。
そして私は自分の足を君にあげるよ~。そうすれば君は私を包む靴。靴とは何か?舌。私を包む舌となり、今や私を語り、私を伝える者となるという意味です。それが君の足から靴を脱げという意味なのです。
だから私の舌が別の内容を担うようになるのです。私が神の前で、その聖なる真理の前で、私の靴を脱ぐということは、私の靴が、私の舌が、別の足を担うということです。それが霊的戦いをするということです。
それが神の民の存在様式ではありませんか?私が私の内容を奪われ、神という内容を受け、その内容を栄光、 『毒蛇』と照らし出す者として生きる!それを聖徒と呼ぶのです。だからパウロは福音を伝える者たちを『足!」と呼んだのです。足!ローマ人への手紙10章15節をご覧ください。
(ローマ人への手紙 10:15)
15 送られなければ、どうして宣べ伝えることができようか。書かれているとおり、「良い知らせを伝える者の足は、なんと美しいことか」と言われている。
これはイザヤ書52章の引用です。見てみましょう。7節。
(イザヤ書 52:7)
7 良い知らせを携え、平和を告げ、幸いな知らせを伝え、(福音です。)救いを告げ、シオンに向かって「あなたの神が統治される」と言う者の山を越える足は(その足が美しいという意味です。)なんと美しいことか
その足は美しいのです。足が。福音を持つ者たちは神という真理、「レギル」という足という言葉は「導く」という意味にもなります。では足。神のその導き、神の導き、その真理を宿した靴となって、その足を載せ、他の人へと駆け出す足となるのです。
神はそのことを美しいと。このように称えてくださるのです。
それが美しいのです。ならば、帯や、袋や、靴の役割を果たすそのような者たちがまさに、神の宝物なのです。
だから主が去られる前に、「さあ、お前たちは袋、帯、靴を持っていけ~」とそうおっしゃるのです。
それまでは、持つ方法がないからですよ。では何を持っていくのでしょうか?
彼らが考える地的な次元の袋、帯、靴を持っていくのです。
つまり、殻が否定され、その中身の本質が現れる時、その否定された殻を、中身として認めてくださるのが救いなのです。
だから主が十字架にかけられる前に、弟子たちに「袋、帯、靴になれ!」 『持て!』というよりは『履き物となれ!』と命じられたのです。それでは、それは『義』の外衣をまとった者ですね? だからそこに外衣の話が出てくるのです。
彼らは神が与え、神が備え、神が着せてくださった、その義の衣をまとった者たちでしょう? それが外衣です。
ですから、彼らは必ず外衣をまとっ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彼らが宝物になったなら、袋になったなら。そうでしょう?しかしその衣を自分だけが着ていてはいけないでしょう?
イエス様のように四つに、渡さ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さあ、私が着ているこの衣を、誰かにこの世に譲るためには、必ず戦争が起こります。
衝突が起こるようになっています。ではこの上着というものを他の人々に譲る時、 この上着は何に変わるかというと、聖霊の、みことばの剣になるのです。だから『上着を剣に替えよ!』と言うのです。
飴を交換するように、『上着を売って剣を買え!』という言葉ではなく、ではどうすればいいのか?
『お前たちはその上着を、今や私が消え去りお前たちの中に入るのだから、お前たちが私の役割を果たさねばならないだろう?ならばお前たちはその剣となって進まねばならない、お前たちだけが着ているだけではいけないだろう?』だから『上着を剣に替えよ!』と言うのです。
そう言いながら何と言うかと言えば、私が 『ア・ノモス』『ノモス』は律法ですよね?
『ア』は何でしょう?『律法に支配されない』という意味です。
それをここでは不法者と言ったのか、何て言ったっけ?ここ?何と同類だと言った?『不法者?』つまり強盗や泥棒のようなもの!そう見えるでしょう。その通りです。イエス様がイザヤ書でそう預言されていたんです。
イエス様がそのような者たちと、同様に扱われて死ぬとこう記録されていますが、これがどういう言葉かというと、その方が今や律法をもって来られたけれど、 不法者!」律法とは無関係な、律法の支配を受けない者になるということは、今、死んで、律法によって肉体的に死んで、真理によって、霊によって、来られるということですよね?「だから、お前たちは今、袋になれ!」こう言っているんです。そうすれば話がそのまま滑らかにつながるじゃないですか?「お前たち、今、袋を持て!靴を持て!帯を持てなければならない。
なぜ?私が今、『アノモス』律法の支配を受けないその状態で成し遂げられるからだよ。」そうです。見てください。
では何ですか?私が今、死んで、律法によって、肉体によって死んで、真理としてあなた方の中に入ってくるという意味です。だからあなた方は今、袋になれるという意味です。
そうして、入り込むと、お前たちは義の外衣を着ることになる。そうしたら、お前たちが俺の役割を果たさねばならないから、それを伝えるためには、その外衣を剣に変えねばならん~剣として持たねばならん~その外衣を~。だがお前たちがそれを最後まで律法として持っていれば、それは律法の『ヘレブ』という剣となるだろう。あなたがたがそれを聖霊の剣として持つなら、あなたがたはそれを救済を行う剣として持つことになるという意味です。だから二本の剣、二本でもありません。対となる剣。こう言います。対となる剣が登場するのです。
弟子たちがこう差し出すと、主はこう言われました。『そうだ、これが例えとしてふさわしい。」と語られたのです。「剣は二本あれば十分だ。」どうして二本あれば十分なのか?そういう話ではないでしょう?
