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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2월 1일 조소앙, 신채호, 안창호, 김교헌, 김동삼, 신규식, 이범윤, 박은식, 이시영, 이상룡, 윤세복, 이동녕, 김규식, 김약연, 이동휘, 이승만, 김좌진 등 민족대표 39인이 참여한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선언이다. 당시 항일투쟁의 중심이던 만주 지역에서 선포 되었으며, 도쿄에서 있었던 2.8 독립선언과 서울의 3.1 독립선언보다 앞서 선포되었다. 무엇보다 3.1 독립선언 민족대표가 별다른 독립운동 경력도 없고, 이후 변절자들이 많았던 것과 달리, 무오독립선언에 참여했던 분들이야 말로 진정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분들 위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
또한 기미독립선언서는 비폭력 독립을 주장한 것과 달리, 무오독립선언서는 육탄혈전으로 독립을 달성하자고 촉구한 점에서 만주지역 독립군의 의지를 선명하게 부각시킨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요약>
조소앙이 집필했다. 반만 년의 역사를 가진 대한은 이민족의 한이 아님을 밝히고,
일본의 합병동기는 범일본주의를 아주에 펼치는 것으로 동양의 적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합병수단은 사기·강박·불법·무력에 의한 것이고,
일본의 합병결과는 정치적·경제적 압박으로 종족을 말살하고 종교를 협박하며 교육을 제한하여 세계문화를 저해하는 것으로 인류의 적이라고 규정했다.
하늘의 뜻과 인간의 도리와 정의와 법리에 비추어 합병은 무효라고 선언했고, 정의의 칼로 하늘을 거스르고 나라를 훔친 적을 도결하여 운명을 개척하자고 역설했다. 국민의 본령은 독립이며 사람은 한 번은 죽는 것이니 목숨을 아끼지 말고 육탄혈전으로 독립을 완수할 것을 절규했다.
신채호, 김좌진, 김규식, 이승만, 김약연, 안창호 등 39명이 서명했다.
<원문>
大韓獨立宣言書
我 大韓同族男妹와 曁我遍球友邦同胞아. 我 .大韓은 完全한 自主獨立과 神聖한 平等福利로 我 子孫黎民에 世世相傳키 爲하야, 玆에 異族專制의 虐壓을 解脫하고.大韓民主의 自立을 宣布하노라.
我 大韓은 無始以來로 我 大韓의 韓이오, 異族의 韓이 아니라 半萬年史와 內治外交는 韓王韓帝의 固有權이오, 百萬方里의 高山麗水는 韓男韓女의 共有産이오, 氣骨文言이 歐亞에 拔粹한 我 民族은 能히 自國을 擁護하며 萬邦을 和協하야 世界에 共進할 天民이라, 韓一部의 權이라도 異族에 讓할 義가 無하고 韓一尺의 土라도 異族이 占할 權이 無하며, 韓一個의 民이라도 異族이 干涉할 條件이 無하니, 我韓은 完全한 韓人의 韓이라.
噫라 日本의 武孽이여. 壬辰以來로 半島에 積惡은, 萬世에 可掩치 못할지며 甲午以後의 大陸에 作罪는 萬國에 能容치 못할지라, 彼가 嗜戰의 惡習은 曰 自保 曰 自衛에 口를 籍하더니, 終乃 反天逆人인 保護 合倂을 逞하고, 後가 渝盟의 悖習은 曰 領土 曰 門戶 曰 機會의 名을 假하다가, 畢竟 悖義非法의 密款脅約을 勒結하고, 後의 妖妾한 政策은 敢히 宗敎와 文化를 抹殺하얏고, 敎育을 制限하야 科學의 流通을 防遏하얏고, 人權을 剝奪하며 經濟를 籠絡하여 軍警의 武斷과 移民의 暗計로 滅韓殖日의 奸凶을 實行한지라, 積極消極으로 我의 韓族을 磨滅함이 幾何뇨. 十年 武孽의 作亂이 此에 極하므로 天이 彼의 穢德을 厭하사 我에 時機를賜 하실새, 吾人等은 順天應人하야 大韓獨立을 宣布하는 同時에 彼의 合倂하던 罪惡을 宣布懲辦하노니,
一. 日本의 合邦動機는 彼所謂 汎日本主義를 亞洲에 實行함이니, 此는 東亞의 敵이오,
二. 日本의 合邦手段은 詐欺强迫과 不法無道와 武力暴行이 具備하얏스니, 此는 國際法規의 惡魔이며,
三. 日本의 合倂結果는 軍警의 蠻權과 經濟의 壓迫으로 種族을 磨滅하며, 宗 敎를 抑迫하며, 敎育을 制限하야 世界文化를 沮障하얏스니 此는 人類의 賊이라, 所以로 天意人道와 正義法理에 照하야 萬國立證으로 合倂無效를 宣布하며, 彼의 罪惡을 懲膺하며 我의 權利를 回復하노라.
