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조그만 컴퓨터에 한 사람 또는 한 가족, 나아가 많은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소리로 문자로, 사진과 영상으로 그날 그 날의 기록이 차례로 이어져서 기록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두려움도 생깁니다. 행여 이 컴퓨터를 도난당한다면 어쩌지? 아니면 나중에 폐기 처분하려면 어떻게 하지? 다 지워질까? 영구 삭제될까? 수사과정을 보면 복원도 되는 것 같던데, 아무리 지워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컴퓨터를 교체할 때마다 옛날 것도 계속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건가? 나에 대해서 또는 우리 가족에 대한 내용들이 그 속에 다 들어있는데 함부로 내다 버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누가 어떻게 악용할지 모르니 말이지요. 이게 편리하고 유용하면서도 자신을 해할 수 있는 도구도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 마냥 좋게만 봐줄 수도 없습니다.
아내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딸 하나 데리고 살았습니다. 딸 바보로 사는 것이지요. 직업이 엔지니어 계통인 듯합니다. 자신의 모든 일상이 컴퓨터에 저장됩니다. 아내와의 생활과 딸이 태어나 자라나는 과정들, 가정의 일상들이 사진으로 영상으로 보관됩니다. 딸이 좀 크니까 딸과의 대화도 컴퓨터로 오갑니다. 영상 통화가 많지요. 딸의 고등학교 생활이 대화를 통해서 영상을 통해서 오가고 기록되고 보존됩니다. 하루 한두 번은 거의 반드시 소통을 합니다. 그러니 아비는 자신의 딸과 아주 긴밀하게 대화하며 가깝게 지낸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일상 중 어느 날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 뭔가 다른 일을 하는가보다 싶지요. 다 큰 녀석이 아비만 붙들고 지내라는 법은 없으니 말입니다.
이야기를 정리하면 그렇습니다. 광고에 나오는 줄거리를 인용합니다.
<목요일 저녁, 딸 마고에게 걸려온 부재중 전화 3통,
아빠 데이빗은 그 후 연락이 닿지 않는 딸이 실종됐음을 알게 된다.
경찰의 조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만 결정적인 단서들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실종된 날 밤 마고가 향하던 곳이 밝혀지며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된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은 곳은 다름 아닌 딸 마고의 노트북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등 SNS에서 상상조차하지 못한 딸의 진실이 펼쳐지는데…>
사실 이 영화는 이야기보다 표현 방법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 개인으로서는 그 기술을 현대인답게 맘껏 활용하고 있지 못하기에 보다 그럴 듯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유감입니다. 인터넷에 소개된 글을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현대인들의 생활에 녹아든 PC와 모바일의 활용과 이를 통해 사라진 딸의 행적을 추리해나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낸 <서치>는 페이스북, 구글, 페이스타임, CCTV 등 실생활에서 매일 접하는 익숙한 포맷들을 완벽하게 구현해 내 기존 스릴러 장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볼거리를 선사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추리 탐정극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이 거의 컴퓨터 앞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이 새롭다는 말입니다.
영화 시작 처음 장면이 컴퓨터 화면입니다. 사실 컴퓨터 밖 실제 상황이 화면에 나오는 비중이 매우 적습니다. 과연 우리 관람객이 딸이 두고 나간 노트북에서 딸의 일상을 찾아내어 실종된 딸을 찾아가는 아비가 됩니다. 마고의 일상을 찾아내고 밟아가며 추리해 나가는 과정을 우리가 직접 자판을 두들기며 해나가는 기분이지요. 현장을 뛰어다니는 형사들에게는 좀 미안스러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그들의 일상이 거의 빠지지 않고 컴퓨터에 기록되기 때문이리라 여겨집니다. 그렇게 되면 처음 이야기한 대로 두려움이 생깁니다. 행여 이 개인컴퓨터를 도난당하든지 하면 어쩌나 싶은 것이죠. 어디다 맘대로 폐품 처리할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생각해볼 것은 내 자식이라고 해서 부모가 알고 있는 부분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입니다. 속된 말로 머리가 클수록 부모와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집니다. 아무리 소통이 잘 된다 하더라도 자식도 자기 개인의 일이 있게 마련입니다. 일일이 다 말해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나마 대화를 많이 하는 부모 자식이라면 그 간격이 남들보다는 좁혀지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공백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서운해 할 것이 아니라 수용해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 모두 서로 간 비밀스러운 부분이 남아있어야 만남의 기대와 기쁨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식의 실종, 이 일은 정말 당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앞이 캄캄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지요. 아는 순간 온 몸에 맥이 다 빠져나갑니다. 직장 나아가 가정까지도 팽개치고 자식 찾으러 전국을 도는 아비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인생을 지옥으로 내던지는 일입니다. 우리 주변에 아직도 이런 일을 당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픕니다. 영화 ‘서치’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