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사태가 미국, 영국 등 다국적군의 시각에서 주로 보도되고 있기 때문에 이라크인들의 진실이 왜곡되고 있을 수 있다는 관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라크인들(특히 테러리스트들)의 입장을 우리 역사상의 독립투사 혹은 "열사"들과 비슷하다고 보는 것은 반대합니다.
첫째로, 이라크는 단순히 약소국이었기 때문에 강대국의 침략정책에 일방적으로 희생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랍의 패권을 추구하였습니다. 자국 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등을 겨자탄 등 비인도적인 화학무기를 동원하여 대량학살한 죄악이 있습니다. 또 이웃 나라 -진짜 이라크에 비해 약소국이지요-인 쿠웨이트를 침략하여 노략질한 죄악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라크는 소수민족의 기본적인 인권을 유린한 책임을 면할 수 없고 이웃나라를 침략한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이웃나라 이란과 더불어 오랜 시간 전쟁을 했던 것도 그들이 약소국이 아니고 아랍의 강대국이었으며 패권을 추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까?
미국이 구소련 해체 이후 - 특히 9.11 테러 이후 - 이성을 잃고 하드파워에 의존하는 패권국가가 되었지만, 이라크 역시 조금 작은 패권국가였을 따름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이라크와 미국의 관계는 통상적인 의미의 피해자 약소국과 가해자 강대국 혹은 약한 선인과 강한 악인의 관계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이 관계는 악인과 악인, 조금 작은 패권국가와 큰 패권국가의 피할 수 없는 충돌일 뿐입니다.
패권국가는 인류사회의 공동번영을 통한 <평화의 질서>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통한 압제, 피지배자에 대한 수탈, 자기 세계관의 강요를 통한 <침묵의 질서>를 원할 뿐입니다. 이 점에서 후세인 치하의 이라크나 부시 치하의 미국은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고 보며 그런 뜻에서 현재의 이라크 테러리스트들을 독립투사 혹은 "열사"로 보는 관점에 대하여 저는 반대합니다.
둘째로, 이라크 테레리스트들이 벌인 소행이란 관점에서도 그들은 우리 역사상의 독립투사들에 비교될 만한 "열사"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천랑성주님이 제시한 다음과 같은 의견에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의사는 일본 군부나 정계, 또는 경제계의 수뇌인물들이나 통치기관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지, 일본 민간인들을 타겟으로 하여 테러한 적은 없다. 아무리 살인자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이것이 그의 범죄에 영향을 미쳤어도, 그의 살인에 대한 변명이 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만약 이 테러단체가 미군이나 영국군을 공격을 하였다면 차라리 이해를 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비겁하게도 민간인을 살해의 대상으로 설정을 한 것이다. 이들 테러단체를 본인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고한 민간인을 죽인 살인자들이다....
또 이라크의 테러리스트들은 심지어 세계평화 유지의 권능을 지닌 유엔과 그 산하의 인도적인 구호단체들마저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미 몇몇 유엔 직원들이 테러로 희생되었지요. 저는 과문한지는 몰라도 우리의 선조들이 독립이란 명분으로 보편적인 국제기구의 직원들을 살해하고 무고한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인질극을 벌였다는 기록은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라크 테러리스트들을 독립투사 혹은 "열사"로 보지 않는 두번째 이유입니다.
셋째로, 이라크 테러리스트들은 단지 이라크를 정치적으로 외세로부터 독립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 중 다수는 극단적이고 복고적인 종교 이데올로기로 무장하여 소위 "이슬람국가 건설"을 추구하며 아랍에서 일체의 외국 세력을 몰아 내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한국 민간인 김선일씨의 목을 베어 무참히 살해한 테러집단의 수괴인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란 자만 하더라도 자신은 이라크인이 아닌 요르단 출신으로서 요르단 정부를 전복하고 이슬람국가를 대신 수립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나라는 아마도 이제는 무너져 버린 과거 아프가니스탄의 혁명정부와 같이 코란 이외에는 모든 사상과 철학, 종교들을 배척하고 여자와 어린이들을 "보호"라는 미명하에 인격을 무시하고 교육을 하지 않으며 인류의 문화 유산들을 "우상"이라는 한 마디의 단정으로 폭파해 버리는 그런 나라일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이 추구하는 이슬람국가란 폐쇄적이요 독재적이며 복고적인 종교 광신자들이 지배하는 어둠의 나라일 뿐입니다. 이것은 아랍인들을 비민주적이고 부패한 정권들로부터 구해내어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상과 종교의 자유, 교육을 받을 권리, 양성의 평등마저 박탈된 독재적 신정국가의 신민으로 만들 뿐입니다.
이것이 제가 이라크 테러리스트들을 독립투사 혹은 "열사"로 보지 않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이상과 같은 저의 주장에 대하여 토론을 하고자 합니다. 날카로운 반론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2004년 6월 24일 목요일
월계자 드림
* 추신: 이라크 테러리스트들은 이라크 등 아랍에 우호적이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라크 평화재건을 위해 헌신하려던 한국민들의 의욕을 저하시겼습니다. 또한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동질감을 느끼던 사람들에게 이질감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를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제가 김선일씨 살해범과 같은 류의 이라크 테러리스트들을 옹호하지 않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