「それが適切だ。」と語られたのです。
私がローマ書の講義でもお話ししましたが、この地の剣は二種類の剣に分かれると言いました。
一つは『 ヘレブ、干ばつ」という剣であり、これは神の裁きの現場に常に登場するものです。
剣!これが干ばつです。干ばつ!干ばつとは何でしょうか?その真理の雨が降らないため、糧にもならず、実も結べない、その状態。
それは他者を殺さざるを得ない剣なのです。そうでしょう?それが「律法の剣」というものです。
裁きの剣!なぜ剣という概念を使うのかと言えば、聖霊の剣と対比させるために、繰り返しその干ばつという、「ヘレブ」という剣を登場させるのです。
律法主義者たちにとって、その律法が唯一の攻撃武器だからです。
自分が行ってきた、そのような多くの実り!それが彼らの攻撃武器です。しかし神はそれを干ばつだ、そう言います。
あの水もない乾いたもの。あれです。何の役にも立たないもの!再びルカによる福音書22章37節を見てください。
(ルカによる福音書 22:37-38)
37 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う。書かれているとおり、『彼は不法者の仲間と見なされた』(『ア・ノモス』と言ったでしょう)という言葉が、わたしに成就しなければならない。(当然、あの不法者の仲間、あの不法者、律法の支配を受けない者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成就し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その約束が。成就されねばなりません。そうしてこそ袋となるのです。私に関するそのことが今、成就しつつある。私は死ぬのだ~今)わたしについて書かれていることは、成就するからである。
38 すると彼らは言った。
「主よ、ご覧ください。ここに剣が二振りあります。」
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
「それで十分である。」
「非常に良い、適度な『ヒカノス』適度な例だな!」こう言っているのです。「これは実に適度な例だな!」 こう言っているのです。
では今、その剣を無謀に使う者の姿が登場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よね?この聖書の読者は私たちですから。それですぐ次に捕まえに来ます。その中で『マルコ』という者が現れるのです。『マルコ』とは誰か?『メルキゼデク』のあの『マラク』ですよね?「メルキゼデク」のあの「メルキ」です。それが「マルコ」です。ところが、あれは何と言ったでしょう?義の使者、義の王だと言ったでしょう?そう、使者!天の王となるべきある者が来るのに、もちろん型(モデル)であり象徴(シンボル)です。
ところが、とんでもない剣、ペテロが持った剣、ペテロはどう止めたでしょう?主のあの十字架への行進を、「死んではいけません。
命をかけて止めましょう」と言ったのです。命をかけてその方の死を止めれば、この世は終わりです。宝物としてその方が入ってこ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それが律法ですよね?その方の死を、今もなお生き返らせておいて、ずっと祈り続けているじゃないですか?それに加えて!
主は死んだのです。死んでこの中に入っておられるのに、まだ私の外に置いて、何かを願い、感謝し、喜び、そんなことをしているのです。それがペテロが見たイエス様だったのです。死んではいけない方!私を助けてくれるべき方!私を救ってくださるべき方!いや主は私があなたの中に入って私が命になるんだと言ったのに、そうしたら『いや、そういうことじゃなくて。いや、私はそういうこと知らないから、そういうことじゃなくて、生きて私を助けてくれ』と言ったんです。
では、そんな者が持つ言葉、その方への理解が何かと言いますか、言葉?当然律法じゃないですか?それではそれは「メルキゼデク」のあの「マラク」「マルゴ」という義の使者となるべき者たちの、右の耳だと言いますよね?右の耳を(ここが右側か?)、右の耳、right ear、右の耳を、切り落とすという意味です。それでは大変なことになります。天人共怒(てんにんきょうど)すべきことですよ、これは。聞くべき耳を、私が持つ誤った言葉で、閉ざして切り落としてしまうなら、それは悪い剣です。だから主が何を言われたかと言えば、「その剣を持つ者は、その剣によって滅びる。
」そう言われたのです。
ではどんな剣を持てと言うのか?馬の耳を切る剣なら、ダメなんです。聖書が面白いのは、そうして耳を切られた者の家族が、大祭司の庭でペテロに近づき、「お前の耳切っただろ?」 (俺の足を返せって感じで)追い回すんです。わざわざ聖書がマルコの家族が訪ねてきて『お前、イエスの味方だろ?』って聞いたって書いてあるんです。大変なことになりますよ。皆さん。マタイによる福音書26章51節を見てください。
(マタイによる福音書 26:51-52)
51 イエスと一緒にいた者の一人が、手を伸ばして剣を抜いて、大祭司の僕を斬り、その耳を切り落とした。
52 するとイエスは言われた。「剣を鞘に納めなさい。剣を振るう者は、剣で滅びる。」
どういうことか、今お分かりになりますか、皆さん?さあ、私たちは真理という宝を、袋と帯と靴の中に収めた、聖霊の剣、その神の武器!だから私たちは軍兵と呼ばれるんですよね?あの方を『万軍の主』と言うじゃないですか。万軍とは、万の軍隊の司令官という意味ですから、私たちは聖霊の剣なのです。その剣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だから主がこの地に来られて、「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剣を与えに来たのだ」
と言うのです。「とことん殺してやる!」というのではなく、良い言葉なのです。それは「わたしの剣を受け取れ!」という意味です。わたしの剣!その剣はヨハネの黙示録に非常に素晴らしく説明されています。黙示録1章13節。
(ヨハネの黙示録 1:13-16)
13 燭台の間には、人の子のような方が、足にひかれる衣を着て、胸に金の帯を締め、
14 その頭と髪の毛の白さは、白い羊毛のようで、雪のようであり、その目は炎のようで、
15 その足は、炉で鍛えられた輝く錫のようで、その声は、多くの水の音のようで(真実です)、
16 その右手に七つの星を持ち、その口からは両刃の剣が出ており、その顔は力強く輝く太陽のようであった。
「両刃の剣」とは何でしょう?主の口から出る御言葉です。さて、その真理の御言葉が剣であるなら、その御言葉をこのように収めているものは、何になるでしょう?鞘ですよね?だから聖殿を指す「トフォス」という言葉は鞘という意味でも使われます。面白いでしょう?鞘に剣がない鞘は、どこに使うんですか、あれは?何に使えますか?そこには必ず剣!御言葉!真理!剣が収まっていてこそ完成なのです。聖殿から剣が抜けてしまえば、ただの鞘です。何の役にも立たないもの!