噫라 日本의 武孼이여.小懲大戒가 爾의 福이니 島는 島로 復하고, 半島는 半島로 復하고, 大陸은 大陸으로 復할지어다. 各其 原狀을 回復함은 亞洲의 幸인 同時에 爾도 幸이어니와, 頑迷不悟하면 全部禍根이 爾에 在하니, 復舊自新의 利益을 反復曉諭하노라.
試看하라. 民庶의 魔賊이던 專制와 强權은 餘熖이 已盡하고, 人類에 賦與한 平等과 平和는 白日이 當空하야, 公義의 審判과 自由의 普遍은 實로 曠刦의 厄을 一洗코자하는 天意의 實現함이오, 弱國殘族을 濟하는 大地의 福音이라.
大하도다 時의 義여. 此時를 遭遇한 吾人이 共進하야 無道한 强權束縛을 解脫하고 光明한 平和獨立을 回復함은, 天意를 揚하며 人心을 順應코자함이며, 地球에 立足한 權利로 世界를 改造하야 大同建設을 協贊하는 所以일새, 吾人 等이 玆에 二千萬 大衆의 赤衷을 代表하야, 敢히 皇皇一神께 昭告하오며 世界萬邦에 誕誥하오니, 우리 獨立은 天人合應의 純粹한 動機로 民族自保의 正當한 權利를 行使함이오, 決코 眼前利害에 偶然한 衝動이 아니며, 恩怨에 囿한 感情으로 非文明인 報復手段이 自足함이 아니라, 實로 恒久一貫한 國民의 至誠이 激發하야 彼異類로 感悟自新케 함이며, 우리의 結實은 野卑한 政軌를 超越하야 眞正한 道義를 實現함이라.
咨홉다 我 大衆아. 公義로 獨立한 者는 公義로 進行할지라, 一切方便으로 軍國專制를 削除하야 民族平等을 全球에 普施할지니 此는 我 獨立의 第一義오, 武力兼倂을 根絶하야 平均天下의 公道로 進行할지니 此는 我 獨立의 本領이오, 密約私戰을 嚴禁하고 大同平和를 宣傳할지니 此는 我 復國의 使命이오, 同權同富로 一切同胞에 施하야 男女貧富를 齊하며, 等賢等壽로 知愚老幼에 均하야 四海人類를 度할지니 此는 我 立國의 旗幟오. 進하야 國際不義즐 監督하고 字宙의 眞善美를 體現할지니 此는 我 大韓民族의 應時復活의 究竟義니라.
咨我 同心同德인 二千萬 兄弟姉妹아. 我 檀君大皇祖께서 上帝에 左右하사 우리의 機運을 命하시며, 世界와 時代가 우리의 福利를 助하는도다. 正義는 無敵의 劍이니 此로써 逆天의 魔와 盜國의 賊을 一手屠決하라. 此로써 五千年 祖宗의 光輝를 顯揚할지며, 此로써 二千萬 赤子의 運命을 開拓할지니, 起하라 獨立軍아, 齋하라 獨立軍아. 天地로 網한 一死는 人의 可逃치 못할 바인즉, 犬豕에 等한 一生을 誰가 苟圖하리오. 殺身成仁하면 二千萬 同胞와 同體로 復活하리니 一身을 可惜이며, 傾家復國하면 三千里 沃土가 自家의 所有 이니 一家를 犧牲하라
咨我 同心同德인 二千萬 兄弟姉妹아. 國民本領을 自覺한 獨立인 줄을 記憶할지며, 東洋平和를 保障하고 人類平等을 實施키 爲한 自立인 줄을 銘心할지며, 皇天의 明命을 祇奉하야 一切 邪網에서 解,脫하는 建國인 줄을 確信하야, 肉彈血戰으로 獨立을 完成할지어다.
