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집 황금알
공자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들어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했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서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계영배의 교훈을 심어줬다.
적당함에서 그칠 줄 아는 지혜.
어려운 일이다. 모자람도 넘침도 과욕은 경계하지 않는다.
이솝우화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탐욕으로 인해 종신토록 누릴 부를 잃은 인간의 우매함을 보았다.
현실의 우리들 모습이다.
나의 황금알은 무엇일까.
#1 소사채갱(疏食菜羹)
잡곡밥 배추김치, 열무지 멸치볶음 상추 생선조림.
우리집 저녁 밥상이다.
남편과 나 수젓가락을 들며 오늘의 일과를 특별메뉴로 곁들인다.
소소한 일상만큼이나 소박한 저녁 식탁이다.
40여 년 함께 맞춰진 입맛은 부지불식(不知不識) 둘의 마음처럼 상통한다.
하나둘 접시가 바닥을 드러낸다.
“맛있게 잘 먹었어요. 감사해요.”
만찬도 아니건만 얼굴 전면에 포만감이 흐르는 남편.
정말 맛이 있었을까?
반찬 투정 한번 없는 남편의 감사가 멋쩍고 쑥스럽다.
고량진미를 제치고 소사채갱(疏食菜羹)이 자릴 잡은 우리 집 밥상.
한 숟갈 한 숟갈마다 차오르는 충만, 건강을 먹고 절제를 먹고 겸손을 먹고 감사를 먹는다.
어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랴.
#2 수선의 즐거움
몇 년째 입지 않고 있는 바지를 꺼내 들었다.
날 선 가위로 솔기를 뜯고 달랑거린 장식을 모조리 떼 내고 해체를 시켰다.
한참을 이리저리 살피며 리폼을 구상했다. 재봉틀이 없으니 수작업을 해야 한다.
실보다 더 가는 바늘귀에 몇 번의 헛손질로 간신히 실을 뀄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게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데 나 같은 사람 천국이란 아예 꿈도 꾸지 말라는 뜻이렸다. 삐뚤빼뚤 짧고 길고 들쑥날쑥 서툰 박음질이 도통 아녀자의 솜씨가 아니다. 이렇게나 손맵씨가 없어서야~ 조선 시대였더라면 당장 소박댕이감이다.
옳게 가나 모로 가나 서울만 가면 되는 일, 얼추 바지 모양이 되었다. 허리에 고무줄을 끼우고 헤벌레한 주머니를 깁고 시침질로 마무리까지 하였다. 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바지가 완성됐다. 거울 앞에 서서 앞뒤 옆 빙그르르 돌아 워킹까지. 어디 새 옷을 구매했을 때의 즐거움에 비교할까.
얼마 전에도 남편의 해진 남방 2개를 손수 수선을 했다. 버리자니 아깝고 수선집에 맡기자니 경제성이 없는지라 옷장에서 잠자고 있던 옷이었다. 몸통 어깨 부위는 성성한데 목 뒤 부분이 닳아져 해진 상태였다. 바느질 상자에서 남방에 걸맞은 헝겊을 찾아 덧대고 짜깁기를 하였다. 버릴뻔한 옷이 말끔한 모습으로 탈바꿈되었다. 만족스레 입는 남편을 보니 뿌듯했다. 난 겉옷뿐 아니라 양말 내의 등을 곧잘 꿰매 신고 입는다. 현실의 풍요와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절약이 몸에 밴 탓일까?
과유 아닌 불급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 소박과 검소로 비움과 채움을 수시로 드나들며, 행복을 가꾸며 나만의 길을 가고 있다. 내 황금알이다.
#3 살림살이
4년 전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오던 날이었다.
주방 살림을 맡아 정리하던 이삿짐센터 직원이 바삐 놀리던 일손을 멈췄다. 그의 손에는 색칠이 군데군데 벗겨지고 겉이 울퉁불퉁 요철이 생긴 양은 냄비가 들려 있었다.
“사모님~ 넓은 평수에 사시는데 살림살이가 왜 이리 소박해요?.”
칭찬인지 조롱인지 모를 직원의 웃음. 아주 편안한 표정이 옆집 아줌마를 대하는 듯했다. 고급과는 거리가 먼 우리 집 살림이 고객과 직업군 간의 거리를 좁혔었나 싶었다.
가끔 우리집에서 시누이들과 식사를 한다. 주방에 들어와 식사를 거드는 시누이들의 눈에 띈 옛 주방 살림 도구들. 닳고 닳아 밑둥이 까만 깨볶이 후라이팬, 스텐 주걱, 두꺼운 사기그릇, 거품기 심지어 플라스틱 조로까지.
“언니!! 제발 그만 버리고 새것 좀 쓰세요.”
애정 서린 시누이들의 야단은 곧 그릇마다에 새겨진 추억들로 얘기꽃 속에 묻히고 만다.
고지식한 올케라고 놀리면서도 옛 살림들을 들추며 친정의 향수를 달래 가는 시누이들과 남편. 시어머니의 그리운 손맛을, 남편과 시누이들의 자취생활의 흔적을 어찌 깡그리 없앨 수 있으랴.
절약과 검소의 미덕을 넘어선 애환, 애정의 산물들이다.
깊숙이 묻혀진 형재애를 불러낸다.
오늘을 따뜻하게 살게 해 주는 살림들이다.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임에 틀림없다.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가
나, 우리집 곳곳에 황금알을 낳고 있다.
내 삶과 우리집을 행복과 감사로 평화로 빛을 발하게 한다.
황금알 거위는 앞으로도 과욕없는 나, 우리집에 황금알 낳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첫댓글 아.
보지않아도 훤히 알만합니다.
설겆이하기에 용이하게도 싹싹 비워냈을 접시들,
서투르나마 입는데는 지장없을 어설픈 리폼솜씨.
미관상 예쁘지않을 낡고 닳아진 주방용품들.
과장되게 폄하했지만 참 존경스럽습니다.
물욕과는 거리가 멀고 부지런하니 근검절약의 표본이십니다.
버리는것에 인색한 나 또한 한 절약하지만
두손 들었습니다.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