このように、袋と帯と靴と上着と剣!これらは全て、イエス・キリストが肉において死に、霊においてよみがえられ、神の民の中に入られた時に、完成する恵みの賜物なのです。だから主が十字架を背負われる前に、弟子たちを遣わしながら、「お前たちは帯や袋、靴など持たないで!」と語られたのです。十字架を背負う前には持てないからです。
そこには二つの深い意味が隠されていました。一つは、福音が正しく伝えられるためには、確かに弟子たちを『神の国を宣べ伝えよ!』と遣わすということです。しかし、その弟子たちは何を知っていたでしょうか?彼ら自身も神の国が何であるか知らなかったのです。考えてみてください。イエスが捕らえられるあの夜、誰が偉いかを言い争ってイエスに叱られたのです。誰が最高位になるか争って。そんな人たちが神の国を何を知っていたというのでしょう?そして、主が復活したのに、気づかなかったというのです。「ホラホ」もできなかったというのです。皆逃げ出したというのです。
では神が彼らを十二人(12)と七十人(70)に分けて遣わしたのは、ある種の型であり象徴として示したものであって、「出て行って福音を伝え、一人でも救って来い!」という意味ではないでしょう?誰も知らなかったのです。彼らも知らなかったのです。ですから、福音が正しく伝えられるためには、私が今お話しした、そのような霊的な概念の帯と袋と靴は、必ず必要だという意味です。
しかし二つ目は、「お前たちのその帯!お前たちが考えている袋!お前たちの靴!お前たちの杖!こうしたものは絶対に福音伝播に役立たないのだ!」ということを教えるために、「それは持って行くな!私が持っていけと言っても~お前たちは私が言うそれではなく、お前たちが考えているあの袋!あの財布!あの杖!あの金!を持っていくだろうから、それを持ち行くな!しかしお前たちは必ずそれが何かを知った時には、必ずあの袋!あの財布!あの金!持っ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
」という二つの意味を同時に込めたメッセージなのです。しかもそこに書かれた言葉そのものを、混乱させるように配置しているのです、聖書は。ルカによる福音書9章1節を見てください。
(ルカによる福音書 9:1-4)
1 イエスは十二人の弟子を呼び集め、すべての悪霊を制し、病を癒す力と権威を与え、
2 神の国を宣べ伝え、病める者を癒すために彼らを遣わされた。
(皆さん、これはすべて福音を伝え、命をもって完成せよという意味ですよね?しかし、これをそう見られないと、ただ悪霊を追い出し、病を癒して帰るだけです。それはしるしと言います。しるし!ところが 神は何と言っておられるか。『しるしを求める者は、悪しき、淫らな世代である。
』と。ですから、こうしたことを文字通りに解釈し、そうした奇跡を教会に来て求めるなら、その人は悪しき、淫らな世代なのです。)
3 旅のために何も持って行ってはならない、と言われた。
(ここでの「旅のために」とは、どこかの無銭旅行とか、何か旅行とか、そういう旅行ではなく 『その道にいるとき』という意味です。その道とは何ですか?私が道であると言うイエス!その道にいるとき、私たちはそう読むべきなのです。これを。何も持たないように)杖も袋も糧も金も二着の服も持たず、
4 どの家に入っても、そこで宿り、そこから立ち去れ
さて、弟子たちに神の国を宣べ伝えよと言うが、これを『伝道福音』と言う。しかし伝道福音では絶対に真理を悟れない。教える福音!つまり伝道福音とは何かと言えば、 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れば天国!信じなければ地獄!『悔い改めよ、天国は近づいた!』って、それでどうしろっていうんですか?それで救われるんですか?とんでもないことを言わないでください。「私はその言葉を聞いて、教会に来て救われたんです」いやいや~その時は少し寂しくて、寂しくて悲しいことがあって、そういうことですよ~。皆さんがその言葉が何なのかを学び悟るまでは、皆さんは絶対に、皆さん自身や、この『ホ・コスモス』の世の罪そのものを赦すことができないんです。それならそれは救いでもなく、何でもないんです。必ず教える者がい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が何かを。それは過程としては使えます。過程として。「ああ、あの老いぼれは一体何が、何があってあんなに重いものを背負いながら、あんなにびっしりと1年365日叫んでいるんだろう?一度行ってみようか?」これはできます。しかし、その話を聞いても、絶対真理に到達する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
