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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의 성장 기록을 담은 내용을 잔잔한 파스텔 톤의 그림으로 형상화한 책이다. 방학을 맞이해서 혼자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아마도 부모에게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증명을 받는다는 의미라고 하겠다. 그것이 비록 여름방학마다 찾는 삼촌의 집이기에 익숙한 곳일지라도, 검표원으로부터 ‘꼬마 청년’이라고 불리운 아이가 ‘짐을 꾸려 혼자 기차에 올랐다’라는 사실이 더 중요할 터이다. 항상 어른들과 동행해야했던 기차를 혼자서 탈 수 있으며, 삼촌이 기다리는 역에서 무사히 내려 삼촌집에서 방학 내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지난 여름 이후 새로 들어온 잡동사니들’로 가득찬 집 모습을 통해서, 독자들은 삼촌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 것도 버리지 않는 사람’인 삼촌의 집은 ‘새 물건은 하나도 사지 않는데 집이 꽉’ 차는 모습이 연출되는 것이다. 소년이 방학마다 삼촌의 집에서 보내고자 한 이유도 아마 그곳에서는 부모의 보호나 간삽 없이 자유롭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이해된다. 삼촌이 빌린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보며, 소년은 ‘앞으로 펼쳐질 긴 여름날을 생각’하면서 ‘저녁까지 자전거 일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처럼 자유로운 일상이 소년을 방학마다 이곳으로 이끄는 요인일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자저거를 타고 ‘매일 더 멀리까지’ 오가며 시간을 보내지만, 삼촌은 소년의 일상에 전혀 참견하지 않고 언제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삼촌은 책을 읽지 않았지만 나를 위해 한 무더기를 쌓아 두’고, 방학 중반부가 돼서야 집에다가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 엽서 한 장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벌어’진 어느 여름 날, 자전거를 타고 더 멀리가서 마침내 ‘처음 와 본’ 바다에 이르게 된다. 바다로 뛰어들어 수영을 하며 즐기고 있을 때 ‘깜짝 선물처럼 해변에 도착한 파도’인 소녀를 마주치게 된다. 소녀를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서 그 아이의 이름이 ‘에스더 앤더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소년의 마음에 들어찬 소녀의 모습 때문에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날 이후 ‘삼촌은 내가 여전히 그대로인 것처럼’ 대해주었으나, 이전과는 달라진 소년의 모습을 통해서 무언가 변화가 있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삼촌은 소년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고, 이전과는 다른 일상이 소년 앞에 펼쳐지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어떻게 해야 길을 잃을지’ 잘 알고 있었기에, 소년은 다시 바닷가로 가보지만 그곳에서 소녀를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여름방학이 끝나기 하루 전날’ 길에서 우연히 만난 에스더가 강아지 부기를 잃어버렸다는 말을 듣고, 소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부기를 찾아다니게 된다. 강아지를 찾다가 바닷가에 도착한 두 사람은 잠시 바다로 뛰어들어 수영을 즐기고, 모래사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소녀가 영국에서 방학을 보내기 위해서 왔으며, 여름마다 이곳을 찾는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때 멀리서 삼촌과 중년 여인 그리고 강아지 부기가 나타나고, 이제 새로운 추억을 간직하게 된 소년은 내년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잔잔한 내용과 그림체로 소년에게 닥친 사랑의 감정을 풀어내는 내용이다. 어린아이에서 소년이 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자신의 마음속에 품게 되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외견상으로 소년의 일상은 이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 에스더 앤더슨이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소년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소년은 여름방학을 지내면서 훌쩍 성장했던 것이라고 하겠다. 자신이 들려준 말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소녀와 약속한 소년은 집으로 돌아가서, 이곳을 다시 찾을 내년 여름방학을 기다릴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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