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구 선생의 동시 평론집 《해묵은 동시를 던져 버리자》(창비 2014)가 나왔다.
2박3일 모처에서 놀다 오니까 책이 대문 앞 냥이 밥통 위에 올려져 있었다.
간밤 비가 오더니 책 봉투가 좀 눅눅하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책이다.
김이구는 2000년대 중반부터 동시 비평의 최전선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2010년대의 동시 부흥은 뭔가 두서너 개쯤 이 빠진 모양새가 되었을 것이다.
김이구는 소설과 동화도 쓰지만 주업은 어디까지나 비평이다.
그중에서도 동시 비평가로서의 면모가 가장 빼어나지 않나 싶다.(딴 건 모른다.^^)
(그는 오랫동안 출판사 창비와 《창비어린이》의 편집자이기도 했고,
현재는 창비 교과서 부문 책임자이기도 하다.)
책을 만져본다.
무엇보다 그립감이 좋다.
적당한 크기,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는 무게.
책 표지 제목 디자인은 창문을 여는 모양을 형상화한 듯하다.
창을 열고, 해묵은 동시를 탈탈 털어버리거나 던져 버리자는 의미를 담은 듯하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시 한 편 생각 한 뼘'은 《동시마중》에 연재한 글들을 모아놓은 것으로, 동시 한 편 혹은 시 한 편을 놓고 생각을 펼쳐나간 글이다. 이 책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읽을 수 있는 부분으로, 김이구 글쓰기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린 글들을 묶었다.
'제2부 오늘의 동시, 어디까지 왔나'는 말 그대로 2005년 이후 현재까지의 동시단의 주요 쟁점과 현황을 개관하면서 그 스스로 쟁점을 생산하거나 논쟁에 가담한 것을 모았다.
'제3부 개성과 성찰의 눈'은 김륭, 정유경, 권오삼, 유강희, 김명수, 김미희, 배창환 조재도 등의 작품집 해설을 모은 부분이다.
나는 표4에, 선생의 비평집이 갖는 의미를 몇 자 적었다. 과장된 듯하지만, 조콤도 과장 아닌 백퍼 진심이다.
선생의 평론집과 내 책을 나란히 놓아본다. 다정하다.
선생은 내가 비평 비스름한 것을 쓸 수 있게 《창비어린이》에 자리를 주고,
못 썼을 때는 빠꾸를 놓아, 나와 내 글을 단련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내 책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에 실린 글 가운데 가장 앞선 글인
〈'놀이'의 시가 주는 즐거움―최승호 동시집 《말놀이 동시집1》〉이 그런 글이다.
선생과 같은 시대에 동시의 길을 걷게 되어 기쁘다.
예전에 선생은, 이안은 시보다 비평이 좋아, 이런 예의(4가지) 없는 말씀을 한 적 있는데,
언젠가 선생으로부터 그게 아님을,
이안은 역시 좋은 시인이야, 이런 말을 듣게 되면 좋겠다.ㅋㅋ
며칠 전 놀던 곳에서 찍어 왔던
칸나 사진을 축하의 뜻으로 선생께 드린다.
동시를 향한 선생의 애정과 열정이
저 칸나처럼 언제나 붉기를!
그러면 나는 저 붉은 칸나의 날개에 살짝 붙은 고추잠자리처럼 기분이 아리아리 좋으리라.
잎은 꽃을 못 보고 꽃은 잎을 못 본다는 상사화.
이 절대적인 불가능!
불가능이 가능태로 일시적으로 현현할 때
사랑은 발생한다.
하필 굼벵이가 상사화 꽃잎 위에 올라가 허물을 벗은 우연이,
하필 그 옆에 고추잠자리가 앉은 우연이,
하필 그 곁을 지나가던 내가 사진을 찍은 우연이,
이런 불가능이 만난 사랑이,
2010년대 동시단이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 우연과 절대적인 불가능이 일시적으로 현현한 사태가 흩어지지 않도록
조콤씩 더 애써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나는 선생과 유쾌한 술자리를 마련하야 2박3일
통음과 가무, 스킨십을 일삼아야 하겠다.
(술값은 선생이 내주시겠다.)
며칠 전 페북에 썼던 글로 《해묵은 동시를 던져 버리자》의 탄생을 축하드린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나와 당신 사이에 흐르는
불가능 때문입니다."
첫댓글 며칠 전 알모책방에 꿈쳐놓은 이 책, 얼렁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