私はここで水曜日の礼拝が終わって帰ると、私の車の前に、あのスタレックス・ボンゴに、「 主イエスを信じなさい~そうすれば~」なんて言ってマイクで大音量で何か説教して回ってる、うちの教会の信徒です。なんで毎週会うの?それもいつも私の前に。どれほど大きいかって、ラジオを大きくかけてもその声が大きすぎて全部聞こえるんです。)でも、それが無駄だと言ってるんじゃないんです。それが過程として使われることはあっても、そうしておいて「私は多くの人に福音を伝えました。
」なんて言うな、ということです。
弟子たちは今、そうして遣わされたのです。なぜ?この聖書の読者である、神の民に何かを教えるために~です。確かに弟子たちは悪霊を追い出し、病を癒すことを熱心にやってきました。だから彼ら自身も驚いたんです。「おい!悪霊が出て行ったぞ~病人が起き上がったぞ~」と。彼ら自身も驚いたんです。びっくり仰天したんです。それで後で、悪霊に取りつかれたある少年がやって来たんです。変容の山の下で、どんなに叱っても出て行かないんです~この子が~少し前にはできたのに。なぜできないんですか?と主様に尋ねたんです。そうやったんです。でも神様はそれを救いとは呼ばないんです。
さて、 神様はそうしたしるしを通して、神の国と永遠の命という真理を伝えることが、主目的でした。しかしその働きは、袋と帯と糧と贖罪、お金という言葉が銀という意味なんです。銀は常に贖罪です。
単なる紙幣ではありません。そして二着の服です。二着の服とは、対としての服、上着と下着のことです。持っていくべきです。上着をあげようとしても、私には下着しかないのに。下には聖書、律法しかないのに。どうやって上着をあげられるというのですか。下着をあげれば、「これがそれですか?」と分かれば、それが上着になるのです。だから二組で必ず持っ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袋は必ず持っ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帯は必ず持っ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餅、糧は必ず持っ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杖は必ず持っ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ではなぜ持っていくなと言うのか?お前たちは私が言うそのものではそれを持ち帰れないからだ。まだその時ではないのだ。
ここで「何も持たぬがよい」というその語句が「メデイス・アイロ」です。「アイロ」という言葉には「取れ、持ち去れ」という意味もありますが「取り除け」という意味もあります。だからイエス様の墓の石がこうやって除かれたでしょう?その時使われた言葉が「アイロ」です。すると「メデイス」は絶対否定ですよね。あの墓の石がああやって除かれたこと、「絶対に除かれないようにしろ!」が「 メデイスアイロ」ではないでしょうか?「取り除け」と書かれているのが、「取り除かれた」と書かれているのが、「アイロ」だからです。「メデイス」に絶対否定が付くと「絶対に取ってはいけない」と訳すべきですよね?
しかしこの単語は「絶対に取ってはいけない」と訳しても構いません。同じ意味で使われるのですから。この単語はそういう性質なのです。ではどう訳すべきか?では。つまりその原文を翻訳した者たち、英語聖書や何やら韓国語聖書を翻訳した者たちが、どうすれば、これが私たちの、私たち人間の、その道徳と倫理あるいは人間の価値や、あるいはその熱意をこのように豊かに包装できるかを念頭に置いて、「おい、伝道に行くのに、何を持っていく?神様が全部お聞きくださるじゃないか」という意味を込めたかったから、「お前たち絶対持って行くな!私が全部やってあげるから」という意味で訳したのです。そういう意味がないわけじゃない。そうですね。そういうものは持っていかなくても、神様がやってくれます。なぜ?別の袋、別の帯、別の杖、別の金、別のパンがあるからです。それさえ持っていれば、そんなもの持っていかなくてもいいんです。
ですから聖徒は、真理を悟った者たちは、このような箇所を読みながら、単に「ああ~神様は宣教は自費で行えって言うんだな~」と読み、何も準備せずに、むやみに赴いて他人の骨を折らせる、そう理解するのではなく、準備をして行ってください。なぜむやみに赴いて、他人の骨を折らせるのか~と。全て準備して計画を立てて行くべきです、宣教は。そういう意味じゃないんです。私がただやみくもに「行こう、行こう~」と行けば、相手は勝手に全部やってくれるだろう~という話じゃないんです。そんな言葉がどこにあるんですか。それでは後でイエス様が亡くなる時に、「お前たち、財布、杖、袋は必ず持っていけ!」なんて言って行ったらダメでしょう。そういう部分はすっぽり抜かして言うんです。必ず持っていけと言ったんです。
