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12
어제 경남 고성(고성여중)에 다녀왔다. 아침 여섯시 반에 집을 나섰는데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 사이 기차에 네 번 올라탔고 버스도 두 번 탔다. 가을 여행을 겸한 것이어서 이런 복잡한 과정이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단위 학교에서 생면부지의 교사들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긴 했다. 자발적 연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뭔가(감동?)를 강요해야하는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제 그런 나의 심리상태부터 고백했다. 나의 경험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어서 직접 대입하여 도움을 얻기에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도 드렸다. 다만 30년 교직 생활동안 "아이들과 지내면서 무엇이 어떻게 막혔고 막힌 것이 어떻게 열렸는지, 교육과정에서 교사는 무엇을 하는 존재인지, 아이들은 어떤 존재고 어떻게 성장해가는지"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사실, 어제 얘기한 따옴표 속의 말은 김승환 전북 교육감님의 글(서평)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김 교육감님께서는 고맙게도 졸저인 교육 에세이 두 권에 대한 서평을 연달아 써주셨던 것이다. 그 내용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자화자찬이 될 것 같아 참을 수밖에 없다. 안 참고 싶지만.....
강의를 모두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젊은 교사들 사이에 섞여 열심히 눈을 반짝이고 계시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 선생님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하셨다.
"선생님 퇴임식하실 때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행복한 교사'라는 말씀을 들으셨다는데 어떻게 행복한 교사가 되실 수 있었는지요?"
질문하신 선생님은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그 사실을 아신 모양이었다. 나는 짧게 대답을 해드렸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에 없는 걸 보니 별 내용이 아니었을 것도 같다. 나는 왜 행복했을까? 이런 말을 한 기억은 난다. 나는 지금의 자유가 너무 좋고 학교에는 다시 가지 못할 것 같다는. 행복과 고통은 언제나 공존한다는.
다음은 어제 고성군에 일찍 도착하여 나를 초청해주신 강은경 선생님께 점심을 대접 받고도 시간이 남아 선생님은 수업하시라고 보내드리고 카페에서 차를 한 잔하면서 인터넷에서 검색한 글이다. 요즘 나는 시간이 나면 그동안 내가 쓴 교단일기를 검색해서 읽어보곤 한다. 그때 그때 기록했기에 남은 흔적들이다. 내가 써놓은 글이 다른 이의 블러그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 나의 일천한 경험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줄 수 있다는 것이. '좌충우돌 날라리 아줌마' 불로그에서 본 내용이다. 어떻게 행복한 교사가 되었느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것도 같다.
☆ ☆
'구타놀이'사건 이후 내 맘이 예전같지 않다.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마냥 이쁘기만 했는데,
요즘은 미운 마음이 든다. 실제로 화가 날 때가 있다.
모든 아이들이 마냥 순수할 것이라는 생각은 내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 후,
나는 순수한 아이들, 아이다운 아이들만 예뻐보인다.
그 사건으로 아이들만 다친게 아니라, 나역시 상처를 받은 것이다.
상담으로 아이들은 치유되었으나, 내 마음은 아직 치유되지 않은 것이다.
내 맘을 다스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안준철 선생님의 에세이를 꾸준히 읽는 중이다.
그 중 하나를 여기 옮겨본다.
아이들을 미워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기술입니다. _안준철
-아이들과의 행복한 소통을 위하여
지난 토요일,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 감독을 끝내고 막 교실을 나가려는데 한 아이가 제 팔을 붙잡았습니다.
"선생님, 제 성적이면 간호대 갈 수 있어요?"
"간호대 가고 싶어? 너 간호사가 되고 싶은 거로구나."
일단 이렇게 대꾸를 해놓고 잠시 호흡조절을 했습니다. 세원(가명)이가 제게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 너무도 뜻밖의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담임도 아닌데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선뜻 제게 질문을 던진 것도 그렇거니와, 아이가 대학 진학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세원이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눈에 기쁨이나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환한 기운이 가득 들어차 있다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은 날은 수업 시간 내내 그런 눈빛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런 눈빛이 수업에 반응하면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남자친구에게 몰래 편지를 쓰면서 더 많이 작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일이야 귀엽게 봐주거나 애정을 가지고 주의를 주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허망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아이라서, 행여 그것이 나쁜 버릇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염려하여 어쩌다 한 번 언성을 높인 일로 해서 사뭇 오랫동안 눈길조차 주지 않을 때가 바로 그 때입니다. 오랫동안 쌓아온 성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그런 참담한 기분이지요.
