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문학제 디카시공모전에서 「새가 되고 싶어요」라는 작품으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물새로 날아가고 싶은 저 꽃들
꽃잎을 모아 모아서 물새의 부리로 피어나는 저녁
가슴 한쪽에 접혀진 젖은 날개 다시 펴면
하얀 깃털로 앨보 강물 위를 날아갑니다
세계적 보편성을 지닌 디카시가 국내뿐 아니라 세계로 확장해 나가는 가운데 캐나다에서 첫 디카시집을 출간하게 된 시인은, 삶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앞에서 스스로 얻게 된 시인만의 해답을 작품 곳곳에 표출하고 있다. 삶의 진실과 인간 존재의 본질 그리고 신의 의지를 원본 그대로 발견하여 행복의 기준을 소소한 안락함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무수히 모방되어 온 자연이지만 그만큼 문학의 진원지이기도 한 대상에서 받은 감흥을 원본 그대로 읽어내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디카시는 디지털카메라(Digital Camera)와 시(Poem)의 합성어다. 매체를 통해 실시간 소통하는 방식을 취하는 ‘찰나의 예술’이며 영상과 문자가 하나의 텍스트로 작용하는 다매체 시대의 새로운 시놀이다. 걸어 다니는 1인 미디어 시대에 최적화된 시의 갈래로 2004년 경남 고성에서 발현한 신조어라 할 수 있다.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로 표현한 시,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학 장르로 언어예술이라는 기존 시의 범주를 확장하여 영상과 문자를 하나의 텍스트로 결합한 멀티언어예술’이다.
-디카시의 정의(국어국립원 우리말샘)
디지털 시대의 소통 방식을 살펴보면 대체로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선호하고 있다. 하여 미디어가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시대이니만큼 디카시는 현대인의 총체적인 소통에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의식의 통로가 되기에 충분하다.
물새 한 마리
물그림자 한 발로 서면
내 걸어온 길이 그대로 비추인다
- 「물새 한 마리」 전문
때로 시인은 자연 속에 우두커니 던져진 사물을 통하여 자신이 걸어온 삶을 비추어보는 발견자가 된다. 2행의 물그림자는 물에 비치는 그림자의 순우리말이며 호수에 한 발로 서 있는 수조(水鳥)의 반영을 포착하고 있다. 사물의 모양이나 그 움직임에 정직한 시선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디카시의 매력이다. ‘창문 안쪽에 몸을 숨기고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 내려온 날 거기에 내가 보인다’(「거미의 허상」), ‘마침내 찾아온 나의 시간 붉은 내 몸을 덮어 안으로 더욱 빛나는 시간’(「빛나는 시간」), 나아가 꽃잎의 빛깔에서조차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내 평생 저렇게 절실하게 눈물 흘린 적 언제 있었나‘(「갈색 눈물」) 등. 쓸쓸해 보이는 피사체에서 언뜻 실향민의 애환이 울컥 느껴진다.
문자의 틀에 수 천 년 동안 갇혔던 문학이 이제 그 경계를 넘어, 영상과 상호작용하므로 새로운 진실에 당도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디카시의 문학사적 지평이다. 여기서 영상은 문자와 함께 하나의 기호적 의미를 갖는다. 이는 시인이 영감과 함께 포착한 시적 행위로 보되 그 자체로서는 존재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영상은 문자와 대등한 시의 기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좋은 영상을 포착하는 것은 디카시에서 어쩌면 신으로부터 값없이 받은 선물과도 같다.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자연과 사물을 관심 있게 바라보는 자에게 베푸는 무조건적인 은혜인지도 모른다. 신이 빚은 형상을 단지 시인은 전달하는 에이전트 역할을 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결합하는 시적 문장은 어떤가. 한 마디로 ‘한 줄도 길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디카시는 영상에서 얻은 99%의 영감과 시인이 첨부하는 1%의 상상력으로 얻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의 문자시를 쓰기 위해 때론 특별한 공간을 찾아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방식과는 달리 디카시는 시간과 공간을 의식하지 않고 말 그대로 삶의 순간에서 찰나를 포착하고 詩作하는 특징이 있다.
첫댓글 사진과 시도 멋지고 해설도 멋지네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