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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애의 경제를 위하여 김종철 |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석달이 되었습니다. 이번 사고는 단순한 산업재해가 아닙니다. 거의 묵시록적 파국이라고 해야 할 사건이죠.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실은 요즘은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요. 생각해보면, 일본제국은 1945년에 히로시마로 끝났고, 그 후 66년 만에 후쿠시마로 끝난 것은 일본주식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로시마 원폭투하로 패망한 일본제국은 군사력을 통해서 아시아의 패권을 꿈꾸었다면, 지금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그 근본적인 허구성이 여지없이 드러나버린 일본주식회사는 그동안 경제력을 통해서 대국을 꿈꾸어왔습니다. 이 둘은 대국을 몽상했다는 점에서 공통합니다. 방법이 다를 뿐이죠. 하나는 군사력이고 하나는 경제력이죠. 근대국가는 언제나 군사력과 경제력의 크기로 강대국과 약소국을 나눕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근대국가가 강한 국가가 되고자 필사적입니다. 그러나 이 근대국가의 욕망은 근본적으로 부질없는 것입니다. 아니, 단순히 허무한 몽상이 아니라, 결정적인 파국을 가져다줄 뿐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 사건이 이번 후쿠시마 사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역사적인 의미를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또 게으른 정신들은 이 중대한 역사적 의미를 간과하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지나쳐버릴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된다면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는 예전 같지는 않고 세상이 질적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냥 당장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더라도, 우선 경제가 예전처럼 돌아가진 않을 게 분명합니다. 대지진과 원전사고의 피해를 복구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갈 것입니다. 일본경제가 여차하면 전면적인 파탄상태가 될지도 모릅니다. 일본경제가 파탄하면 지금 벼랑끝에 있는 미국의 달러경제가 붕괴될지 모르고, 한국경제도 마찬가집니다. 지금 달러경제가 매우 위험한 상태에 처해있다는 것은 여러분들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미국이 프랑스, 영국과 함께 지금 리비아를 침공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달러 때문이에요. 물론 독재국가의 민중에게 독재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열망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모두 개입해왔습니까? 미국은 오히려 독재자들을 두둔하는 게 오랜 관행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민중의 욕구를 지지해서 미국이 개입한 적은 없어요. 실제로 미국은 거의 언제나 독재자의 편이었거나, 독재자가 미국의 이익을 위협할 때만 그 독재자를 제거하기 위해 개입했습니다. 사담 후세인이 그렇고, 카다피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카다피는 근년에 아프리카의 독자적인 통화를 구축하려고 기도해왔습니다. 이게 바로 미국이 카다피를 제거하려는 결정적인 이유예요. 그대로 내버려두면 미국달러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할 게 확실하니까요. 사담 후세인을 학살하고 이라크를 침공한 것도 마찬가집니다. 석유 때문에 침략했다는 설명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사담 후세인이 석유 결제수단을 달러에서 유로로 교체하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미국경제가 지금 버티고 있는 것은 주로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함으로써 얻는 이익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달러의 지위가 추락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날로 미국은 망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다급할 수밖에 없죠. 일본에서는 이번의 재해를 원발진재(原發震災)라고 부르고 있는데, 지진과 쓰나미에다가 원전사고가 겹쳐져 일어난 복합적인 대재앙이라는 뜻이죠. 이 ‘원발진재’ 수습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조달하려면 일본은 더이상 미국 국채를 사들일 여유가 없어요. 중국과 일본이 미국 국채를 사들였기에 지금까지 미국의 달러경제가 버티어왔는데, 이제는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 못지않게 미국이 지금 급해졌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대를 철수 안할 수 없게 되었어요. 이제 예전과는 상당히 다른 풍경이 전개될 것입니다.