だから真理を悟った人々は、この箇所を読みながら「ああ~そうだ、あの下の袋ってやつは、違うな~。『メデイス・アイロ』持っていくな~そうだ!でも捨ててはいけない、片付けてはいけないとも読めるんだ。だってそれを持っていかずにどうやって福音を伝えられる?ここまで理解しなきゃいけないんだよ。
ルカによる福音書10章に行くと、70人、その弟子たちを70人遣わす時も、やはり同じように紛らわしい言葉を使っています。見てください。ルカによる福音書10章1節。
(ルカによる福音書 10:1-5)
1 この後、主は別の七十人を立てられた
(70は今や7という単語と全く同じ言葉です。12、12部族の次に70長老が出て、12使徒の次に70が出て~。全部同じ話です。12は必ず7で完成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だから別の7、次元の違う7で立て、今やペアで遣わします。遣わす時に何と言うかと言えば~)
自ら行こうとされる各町各所に二人ずつ先立って遣わし、
2 言われた。「刈り取るべきものは多いが、働き手が少ない。だから、収穫の主人に頼んで、収穫する働き手を送ってくださるように言いなさい。」
3 行け。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遣わすのは、羊を狼の中に遣わすようなものだ。
4 帯も袋も履物も持たず、道でだれにも挨拶してはならない。
5 どの家に入っても、まず『この家に平安あれ』と言いなさい。
ここに帯、袋、履物の前に、持たず、これが『メ・バスタゾ』です。これは 「取り除くな~」「お前たち、帯、袋、靴は必ず持っていけ!」と解釈しても正しく、「お前たち、帯、袋、靴は絶対に持ってはいけない!」と解釈しても正しいのです。「バスタゾ」という単語自体が、「アイロ」と全く同じように使われるのです。
それでは皆さんにお尋ねします。福音宣教のために、帯と袋と靴に代表される、杖、金、糧、二組の衣類、こうしたものを持っていくべきでしょうか?持ってはいけないのでしょうか?ましてやマルコは。マタイは「何も持ってはいけない!」と言いましたよね?明らかに「何も持って行ってはいけない!」なのに、マルコはどう書いたかご存知ですか?「杖と履物だけを持って行きなさい!」と書いています。どちらの言葉を信じればいいのでしょうか?マルコによる福音書6章7節を見てください。
(マルコによる福音書 6:7-9)
7 十二人の弟子を呼び集め、二人ずつ組にして遣わし、 (同じ話ですよね?)汚れた霊を追い出す権威を与え、
8 旅の途中で杖以外の食べ物も、袋も、帯のお金も、何も持たないように命じ、
9 靴だけを履き、二枚の上着も着ないように言われた。
ここでは靴は持って行けと言っていますね。そうでしょう?杖も持って行けと言っています。どうすればいいんですか?
誰の言うことを聞くべきですか?どちらがより高い権威を持っているのですか?マタイとマルコ。聖書がこのように矛盾した記録をしているのは、袋や帯や靴や杖や二組の服といったものが、この歴史の中の「アダムたち」が普遍的に考えているような種類の物ではないことを示しているのです。そんなもので惑わされるな、ということです。そういうものは、持って行っても行かなくてもいいのです。
この歴史の中のそれらは。持っていけば少し便利で、持って行かなくても伝えられる福音が伝えられないわけではないのです。
しかし、その中に込められた内容は必ず持って行けと言うのです。
靴の中に込められた足、袋の中に込められた宝、袋の中に込められた石、宝石、袋の中に込められた糧!これは必ず持って行けと言うのです。
主が言われるでしょう?『私がそのようなものなしにあなた方を遣わした時、あなた方に欠乏があったか?』そうです。
『不足したものはあったか?』が『欠乏があったか?』という言い方です。欠乏があったか?すると弟子たちが、『いいえ、全くありませんでした。
』と言います。それも私たちが二つのメッセージとして理解できなければなりません。一つ目は、物質主義的概念や地上的概念といったものは、真理を伝える上で何ら不足をもたらすものではないという教えです。そうしたものは持たなくても、福音の伝達に何ら不足を生じさせないのです。なくても構いません。
しかし二つ目は、それとは逆に、真理としての袋と帯と靴がなくても、何の欠乏もない者たちに、いったいどんな実が結ばれるだろうか?だから行って悪霊を追い出してきただけだろう~という話です。どうして君たちはそれなしで不足を感じず、悪霊を追い出し、病を癒して来て、それを自慢しているのか?という指摘と同時に、『そうだ、 あの袋、帯、靴というものは、福音が伝えられる上で、何の不足も生じさせるものではない!」という二つのメッセージが共に込められているというのです。ここです。それがあの言葉ですよね?
