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열, 감동, 기쁨, 즐거움의 의미는? - 영혼의 샘
우리 모두는 살면서 희열, 기쁨, 즐거움, 감동을 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될 수있으면 느꼈으면 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느낄 수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열심히 일한 다음에 얻는다고 하는 희열, 감동, 기쁨, 즐거움을 인간의 본성 관점으로 살펴보고, 그 의미를 통해서 누구라도 느꼈으면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희열, 감동, 기쁨, 즐거움은 보이는 물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신분야이다. 그래서 느끼기가 어렵고, 또 어떻게 가능한지 그 방법도 분명하게 제시되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를 정신과학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는 육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그리고 '나'(자아)이다. 이 네 가지가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고 발전시킨다.
육체는 가시적으로 보이는 요소로 건강하게 관리해야 한다. 에테르체는 생명의 힘으로 물질 육체의 생명을 유지한다. 에테르체는 우주 공간에 널리 퍼져있으며, 인간의 내부와 외부에서도 빛과 같이 -끊임없이- 반짝이면서 생명을 유지한다. 아스트랄체는 기쁨, 슬픔, 분노 등등의 감정체로 영혼활동인 공감과 반감을 주도한다. '나'(자아)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존재의 핵심이다. 이 네 가지 구성체가 인간의 정신을 이루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침투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며 성장한다.
희열, 감동, 기쁨, 즐거움은 인간의 자아가 얻는 일종의 열매(정신)이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에테르체는 생명을 유지하는 힘, 예컨대 호흡을 하고 맥박이 뛰는 힘이다. 또 이 힘은 인간의 의지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밥을 먹고 일을 하고 걷는 등등은 의지를 내어야 가능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지가 인간의 생명활동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의지를 내는 것이 쉽지않고, 또 의지를 낸다면 불가능한 일이 없는 것이다.
에테르체는 아스트랄체와 연결되어 있다. 아스트랄체는 감정체이므로 강력하게 소망하면 의지로 연결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때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 짐작할 수가 있다. 그 일을 하고자 해야 에테르체에게 전달되고 의지가 나오는 것이다. 에테르체는 자아와도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내가 의지를 내고자 하면 낼수가 있다.
문제는 인간이 깨어있는 현실의 삶에서는 자아가 상속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상속의 자아와 (본질)자아가 존재한다. 그리하여 현재 우리 모두는 상속의 자아만 만나므로, 본질자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라. 우리가 기쁨을 느낄 때 상속의 자아가 기쁠 때 기쁨을 느낄까, 본질자아가 기쁠 때 기쁨을 느낄까. 예를 들어 갖고 싶은 물건을 가졌을 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는다. 반면 지금은 느끼지 못하더라도 오래도록 남는 기쁨도 있다. 어떤 일이 본질자아가 느끼는 기쁨일까?
필자도 과거를 돌이켜보면, 아이들에게 '보편사랑'을 주었을때 그 당시는 느끼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새록새록 기쁨이 내부에서 나온다. 나아가 입가에 빙그레 미소도 지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내부에서 나오는 기쁨이 본질자아의 기븜이다. 결론은 본질자아가 기뻐하는 그런 기쁨을 느껴야 하고, 이것이 희열, 감동, 기쁨, 즐거움이라는 말이다. 요컨대 상속의 자아가 느끼는 기쁨이 아니고, 본질자아가 느끼는 기쁨을 우리는 느껴야 한다.