“욕심을 크게 가져라” 지금은 소위 문명세계가 역사상 유례없는 총체적인 파국 국면에 들어서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사회는 이 세계적인 위기상황에 대한 긴장된 의식이 없는 것 같아요. 요즘 우리사회의 화두는 내년 선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선거와 관련되어 나오는 복지국가 이야기입니다. 이런 얘기들이 저한테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고, 그냥 공허하게 들립니다. 물론 선거도 중요하고,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망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좀더 근원적인 질문과 사색이 필요한 때입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복지국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음 선거에서 어떻게든 이겨보겠다는 혹은 적어도 몰락을 면해보겠다는 책략 이상의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회가 복지국가를 실현할 수 있는 물질적·정신적 기초를 갖추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복지국가가 과연 무엇인지, 그게 반드시 좋은 것인지, 깊이있는 철학적 토론도 없이 무조건 복지국가가 지고지선인 것처럼 얘기되고 있는 분위기도 매우 불안합니다. 실은 이런 분위기는 작년 6월 지방선거 때 무상급식에서부터 시작된 흐름이죠. 저는 욕 얻어먹을 소린 줄 알지만, 우리나라에서 진보를 지향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욕심이 작을까”라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왜 진정한 민주주의사회를 만들자는 얘기를 하지는 않고 늘 변죽만 울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헌법에 적혀있는 대로 주권재민, 인민주권의 원칙에 충실한 민주공화국을 실제로 실현하자는 얘기를 왜 못하느냐는 거예요. 여기 걸려있는 박노해 시인의 사진작품은 아마 중남미 전통 부족사회의 어떤 마을회의 장면을 찍은 것 같은데, 이것은 직접민주주의의 현장입니다. 중남미뿐만 아니라 부족사회는 대체로 이렇습니다. 구성원들이 모두 모여 자기 발언을 당당히 하고 전원이 합의에 이를 때까지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진지하게 의논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민주주의를 못할까요. 왜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고 지레 포기해야 할까요? 한번 투박하게 물어봅시다. 우리가 지금 사는 게 불행하고 재미없는 것이 정말 국가복지시스템의 미비 때문일까요? 물론 부분적으로는 그게 이유일지도 모르죠.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 각자가 불행을 느끼는 것은 내 운명을 결정하는 권리를 내가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살고 있기 때문에 불행한 거예요. 우리는 대부분 헌법에 보장된 자주적인 정치적 권리를 한번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고 그냥 몇십년 살다 죽습니다. 그러는 동안 몇몇 잘난 ‘엘리트’들이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정치적 결정권을 독점하면서, 사람들 위에 군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불행과 좌절의 핵심은 여기에 있어요. 자주적인 결정권이 나에게 없다는 것 말이에요. 그런데 왜 우리가 이렇게 욕심이 작을까요? 얼마 전에 신문에도 나왔죠. 지금 정규직 노동자들의 꿈이 뭐냐면, 자기 자식이 나중에 자기가 일하는 그 자리에 정규직으로 취직하는 것을 보장받는 것이라죠. 일자리 세습제예요. 이게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꿈이에요. 기가 막힐 일이죠. 욕심이 이렇게 작아서는 그 작은 욕심마저 절대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를 꿈꾸지 않는데 어떻게 민주사회가 되겠습니까? 일본 근대사상사를 보면, 메이지 초기부터 ‘소일본주의’라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메이지유신에 성공한 일본이 어떤 근대국가를 만들 것이냐를 두고 토론이 있었는데, 대국이 아니라 소국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입장이 역사적으로 비주류로 몰리고 패배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일본사회 저변에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소수파지만 그 흐름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습니다. 대표적인 사상가로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1920년대 초에 〈동양경제신보〉라는 주간신문의 주필을 했던 사람이에요. 기본적인 성향은 사회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닌 자유주의자예요. 전쟁 후에는 맥아더 사령부의 점령통치가 끝난 얼마 후 자민당 일당체제로 굳어지기 전에 잠깐 총리직에 있었던 분이에요. 그러나 총리직에 취임하자마자 건강문제로 두어달 만에 사임했습니다. 저는 이분이 좀 오래 총리직을 수행했다면 일본사회가 아마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굉장히 생각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1920년대는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어려웠습니다. 