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부 존재에 공감하는 문학 / 이창훈 (시인)

[박완숙]

주변부 존재에 공감하는 문학

이창훈 (시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면발처럼 꼬여버린 인생이었습니다

스티로폼 용기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나온 내력들이 가늘고 길게 늘어집니다

즉석으로 채용된 직장인만큼

분말스프처럼 짜디짠 월급을 받습니다

비굴함과 떳떳함의 언저리에서

배부른 돼지보다 사람답게 살고 싶었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시키는 모든 일은

삼분 만에 완벽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온몸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상황들이

일상다반사가 되어버린 작업현장

땀방울이 진국처럼 근무복을 흥건히 적십니다

저 멀리서 전철이 달려오고 있습니다

레일 위에 웅크린 자세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는 동안

몇 번의 경적이 울렸으나 들리지 않습니다

위에서 특별한 지시가 없는 이상

어떻게든 작업은 마무리 지어야하겠지요

목숨보다 소중한 게 자동문이니까요

비리로 얼룩진 곳에서 정직한 삶의 대가는

자식 잃은 부모의 서러운 눈물뿐입니다

빛바랜 가방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포장도 뜯지 않은 청춘이 곤한 잠을 청합니다

큰 사발 먹고 큰 일꾼 되려는 사람들이

방금 구의역에 정차한 전철 안에서

세상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습니다

-권수진, ｢큰사발면｣, 󰡔시인정신󰡕 2017년 겨울호>

♯1. 기억하고 계신가요? 2016년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있었던 일을… 메트로 폴리탄의 대도시를 순환해서 끊임없이 돌고 돌아야만 하는 지하철의 한 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혼자 수리하던 어린 청년 노동자를… 9-4번 승강장. ‘믿기지 않겠지만 시키는 모든 일은 / 삼분 만에 완벽하게 처리해야’ 하기에 ‘땀방울이 진국처럼 흥건히 적신’ 근무복을 입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장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들어오는 전동차에 치여 너무 빨리 생을 놓아야만 했던 김군을… 덩그러니 남겨진 그의 갈색 공구가방에서 발견된, 먹지 못한 컵라면을….

분명 세 글자의 이름이 있지만, 지금 여기의 많은 청년 노동자들의 일반 명사로서 ‘김군’이라는 호칭을 쓰겠습니다. ‘김군’, 당시 19세였고 태어난 해가 1997년입니다. 저는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1997년’이라는 해가 갖는 상징성이 엄청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IMF’ 구제금융이 전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그 해 말입니다. 서구가 300년에 이룩한 근대화의 과정을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단 30년 만에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엄청난 땀과 노력으로 이룬 나라. 그 기적의 신화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듯했던 경악의 순간.

그럴듯한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취업은 따라오고 시간이 지나 직장생활을 하며 착실히 일하면 자신의 가족공동체가 깃들 작은 집 한 채, 승용차 하나 정도는 당연히 마련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나라가 바로 그 1997년의 외환위기 이전의 이곳의 풍경이었다면 그 ‘IMF’ 외환위기 이후 이곳은 노동유연성이라는 명목으로 각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마치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사건 아닌 일상이 되어버린 지옥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 일하고 있고 월급을 받고 있는 우리네 평범한 이웃들은 언제 정리해고, 명예퇴직 등의 퇴사 명령을 받을지 몰라 전전긍긍 불안감 속에 항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구요. 저는 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면발처럼 꼬여버린 인생’이라는 시의 구절이 바로 1997년 이후의 상시적인 지금 여기의 일상다반사의 삶의 정의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생존의 밥을 지탱하는 회사는 ‘즉석으로 채용된 직장’으로 변모했고 그것은 늘 즉석에서 해고될 수 있는 불안의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불안의 공간 속에서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분말스프처럼 짜디짠 월급’을 받으며 정규직을 꿈꾸며 하루하루 하루살이처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비굴함과 떳떳함의 언저리에서’ ‘배부른 돼지’는커녕 하냥 허덕이는 결핍의 존재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게 자동문’이어서 ‘몇 번의 경적이 울렸으나’ ‘들리지 않게’ 만든 불안은 과연 무엇이었겠습니까. 최소 2인 이상이 함께 작업해야 하는 장면에서 힘없는 외주(하청) 업체 비정규직 직원인 ‘김군’은… 아니 이 시대의 많은 ‘김군’들은 ‘특별한 지시가 없는 이상’ 위험을 무릅쓰고 ‘어떻게든 작업을 마무리 지으려’ 고장난 스크린도어를 붙잡고 있을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렇게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청춘’들이 ‘곤한 잠’을 제대로 청하지도 못한 채 몸을 맡긴 전철. ‘큰 사발’ ‘큰 일꾼’ 되려는 소망은커녕 그저 제 밥벌이 하나 하면 그만이어도 좋으니… 온전한 정규직 일자리 하나 바라며 ‘방금 정차한 전철 안에서’ 피곤하고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이어폰을 꽂은 스마트폰을 들고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습니다.’

