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순천 낙안중에서 30여명의 중딩들(전교생)과 '시 쓰기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돌아왔다. 순천낙안중학교 주소는 '전남 순천시 낙안면 조정래길 716번지'이다. 낙안에서 승용차로 불과 15분 거리에 있는 벌교에는 조정래 문학관이 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벌교 갈대밭(중도방죽)에 가보았다. 갈대를 보자 며칠 전에 읽은 시 한 편이 떠올랐다.
갈대/김윤현
생각이 깊으면 군살도 없어지는 걸까
삶을 속으로 다지면 꽃도 수수해지는 걸까
줄기와 잎이 저렇게 같은 빛깔이라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묵상이 필요할까
물 밖으로 내민 몸 다시 물속으로 드리워
제 마음속에 흐르는 물욕도 다 비추는
겸손한 몸짓이 꽃의 향기까지 지우네
김윤현 시인은 교육문예창작회 소속으로 영남일보와 대구 시인협회가 선정한 10월 셋째 주의 시인이기도 하다. 그가 2007년에 펴낸 네 번째 시집 <들꽃을 엿듣다>에는 ‘채송화’란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 시를 비롯한 몇 편의 시가 이번에 10월 셋째 주 시로 선정된 것이다.
채송화/김윤현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라면
나지막하게라도 꽃을 피우겠습니다
꽃잎을 달고 향기도 풍기겠습니다
이름을 달지 못하는 꽃도 많습니다
토담 위라고 불만이 있을 리 없지요
메마르고 시든 일상에서 돌아와 그대
마음 환하게 열린다면 그만이겠습니다
몸을 세워 높은 곳에 이르지 못하고
화려하지 않아도 세상 살아갑니다
내가 30년 동안 살았던 순천에는 순천고등학교가 있다. 지금은 평준화가 되어 그 이름도 평범해졌지만 한 때는 입시 명문으로 이름을 떨치던 학교다. 오래 전수능 감독을 하기 위해 순천고등학교에 간 적이 있는데 학교 건물 벽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대문짝만하게 적혀 있었다.
‘오늘도 세계를 주름잡기 위하여’
후배들에게 포부를 크게 가지라는 뜻으로 동문들이 돈을 들여 새겨놓은 글귀란다. 그래도 그렇지 주름을 잡다니! 오늘 그 때의 일이 다시 떠오른 건 ‘채송화’ 시를 읽게 된 남짓이었다. 이렇게 고치면 어떨까 해서 말이다.
‘오늘도 세상를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세계를 주름잡기 위해서는 그만한 위치가 되어야 가능하다. 노력과 경쟁은 필수다. 우리 나라처럼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된 나라에서는 금수저가 아니면 노력을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신분이 높거나 능력이 뛰어날 필요도 없다. 키가 작으면 나즈막하게라도 꽃을 피우면 되기 때문이다. 채송화처럼 말이다. 낙안중학교 학생들에게도 이 시를 소개해주었다. 나지막하게라도 꽃을 피워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그리고... 나도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살면 되겠구나 싶었다. 왜 사는가?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이보다 더 완벽한 인생관도 없지 않겠는가.너무 이상적이라면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한 가지 바람을 더 보태면 될 일이다. 이렇게 말이다.
왜 사는가?
아름다운 세상을 사랑하고 향유하기 위하여.
어제 낙안중 학생들과의 뜻깊은 만남을 뒤로 하고 잠시나마 벌교갈대밭을 둘러본 이유이기도 하다.
첫댓글 어려운 걸음이시네요
좋은 일로 사람 만나고 찍어 올린 죽도방죽 갈대도 만만찮아 보입니다
몸 건강 잘 돌보시고 좋은 글 많이 쓰셔야지요
벌교 갈대밭도 고즈넉하니 편안하게 다가오는게 참 좋지요
얼마 전까지 직장이 그곳에 있어서 자주 거닐던 곳이었지요
벌교까지 갔는데 꼬막정식이나 짱뚱어탕은 안드시고 오셨는지요?
선생님 힘드실텐데 쉬엄 쉬엄 어때요?
모두 모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