그렇다면 본질자아는 언제 기쁨을 느끼는가? 바로 말하면 상속에서 자아가 상을 벗는 순간이다. 즉 본질자아가 드러난 순간, 아주 찰나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본질자아가 드러나는 순간은 언제 일까이다. 인간이 의지를 낼 때를 보면, 인간이 의지를 내면 일단 에테르체가 반응한다. 이는 에테르체가 반짝인다는 의미이다. 그 반짝임이 우주에 연결되면, 순간 본질자아가 상을 벗는다. 나의 에테르체가 우주에 연결되었기 때문에 본질자아가 상을 벗는 것이다. 그 순간은 아주 짧지만, 인간의 내부가 빛으로 환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인간의 내부가 빛으로 드러나는 이유는, 인간이 의지를 내면 인간의 에테르체가 우주에테르에 연결된다. 나의 에테르체가 우주 에테르에 연결되면 -본질자아는 원래 우주에테르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순간 본질 자아가 내 속에서 반짝 빛으로 빛난다는 의미이다. 중요한 것은 본질자아의 속성에 맞아야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즉 본질자아의 속성에 맞아야 한다. 되풀이 하지만 본질자아의 속성에 맞으니 본질자아가 드러나는 것이다. 본질자아의 속성은 삼라만상이 '하나'라는 관점이다. 따라서 나의 본질자아도 삼라만상과 같이 움직이며, 같은 힘으로 생명이 유지된다. 내가 의지를 낼때, 그 의지의 관점이 삼라만상과 하나일 때 나의 에테르체가 우주에테르에 연결되고, 그 순간 본질자자아가 반짝 드러나는 것이다. 그때 우리가 희열을 느낀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본질자아가 우주에테르에 연결되어있는 사실을 모르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인간의 에테르체는 인간이 탄생할때 우주 에테르에서 편취해 온다. 이때 편취한 우주에테르를 인간은 평생동안 유지하지만, 인간의 의식이 생기면서 이런 사실을 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인간의 본질자아는 계속 우주에 연결되어 있다. 다만 내가 모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이 본질자아의 관점으로 의지를 내면, 나의 에테르체가 우주 에테르에 반응할 것이고, 본질자아가 드러나는 것이다. 에테르체의 반응은 에테르체의 속성에 기인하는 바, 내가 반응하라고 해서 반응하지는 않는다. 그 속성에 맞아야 우주에테르가 반응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자아는 인간의 의식이 삼라만상과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상속에 들어간다. 이를 달리 말하면 인간의 의식이 삼라만상과 하나가 되면 본질자아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의지를 내어야 나의 에테르체가 우주에테르에 반응하고, 순간 본질자아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말하면 우주 에테르와 본질자아는 같은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테르체가 반응하는 순간 본질자아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 순간이 우리가 현실의 삶에서 느끼는 희열이다.
이를 영혼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영혼의 속성을 이해해서 희열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영혼은 육체를 통하여 사고, 감정, 행동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런데 문제는, 영혼이 활동그 자체가 된다는 것에 있다. 예를 들어 영혼이 사고로 드러나면 영혼은 사고자체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희열을 느낀다면, 영혼은 희열 자체이다. 그러므로 내가 영혼이 희열을 느끼도록 '바깥'에서 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희열을 영혼이 자주 느껴야 그 순간마다 본질자아가 드러나고 종내는 영혼의 샘이 터지게 되기 때문이다. 한번 영혼의 샘이 터지면 그 다음부터는 그 일에 대해서 우주에테르의 힘을 활용하므로 인간의 힘이 아닌 신의 힘으로 그 일을 할 수가 있다. -세계적인 존재가 되는 사람들의 경우이다-.
이를 슈타이너의 표현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 "사람의 영혼은 일단 한번 터져나오면 결코 막을 수없는 샘같은 것이어서 그렇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게을러서 그 영혼 안에 있는 것이 터져나오도록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따름입니다. (발도로프 교육예술, 2017, 93)."
그러므로 결론은 영혼의 샘이 터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속성을 파악해서, 영혼이 기뻐하도록 영혼이 즐겁도록 -내가- 해야 한다. 즉 어떤 일을 할때 즐겁지 않다면 '내'가 즐겁도록 하는 것이다. 감정을 컨트롤한다는 의미이다. 그 방법은 지식으로 많이 나와 있다. 하는 일에 관해서 정보를 찾고 또 끈기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두 번째, 나역시 삼라만상과 같은 존재임을 자각하고 그런 관점에서 의지를 내야 한다. 내가 이 일을 해서 인류를 위해서 도움이 되고자 한다 등등. 겸손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세 번째, 언제나 자신의 내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인간의 외부에서 평정한 마음과 침착한 마음을 가지면 영혼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런 마음이 영혼을 열게한다. 마지막,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영혼의 샘은 물의 끊는 점과 같다. 끊기 전까지는 반응이 없다가 끊는 점에 도달하는 순간 영혼의 샘이 터진다. 그러므로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필자도 어려움을 겪을 때 그만두지 않고 오히려 목숨을 걸었다. '죽어도 좋다'라는 심정으로 담대하게 나아갔더니 그것이 오히려 어려움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이와 같이 정신은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간다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어려움을 이겨낸다. 역시 정신의 속성이다.
누구라도영혼의 샘이 터지면 하는 일이 즐겁고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일에 대해서 창조도 한다. 영혼이 하는 일이 창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영혼의 샘이 터지는 일이다. 영혼의 속성을 파악해서, 누구라도 영혼의 샘이 터졌으면 한다.
여담으로 임윤찬 피아니스트에게 아나운서가 질문을 했다. "연습은 얼마나 언제까지 하느냐?" 임윤찬 피아니스트 대답, "쓰러질 때까지 한다." 이것이 정신의 속성으로, 결과 영혼의 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