だから主がその言葉を語られた後、「しかし今こそ必ず袋と帯と靴を持て。上着を帯に替えよ!」と語られたのです。
今こそできるというのです。なぜなら?「私が『ア・ノモス』律法の支配を受けず、肉体に縛られない、その存在としてあなた方のもとへ行く~宝物として、糧として、足として、あなた方の内へ行くのだ」ということです。
さて、簡単に言えば、この地の宝は、決して天に積まれることはできないばかりか、真理が愛として流れ行くことにも、全く無益だということです。したがって、自分が天の中にその宝となれなかった者は、どんなに立派な道具を動員し、見事な外見で飾り立てても、神の福音伝道の道具としては、絶対に用いられないのです。
つまり、宣教会の戦略だとか、宣教会の方法や道具の開発だとか、これらは全く役に立たないことだということです。
その内容を持っていればよいのです。しかし、その内容については何の議論もせず、ただ戦略だけを練って座っているのです。地の下にその袋、その帯、その杖だけを準備しているというのです。主は『それを持って行かなくても何の不足もない!』とおっしゃっているのに。『お前が宝物となって行かなければ~お前が剣にならなければ~』とおっしゃっているのに。
だから主はまるで二言三言の方のように、ある所ではこうしたものは持って行くなともおっしゃり、ある所では必ず持って行けともおっしゃっているように見えるのです。ですから皆さんがこうした聖句を表面的にだけこう理解して、とんちんかんなことに、神様が全部やってくださる。そんな風に行ってはいけません。本当に去ろうとするなら、まず第一に、あなたがたがその真理を十分に説明できる者にならなければならず、そして財政的にも十分に準備が整った時に、 立派に旅立つのです。しっかり準備して。
だから私はこう言います。身近な人にどこかで伝道する時、聖書を広げて、彼に聖書を十分に見ながら説明できる時間にならないなら、口も開くなと言います。軽率に行って、間違った方法で「イエスを信じればこうなります」とか「ああなります」とか言うなと。
そういうことを言うなと。
そんなこと言うなと。あれは侵略です。侵攻です。贈り物を抱えて、あれこれ詰め込んで行って、ただ楽しく幸せに暮らしていた彼らに、文明の味を見せて、むしろ彼らを文明の中毒者に仕立て上げたんじゃないですか?何をしているんですか、あれは?
さて、真理を伝えに行く時に、杖を持って行くべきか、持って行かないべきか?これだけは明らかにしておきます。とにかく本文の話は私が整理して終わらせましょう。
その杖という単語、「マケル/מקל/」というヘブライ語は、「真理を下のものに教える」という意味です。杖という意味のその単語の文字が、「ラメド」なんです。それも杖です。「教える、導く」といった意味です。ところで、その杖という単語の、辞書的な意味が何かわかりますか?「芽吹く。」という意味です。「芽吹かせる。」杖は必ず芽吹かせる役割を果た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
枯れた木に、呪われた木に、芽を出させ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だからアロンの杖だけに芽が出たのです。それが真の杖です。他の杖は、死んだ杖です。生木の杖を持ち歩くのを見たことがありますか?よく乾燥させて硬くして持ち歩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あれは芽を出すことができませんが、真の杖は、必ず芽を出させる教えの杖で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杖は神の民がひとときも離してはならない真理の言葉であり、それが私への教えであり、 私を導くものだから。それが杖です。
そして彼らを導き教える教師の意味で使われるのです。杖です。杖!だから神がイスラエルがエジプトから出る時、お前たちの杖、靴、 真理の帯は必ず持って来い、そしてその財産を食べ、心で持って来いと言うのです。
エジプトから出られる者は杖、靴、帯を必ず持たねばならず、その財産を食べ、 内に抱いて出てこなければならない。
こういうことです。
出エジプト記12章11節を見てください。
(出エジプト記 12:11)
11 あなたがたは、こうしてそれを食べなければならない。腰に帯を締め、足に靴を履き、手に杖を持って、急いで食べなさい。これは主の過越の祭りである。
では、そこから出て行く者たちは皆、このように食べ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では皆、杖を持って出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しょうか? それでは約200万人が皆、杖をついて歩いていたことになりますね。そんなことでしょうか? 彼らが皆死んだ時、杖が200万本? それはありえませんよね。では、衣が傷まず、靴が古びなかったという言葉も、そういう意味でしょうか?考えてみてください。
詩篇23篇4節を見てください。
(詩篇 23:4)
4 たとえ死の陰の谷を歩くとしても、私は災いを恐れません。あなたが私と共におられるからです。あなたの杖とあなたの杖が私を慰めてくださいます。
杖と杖が私を慰めて、 どこへ導くのでしょうか?安らぎの水辺へ導くのです。水のある場所へ。杖とはそういうものです。ですから必ず杖を持って行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いや、私が杖を持って行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うしてこそ彼らを導くのです。この杖が!ではなぜ主は、ある場所では杖を持って行くなと言われたのでしょうか?人間がこの世で、自分の肉体を頼る杖!それはつまり自分の行いでもあり、自分の経歴でもあり、この世の物質でもあり、それが私たちが頼る杖ですよね?それを携えて、それを根拠に私の国を広めようとするな、ということです。その杖を持って行くな、ということです。