建國紀元 4252年 2月
<번역>
우리 대한 동족 남매와 온 세계 우방 동포여!
우리 대한은 완전한 자주독립과 신성한 평등복리로 우리 자손 여민(子孫 黎民)에 대대로 전하게 하기 위하여, 여기 이민족 전제의 학대와 억압[虐壓]을 해탈하고 대한 민주의 자립을 선포하노라.
우리 대한은 예로부터 우리 대한의 한(韓)이요, 이민족의 한이 아니라, 반만년사의 내치외교(內治外交)는 한왕한제(韓王韓帝)의 고유 권한[固有權]이요, 백만방리의 高山麗水는 한남한녀(韓男韓女)의 공유 재산[共有産]이요, 기골문언(氣骨文言)이 구아(歐亞)에 뛰어난[拔粹] 우리 민족은 능히 자국을 옹호하며 만방을 화합하여 세계에 공진할 천민(天民)이라, 우리나라의 털끝만한 권한[韓一部의 權]이라도 이민족[異族]에게 양보할 의무가 없고, 우리 강토의 촌토[韓一尺의 土]라도 이민족이 점유할 권한이 없으며, 우리 나라 한 사람의 한인[韓一個의 民]이라도 이민족이 간섭할 조건이 없으니, 우리 한(韓)은 완전한 한인(韓人)의 한(韓)이라.
슬프도다 일본의 무력과 재앙[武孼]이여. 임진 이래로 반도에 쌓아 놓은 악은 만세에 엄폐[可掩]치 못할 지며, 갑오 이후 대륙에서 지은 죄는 만국에 용납[能容]지 못할지라. 그들이 전쟁을 즐기는[嗜戰] 악습은 자보(自保)니 자위(自衛)니 구실을 만들더니, 마침내 하늘에 반하고 인도에 거스르는[反天逆人] 보호 합병을 강제[逞]하고, 그들이 맹세를 어기는[□[*변할 투]盟] 패습(悖習)은 영토니 문호니 기회니 구실을 거짓 삼다가 필경 몰의비법(沒義非法)한 밀관협약(密款脅約)을 강제로 맺고[勒結], 그들의 요망한 정책은 감히 종교와 문화를 말살하였고, 교육을 제한하여 과학의 유통을 막았고[防□[*막을 알]], 인권을 박탈하며 경제를 농락하며 군경(軍警)의 무단과 이민이 암계(暗計)로 한족을 멸하고 일인을 증식[滅韓殖日]하려는 간흉을 실행한지라.
적극소극(積極消極)으로 우리의 한(韓)족을 마멸시킴이 얼마인가.
십년 무력과 재앙의 작란(作亂)이 여기서 극에 이르므로 하늘이 그들의 더러운 덕[穢德]을 꺼리시어[厭] 우리에게 좋은 기회[時機]를 주실새, 우리들은 하늘에 순종하고 인도에 응하여[順天應人] 대한독립을 선포하는 동시에 그들의 합병하던 죄악을 선포하고 징계하니[宣布懲辨],
1. 일본의 합방 동기는 그들의 소위 범일본주의를 아시아에서 실행함이니, 이는 동아시아의 적이요,
2. 일본의 합방 수단은 사기강박과 불법무도와 무력폭행을 구비하였으니, 이는 국제법규의 악마이며,
3. 일본의 합병 결과는 군경의 야만적 힘[蠻權]과 경제의 압박으로 종족을 마멸하며, 종교를 억압하고 핍박(抑迫)하며, 교육을 제한하여 세계 문화를 저지하고 장애[沮障]하였으니 이는 인류의 적이라,
그러므로 하늘의 뜻과 사람의 도리[天意人道]와 정의법리(正義法理)에 비추어 만국의 입증으로 합방 무효를 선포하며, 그들의 죄악을 응징하며 우리의 권리를 회복하노라.
