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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포기하고 80대의 나이에도 여행을 즐기며 살았던 인물이 바로 권섭(權燮;1671~1759)이다. 영월에서 삼척까지의 여행 기록을 두 지역의 첫 글자를 따서 지은 <영삼별곡>이라는 가사를 남겼기에, 그의 작품을 읽고 인물에 대해 호기심을 품게 되었다. 이후 권섭이라는 인물과 관련된 기록과 연구 성과들을 수집하여, 최근 집중적으로 읽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조선시대는 가문과 당파라는 두 개의 집단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했다. 권섭은 당대의 벌열 가운데 하나인 안동권씨 가문이며, 또한 그의 가문은 조선 후기 정치를 주도했던 노론에 속했다.
권섭 자신은 일찌감치 과거를 포기했더라도 형제나 친척 혹은 당파로 결속된 지인들은 높은 관직을 역임했던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관직 생활을 하지 않았던 그의 생활은 가문의 재산과 지인들의 후원으로 다소 여유롭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80대의 나이에 관서지역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 그곳에서 지방관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아울러 여행에 대한 소감은 물론 평소에 자신의 생각과 삶에 관한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겨 전해지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평소 자신의 글을 성격에 따라 분류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현재까지 방대한 분량으로 전하는 권섭의 문집 <옥소고>를 통해 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겠다.
이 책은 권섭이 남긴 방대한 문집을 분석하여, 그 특징을 18세기의 문화적 의미로 짚어보는 기획 가운데 하나로 엮은 결과물이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공동 연구를 진행하여, 문학 분야를 중심으로 역사와 음악 그리고 전통 복장에 이르기까지 여러 논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전체 3부로 구성된 목차는 먼저 ‘옥소의 학문과 문학’이라는 제목의 항목 아래, 모두 4편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다. 권섭의 학문적 성과의 특징을 ‘학풍(學風)’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한 글이 앞부분에 전제되어 있으며, 풍속을 기록한다는 의미의 ‘기속시’와 기녀의 시조를 한시로 번역한 <번노파가곡15장> 그리고 권섭의 기행 기록을 담은 글들이 각각의 주제로 제시되어 있다.
‘옥소의 예술 체험’이라는 제목의 2부에서도 4편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권섭이 남긴 기록으로서 <악보>의 위상을 점검하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권섭이 소장하고 있었던 그림책(화첩)과 자신의 꿈을 그림으로 남긴 ‘몽화(夢畵)’ 그리고 조선시대 사대부의 예복(禮服)에 관한 기록이 각각의 연구 대상이라고 하겠다. 마지막 3부는 권섭의 문집 가운데 중요한 기록을 번역하여 제시하는 ‘자료’편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여기에서도 4개의 항목으로 구분하여 모두 23개의 한문 자료를 한글로 번역하여 원문과 함께 제시하고 있다. 방대한 분량으로 전하는 권섭의 기록들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가 남긴 글을 통해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문화적 면모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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