하지만 그때마다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민 것은 제 쪽이었습니다. 그것이 조금은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이의 버릇이 나빠질까 염려가 되기도 하여 이런 말을 개평 삼아 던지기도 했지요.
"너 부부싸움 하면 누가 먼저 사과하는 줄 알아? 성숙한 사람이 먼저 사과하는 거야. 선생님이 너보다 어른이니까, 성숙한 사람이니까 내가 먼저 사과한 거야. 다음엔 네가 먼저 사과해. 선생님은 이미 어른이니까 더 이상 성숙할 필요가 없지만 넌 아니잖아. 이제 어른이 되려면 넌 더 많이 성숙해야 하잖아. 너 아직은 많이 부족해. 그건 알지?"
이런 말에 기분 나빠 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대로 할 말을 다 한 셈입니다. 아이를 미워하지 않는 것도 어찌보면 하나의 기술입니다. 여기서 기술이란 곧 전문성을 의미합니다. 정신과 의사가 정신질환 환자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사랑이 많아서가 아니라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아이를 미워하지 않고,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교사가 교육전문가라면 말입니다.
아이들과의 만남(혹은 싸움)은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경주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감정을 다 쏟고 난 뒤에 허탈해하는 것보다는 속도를 조절해가며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지혜가 필요하지요. 그러다보면 생각보다 빨리 환한 아침이 당도하기도 합니다. 정말 세원이와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습니다.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어요. 그런데 제 실력이…."
"그래. 간호대학에 들어가려면 수능도 준비해야하고 수시로 가려고 하면 성적이 아주 좋아야하는데."
"물리치료과는 어때요, 선생님?"
"물리치료과도 좋지. 그런데 간호과든 물리치료과든 들어가는 것도 문제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 학교에서 배워야할 과목이 만만치가 않거든. 처음에는 어려워보여도 인내심을 갖고 하다보면 흥미가 생기는 법인데 넌 하기 싫은 것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안 하잖아."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 것을 보면 세원이는 자신의 단점을 잘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순순히 인정한 것은 어디까지나 '타이밍'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아이를 교무실로 데려와 잘못을 나무라면서 말을 던졌다면 상황은 백팔십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옳고 마땅한 일이라고 억지로 강요하다보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지요. 아이들과의 행복한 소통을 위해서는 좀 느긋할 필요가 있다고나 할까요? 그것을 깨닫고 난 뒤로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많이 수월해졌습니다. 그날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갈무리되었습니다.
"이제 네 마음을 더 키우면 돼.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직 네 마음이 어리기 때문이야. 어린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 유치원생이 유치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잖아. 하지만 넌 고등학생이고, 고등학생으로서 마땅히 지녀야할 그런 것이 네게 없다면 누구보다도 네가 힘들어져. 또 대학에 가면 하기 싫은 과목도 열심히 공부해야하는데 유치원생이 반찬 투정하듯이 공부하기 싫다고 짜증이나 내면 곤란하잖아. 간호사가 되겠다는 네 꿈을 이룰 수도 없고 말이야."
"전 제 꿈을 꼭 이룰 거예요."
"당근이지."
아이와 헤어져 복도를 걸어 나오면서 마치 영화의 필름이 지나가듯 아이와 있었던 지난 일들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쩌면 오늘 있었던 일도 그 많은 필름 중 한 장에 불과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백번 잘해주다가 한 번 잘못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모든 일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그런 허망한 일을 다시금 경험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참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첫댓글 형님은 행복한 사람 맞습니다.
교단에 계실 때 갈팡질팡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확고한 교사철학을 꾸준히 밀고 나간 결과
퇴직하고서도 후배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었잖아요
퇴직 후에 형님처럼 사시는 분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잘 했다기보다 공유하자는 뜻인데 좀 민망하구먼. 암튼 고마우이~♡
샘 ㅋㅋ 저 요즘, 반야심경,법구경, 천수경, 금강경, 유마경, 등등 푹 빠져 있습니다 ㅋㅋ 진작 불가에 입문할 걸... 세상에서 개고생 한 게 후회 되네요 ㅋㅋ 예전에 시 쓰면서 사실 시를 버리기 위해 쓴다라고 제 스스로 생각했었거든요... 사실은 시를 쓰는 자신조차도 버려야 진짜 시인 이겠지요^^ 전 다롱이경이나 함 써볼까요? ㅎㅎ
머지 않아 도가 트겠구나. 좋은 일이지. 자명한 진리를 세상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겠는데 넌 이미 두 생명을 잘 보살피고 있으니 된거지. 십년 뒤에는 한 잔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