농촌도 황폐했죠.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승승장구하는 것 같았지만 서양제국들에 의해 압력을 받고,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가 되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하게 됐고, 민중은 살기 고달팠죠. 당시 이시바시 단잔은 일본사상사에서 기념할만한 몇가지 논설을 남겼는데, 핵심적인 주장은 일본이 소국주의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일본의 근본적인 화근은 바로 소욕(小欲)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굉장히 인상적인 말이죠. 그러면 그가 말한 대욕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일본이 조선과 대만과 만주를 포기하는 것이다. 조선과 대만을 식민지로 하고, 만주를 점령하고 중국을 침략하겠다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정당하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다. 일찍이 제국주의 역사상 자진해서 식민지를 포기하고 군인들을 거두어들인 국가가 없었는데, 일본이 그것을 실행한다면 서구제국주의 열강들도 놀랄 것이고,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발언권도 강해져 세계평화를 주도해나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석유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나라가 어떻게 군사주의 노선을 확장하고, 전쟁을 계속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이 근본적인 상식을 어기고, 막강한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데까지 갔습니다. 얼마나 무모한 일입니까. 《논어》에 보면 이런 문답이 나옵니다. 공자께 제자가 묻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사람한테 3군의 장수를 맡기겠습니까?” 공자님이 대답합니다. “나는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겠다거나 깊은 강을 배도 없이 건너겠다는 사람한테는 절대로 3군의 지휘권을 주지 않겠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걸핏하면 정신력으로 해보자는 사람, 근본적으로 비합리적인 사고에 젖어있는 인간은 안된다는 겁니다. 짧은 한순간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전쟁을 가미가제로 합니까? 공자님 말씀은 그런 미친놈에게 지휘권을 맡겨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거죠.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런 미친놈들이 늘 지도자로 군림해왔어요. 지금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죠. 욕심을 크게 가지자는 것은 결국 생각을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후쿠시마 사태도 따져보면 이성적인 사고가 결여된 게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원자력발전이라는 것은 어디서든 말이 안되는 프로젝트입니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사고가 안 난다 하더라도, 핵폐기물을 처분할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지금 세계 전체에 440기의 원자로가 존재하지만 고준위폐기물을 보관할 수 있는 데는 하나도 없습니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한 핵연료나 수명이 다한 원자로를 폐기할 때의 고준위방사능 물질들을 보관·처분할 수 있는 곳이 한군데도 없어요. 그러면서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는 거예요. 기가 막힌 일이죠. 단 한군데 지금 핀란드에서 공사를 하는 중입니다. 지하 500미터 깊이의 견고한 암반에 터널을 뚫는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질학적으로 십만년 이상 한번도 움직인 적이 없다는 암반입니다. 그러나 공사를 하고 있는 전문가들에게 그게 장기적으로 과연 안전하겠느냐고 질문을 하면, 대답이 “모른다(We don’t know)”예요. 〈영원한 봉인〉이라고 다큐멘터리 영화에 그런 장면이 나온답니다. 한국이나 일본의 전문가라면 얼마든지 거짓말을 하겠지만, 그곳은 핀란드입니다. 그러니까 정직하게 답하는지 모르죠.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중저준위 방사성물질 처분 때문에 지금 경주에 건설 중인 방폐장 공사장에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파보니까 그 자리가 수맥이에요. 수맥의 힘이 얼마나 센데 어떻게 콘크리트가 견뎌내겠습니까? 콘크리트는 인간이 사용한 지 100년도 안되고, 아무리 견고하게 짓는다 해도 수명이 천년만년까지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수십만년 동안을 보관해야 하는 핵쓰레기를 콘크리트로, 그것도 수맥이 통과하는 자리에 공사를 강행하고 있어요. 이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이것은 과욕도 아니고, 완전히 미친 짓입니다. 이 미친 짓을 국가적 사업으로, 세금을 가지고 하고 있습니다. 4대강 공사와 똑같은 짓이죠.