슬프도다 일본의 무력과 재앙이여! 작게 징계하고 크게 타이름[小懲大戒]이 너희의 복이니 섬은 섬으로 돌아가고, 반도는 반도로 돌아오고, 대륙은 대륙으로 회복할지어다.
각기 원상(原狀)을 회복함은 아시아의 바램[幸]인 동시에 너희도 바램이러니와, 만일 미련하게도 깨닫지 못하면 화근이 모두[全部禍根] 너희에게 있으니, 복구자신(復舊自新)의 이익을 반복하여 알아듣게 타이를 것[反復曉諭]이다.
보라! 인민의 마적이었던 전제와 강권은 잔재가 이미 다하였고, 인류에 부여된 평등과 평화는 명명백백[白日이 當空]하여, 공의(公義)의 심판과 자유의 보편성은 실로 광겁(曠劫)의 액(厄)을 일세(一洗)코자 하는 천의(天意)의 실현함이요, 약국잔족(弱國殘族)을 구제[濟]하는 대지의 복음이라.
장[大]하도다 시대[時]의 정의[義]여. 이때를 만난 우리는 함께 나아가[共進] 무도한 강권속박(强權束縛)을 해탈하고 광명한 평화독립을 회복함은, 하늘의 뜻을 높이 날리며 인심을 순응시키고자 함이며, 지구에 발을 붙인 권리로써 세계를 개조하여 대동건설을 협찬하는 소이로서 우리 여기 2천만 대중의 충성[赤衷]을 대표하여 ,감히 황황일신(皇皇一神)께 분명히 알리고[昭告] 세계 만방에 고하오니[誕誥], 우리 독립은 하늘과 사람이 모두 향응[天人合應]하는 순수한 동기로 민족자보(民族自保)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함이요, 결코 목전의 이해[眼前利害]에 우연한 충동이 아니며, 은혜와 원한(恩怨)에 관한 감정으로 비문명한 보복수단에 자족한 바가 아니라, 실로 항구일관(恒久一貫)한 국민의 지성이 격발하여 저 이민족으로 하여금[彼異類] 깨닫고 새롭게 함[感悟自新]이며, 우리의 결실은 야비한 정궤(政軌)를 초월하여 진정한 도의를 실현함이라.
아 우리 대중이여, 공의로 독립한 자는 공의로써 진행할지라, 일체의 방편[一切方便]으로 군국전제를 삭제하여 민족 평등을 세계에 널리 베풀[普施]지니 이는 우리 독립의 제일의 뜻[第逸意]이요, 무력 겸병(武力兼倂)을 근절하여 평등한 천하[平均天下]의 공도(公道)로 진행할지니 이는 우리 독립의 본령이요, 밀약사전(密約私戰)을 엄금하고 대동평화를 선전(宣傳)할지니 이는 우리 복국의 사명이요, 동등한 권리와 부[同權同富]를 모든 동포[一切同胞]에게 베풀며 남녀빈부를 고르게 다스리며[齊], 등현등수(等賢等壽)로 지우노유(知愚老幼)에게 균등[均]하게 하여 사해인류(四海人類)를 포용[度]할 것이니 이것이 우리 건국[立國]의 기치(旗幟)요, 나아가 국제불의(國際不義)를 감독하고 우주의 진선미를 체현(體現)할 것이니 이는 우리 대한민족의 시세에 응하고 부활[應時復活]하는 궁극의 의의[究竟義]니라.
아 우리 마음이 같고 도덕이 같은[同心同德] 2천만 형제자매여! 우리 단군대황조께서 상제(上帝)에 좌우하시어 우리의 기운(機運)을 명하시며, 세계와 시대가 우리의 복리를 돕는다.
정의는 무적의 칼이니 이로써 하늘에 거스르는 악마와 나라를 도적질하는 적을 한 손으로 무찌르라. 이로써 5천년 조정의 광휘(光輝)를 현양(顯揚)할 것이며, 이로써 2천만 백성[赤子]의 운명을 개척할 것이니, 궐기[起]하라 독립군! 제[齊]하라 독립군!