잇몸이 뼈라는 걸

발치하고 나서야 알았다

물렁물렁한 뼈,

몸에 가둔 시간을 다 써버렸다

오십 년째 물러 내린 노동,

아 하고 입을 벌리면

하얀 죽음이 날아간다

무덤을 만들어야 해

두꺼운 관 속에 회칠을 하고

벌레들의 도굴을 막아야 해

또 한 개,

용역이 심어진다

무너지는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실직당한 가장이

하나 둘 떠나간다

-김용권, ｢임플란트｣, 󰡔시인정신󰡕 2017년 겨울호>

♯2. 1980년대가 정치적 파행으로 인해 민주화의 열의가 길거리를 가득 메웠던 불의 시절이었다면 외환위기로 ‘IMF’ 구제금융을 받게된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시기는 한 마디로 엄혹한 경제적 파탄으로 인한 사막의 시대가 아니었을까요? ‘신자유주의’라는 화려한 레토릭의 이름을 내건 깃발을 펄럭이며 펼쳐진 ‘전 세계의 시장화’. 거대한 자본의 시장이 되어 버린 세계 속에서 그 시장의 골목상점쯤으로 변해 버린 국가. 온갖 자유무역협정의 명목으로 자본의 착취가 모든 국가의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메마른 사막의 현실. 단 한 번도 제대로 ‘복지’라는 정의를 구현해 보지 못해 본 이 땅의 경우 그 고통은 더 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1997년 구제금융 이후의 지금 여기는 그 내부에 수많은 갈등과 양극화가 깊게 뿌리내렸다고 생각합니다. 자본가와 노동(근로)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서울 경기와 지방, 대도시와 농촌, 대도시 안에서의 강남과 강북… 전자에게는 더 많은 자본과 힘이, 후자에게는 더 많은 자기연민과 피해의식이 점점 더 깊어져만 갔습니다.

효율성과 무한경쟁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한 자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신자유주의의 시장. 그러면서 노동유연성을 내걸며 해고와 해직을 부드럽고 강력하게 구사하는 자본. ‘잘 살아 보세’ 하며 앞만 보고 단단하게 드러냈던 중년 이후의 ‘이’는 언제든지 손쉽게 고뇌 없이 ‘발치’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수십 년째 ‘물러 내린 노동’으로 ‘몸에 가둔 시간’이 다 소진되면서도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아’ 하고 ‘입을 벌리’고 잠시 누워 있는 짧은 시간이면 금세 뽑혀버릴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지금 여기의 노동자 아니겠습니까. 발치된 자리의 흔적은 하나의 ‘무덤’처럼 느껴지겠지만 ‘두꺼운 관 속에 회칠을 한’ 후 세련된 ‘임플란트’로 상징되는 대체 ‘용역’ 노동자가 언제든지 심어질 수 있는 세계. 한 때 이 세계의 한 부분이자 존재로서의 자존감을 가지고 튼튼한 육체로 노동했던 존재들의 무너짐. ‘무너지는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라고 시인은 묻지만 ‘실직 당한’ 후의 그 길은 처절한 빈곤의 악다구니가 도사린 곳일 확률이 무엇보다 높지 않을까요.

리어카의 무게는 삶의 무게와 닮았다

그녀는 어둠의 중심을 향해 새벽을 연다

도시의 사람들이 물기 없는 얼굴로 문을 열고

바람은 숨을 죽여 그녀를 맞이한다

병든 사내를 뒤로하고

폐지를 찾아 순례길을 걷는 이순이 할머니

이름처럼 순한 눈에 너도바람꽃이 핀다

리어커보다 큰 슬픔,

골목에 누워있는 종이박스는

칼바람에 몸부림치고 있다

리어커에 쌓여가는 가난

거북등 같은 손등에 힘줄이 더해지면

러어커와 하나가 된다

언덕을 오를 때, 언덕을 내려올 때

비탈의 각도를 조절하는 그녀의 뒤꿈치

창백한 다리는 바르르 바르르 떨고

세상의 비탈을 싣고 다니는 그녀,

동네 어귀 미루나무 같은 기였으면

씨름선수 팔뚝이었으면,

어둠에 포박된 그녀가 골목 끝에 매달려 있다

-김혜경, ｢비탈｣, 󰡔시인정신󰡕 2017년 겨울호>

갯비린내 낭자한 방파제 한 구석에

고장 난 바다 하나가 쓰러져 있다.