‘복지국가’가 아니라 ‘복지사회’를 요즘 한국사회의 주요 화두가 복지국가이지만, 저는 복지국가가 아니라 복지사회를 건설하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복지국가와 복지사회는 다른 개념이죠. 국가와 사회가 기본적으로 다른 것이니까요. 복지국가는 국가적 시스템으로 시민들을 보호하겠다는 것이고, 복지사회는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들 자신이 자주적으로 상호 연대하고 협동함으로써 만들 수 있는 사회입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당장에 실현 가능할 뿐 아니라, 확실한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틀입니다. 여러분, 지금 세계 일류의 복지국가라고 하는 덴마크에서는 당연히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고 다들 생각하시겠지요? 놀랍게도 덴마크 학교에서는 무상급식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물론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무상급식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아무리 이 사회가 고약한 사회라 해도 밥을 굶거나 눈칫밥을 먹는 아이들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이 사회가 인간사회로서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입니다. 그러나 덴마크의 경우를 보면, 사회적 성격이나 질적 수준에 따라 무상급식 그 자체가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지금 스웨덴이나 덴마크에서도 옛날처럼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고 실업자도 늘고 해서 국가적 복지시스템이 흔들릴 조짐이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기왕의 복지혜택이 축소되거나 상당히 수정되고 있다고 하죠. 그러나 저는 이 북유럽 국가들에서 국가적 복지시스템이 설령 무너진다 하더라도 별 지장이 없을 것 같아요. 특히 덴마크가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덴마크는 국가적 복지시스템 이전에 지역적 차원에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해온 협동적 생활구조의 전통이 매우 뿌리가 깊어요. 무상급식이 문제가 아닙니다. 덴마크는 개인들의 자립적 역량과 자기책임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덴마크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스스로 도시락을 싸야 합니다. 부모가 싸주지 않아요. 6살짜리 아이가 자기가 먹을 샌드위치 도시락을 직접 준비합니다. 아이들을 굉장히 강인하게 키우는 나라예요. 혹시 늦잠 자거나 게으름 피우다가 도시락 못 싸고 학교에 가더라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도와주지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철저히 강조하는 게 자립과 자기책임, 그리고 협동정신이에요. 심지어 덴마크의 어떤 지방에서는 마약중독자들에게 공공기관에서 공짜로 주는 마약을 사용하든지, 치료소에 들어가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답니다. 공짜로 주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값비싼 마약 때문에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철저한 자기책임이 강조되는 사회입니다. 탁아소나 유치원에서 어린아이들 낮잠을 재우잖아요. 기온이 섭씨 영하 15도로 내려가지 않으면 아이들을 옥외에서 재운다고 합니다. 물론 옷을 두툼하게 입혀서요. 지독한 사회예요. 그냥 세계 제일의 복지국가라고 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피상적인 이미지와 많이 다른 게 느껴지지 않아요? 튼튼한 사회란 튼튼한 개인들이 이룩하는 사회라는 철학이 여기에 엿보입니다. 아이들을 건강하게, 강인한 인간으로 키워야 한다는 거죠. 요즘의 한국 부모들이라면 자기 아이를 추운 바깥에서 재우는 것을 용납할 수 있겠어요? 사실 지금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을 어떻게 키울지 아무 생각이 없잖아요. 지금과 같은 한국식 양육이나 교육방식을 통해서는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간밖에 나올 수가 없어요. 덴마크사회는 아이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부터 우리사회와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복지국가를 운위하기 전에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예요. 그런데 150년 전에 덴마크는 굉장히 비참한 나라였습니다. 독일과의 전쟁에 패해서 국토의 절반, 그것도 가장 비옥한 토지를 빼앗겼습니다. 남은 국토는 유틀란트반도와 몇몇 섬밖에 없었는데, 대부분 황무지였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덴마크인들은 희망을 찾아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의 하나는 그보다 좀 전에 프랑스혁명의 여파로 유럽의 봉건체제가 흔들리던 와중에서 덴마크의 왕이 현명한 결단을 내려 농노들을 해방시켰던 일입니다. 당시 덴마크의 절대 다수 인민이 이렇게 해서 독립 소농의 지위를 획득했던 것이죠. 그럼으로써 피를 흘리는 혁명을 거치지 않고, 계몽군주의 영단에 의해서 덴마크는 근대국가로 성장할 준비를 했던 셈입니다. 만일 대다수 인민이 농노신분으로 전쟁을 하고, 국토의 절반을 잃는 비참한 상황에 빠졌다면 덴마크는 회복할 수 없는 절망적인 사회가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각자가 소규모지만 자기 토지 소유가 가능한 독립 농민들이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땅을 살리거나 확보하기 위해서도 나라의 재건에 헌신했던 거죠. 예나 제나 농민에게는 자기 땅보다 더 소중한 게 없습니다. 게다가 전쟁터에서 돌아온 제대군인 중에 달가스라는 열렬한 애국자가 있었어요. 