どんな杖を持って行けと言うのか?芽吹く 杖!神の国へ導く杖!その杖を持って行けと言うのです。肉的な杖を持つ者たちが、どうしてその霊的な杖である真理に頼れるでしょうか?頼らないのです。『その杖を捨てよ!』と、ある所では言っているのです。ある所では『杖を持っていかなきゃ~』と、そう話しているのです。
エジプトの魔術師たちも同じように杖を持っていましたが、その杖は蛇でした。
するとモーセの杖が蛇になって、それを飲み込んでしまったでしょう?だからエジプトの魔術師たちが持っていた杖、そういう杖はダメなんです。それでマルコが『杖は持って行かなきゃ』と記録したのです。つまり『持って行け』、 『持って行け』、『持って行くな』の問題が重要なのではなく、それが上のものか下のものかが重要なのです。ですから、ある所では杖を持って行けと言い、 別の箇所では持っていくなと言う~そんな質問をするべきではないのです。それは幼稚園レベルの質問です。まるで何か大発見をしたかのように~聖書にこんな矛盾が書かれていると。全く矛盾するはずがありません。
ですから当然、霊的な意味の杖と袋は持っていくべきです。そして貴重で貴重な宝物のような「石」、すなわちキリストと解釈されるイエスという「石」も持っていくべきです。その石は何ですか?糧ですから。そしてそれが身代金だからです。そんな袋の中のその糧!袋の中のその石!その宝物!それを持って誰も打ち負かせなかった、鉄壁の要塞のような将軍一人を打ち負かした存在がいるでしょう、ダビデです。ダビデは何番目の息子?七番目の息子です。
さて、七(7)が油注ぎを受けると八(8)になります。
私が後で、日曜日に説明しますが~いつになるかは分かりませんが、それがダビデです。ダビデが、七(7)が油注ぎを受けると、完成するのですが、それがシャロームです。誰ですか?ソロモンです。
だからそこで神殿が完成するのです。しかし今日はダビデの話ですから。ダビデが、誰も打ち倒せない、この 「ホ・コスモス(κόσμος/G2889)」という世界、あの打ち砕かれた石像が壊したあの偶像、ありますよね?それと似たような、あの「ゴリアテ」がありますよね?それをぶっ壊すのですが、何でぶっ壊すか分かりますか?杖!袋!石!これで打ち砕くのです。サムエル記上19章39節。
(サムエル記上19:39-51)
39 ダビデは剣を軍服の上に帯びたが、慣れなかったた
(誰の剣ですか?サウル王の剣です。それはダメですよね?)
試しに歩いてみて、サウルに告げて言いました。「慣れないので、これを着て行くことはできません。」そしてすぐに脱ぎました
(サウルの上着と剣を脱ぎました。あの世の杖、袋、帯ではダメなんです。では何を持って行くのか見てください。)
40 手には棒を持って(これが杖です。)
川辺で(川辺とは、流れる水という意味です。流れる水で)
滑らかな石(流れる水で滑らかな石、これが「ベン」です。「ベン!」流れる水から出た石は真理でしょう?当然)
五つを選び(五つで~神が十の戒めを私たちに与えられる時は五つ、五つで与えます。五つを選び)
自分の牧者の器(この器という言葉は、神殿で使われる器、器物という意味です。)
すなわち袋に入れ(袋が出てきますね。袋に何が入るのですか?水から出た五つというその石!その石が袋に入り)
手に投石器を持って(投石器というのは、垂れ幕という言葉です。これが。垂れ幕!不思議ですよね?イエス様が亡くなられた時、垂れ幕、六枚の垂れ幕が上から下へ裂けました。どうやって?五つずつ裂けたんです。ところでこの「垂れ幕」という言葉が持つ意味は、「刻む、投げる」 そういう意味です。それを「投石器」と言うのですが、投石器が何かよく分かりません。とにかく石を束ねて投げる、こういう回すもの?そういうものなんでしょう?投石器!よく分からずに知っているふりをしています。うなずきながら~投石器って何ですか?とにかく投げて刻むんです。
しかしよく見てください。刻んだものを投げたことがあります。シナイ山の麓で。石に刻んだものを、投げたことがあります。どこへ?『金の牛』へ。律法です。そうでしょう?そこに投げつけて裁きが起こったことがあったのです。それを投石器と言うのです。投石器を持って)ペリシテ人のところへ進み出た(ペリシテは、今もあのパレスチナがペリシテですよ。まだ居場所を決められず、あのようにさまよっているでしょう?このように「転げ回る。定住できない。’という意味です。)
41 ペリシテ人は次第に進み出てダビデに近づいてきたが、盾を持つ者が先頭に立っていた。
42 そのペリシテ人は見回してダビデを見つけると、見下した。彼は若く、赤毛で、容姿が美しかったからである
(この「美しさ」が、 「その足が美しい」のあの美しさです。さて、美しいある者が、油を注がれて~油注ぎとは真理!油!と同じ言葉ですから。さあ、真理を持って美しいある者が八人(8)となって行くのです。)
43 ペリシテ人はダビデに言った。「お前は私を犬と見なし、棒を持って私に近づいてきたのか。」そして彼らが神々の名によってダビデを呪い、
44 また言った。「私のもとに来い。お前の肉を空の鳥と野の獣に与えよう。」
(空の鳥と野の獣とは、下の世界の、 あの古い神殿と、そしてその真理を持たない『ネフェシュ・ハイ』を獣と呼ぶのです。ダビデを見て、『お前をその餌として与えてやる。』これが律法主義者たちが私たちを見て言う言葉です。違いますか?私たちは彼らに、『お前たちが空の鳥、古い神殿、あの野獣の餌だ!』とこう言うべきなのです。見てください)
45 ダビデがペリシテ人に言った。「お前は剣と