온갖 풍상에 시달린 삶의 상처인 듯

너덜너덜한 흉터를 훈장처럼 몸에 달고

병든 바다 하나 유기遺棄되어 있다.

그는 지난 태풍 때 해일을 얻어맞고 쓰러져

갑자기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말도 있고

누가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며 고의로

그냥 방치해 버린 것이라는 말도 있고

또 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일확천금을 꿈꾸며

참깨와 금괴를 몰래 싣고 다니다

목덜미가 잡힌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

아무튼 식물인간처럼 폐인이 된 그가

무성한 소문만 펄럭거리며 방치되어 있다.

한때는 신명 나게 구성진 어부의 노래를 싣고

파도를 건반처럼 두드리며 연근해를

잘도 누비고 다니던 바다,

집어등을 켜고 수평선의 해무海霧와

어둠을 잘근잘근 씹으며 작살과

칼코리를 마음껏 휘두르던 바다,

숱한 파도와 싸우다 그도 이제 지치고 병들어

쓴물 단물 다 빨린 항구의 작부처럼

몸을 가누지 못하는 절망의 바다 하나가

방파제 한구석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배기환, ｢폐선｣, 󰡔시인정신󰡕 2018년 봄호>

♯3. 하루가 다르게 무언가가 업데이트 되고 있는 것만 같은 이 현란한 세상에서 ‘리어카’로 상징되는 도구를 끌고 노동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변방의 구석자리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습니다. 메트로 폴리탄의 그 많은 사람들이 ‘물기 없는 얼굴로 문을 열고’ 어딘가로 향하기 훨씬 전에 ‘어둠의 중심을 향해 새벽을 여’는, ‘폐지를 찾아 순례길을 걷는’ ‘이름처럼 순한 눈’망울을 지닌 ‘이순이 할머니’. 그러나 이 이름은 특정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닌, 변변한 일자리조차 얻지 못하고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야만 했던 노년층의 한 상징기호(가치)가 아닐는지요. ‘골목에 누워 있는 종이박스’를 찾아 ‘칼바람에 몸부림치’며 일하고 또 일해도, ‘리어카에 쌓여가는 가난’의 무게를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고 내릴 수밖에 없는 존재의 무거움. 그 오르내림의 순간, 간신히 ‘비탈의 각도를 조절하는 그녀의 뒤꿈치’는 오랜 노동의 숙련에 대한 놀라움이 아니라 그 위태로움의 지경까지 몸이 반응하고 익숙해지도록 만들어야만 했던 빈궁한 현실에 대한 고통의 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병든 사내를 뒤로하고’ 집을 나서야만 하는 그녀의 노동은, 과연 전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한다는 이 나라의 현실인가란 이질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순이 할머니로 표상되는 가난한 노년 곁에 있는 ‘병든 사내’의 모습은 ‘폐선’의 이미지로 형상화되고 있습니다. 농촌이든 어촌이든 산촌이든 아님 도시 외곽의 변두리 마을이든… 그 형태가 무엇이든 자본이 결집된 도심과 대비되는 소외된 공간으로서의 풍경은 결국 ‘빈곤’의 핍진한 이미지로 수렴되기 마련입니다. 경쟁과 효율에서 내몰린 이들이 어떻게든 자신의 집터를 지키려는 처절한 생존의 현장은 중심이 아닌 변두리의 동일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갖 풍상에 시달린’ 채 ‘너덜너덜한 흉터’를 몸에 새긴 채 ‘병든’ 모습의 노년의 사내는 곧 이순이 할머니의 가난이 쌓여가는 리어카에 의존한 채 삐걱거릴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일확천금을 노리다 폐인이 되어버렸다는 ‘무성한 소문’이 무성하지만 결국 ‘태풍’으로 상징되는 험난한 생존노동의 파고에 악전고투하다 망가진 한 늙은 노동자의 내력일 수밖에요. ‘절망의 바다’ 위. 쓸쓸한 방파제 한구석에 떠 있는 ‘방치된 폐선’ 같은 사내를, 위태로운 ‘비탈’에 서서 리어카를 끄는 노년의 여인이 돌보는 삶의 모습은 과연 당연한 비극일 수밖에 없을까요?