천지로 망(網)한 죽음[一死]은 사람의 면할 수 없는 바인즉, 개·돼지와도 같은 일생을 누가 원하는 바이리오. 살신성인하면 2천만 동포와 동체(同體)로 부활할 것이니 일신을 어찌 아낄 것이며 집안이 기울어도 나라를 회복되면[傾家復國] 3천리 옥토가 자가의 소유이니 일가(一家)를 희생하라!
아 우리 마음이 같고 도덕이 같은 2천만 형제자매여! 국민본령(國民本領)을 자각한 독립임을 기억할 것이며, 동양평화를 보장하고 인류평등을 실시하기 위한 자립인 것을 명심할 것이며, 황천의 명령을 크게 받들어(祇奉) 일절(一切) 사망(邪網)에서 해탈하는 건국인 것을 확신하여, 육탄혈전(肉彈血戰)으로 독립을 완성할지어다.
건국기원 4252년 2월 일
김교헌(金敎獻) 김규식(金奎植) 김동삼(金東三) 김약연(金躍淵) 김좌진(金佐鎭) 김학만(金學滿) 여준(呂準) 유동열(柳東說) 이광(李光) 이대위(李大爲) 이동녕(李東寧) 이동휘(李東輝) 이범윤(李範允) 이봉우(李奉雨) 이상룡(李相龍) 이세영(李世永) 이승만(李承晩) 이시영(李始榮) 이종탁(李鍾倬) 이탁(李□) 문창범(文昌範) 박성태(朴性泰) 박용만(朴容萬) 박은식(朴殷植) 박찬익(朴贊翼) 손일민(孫一民) 신정(申檉) 신채호(申采浩) 안정근(安定根) 안창호(安昌浩) 임방(任) 윤세복(尹世復) 조용은(趙鏞殷) 조욱(曺煜) 정재관(鄭在寬) 최병학(崔炳學) 한흥(韓興) 허혁(許爀) 황상규(黃尙奎)
<해설>
작성 일자는 선언서 말미에 적힌 대로 1919년 2월 무렵이며, 실제로 발표⋅배포된 것은 1919년 3월 3⋅1 운동 직후로 알려져 있다. 선언서에 이 선언에 참여한 주체로 모두 39명의 이름이 올라와 있으며, 이들은 1910년대 국외 민족 운동을 주도하던 저명 운동가들이다.
이 독립 선언서는 3⋅1 운동의 국제적 환경과 마찬가지로 1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 질서 재편 과정에서 민족자결의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조선 독립의 기회를 얻고자 작성되었다. 1차 세계 대전의 종전에 즈음하여 세계 대전과 같은 미증유의 재앙을 방지하고자 강대국들 사이에서 국제연맹을 창설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한편, 미국 측에선 민족 자결주의를 표방하였으며, 1차 세계 대전 중 혁명이 일어난 혁명 러시아 정부에서도 약소 민족의 민족 자결을 보장하겠다는 선언이 나왔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수많은 민족 운동가들은 한국이 독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인식하였다. 물론 독립이 저절로 주어지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세계 질서의 변화라는, 독립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인식을 했던 것이다. “천(天)이 아(我)에게 호기(好機)를 사(賜)하실새”라는 표현이나 “서민의 마적(魔賊)이든 전제(專制)와 강권(强權)은 여도(餘熖)가 이진(已盡)하고 인류에 부여(賦與)한 평등과 평화는 백일(白日)이 당공(當空)하야 공의(公義)의 심판(審判)과 자유의 보편(普遍)은 실로 광겁(曠刼)의 액(厄)을 일세(一洗)코져 하는 천의(天意)의 실현함이오. 약국잔족(弱國殘族)을 구제(救濟)하는 대지(大地)의 복음(福音)”이라는 표현이 이 같은 정세 인식을 보여 준다. 세계 질서 변화에 대한 이 같은 인인식은 당시의 여러 독립 선언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데, 예를 들어 「기미 독립 선언서」의 “위력(威力)의 시대가 거(去)하고 도의(道義)의 시대가 내(來)하도다”와 같은 표현에서 그를 알 수 있다.
