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눈으로 보기만 한다면, 모든 사물은 영혼의 새로운 빗장을 풀어준다(청소년을 위한 발도르프 학교의 문학수업, 2016, 48)."
현실 삶을 살아가면서 사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영혼이다. 영혼이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는 있으나, 어디 있는지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올바른 눈으로 보기만 한다면, 모든 사물은 영혼의 새로운 빗장을 풀어준다'. 이런 문장을 보면 더 답답하다. 찾고 싶은데, 간절하게 찾아서 궁금한 것 여러가지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질문은 영혼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이다. 영혼은 가시적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영혼이 어디에 있느냐하고 묻는다면 정신세계에 존재한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조야하게 정신세계에서는, 인간이 육체를 벗으므로 영혼이 드러날 것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실 삶에서 어떻게 영혼을 찾는가? 영혼은 육체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낸다. 영혼이 활동을 하면 그 활동이 육체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육체를 통해서 드러나는 영혼의 활동을 보고 '아! 영혼이구나'하고 알아차려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뭔가- 생각을 한다. 그때 영혼이 생각하는구나하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영혼이 하는 활동은 느끼고(감각혼), 생각하고(오성혼), 그리고 대상에 대한 진리(의식혼) 파악이다. 이런 영혼의 활동은 현실에서 살아가는 모든 활동이다. 요컨대 현실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을 영혼이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현실 삶에서- 영혼이 자신의 역할을 잘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영혼의 활동이 다른 사람도 같을 것이므로, 다른 사람의 행동(언어 등등)을 보고 그 사람의 영혼을 짐작할 수도 있다.
여담으로 필자가 참여하는 마을 오케스트라에서 발표회를 하였다. 그 중 '플라시도 도밍고'가 부른 '영원한 사랑'곡 연주가 유튜브에 올라갔다(진접문화의 집, 성장음악회). 필자는 리코더를 불었는데 리코더 소리가 니쁘지 않아서 나름 좋아했는데, 카라얀이 안네소피무터(독일 바이올린 연주자, 20대 인듯)와 협연한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콘체르트를 들어보니 감히 비교 불가다. 곡 해석은 차치한다(필자가 전문 연주자가 아니므로).
안네소피무터의 바이올린 소리는 맑고 밝으면서도 섬세하다. 음의 어울림이 한치의 흔들림이 없다. 마치 음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듯 듣는 사람의 마음의 현을 울린다. 20대인 듯한데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연주를 할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아! 이 연주는 안네소피무터의 영혼이 연주한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 영혼이 원래 있는 곳은 우주이다. 영혼이 고향에서 자유로이 즐겨 노닌다. 마치 이 바이올린 소리는 영혼이 우주에 까지 닿아야 내는 소리인 듯하다. 지구 음악의 고향은 우주의 천체음악이다. 지구 악보를 보고 우주 천체 음악을 표현해야 하니, 연주자의 영혼이 우주에 닿아야 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연습만 가지고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통상 소질이라고 하겠지만, 자신의 영혼이 우주에 까지 닿을려면 연습만으로는 어려울 듯하다.
반면 필자의 리코더 소리는 경직되어 자유롭지 못하다. 섬세하게 자유로이 노닐어야 하는데 딱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역시 필자의 영혼이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보고 영혼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면, 자신의 영혼의 모습도 짐작할 수가 있다. 그 원인을 찾아서 영혼을 아름답게(?) 만들수가 있는 것이다. 통상 이것을 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안네소피무터의 바이올린 연주가 나의 영혼의 빗장을 푸는데 도음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것을 파악해야 발전이 일어난다.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내 음악이 좀더 깊어지기를 원한다'라고 말한 것에 이런 내용이 잠재되어있다. 자신의 영혼이 어떤 상태인지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한 까닭이다. 자신의 모든 행동, 생각, 언어가 모두 자신의 영혼의 모습이므로 늘 귀를 기울여서 자신의 영혼의 모습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그나마 지금의 삶에서 조금이라도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보이지 않는 것, 그래서 누구는 간과하고 누구는 무시하고 누구는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자신의 영혼이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이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나아가고 싶으면 자신의 영혼을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순간적으로 불쑥 화가 올라온다면, 영혼에 그 업(습관)이 저장되어있으므로 화를 낸 이후에라도 반드시 화를 낸 사실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는 다른 사람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문제이므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통상 우리는 자신에 대한 문제보다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더 많다. 그래서는 자신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하다가도 소질이 없나보다 하고 고민을 하는데, 소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자신의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영혼이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하는데 못하는 것이다. 영혼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내'가 해야 한다. 이와 같이 영혼의 활동을 보고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해주어야 영혼도 조금씩 차차 받아들인다.