우리의 기억 속에 빈곤의 아픔을 가장 뼈아프게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래서 늘 교과서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했던 1920년대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의 시절에서 과연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왔을까를 생각하게 합니다. ‘거북등 같’이 갈라진 ‘손등에 힘줄이 더해지면’ 자신이 사용하는 노동의 도구(리어카)와 혼연일체가 될 정도로 열심히 살아온, 산 그런 존재들에겐 가난으로 인한 ‘리어커보다 큰 슬픔’이 주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살아 온 존재에게는 위태롭게 ‘세상의 비탈을 싣고 다니’는 고통을 더는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미 노쇠화한 자신의 자연스런 육체를 한탄하며 빈궁한 삶의 지속을 위해 힘쓸 수 있는 ‘동네 어귀 미루나무 같은 키였으면’, ‘씨름선수 팔뚝이었으면’ 하는 몸을 꿈꾸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너무도 오랜 세월 땀 흘려 부지런히 살아 온 죄밖에 없는 우리의 미래(들)에게 대접해서는 안 되는 끔직한 현실이자 대접이 아닌가요. ‘어둠에 포박된’, 가난이 등뼈처럼 휜 ‘골목 끝에’ 비탈처럼 ‘매달려 있’는 저 빈곤한 삶의 현실에 대해 과연 우리는 그 어떤 책임도 없는 것일까요.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

붉게붉게 피어나던

내 모습을 기억해주세요

목단강에서 다케코가 되어

밤마다 오카모토 003으로 무장하고

변기처럼 이놈 저놈 걸터앉던 내 모습도

또렷이 기억해주세요

마에다가 태아째 자궁을 들어내던 밤에도

내 씨방은 아물 틈이 없었답니다

우리 어매 어째 볼꼬 하던 내 친구 미쓰코는

바지내린 긴 줄이 끝난 후

끝내 야마모토의 혁대로 목을 맸지요

교성과 함께 천황만세를 외치던 소리에 소스라쳐 놀라며

지금도 난 현재진행형으로 앓고 있어요

그래도

슬픔에 세상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슬픔이 세상을 다시 세우는 주춧돌임을 믿으며

아직도 살고 있어요

제발

나처럼 떨어지는 꽃잎을 잊지 말아주세요

-이령, ｢물봉선화｣, 󰡔시인정신󰡕 2018년 봄호>

♯4. ‘내게 상처를 주지 마세요.’라는 꽃말과 감히 상처라는 말조차 언급하지 못할 정도로 상처에 못 박혀 아픈 할머니의 신산스런 삶이 역설적으로 광기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광기가 전 세계적 전쟁을 몰고 왔던 일제 강점기, 2차 세계대전 무렵, 아시아의 작은 전근대적 국가에서 평범하게 태어난 한 여인의 삶은 왜 저리도 처참하게 부서질 수밖에 없었을까요. ‘붉게 붉게 피어나던’ 꽃다운 소녀는 왜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 고향의 동구가 아니라 거대한 중국대륙의 ‘목단강에서 다케코가’ 되어 ‘밤마다’ 무장한 ‘이놈 저놈’이 생리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걸터앉던 ‘변기’가 되어 버렸을까요. ‘정신대’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젊은 약소국의 여성을 원치 않는 성노동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어 ‘육체’를 허물어뜨리고 결국 정신마저 무너지게 만든 그들은 누구인가요. 성폭력을 저지르며 스스로가 내뱉는 교성의 순간에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는 광기에 휩싸인 군인들을… 저 괴물들은 지금 어딘가에서 자신의 행위를 사유하고 있으며 성찰하고 있을까요. ‘우리 어매 어째 볼꼬 하던’ 또 다른 어린 봉선화 ‘미쓰코’가 스스로 ‘혁대로 목을 맨’ 그 아픈 곳에는 다시 봄 되어 꽃이 피어나긴 났을까요.

