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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절 개화정책의 추진과 갈등
Ⅰ. 통상개화론의 대두
1. 개화사상의 형성
가. 북학론자 박제가(朴齊家) : 청, 일과 서양과도 통상의 길을 터야 국가가 부강할 것이라고 주장
나. 이규경(李圭景, 五洲衍文長箋散稿) : 순조 32년 1832년 영국 상선 l832년의 영국 상선 Lord Amherst호가 통상을 요구했을 때 통상 허락 주장
다. 최한기(崔漢綺) : 해국도지(海國圖志)와 영환지략(瀛環志略) 등을 읽고 여러나라에 관한 지식을 얻어 지구전요(地球典要)을 저술해서 소개하고 문호개방의 필요성 주장.
인정(人政, 철종 11년 1860) :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인재를 옳게 등용해야 하며 士農工商 구별없이 인재를 뽑아 교육하고 역사는 지보한다는 생각을 갖고 쇄국정책을 버리고 문호를 개방하여 세계 여러나라와 함께 호흡할 것을 주장
라. 통상론자 :박규수(朴珪壽), 오경석(吳慶錫), 유흥기(劉鴻基, 大致)
박규수(朴珪壽) A: 박지원의 송자로서 조부 사상을 이어받고 서양의 신문물에 대한 서적을 읽어 문호를 개방하여 서방문화를 수입할 것을 주장
오경석(吳慶錫) : 중인 출신의 역관으로서 청에 왕래하면서 해국도지, 영환지략 등의 책을 구입하여 널리 권장하였다.
유흥기(劉鴻基, 大致) : 중인 출신 의관, 불교신자으로서 오경석으로부터 서양문물에 관한 책을 얻어 읽고 통상과 개화를 주장하였다.
해국도지(海國圖志)
청나라 위원이 쓴 <해국도지>는 세계 각국의 지세・산업・인구・정치・종교 등 다방면에 걸쳐 서술한 것이다. 대원군 집권기에 유입되어 지식인들에게 널리 읽혔다.
영환지략(瀛環志略)
청나라 관리 서계여(徐繼畬)가 서양인과 사귀면서 지도를 수집하여 그것을 기초로 저술한 것이다.
박물신편(博物新編)
영국인 의사 홉슨(Benjamin Hobson 합신)이 저술한 과학서인데 1854년 상해 흑해서관에서 한문판으로 간행된 것이다. 1책 3집으로 되어있고 제1집은 지기론 • 열론 • 수질론 • 광론 • 전기론 제2집은 천체 • 지구 등 제3집은 조수약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신에 대한 설명은 제1집 전기론 가운데 기술되어 있다.
양수기제조법(揚水機製造法)
중서견문록(中西見聞錄)
2. 개화파의 형성
오경석, 유흥기 등이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유길준, 김유식 등을 이끌고 지도하며 정치세력으로 형성
3. 개화파의 활동
가. 정부의 개화정책뒷받침
나. 정부기구 개편과 수신사 조사시찰단 파견에 참여
4.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화파
가. 1880년대 개화 방법과 속도・외교정책을 둘러싼 입장 차이로 분화
나.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화파로 분화
온건개화당(사대당, 수구당) | 급진개화파(개화당, 독립당) | |
대표인물 | 김홍집(金弘集), 김윤식(金允植), 어윤중(魚允中), 민영익(閔泳翊) | 김옥균(金玉均), 박영효(朴泳孝), 홍영식(洪英植), 서광범(徐光範), 유홍기(劉鴻基), 이동인(李東仁, 승려), 변수(邊樹, 邊燧, 중인), 류상오(柳相五, 무인) 부자, 이창규(李昌奎, 상인) |
외교정책 | 민씨정권과 결탁, 친청사대정책 지지 | 청의 내정간섭과 정부의 친정사대정책 비판 |
개혁방안 |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에 바탕을 둔 청의 원조하에 점진적 개혁 추구: 유교문화를 유지하면서 서양의 기술도입 전제군주제 유지 | 문명개화론에 바탕을 둑소 급진적 개혁 추구: 정치 사회제도 개혁 추진 군주권 제한, 민권 시장 : 입헌군주주제 추구 |
개혁모델 | 청의 양무운동(1862~1874): 중학위체(中學爲體), 서학위용(西學爲用)을 내걸은 중체서용론은 양무운동을 주도하는 이념적 기반 | 1868년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 |
변수(邊樹, 邊燧, 중인, 1861~1891) 한국인 최초 미국 대학(Maryland 농과대학, 현Maryland대) 졸업생
Ⅱ. 개항
1. 운요호(雲揚號) 사건
가. 정한론의 대두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후 조선과의 전통적인 외교관계를 재설정하고자 했으며 조선측이 일본측의 요구를 무시하자 일본내에서 메이지유산에 대한 불만을 무마하고자 정한론(征韓論, 征朝論)이 대두되었다. 정한론에 대한 찬성파의 중심인물은 일본의 정치가이자 사무라이였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1827~77)이고 반대파의 중심인물은 오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1830~78)였다.
