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5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기 시작했다. 단숨에 읽기에는 퍽 두꺼운 책이다. 오늘 아침 70쪽 정도를 읽고 책을 덮었는데 오후에 내게 다른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재미가 있다. 책이 재미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그 중 하나의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다. 뭘 아는 것이 없어서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한 것이다. 특히 이 책이 재미 있는 이유는 과거의 어떤 기억과도 연관이 있다. 오래 전 동물원에서 우리 속의 사자와 눈을 마주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갑자기 사자와 눈싸움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마음 먹고 사자의 눈을 들여다 본 것은 불과 3초가 될까말까했다. 내가 눈길을 거두고만 것은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외경심이었다. 두려움과 존경이 겹친 감정이다. 마치 신을 대하는 기분이었다. 그는 인간인 나에 비해 너무 당당하고 의젓했다. 물론 사자에 비해 생각이 많은 인간인 나의 상상력의 소산일 수 있지만 그때의 기분은 그랬다. 오늘 이 책을 읽어보니 그럴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자의 눈빛이 왜 그렇게 깊고 당당했는지 그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라 밑줄을 긋는 대신 컴퓨터에 메모해놓은 대목이다.
인류가 숨겨온 비밀
‘인간human’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는 ‘호모에 속하는 동물’이고, 호모 속에는 사피엔스 외에도 여타의 종이 많이 존재했다. 우리는 뻔뻔스럽게도 스스로에게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이들 종을 단일계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에르가스터가 에렉투스를 낳고 에렉투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낳고 네안데르탈인이 진화해 우리 종이 되었다는 식이다. 이런 직선 모델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모든 오래 된 종이 우리의 오래된 선조라는 오해 말이다.(25)
생각의 비용
호모사피엔스의 뇌는 몸무게의 2-3퍼센트를 차지할 뿐이지만, 뇌가 소모하는 에너지는 신체가 휴식상태일 때 전체의 25퍼센트가 된다. 반면에 다른 유인원의 뇌가 소모하는 에너지는 신체가 휴식상태일 때 전체의 8퍼센트다.(27) 인간이 도구를 만들었다는 첫 증거가 나타난 시기는 250만 년 전이다. 도구의 제작과 사용은 고고학자들이 고인류를 인정하는 기준이다. 직립보행으로 여성은 더 큰 비용을 치렀다. 똑바로 걸으려면 엉덩이가 좁아져야함으로 산도(질)도 좁아지는데, 하필 아기의 머리가 커져가는 시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 결과 자연선택은 이른 출산을 선택했다.(28) 인간은 미숙한 상태에서 태어가기 때문에 어떤 동물보다도 교육을 받고 사회화할 수 있는 기간이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길다.(29) 초기 석기의 가장 흔한 용도는 뼈를 쪼개 골수를 빼내는 일이었다. 왜 하필 골수였을까? 사자가 기린을 쓰러뜨린 뒤 뜯어먹고 있는 것을 당신이 보았다고 하자. 당신을 이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린다. 하지만 차례는 아직 멀었다. 사자가 남긴 것은 하이에나와 자칼의 몫이다. 당신은 이들 식사가 끝난 다음에야 남아 있는 잔해 중에 먹을 수 있는 조직을 찾아 열심히 먹기 시작한다.(30)
인간의 몇몇 종이 대형 사냥감을 정기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40만 년 전부터였고, 인간이 먹이사슬의 정점에 뛰어오른 것은 불과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면서부터였다. 중간에서 꼭대기로 단숨에 도약한 것은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던 다른 동물, 예컨대 사자나 상어는 수백만 년에 걸쳐 서서히 그 지위에 올랐다. 이에 비해 인간은 너무나 빨리 정점에 올랐기 때문에, 생태계가 그에 맞춰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인간 자신도 적응에 실패했다.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는 대부분 당당한 존재들이다. 수백만 년간 지배해온 결과 자신감으로 가득해진 것이다. 반면에 사피엔스는 중남미 후진국의 독재자에 가깝다. 인간의 최근까지도 사바나의 패배자로 지냈기 때문에 두 배로 잔인하고 위험해졌다. 치명적인 전쟁에서 생태계 파괴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참사 중 많은 수가 이처럼 빠른 도약에서 유래했다.(31)
익혀 먹는 종족
먹이사슬의 최정점으로 올라서는 핵심단계는 불을 길들이는 것이다. 이르면 80만 년 전쯤에 일부 인간 종은 가끔 불을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약 30만 년 전이 되면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들은 불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다.(31) 일부 학자들은 익혀 먹는 화식의 등장, 인간의 창자가 짧아진 것, 뇌가 커진 것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다란 창자와 커다란 뇌를 함께 유지하기는 어렵다. 죽은 고기도 불에 익히면 씹고 소화하기가 쉬워졌다. 화식은 창자를 짧게 만들어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게 해주었고, 의도치 않은 이런 변화 덕분에 네안네르탈인과 사피엔스는 커다란 뇌를 가질 수 있었다. 부싯돌이나 불붙은 막대기를 가진 여자 한 명이 몇 시간 만에 숲 전체를 태울 수가 있었다.(32)
