傘壽(산수)의 나이, 나를 안아주는 넉넉한 우산이 되는 시간
사람의 나이 일흔을 ‘古稀(고희)’라 하고, 여든을 ‘傘壽(산수)’, 아흔을 ‘卒壽(졸수)’, 아흔 아홉을 ‘白壽(백수)’, 백세를 ‘上壽(상수)’라 애칭 한다.
‘古稀(고희)’라는 표현을 처음 쓴 사람은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다.
그의 시 ‘曲江二首’ 두 번째 시 구절에서 인용되었다.
酒債尋常行處有(주채심상행처유) : 외상 술값은 가는 곳마다 흔히 있지만,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 사람이 일흔 살 까지 사는 것은 드문 일이라네. 에서 ‘古稀(고희)’가 유래 되었다.
여든 살을 ‘傘壽산수)’라 부르게 됨은 傘(우산 산)의 글자 약자를 ‘仐(산)’으로 쓰는데, 이 글자가 마치 한자 八十을 세로로 겹친 모양처럼 보여 그렇게 부르게 되었으며, 아흔 살을 ‘卒壽(졸수)’라 함은 卒(졸)의 약자를 ‘卆(졸)’로 쓰는데 이 글자도 역시 九와 十이 겹친 모양과 같아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卒’의 글자에는 인생의 큰 단락을 마친다는 의미와 함께 장수를 상징하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 외에도 99세를 ‘白壽(백수)’라 부르는데 百(일백 백)글자에서 ‘一’을 빼면 白(흰백)이 되기에 그렇게 불렀고, 100세는 上壽(상수)라 불렀다. 사람의 수명 중에서 최상이라는 개념이다.
나는 정해년(丁亥年)에 태어났다. 어느덧 나이 '산수(傘壽)'라는 깊고 그윽한 계절에 닿았다. '산수(傘壽)'의 우산 산(傘) 글자 모양새가, 마치 한 생애를 묵묵히 버텨온 사람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지혜의 지붕처럼 보인다. 예전엔 남의 눈을 의식하며 우산을 펴고 접었다면, 이제는 오직 내 마음의 결을 따라 자유로이 우산을 기울여도 좋을 나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가 걸어온 길은 결코 평탄한 꽃길이 아니었다. 1950년대의 굶주린 허기를 구호물자로 달래던 고대인의 삶부터, 정신의 혁명이었던 새마을 운동, 그리고 눈부신 경제 발전의 중추가 되어 올림픽과 월드컵의 환희를 일궈내기까지 우리는 격동하는 역사의 파고를 온몸으로 맞서온 주인공들이다.
그 모진 풍파 속에서 누군가는 운 좋게 넓은 우산을 준비해 비바람을 넉넉히 피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식이라는 나무를 키우느라 정작 자신을 지켜줄 우산 한 장 마련하지 못한 채 늙어버리기도 했다. 번영의 그늘 아래 드리워진 빈곤의 쓸쓸함이 동시대 동료들의 어깨 위에 머물러 있음을 볼 때면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그러나 여든까지 건강하게 걸어왔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이미 충분히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빛나고 있다.
수많은 상처와 기쁨, 상실과 역경을 뚫고 여기까지 도달한 우리의 삶은 이미 그 자체로 증명된 예술이다. 이제는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도 좋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고, 구태여 설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말수는 조금 줄어들고 웃음은 더 깊어지는 나이. 여든은 구속에서 벗어나는 나이가 아니라, 잃어버렸던 나만의 자유를 비로소 회복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산수(傘壽)는 권리이자 동시에 아름다운 책임이다. 내 몸을 귀히 여기고 마음의 리듬을 스스로 고르는 일은,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고결한 품격이다. 의존하기보다 자율적으로, 부탁하기보다 배려하며 살아가는 그 뒷모습이야말로 산수(傘壽)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풍경이다.
이제 80대의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한 환희의 여정으로 채워질 것이다. 성취보다는 의미를, 소유보다는 따뜻한 기억을 가꾸며, 창가에 비치는 햇살 한 줄기와 차 한 잔의 온기에서 깊은 평온을 발견하리라.
그리고 이 넉넉한 우산 속으로 가장 먼저 불러들일 사람은, 긴 세월 묵묵히 곁을 지켜준 나의 반려자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내 곁에 남을 그 사람의 보폭에 모든 기준을 맞추고, 남은 여력으로 가족과 이웃을 보듬고 싶다.
산수(傘壽)는 끝이 아니라, 삶이 비로소 가장 '나'다워지는 계절이다. 우산처럼 넓은 그늘 아래서 세상을 관조하며, 남은 날들을 조용히 축복하고 싶다.
일흔 살에는 여든을 꿈꿨는데, 막상 여든이 되고 보니 아흔의 선배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마도 삶에 대한 여전한 애착 때문이리라. 이 끝없는 인간의 욕망마저도, 생의 마지막까지 뜨겁게 살아가라는 하늘의 귀띔이라 여기며 오늘을 귀하게 안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