나. 운요호(雲揚號) 사건(1875년)
운요호 사건은 일본군함 운요호가 강화 앞바다에 나타나자 초지진 수비대가 발포한 사건으로 일본은 흥선대원군이 하야하자 조선을 강제 개항하고자 강화도에 고종 12년 1875년 운요호를 불법으로 접근시켜 조선측의 정당방위적인 포격을 유도하여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조선정부를 위협하여 협상을 요구하여 왔다.
2.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병자수호조약(丙子修護條約),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
가. 과정
일본은 운요호사건을 계기로 구로다(黑田淸隆)를 특명전권대사로 임명하여 군함 3척, 운송선 4척, 약 800명의 육군을 거느리고 강화 갑곶에 상륙하여 협상을 강요하였고 역관 오경석이 박규수를 움직여 통상수교로 방침을 정하고 신헌(申櫶)을 파견하여 고종 13년 1876년 2월 26일에 12조의 조일수호조규(병자수호조약, 강화도조약)가 체결되었다.
나. 내용
⑴ 조선국은 자주국가이며 일본과의 평등지권을 보유한다.
⑵ 조선국 부산 초량진에는 일본 공관이 있어 오랫동안 양국 인민의 통상 구역이 되어 있다. 또한, 조선국 정부는 2개 항구를 열어 일본국 인민의 왕래 통상함을 들어 주어야 한다.
경기, 충청, 전라, 경상, 함경 5도의 연해 중 통상에 편리한 항구 2개처를 택하여 20개월 이내에 개항한다.(인천, 원산)
⑶ 조선국 연해의 도서 암초는 종전에 조사를 거치지 않아 극히 위험함에 일본국 항해자로 하여금 때에 따라 해안을 측량하도록 허용하고 그 곳의 깊고 얕음을 살펴 도지를 편제하게 하여 양국 선객에게 위험을 피하고 안전을 도모하게 한다.
⑷ 일본국 사람들이 조선국의 지정한 항구에서 죄를 저질렀을 경우 만일 조선과 관계되면 모두 일본국에 돌려보내어 조사 판결하게 하며 조선 사람이 죄를 저질렀을 경우 일본과 관계되면 모두 조선 관청에 넘겨서 조사 판결하게 하되 각기 자기 나라의 법조문에 근거하며 조금이라도 감싸주거나 비호함이 없이 되도록 공평하고 정당하게 처리한다.
다. 의의
⑴ 최초의 근대적 조약
⑵ 불평등조약
3. 각국과의 불평등조약 체결
나라 | 연도 | 조약명 |
일본 | 1876 | 조일수호조규 |
미국 | 1882 | 조미수호통상조약 |
중국 | 1882 | 조청상민수율통상장정 |
영국 | 1883 | 조영통상조약 |
독일 | 1883 | 조독통상조약 |
Italy | 1884 | 조이통상조약 |
Russia | 1884, 1888 | 조러통상조약, 조러육로통상장정 |
France | 1886 | 조프통상조약 |
Austria | 1892 | 조오통상조약 |
Ⅲ. 개화정책의 추진
1. 성격
고종 비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하는 정보주도의 개혁이 이루어지고 동도서기(東道西器, 한혼서재(韓魂西才))를 바탕으로 추진했다.
