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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켄지 자매와 일신기독병원 |
이상규 교수 / 고신대학교 역사신학, 신학박사
당시 전쟁의 상처가 도처에 산재해 있었고, 거리에는 아이들과 보호받지 못한 여인들이 고난의 길을 가고 있을 때였다. 전쟁은 모든 이에게 고통스런 것이지만 특히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가족이나 보호자를 잃은 가난한 여인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1987년 멜보른에서 필자와 만났던 매혜란 의사는 한국에 도착한지 얼마나 안 된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다리 밑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여자를 보았다고 했다. 그 엄동설한에서 변변한 담요 한 장 걸치지 못한 채 아이를 출산하는 것을 보고 심한 충격을 받았는데, 이런 현실적인 요구 앞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부산 동구 좌천동의 일신유치원 한 구석에서 시작한 것이 일신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일신병원의 설립자인 매켄지 자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호주장로교회의 한국선교의 시원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호주 장로교회는 1889년 데이비스를 한국에 파송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데이비스는 한국에 도착하여 꼭 6개월을 지내고 1890년 4월 5일 부산에서 사망하게 된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이 호주장로교회에 선교적 각성을 주었고, 그 결과 호주장로교회는 한국선교를 다시 시작하게 된다. 이런 호주장로교회의 한국선교의 과정에서 1945년 이전까지 78명의 선교사들이 내한하게 되는데 이중 대표적인 한 선교사가 노블 메켄지(James Noble Mackenzie, 1865-1956)였다.
매견시(梅見施)라는 한국이름으로 더 친숙한 메켄지는 1910년 내한한 이래 1939년 한국을 떠나기까지 약 30년 동안 부산의 나환자들을 위해 봉사해 왔다. 그는 선교사에서 은퇴하고 호주로 돌아간 다음 뉴 헤브리디와 한국에서 일한 선교사역, 특히 한국에서 나환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 공로를 인정받아 빅토리아주 장로교 총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했었다. 그가 한국에서 사는 동안의 네 아이를 얻었는데, 첫 아이가 1913년 10월 출생한 헬렌(Helen Pearl Mackenzie), 곧 매혜란이었다. 그가 진주에서 출생했기에 그의 이름에 ‘진주’라는 의미의 펄(Pearl)을 중간이름으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1915년에는 둘째 아이 케더린(Catherine Margaret), 곧 매혜영이 때어났다. 바로 이 둘이 후일 아버지를 이어 한국에 선교사로 나오게 되었고 일신병원을 세워 저들의 생애 가장 소중한 부분을 이 병원에서 의사로 간호사로 그리고 의학교육, 조산원 양성 등을 통해 봉사의 일생을 살게 된 것이다. “날마다 새롭게”(daily new)라는 의미의 일신(日新)은 호주장로교회의 애호하는 이름이었다. 호주장로교회는 1895년 10월에 부산 좌천동에서 일신여학교를 세우게 되는데, 이 때부터 일신은 호주장로교회가 전유하기 시작했다. 당시로 볼 때 한강 이남에서의 최초의 여자학교였던 일신여학교는 여성교육이 요람으로 인식되고 많은 여성인재를 배출했다. 그러나 대동아 전쟁과 함께 선교사들이 강제로 철수하게 되자 이 학교는 구산학원으로 인계되었고 지금의 동래중고등학교로 존속하고 있다.
그런데, 해방 후인 1952년 내한한 매켄지 자매는 이 일신학교가 시작되었던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일신”이라는 이름의 산부인과 병원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런 연유로 일신이라는 이름은 호주장로교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물론 1977 호주에서 교회 연합운동이 이루어져 호주장로교회와 감리교회, 그리고 회중교회가 하나의 교단으로 통합될 때, 호주장로교회는 약 75%가 연합에 찬성하였다. 매켄지 자매는 이때 장로교를 떠나 연합교단에 동참함으로서 일신병원은 1977년 이후부터는 호주연합 교단과 협력하게 된다. 1952년 9월에 설립된 이 병원은 50년이 지난 지금은 부산에서도 유수한 종합병원으로 발전하였다. 오늘이 있기까지는 설립자인 매혜란, 매혜영을 비롯하여 제2대 의료진으로 한국에 파송되어 일신병원에서 1964년에서 1995년까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일한 바바라 마틴(Barbara Martin)을 비롯한 선교사들, 그리고 초기부터 일해 온 한국인 의료진과 동역자들, 그 들의 수고와 봉사가 어우러져 오늘의 병원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어거스틴이 말했지만 유한자 인간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헤아릴 수 없다 (finitum non est capax infiniti).
<자료출처: 교회와 신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