그는 덴마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안으로 유틀란트반도의 광범한 녹화를 제창했습니다. 달가스는 수십년 동안 죽을 때까지 나무심기에 온몸을 바쳤습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기후풍토에 맞는 수종을 찾아내는 데에 결국 성공을 했고, 그 결과 유틀란트반도 전역이 푸른 숲과 목장과 기름진 밭으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의 인민이 자유인으로 존재하면, 그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도 극복해낼 수 있다는 전형적인 예를 덴마크는 보여준 것이죠. 인민이 자유인으로 산다는 게 이렇게 중요합니다. 더욱이 그 무렵 덴마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상가이자 교육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출현합니다. 그룬트비라고 아마 여러분도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룬트비는 원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교육을 받고, 영국유학까지 갔다 온 사람으로,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종래 덴마크 교회에서 성직자들이 설교를 라틴어로 하던 관습을 깨고 농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토박이 덴마크말로 하기 시작했고, 교육도 철저히 평민교육을 중시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이 성경의 문자 속에 있는 게 아니라 교회에 예배를 보러 오는 가난한 민중들 속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연히 기성 제도권 교단과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키고, 대결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렇게 하면서 그룬트비가 옹호하고자 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다수 민중의 이익이었던 거죠. 그는 덴마크어로 직접 시를 쓰고, 찬송가를 짓고, 스칸디나비아의 옛 전설, 민담, 신화를 열심히 수집하고, 그것을 책으로 엮어내 보급했습니다. 우리는 덴마크라고 하면 대개 안데르센이나 키에르케고르를 떠올리지만, 지금도 덴마크 사람들은 그룬트비를 제일 중요한 역사적 인물로 기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 그룬트비의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국민고등학교’라는 농민교육기관의 설립입니다. 이 학교는 시험도, 자격증도 없고, 다만 배우고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몇개월이든 모여서 생활을 같이 하면서 농사에 관한 실습 이외에 철학과 문학과 역사를 배우는 선구적인 성인 자유학교였습니다. 이 ‘국민고등학교’ 운동은 많은 호응을 얻어서 덴마크 전역으로 확대되었는데, 여러 면에서 덴마크 복지사회의 기초를 다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국민고등학교’를 통해서 덴마크 사람들은 왜 사느냐,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창조적인 실험을 했습니다. 덴마크가 지금 풍력발전으로 유명하잖아요. 풍력발전을 처음으로 생각해낸 곳도 바로 ‘국민고등학교’였어요. 오래전에 벌써 에너지문제를 생각한 거예요. 1970년대 초 오일쇼크 이후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국민고등학교’에 모여서 생활과 학습을 같이 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전통적인 풍차를 돌려 전기를 생산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온 거죠. 모든 것을 자기들 힘으로 해보겠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귀리와 보리, 잡곡을 심고, 돼지를 키우며 자급하며 살았습니다. 열심히 농사를 짓다 보니 잉여가 생겨나고, 그것을 다른 유럽국가에 수출을 했습니다. 하지만 신대륙에서 값싼 곡물이 유럽으로 쏟아지니까 경쟁상대가 안돼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국민고등학교’에 모여서 같이 고민을 하고 의논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해답이 협동조합입니다. 소규모 경영으로는 국제 농산물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을 재빨리 이해한 농민들이 각자의 독립성은 철저히 유지하면서 서로 연합하여 협동조합을 만들어 공동생산·공동구매 활동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생활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한 거죠. 그래서 처음에 돼지사육 농민들부터 시작해서 전국 곳곳에 축산협동조합 운동이 일어나고, 점차로 다양한 협동조합이 생겨났습니다. 사실 저도 어렸을 적부터 덴마크라고 하면 협동조합의 나라라고 익히 듣고 자랐어요. 협동조합이란 소규모 독립 생산자들의 자주적 연합조직입니다. 그 조직에는 상전과 하인이 따로 있을 수 없고, 참가자 누구나 대등한 자격으로 민주적 권리와 책임을 나누어 가지는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연합의 정신이 중요한 거죠.
사회주의는 ‘래디컬 데모크라시’이다 (이하 전문은 서점에서 판매 중인 《녹색평론》119호(2011년 7-8월)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김종철 ― 본지 발행인. 이 강연기록은 지난 6월 2일 ‘평화나눔아카데미’에서 했던 얘기를 정리, 보완한 것이다.
(참고 녹색평론사 홈페이지에서 옮겨왔습니다 |
첫댓글 너무 긴 글이지만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메세지를 읽을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 옮겨봅니다.
이성적 사고, 직접민주주의, 자유인, 래디컬 데모크라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