호모사피엔스-형제 살해법
호모 사피엔스가 아라비아 반도에 상륙했을 당시 대부분의 유라시아 지역에는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 이미 정착해 있었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두 가지 상충되는 이론이 있다. ‘교배이론’은 그들이 서로 끌려 성관계를 하고 뒤섞였다는 설이다. 아프리카 출신 이주민들이 여기저기로 퍼져 나가면서 다른 인간 집단들과 교배했고 오늘날의 인류는 그 이종교배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교배이론에 따르면,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의 땅에 퍼져나가면서 서로 교배했고 결국 두 집단은 하나가 되었다. 또 하나는 ‘교체이론’이다. 그들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반감을 보였으며 심지어 인종학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다. 사피엔스와 다른 인간 종들은 해부학적으로 달랐으며 짝짓기 습관이나 체취까지도 차이가 났을 가능성이 매우 커서, 서로에게 성적인 관심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최근 몇 십 년은 교체이론이 이 분야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2010년에 끝이 났다. 4년간의 연구 끝에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지도가 발표된 것이다. 오늘날 중동과 유럽에 거주하는 인구집단이 지닌 인간 고유의 DNA 중 1-4 퍼센트가 네안테르탈인 DNA로 밝혀진 것이다. 비록 많은 양은 아니지만 중대한 의미가 있다.(36-7)이런 결과가 유효하다면 최소한 교배이론에 뭔가 근거가 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체이론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오늘날 우리의 게놈에 아주 작은 양만 기여했기 때문이다.(38)
지난 1만 년 간 호모 사피엔스는 유일한 인간 종이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다른 가능성을 그려보기가 어렵다. 우리는 형제자매가 없는 탓에 스스로가 창조의 최고 샘플이며, 우리와 나머지 동물계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있다고 상상하기 쉽다. 그래서 찰스 다윈이 호모 사피엔스는 동물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고 암시하자 사람들은 격분했다. 심지어는 오늘날에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많다. 만인 네안데르탈인이 살아남았다면, 그래도 우리는 스스로를 다른 종과 동떨어진 존재라고 인식할까?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네안데르탈인을 전멸시킨 이유가 바로 이것인지 모른다. 그들이 우리가 무시하기에는 너무 친숙하고 관용하기에는 너무 달랐다는 것.(41쪽) 네안데르탈인은 약 3만 년 전 증발했다. 플로레스 제도의 난쟁이 비슷한 인류는 약 12,000년 전 사라졌다. 사피엔스의 성공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어떻게 생태적으로 전혀 다른 오지의 서직지에 그처럼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다른 인간 종들을 망각 속으로 밀어 넣었을까? 튼튼하고 머리가 좋으며 추위에 잘 견뎠던 네안데르탈인은 어떻게 우리의 맹공격을 버텨내지 못했을까? 논쟁은 뜨겁게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가장 그럴싸한 해답은 바로 이런 논쟁을 가능하게 하는 것, 즉 언어다.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이었다.(41)
첫댓글 1%의 흡수율이 내 목표입니다. 남이 읽고 써 올린 글에 대한 흡수율~~^^
생존하는 법을 아는 것 보니 조만간 포식자가 될지도 아니면 포식 당할지도 모르는 상상
아무래도 형의 흡수율이 더 상위같아서~~
1퍼센트라...좀 짜지 않나 싶은데 그것도 목표치라니! 난 흡수율은 좋은데 망각률이 쎄서 그게 그거일 것 같네~~
이 글을 읽으며... 요즘 제 상태에 연동에 의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나는 100년도 안 되는 찰나를 지나 가는데 우리 인간은 위대하다는 것을... 앞으로 나를 버리는 일에 열중할 겁니다.. 내 중심이면 고통스럽고.. 그러니 모든 것이 인간 중심이며 나는 보잘 것 없는 하나의 먼지에 불과 하다 그렇게 생각해야 남은 여생 편안하게 살 것 같습니다... 요즘 아롱이 다롱이를 보며 매일 하는 생각이 뭔지 아세요? 슬픕입니다.. 제네들 없으면 난 어떡하나 뭐 그런...밖에서 행여나 속으로라도 어떤 사람을 욕한다면 아롱이 다롱이에게 헤가 될것 같아.. 그냥 나만 보잘 것 없고 나 아닌 당신들은 위대하다 대단하다 그런 생각으로 삽니다...
그럼 마음이 아주 평안해집니다.. 복 주실 것도 같고 ㅎㅎㅎㅎ 겸손이란 건 사람들 앞에서 하는 거 아닙니다.. 사람들 앞에선 당당해야죠.. 겸손이란 건 감사하는 거고 나보다 아프고 못한 사람을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감사히 여기고 그들을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에게 또 많은 아픔과 형벌이 주어질 것 같으니깐.. 두려우니깐 무서우니깐.. 겁나니깐.. 그래서 하는 겁니다......
나 자신이 그동안 열심히 살았는데 다른 사람 보다 못하다면 그건 스스로 인생을 잘 못 산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열심히 최선을 다 해 산만큼 당당할 수 밖에요.......겸손이란 신 앞에 무릅 꿇는 겁니다.......... 앞으로 남은 여생 당당하게 최선을 다 하여 살겁니다.. 결코 인간 앞에 부끄럽지 않게........결코!! 10년 후 제가 다시 인간 앞에서 뭔 말을 하는지 꼭 지켜 보십시오!!
여생이라니? 나도 쓸까말까한 말인데. 에끼!
@안준철 겸손이란 말이 여생이란 말을 낳고, 여생이란 말은 예끼란 말을 낳고.....ㅎㅎ
유발 하라리 재밌는 작가네요. 여하튼 흥미로운 지적 컨텐츠가 무궁무진해서 말입니다.
그럴듯하니 더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