(この剣が『ヘレブ』です。律法主義よ、お前が私に攻撃武器として使うのはその剣だけだろう~でも私は剣を持っていない~その剣はない。そういうことです。)
槍と短槍で私に迫るが、私は万軍の主の御名によってあなたのもとに行く
(『シェム』とは何か?分析された真理、その御言葉、私は主の御言葉をもってあなたのもとに行くのです。あなたが侮辱するイスラエル軍の神の御名によってあなたのもとに行く。イスラエル軍が『私』なのです…私が聖霊の剣をもって行くのです。私が行く。
御言葉をもってあなたのもとへ行くのです)
46 今日、主はあなたを私の手に渡される。私はあなたを打ち、あなたの首を切り落とし、ペリシテ軍隊の死体を、今日、空の鳥と地の野獣に与え、全地に、イスラエルに神がおられることを知らせる。
47 また、主の救いは剣や槍にあるのではないことを(ここも「ヘレブ」です)、 この民に知らせるであろう。戦いは主のものである。主があなたがたを我々の手に渡されるからである。
48 ペリシテ人が立ち上がってダビデに近づいて来たとき、ダビデはペリシテ人に向かってその陣形に直進し、
49 手を袋に入れて(さあ、あの袋です。今日私たちが学ぶあの袋に入れて)
石を (『ベン』)
取って投石器で(幕、そして律法に投げられた刻まれたあの石の話です)
投げ、ペリシテ人の額を打つと、石がその額に突き刺さり、彼は地に倒れた。(地と一つになったのです。)
50 ダビデはこのように投石器と石でペリシテ人を打ち、彼を撃ち殺したが、自分の手には剣がなかった
(どんな剣を使うか見てください)。
51 ダビデは駆け寄ってペリシテ人を踏みつけ、彼の剣をその家から抜き取り(それでは律法の剣ですね。)
その剣で彼を殺し
(その律法の剣が律法という干ばつ、その剣が律法主義者の手に渡れば、『マルコ』です。『マラキ』の耳を切り落とす剣となりますが、真理の人々にその律法が渡れば、その律法主義者を攻撃する真理の、聖霊の剣となるのです。首を切り落とすのです。その剣で彼を殺し)
その首を斬ると、ペリシテ人は自軍の勇士の死を見て逃げ去った。
このゴリアテ(ゴル’ヤト/גּלית/H1555)という言葉は「裸である」という意味です。
「裸の捕虜」「恥辱の捕虜」「善悪の知識の木を食べて裸になったアダムとエバ」という話を指しています。
裸の者が一人、「私はこの世の王であり、私を打ち負かす者はいない。」 神のように振る舞っているのです。それを油注がれた者が、
その袋!その宝!その神!その杖となって、その前に進むのです。行ってその石を、投石器で!その五つで彼の頭を打ち殺すのです。
そして彼の剣を抜いて、私が真理の聖霊の剣として持つのです。そうでしょう?それで相手の首を切るのが、皆さんの歴史の中の人生なのです。
それが七(7)の人々の人生です。すると彼を八(8)と呼ぶのです。だからノアの箱舟から出た人々が「八(8)」なのです。
そして彼らを八(8)の日に割礼を受けた者と呼ぶのです。(なぜ生まれた八日目に割礼するのか知っていますか?そこまでやると、また徹夜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後で~)
さて、そうして死んだ律法主義者たちは、空の鳥や野獣の餌食になるのです。こうして袋と杖と帯と宝物!つまり、最も貴重な石を入れる器であると同時に、宝物そのものであり、それを心で持つなら、それが糧であり、それがまさに隣人の罪を贖う贖罪の代価!お金と訳されていますが、「銀!」 、贖罪金なのです。そしてそれは下着と上着、つまり一組の衣服なのです。ですから杖!袋!帯!金!糧!二組の衣服!これは必ず持っ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ものです。しかし下のものはそうではありません。
だから「持って行くな」も正しく「持って行け」も正しいのです。しかし私たちはそれがそれだと知っていますよね?誰が何と言おうと~
しかし、そのようなものを下のものとして持っていくと、自分の能力と才覚だけを誇りながら、思う存分自分の義だけを積み上げて帰る、とんでもないことばかりしてしまうのです。したがって、み言葉を地上の宝として持っている人々は、生涯自分の義だけを熱心に積み上げて、滅びの国に入ることになり、み言葉を天の宝として積み上げ、その宝を持つ袋となって、 宝となる者たちは、その袋の中の宝、その靴の中の足、鞘の中の剣、袋の中の糧を、正しく伝えながら、神の尊い宝として生きるようになるのです。それが宝なのです。
だからヨハネの黙示録では、皆さんを宝石として、宝物として描いているのです。神がそう言われるのです、「これが私の宝物だ」と。私が宝物なのに、私の外にある、私の環境が、そんなもの宝物じゃなくても何だっていいじゃないか?
私の神が私を最も尊い石、最も尊い宝物だと言うのに。その意識がないから、私の外にあるものを、いつも尊い宝物にしてくれと求めるのです。私の殻を貴重な宝物にしてくれと願うのです。違います。あなたがたこそ宝物なのです。
あなたは神の宝物ですか?それとも塵に帰る土ですか?よく考えてみてください。
祈ります。
神様、恵みに感謝します。
父なる神様!その尊い神の言葉を、「アファル」として、塵として受け取り、地を築くことに使っている者たちが、このように数えきれないほど多いこの時に、それを私たちの天の中に宝として積ませてくださることを感謝します。
それが真に、真理を生きる神の民の生活であることを悟らせてください。それが幸福であり、それが喜びであることを、知らせてください。イエス様の御名によって祈ります。
アーメ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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