팽창할 대로 팽창한 서구 제국이, 자본의 영토를… 자본이 만든 생산물을 팔 시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전쟁이 결국 세계대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 서구의 이미지를 자신의 가면으로 만들어 정확히 얼굴에 쓴 일본이라는 나라가 ‘탈아’, ‘대동아공영’이라는 ‘아시아 근대화론’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벌인 우리 땅, 중국에 대한 침공이 바로 그 두 번째 세계대전의 중심에 놓인 것이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전후의 독일이 보인 진정성 있는 과거사의 성찰의 길이 아닌, 자꾸만 반복되는 진정성 없는 사과를 포장한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호한 전략을 구사해 왔습니다. 자국의 수도인 베를린에 나치만행박물관과 유대인 묘지를 세우고 끊임없이 성찰하는 독일인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면서 자국의 수도인 도쿄 및 각종 도시의 신사에 전범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일본의 현실이 자꾸만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요? 그리고 그런 일본 정부와 정말 자본주의적인 해법으로 몇 백억을 받고 일본군 성범죄에 면죄부를 달아주려 했던 지난 정부의 행태는 얼마나 몰역사적인 만행인가요?

‘오직 절망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아도르노의 말을 저는 이 시를 읽으며 떠올렸습니다. 희망이 아니라 왜 절망인가요? ‘지금도 현재형으로 앓고 있어요’라는 위안부 할머니의 독백을 들으면 함부로 장밋빛 희망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를… ‘슬픔에 세상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 슬픔이 세상을 다시 세우는 주춧돌임을 믿으며 / 아직도 살고 있’다는 피맺힌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면 섣불리 희망을 꿈꾸는 게 얼마나 죄스러운 일인지를…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손가락에 봉선화물을 말없이 들이고 있는 할머니(들)를 떠올려 봅니다. 절망의 바닥에서 절망의 현재형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자만이 죽음이 아닌 생의 의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내게 상처를 주지 마세요.’라는 봉선화의 꽃말처럼,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라는 할머니의 청유형의 부탁은 결국 반세기를 지나 한 세대를 더 넘은 지금 여기의 우리들이 그분들께 더 이상 아픔을 주지 않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응답의 시작일지 모릅니다.

인공지능(AI)의 실용화가 언급될 정도로 기술과학문명이 고도화된 시대. 자꾸만 인간의 몸노동의 영역이 작아지기만 하는 시대.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가 노동의 유연성을 강조하며 손쉬운 해고를 언제든지 부드럽게(?) 집행할 수 있는 시대. 20:80이 아니라 1:99의 빈부사회의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시대. 그러면서도 지금 여기의 일상의 삶을 둘러싼, 끊임없이 새로움과 화려한 상품의 전시장. 광고를 비롯한 온갖 대중매체를 동원하여 ‘소비하라. 그러면 자유로울 것이다.’를 설파하는 세련된 자본주의의 시대. 허한 내면의 결핍을 파고드는 상품 소비의 쾌락적 기쁨.

다수의 대중이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경제적으로 쫓기며 사는 삶을 살면서도, 소비의 쾌락과 편리함에 중독된 이 화려한 시대에 노동의 가치와 존엄에 대해 말하는 것은 대단히 촌스러운 태도와 포즈가 되어 버린 것만 같습니다. 소비회로의 매트릭스 안에서 즐겁고 행복한 기만의 시대에 ‘가난’과 ‘노동’의 문제를 꺼내든 문학은 어떤 주목도 끌지 못하고 변두리의 변두리로 밀려날 운명이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에 문학은 ‘빈곤’과 ‘노동’, ‘역사’의 아픔과 운명을 적극적으로 형상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련되고 화려한 세속도시의 소비문명 속에서 역설적으로 더 깊은 소외를 뼈저리게 느껴야만 하는 주변부 존재의 아픔과 절망을 감각하고 공감하는 문학(시)이 지금 여기에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류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비주류의 아픔과 눈물에 주목하는 슬픔과 고통의 시가 이 땅에는 더 많이 씌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세속적 성공의 길이 아닌 실패의 운명을 안고 가는 것이 시의 행로가 아니었던가요.

2010년 9월 7일 새벽 2시, 충남 당진의 한 철강업체에서 발생한 20대 청년노동자의 추락사 보도 기사에 한 무명의 보통사람이 시 형식의 댓글을 남겼었습니다. 그 시의 제목은 ‘그 쇳물 쓰지 마라’. 그 보통사람의 닉네임은 ‘제페토’. 문학의 감동은 소위 말하는 주류 문단의 이름 있는 시인들의 창작에서가 아니라 이렇게 보통사람의 공감하고 아파하는 감각과 마음의 고통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요.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다,하게.

-제페토, ｢그 쇳물 쓰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