개혁바탕 | 나라 | 의미 |
동도서기(東道西器, 한혼서재(韓魂西才)) | 조선 | 고유의 제도와 사상인 도를 지키되 근대 서구의 기술인 기를 받아들이는 일. 동양의 철학과 가치는 지키면서 서양의 기술과 제도를 받아들이자는 19세기 말 개화파들이 주장 |
중체서용(中體西用) | 청 | 중국의 학문을 본체로 삼고 , 서양의 학문은 실용적인 측면에서 활용한다. 양무운동 |
화혼양재(和魂洋才) | 일본 | 일본의 정신을 바탕으로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인다 |
2. 내용
김기수(金綺秀) | 고종 13년 1876년. 1차 수신사로 일본 파견. 견문을 적은 일동기유(日東紀遊)를 고종에게 바침 |
김홍집(金弘集) | 고종 17년 1880년 2차 수신사. 청국 참참관 황준헌(黃遵憲)으로부터 조선책략(朝鮮策略)과 이언(易言)을 얻어 가지고 귀곡 |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 | 고종 18년 1881년. 조준영・박정양・어윤중・홍영식 등 조사시찰단(紳士遊覽團) 일본에 파견하여 70일간 시찰 |
영선사(領選使) | 고종 18년 1881년. 청의 권고에 따라 김윤식(金允植)을 영선사로 삼아 청의 천진기지국에 가서 신식무기 제조법과 군사관계 기초고학 수학 |
보빙사(報聘使) | 고종 20년.1883년. 민영익 등이 미국 워싱톤, 뉴욕, 보스턴 등지를 미국연방정부와 각국 공사관 및 선진문물을 시찰하고 유길준은 남아서 최초의 유학생이 되었다. |
통리기무아문 | 고종 18년 1881년 |
3. 조직개편
고종 18년 1881년 개화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행정기구로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을 설치하고 그 밑에 12사(司) (사대(事大), 교린(交隣), 군무(軍務), 변정(邊政), 통상(通商), 군물(軍物), 기계(機械), 선함(船艦), 기연(譏沿, 조선의 해안과 항구를 드나드는 배를 검색하고 감시하는 일을 전담), 어학(語學), 전선(典選, 관리의 인선과 관청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는 일), 이용(理用, 나라의 재화 및 재물 그리고 재정 관리를 전담)]를 두고 종래 5군영을 폐지・축소하여 무위영(武衛營)과 장위영(壯衛營)의 양영(兩營)으로 하고 그 장을 대장(大將)으로 하고 신식군대인 별기군(別技軍)을 설치하고 교관으로 호리모토 레이조(堀本禮造)를 임명하고 양반 자제 중 빼어난 자 100명을 선발해 사관생도(士官生徒)라고 하여 신식무예를 배우게 하였다.
・사대사(事大司) 중국 관계의 문서, 사신왕래와 외교
・교린사(交隣司) 일본 및 기타 각국 관계의 문서, 사신 왕래와 외교
・군무사(軍務司) 국민의 군사 사무
・변정사(邊政司) 국경의 사무, 인근 국가의 동정, 정탐
・군물사(軍物司) 병기 제조의 사무
・기계사(機械司) 기계 제조의 사무
・선함사(船艦司) 선박 제조의 사무
・기연사(譏沿司) 연안 포구를 왕래하는 선박의 검사
・어학사(語學司) 각국의 언어의 번역
・전선사(典選司) 관리 선발과 관용품 조달
・이용사(理用司) 재정 사무
황준헌(黃遵憲) : 청의 황준헌이 지은 책. 나라가 부강하려면 서양의 제도와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것과 러시아의 남침을 막으려면 친중국(親中國)・결일본(結日本)・연미방(聯美邦)을 하여 자강해야 한다고 주장
이언(易言) : 청나라 정관응(鄭觀應)이 지은 책. 국가가 부강하려면 기술만 중요해서는 안되며 기굴 뒤에 있는 정치제도 등도 받아 들여야 한다고 주장
Ⅳ. 위정척사운동
1. 배경
서양열강의 통상요구와 일본의 개항 및 정부의 개화정책 추진 등
2. 의미
정학(正學, 性理學)을 지키고 사학(邪學, 성리학 이외의 모든 종교와 사상)과 이단을 배격하는 것. 바른 것(전통적인 성리학적 사회 질서)을 지키고(衛正) 사악한 것(서양 문물)을 물리치자(斥邪)는 뜻
3. 성격
가. 존왕양이론(尊王洋夷論) : 중국 중심의 성리학적 세계관 고수
나. 소중화(小中華) 의식: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 강조
다. 반외세(反外勢) : 일본과 서양문화와 침략에 대한 반발
4. 주도세력
기정진, 이항로, 류인석, 최익현등 보수유생층
5. 전개과정