「대한 독립 선언서」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대한민주(大韓民主)의 자유를 선포”한다는 표현과 “동권동부(同權同富)”, “등현등수(等賢等壽)”라는 표현이다. 이는 ‘민주’와 ‘평등’을 선언하는 내용으로, 독립 국가의 지향으로 ‘민주’와 ‘평등’을 표방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1910년 나라가 망한 이후 국외의 민족 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이전의 왕을 복위한다는 복벽주의(復辟主義)적 전망이 남아 있었다. 1914년 1차 세계 대전 이후 러시아령 연해주와 중국령 간도 등지에서 활동하던 망명 민족운동가들이 러시아, 중국 등의 압박으로 근거지를 옮기게 되자 중국 상하이 지역을 근거지로 신한혁명당을 조직하였다.
신한혁명당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이 독일에 선전 포고하자 독일의 전승을 기대하며 일본과의 일전을 준비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세계정세가 신한혁명당이 기대한 바와 반대로 전개되자 신한혁명당 자체의 활동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으나, 이후 신한혁명당 등에서 활동하던 상대적으로 젊은 활동가들이 국외 민족운동가의 단결을 호소하며 1917년 「대동 단결 선언」을 발표하였다. 「대동 단결 선언」에서는 융희 황제, 즉 순종이 주권을 포기한 것을 국민에게 주권을 양도한 것으로 보았다. 주권이 왕에게서 국민으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대동 단결 선언」은 1910년대 복벽주의적인 전망을 버리고 민이 주권을 가지는 공화국을 명시적으로 표방한 선언이다. 이 같은 인식이 「대한 독립 선언서」에 이어지고 확장하여 ‘대한민주’라는 표현이 나온 것이다. 실제로 「대동 단결 선언」과 「대한 독립 선언서」의 기초자가 모두 조소앙이며, 두 선언의 주체들 역시 상당 부분 겹친다. 따라서 1917년 국외 민족운동가들 사이에서 국민 주권 사상이 표방된 이후 그 같은 사상이 지속 강화되어 1919년 「대한 독립 선언서」에도 명백히 표명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한 독립 선언서」는 국외 민족운동가들의 중추가, 1차 세계 대전 이후 새로운 세계 질서 모색이란 정세 하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탈법⋅무도한 한국 점령을 끝내고 ‘대한민주’의 자립을 이루고자 독립군과 한민족 모두에게 최후의 순간까지 투쟁할 것을 호소한 선언이다.
<관련뉴스>
잊혀진 최초의 독립선언 '무오 선언'(입력 2017.02.01 21:49 김도엽기자 (yop21@kbs.co.kr ))
<앵커 멘트>
1919년 3.1 운동이나 2.8 독립선언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에 앞선 2월 1일, 만주에서도 민족 대표 39명이 독립을 선포한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이름하며 '무오 독립선언' 이지만,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중국 동북 3성 교민들의 노력으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김도엽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고구려의 수도 졸본성이 있었던 중국 요녕성의 한 마을, 외롭게 서 있는 기념비가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윤세복 선생이 항일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만들었던 배움터가 있었던 곳입니다.
1919년 3.1 운동이 거행되기 한 달 전 윤세복 선생을 비롯한 민족대표 39명이 이곳 만주에서 대한독립을 선포했습니다.
<녹취> 무오독립선언서 낭독 : "이민족 전제의 학대와 억압을 해탈하고 대한민주의 자립을 선포하노라."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선언으로 2.8독립선언과 3.1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지금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전정혁(역사연구가) : "항일 인재를 배양하는 학교를 설립하고, 다시 39명이 길림시에서 무오 독립선언을 선포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깊습니다."
무오독립선언을 기리기 위해, 중국 동북3성 지역의 후손들이 5년 전부터 기념식을 열고 있습니다.
조소앙, 김좌진, 안창호 등 해외에서 독립 투쟁을 벌이던 39인이 외쳤던 독립의 함성이 중국 동포들을 통해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양에서 KBS 뉴스 김도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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