다음의 질문, '올바른 눈으로 보기만 한다면, 모든 사물은 영혼의 새로운 빗장을 풀어준다'. 사실 이 말은 모든 곳(책 등등)에서 언급된다. 달리 표현하면, 물질은 정신이 표현되어 드러난 실체이다. 모든 대상(물질)에 정신이 내재하기 때문에 물질을 보고 정신을 찾을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정신을 찾는 존재가 영혼인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찾을 것인가'인데,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영혼에 대해서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 언어, 습관, 태도 등에서 영혼의 모습을 찾는 것이다.
여담으로 상 속에 자아가 살아간다는 의미를 말하면, 자아가 꿈속에서 살아간다고 표현할 수가 있다. 자아가 꿈속에서 살아가므로 본질자아는 어떻게 할 도리, 방법이 없다. 이것을 알아차리는 일이 가장 어렵다. 예컨대 그 자리에서 뱅뱅 맴을 도는 그런 상황이다. 그래서 방법이 없으므로 고난을 주어서 정신의 눈을 뜨게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제 곧 죽는다는 시한부 생명 진단을 받았다면, 처음에는 놀라고 당황하지만, 차차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진정한 가치는 정신에 있음을 깨닫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되지 않고, 우리는 삶을 통해서 깨달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지금 정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정신을 이해할 날이 온다는 것이다. 나아가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은 모두 이런 정신을 표현하고자 함이고, 정신에 대해서 이해한 사람들이 정신을 전달하고자 만든 것이다.
K 문화(굉장히 많다)가 전 세계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왜 그렇고 무엇이 호평을 받는가 생각해보면은 '정신'이 K에 내재되어있기 때문이다. 즉 K는 우리 민족의 정신이다. 우리 민족의 정신이 원래 내재되어 있는데, 이 정신이 디지털을 타고 전 세계에 퍼질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디지털시대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전 세계에 퍼지지도 못했고 당연히 호평을 받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요컨대 우리 민족의 우수한 정신이 시대를 만나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k 정신이 무엇인가? K 정신은 우리 민족의 정신으로 정신의 본질, 그 씨앗을 우리 민족이 가졌다. 예를 들어 식물을 보면은 식물의 본질, 정신을 보는 눈(힘)이 있는 것이다. 즉 정신은 물질을 통해서 드러나므로 우리 민족은 식물의 정신을 물질을 통해서 구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일반적으로 열정, 혼의 힘, 지칠 줄 모르는 끈기,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힘 등으로 표현한다.
왜 열정이 사물의 본질인가하면은 열정이 본질자아가 일을 하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본질자아와 열정은 -거의- 같은 존재이다. 열정이 본질자아이기 때문에 열정이 있으면 본질자아가 일을 하는 것이다. 본질자아가 일을 하는 것과, 상속의 자아가 일을 하는 것, 그 차이는 언어로 표현 할 수가 없다. -통상 현 인류는 대부분 상 속의 자아가 일을 한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본질자아가 일을 하면은 본질, 정신을 얻는다. 우리 민족의 열정이 중요한 이유이다. 이 힘은 영혼에서 나온다. 우리 민족이 그런 영혼을 가진 것이다. 내가 만약 열정이 없다면, 영혼이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하고 깨워야 한다. 두 가지 방향으로 외부에서는 끊임없이 정보를 얻고, 내부는 자신의 영혼이 즐겨 자신의 일을 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어느 한 쪽도 소홀히 하지 말고, 꼭 말한다면 -100으로 환산했을 때-, 외부를 40, 내부는 60으로 비중을 두는 것이 적당하다고 한다(선지자들이 한 말이다).
우리 민족의 힘이 융성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여기에 동참한다면, 누구라도 자신의 영혼에 불을 붙일 수가 있다. 따라서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조금만 노력을 해도 영혼의 힘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파악한다. 그리고 나아가 영혼에 불이 붙으면 자신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영혼을 깨울 수 있는 시대, 좋은 시대를 만났다. 내가 보는 모든 사물에 영혼의 힘이 내재되어있으므로, 만약 그것을 내가 알고자 한다면, 빗장은 어렵지 않게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