시기 | 중심인물 | 내용 |
1860년대 통상반대운동 | 기정진(奇正鎭) | 이일원론(理一元論). 丙寅疏 (1866년 노사선생 69세시) |
이항로(李恒老), | 척화주전론. 고종 3년 1866년 同副承旨를 사직하고 겸하여 소회(所懷)를 진언한 소(疏)(辭同副承旨兼陳所懷疏), 고종 4년 1867년 화서아언(華西雅言) | |
1870년대 개항반대운동 | 최익현(崔益鉉) | 왜양일체론(倭洋一體論) : 고종 13년 1876년 1.월 23일 5불가소(五不可疏, 持斧伏闕斥和議疏), |
개항불가론(開港不可論) | ||
류인석(柳麟錫) | ||
1880년대 개화반대운동 | 이만손(李萬孫) | 조선책략(朝鮮策略)의 유포에 반발하여 개화반대 상소운동.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 1881년 2월 |
홍재학(洪在鶴) | 개항반대운동(辛巳斥邪疏, 萬言斥邪疏) 1881년 7월 | |
1890년대 항일의병운동 | 류인석(柳麟錫) 이소응(李昭應) | 항일의병운동으로 계승 |
곽기락 상소문, 윤석학 상소문, 기우만, 송병선, 김평묵, 류중교, 이진상 등
5. 의의, 영향과 한계
가. 의의
서양열강과 일본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고 우리의 경제와 전통사상을 지키려는 반침략・반외세의 자주국권수호운동
나. 영향
1890년대 의병전쟁으로 계승
다. 한계
조선왕조의 봉건적 전통체제 및 성리학적 신분질서를 유지하려 함
개화정책에 장애가 되고 근대화 방법을 제시하지 못함
저 교활한 오랑캐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우리와의 교역을 조리고 있습니다. 저들이 험악한 골짜기와 구렁텅이를 싫어하지 않음은 우리나라를 속국으로 만들려는 것이고, 우리 강산을 자신들의 재물로 만들려는 것이며, 우리 백성을 짐승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기정진(奇正鎭)의 노사집(蘆沙集) 중 丙寅疏(1866년)
대원군(大院君)
조선시대에 왕이 후사(後嗣) 없이 죽어 종친 가운데서 왕위를 계승하게 되는 경우, 새로운 왕의 생부(生父)를 일컫는 말.
순서 | 대원군 | 내용 |
1 |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이초(李苕 1530~1559) | 11대 중종의 9자(① 仁宗 ② 明宗 ③ 福成君 ④ 海安君 ⑤ 錦原君 ⑥ 永陽君 ⑦ 德陽君 )⑧ 鳳城君 ⑨ 덕흥대원군). 14대 선조(宣祖)의 아버지 |
2 | 정원대원군(定遠大院君): 원종(元宗) 이부(李琈) | 14대 선조의 3자(① 臨海君 ② 光海君 ③ 정원대원군 ④ 順和君 ⑤ 義昌君 ⑥ 永昌大君⑦) 6대 인조(仁祖)의 아버지 |
3 |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 이광(李壙) | 장헌세자(莊獻世子: 莊祖)의 2자(① 正祖 ② 은언군(恩彦君) ③恩信君)의 아들. 25대 철종(哲宗)의 아버지 |
4 |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 李昰應) | 장헌세자(莊獻世子: 莊祖)의 3자(① 正祖 ② 은언군(恩彦君) ③恩信君)의 손자. 南延君의 아들 26대 고종(高宗)의 아버지. 유일한 살아있는 대원군 |
대원군의 집권과 김홍집의 내각
시기 | 대원군 집권 | 시기 | 김홍집 | ||
1차 | 1863~1873년 | ||||
2차 | 1882년 임오군란 뒤. 양영(무위영, 장어영)・별기군, 통리기무아문 폐지. 5군영 부활(7.24(음6.10)~8.25(음)7.12). 吳長慶이 天津 납치하여 4년간 억류 | ||||
3차 | 1894년 1차 갑오개혁때. 섭정. 2차개혁때 | 1차 | 1차김홍집내각(1894.6.25~11.21, 친일내각, 대원군 섭정), 1차 갑오개혁 | ||
2차 | 2차김홍집내각(1894.11.21~1895.4, 친일내각, 총리대신 김홍집, 내무대신 박영효, 서광법). 2차 갑오개혁 | ||||
3차 | 3차김홍집 내각(1895.4~95.8, 친러내각, 박정양, 이완용, 이윤용 , 윤용선, 이범진등) 삼국간섭후 | ||||
박정양 내각(1895.5.~7) | |||||
3차 | |||||
4차 | 1895년 을미사변때~아관파천시 | 4차 | 4차김홍집 내각(1895.8~96.2. 친일내각) 을미사변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