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유의 국토 인식 체계인 신경준(申景濬)의 산경표(山經表)
7월 16일 고문진보 강의를 맡으신 경상국립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이영숙 선생님께서 선조들이 산행 후에 쓴 기록을 따라 답사하고, 그곳에 기록된 내용과 현재의 환경을 객관적으로 비교함과 동시에 학문의 발전과 과학적 장비로 인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을 고찰하여 비교해 기록함으로써 차후 그 길을 답사하는 분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팀을 짜서 등산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중이라고 하셨다.
사실 나도 한때 등산을 좋아하여 우리나라 명산이라 일컬어지는 산을 두루 찾아다니기도 하고, 김종직의 『유두류록(遊頭流錄)』 기록을 따라 구간을 나누어 답사한 적도 있다. 백두대간을 구간별로 나누어 걷기도 하고, 5대 적멸보궁을 방문함은 물론 소재한 산도 등산하였으며,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산의 대부분을 등산했다.
산행(山行)은 대지 위에 새겨진 역사와 문화를 읽어내는 인문학적 여정이자, 선조들의 숨결을 따라 걷는 시공간적 공감의 활동이다.
과거 김종직 선생이 지리산을 오르며 『유두류록(遊頭流錄)』을 남겼듯, 우리 선조들은 산행 후에 자신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으로 남기곤 했다.
과거와 현재는 문화적 관점에서나 환경적 관점에서 볼 때 많은 차이가 있다.
이렇게 변한 상황을 간과하고 조상들이 걸었던 그 길을 현재의 여건에서 답습하여 객관적으로 비교 고찰하는 작업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학문적 실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답사가 온전한 지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을 바라보는 지리적 관점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1900년대 초에 ‘고토 분지’라는 일본의 지질학자가 우리나라 산천을 둘러보고, 지질에 기반한 현대의 서양식 산맥 체계를 논문으로 발표했는데 해방 후에 우리나라는 이 사람의 이론에 따라 산맥 체계를 세운 지형도를 교과서에 채택하여 학교에서 가르침으로 인해 우리나라 고유의 산맥 체계인 대간, 정간, 정맥의 개념이 없어졌다.
1. 조선 후기 실학자 여암 신경준이 정립한 『산경표(山經表) 』의 유기체적 국토 인식을 복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산경표』의 핵심인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양 도성의 지형적 특성과 백두대간의 정기가 서린 5대 적멸보궁의 위치를 깊이 있게 고찰할 때, 우리는 비로소 국토와 인간이 맺어온 오랜 서사를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과 국토의 유기적 네트워크『산경표』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절대 법칙은 '산자분수령'이다.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되니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이 물리적 법칙은 우리 국토를 1대간, 1정간, 13정맥의 체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서양 지리학이 지질학적 변동에 따라 가상의 선을 그은 '죽은 땅의 분류'라면, 『산경표』는 실제 지표면의 분수계(물줄기가 갈라지는 경계)와 정확히 일치하는 생활 밀착형 지리 정보다. 아무리 낮고 완만한 고개라도 물에 의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면 하나의 산줄기로 인정하고, 아무리 거대한 바위산이라도 강을 만나면 멈춘 것으로 간주하는 이 방식은 국토를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이자 유기체로 바라본 것이다.
2. 백두대간의 척추 라인과 5대 적멸보궁의 영적 설계를 고찰해 보면, 전통 지리서와 풍수서에서는 한반도의 모든 산이 백두산을 뿌리로 삼고 있다는 '조종산(祖宗山) 사상'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두산에서 뿜어져 나온 태초의 원기(元氣)는 국토의 거대한 척추인 '백두대간'이라는 중심 혈맥을 타고 남쪽으로 요동치며 흘러내려 두류산(頭流山)까지 이른다고 본 것이다. 두류산의 의미는 백두산의 천기가 지리산에 흐르고 있음을 의미하는 명칭이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와 세운 '5대 적멸보궁'은 이 백두대간의 핵심 기맥(氣脈)을 따라 정교하게 배치된 '국토의 영적 설계도'라고 할 수 있다.
5대 적멸보궁의 위치를 백두대간의 흐름과 관련지어 짚어 보면 흥미롭다.
◐. 설악산 봉정암(북부 기맥의 암기 분출) : 백두대간 북부의 가장 험준한 축을 담당하는 설악산 대청봉 바로 아래(해발 1,244m)에 위치한다. 거대한 암릉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카롭고 강렬한 '골기(骨氣)'의 정수이며, 봉황이 부처님의 이마를 향해 날아오르는 형국 속에서 거센 바위의 기운을 사리탑이 무겁게 정화하는 형세다.
◐. 오대산 적멸보궁(중부 기맥의 안정과 순화) : 백두대간의 정중앙에 해당하는 위치로, 다섯 봉우리가 연꽃잎처럼 겹겹이 보궁을 감싸 안고 있는 '연화부지형(蓮花浮地形)' 명당이다. 대간을 타고 거칠게 내달리던 기운이 이곳에 이르러 외풍을 전혀 맞지 않고 가장 아늑하고 온화하게 고여 평화로운 '적멸(寂滅)'의 상태로 순화된다.
◐. 태백산 정암사(대간의 방향 전환과 용트림) : 백두대간이 북쪽의 태백산맥에서 남서쪽의 소백산맥으로 방향을 크게 틀며 기운이 요동치는 함백산 자락에 자리한다. 땅 밑에서 거대한 지기가 솟구치는 용맥의 중심에 수마노탑을 세움으로써, 급하게 꺾여 흘러가 버릴 수 있는 국토의 기운을 단단히 묶어두는 역할을 한다.
◐. 사자산 법흥사(서축 지맥의 갈래와 포용) : 백두대간 메인 척추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쳐서 뻗어 나간 사자산 자락에 위치한다.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의 영수인 사자 형상의 산자락이 사리탑을 에워싸고 있으며, 좌우 산줄기가 독항아리 형국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대간의 웅장한 기운을 안정적으로 품어 안는 길지다.
◐. 영축산 통도사(남부 기맥의 종착과 완성) :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낙동정맥의 핵심이자 영남의 명산인 영축산 자락에 안겨 있다. 낙동강 물길이 산줄기를 감싸 안으며 태극 모양으로 휘돌아 나가는 '수구(水口)'의 대명당으로, 백두산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솟구치며 내려온 한반도 전체의 기맥을 최종적으로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완성하는 종착지다.
3. 백두산의 기운이 맺힌 한양 도성의 지형적 특성
조선이 한양을 새로운 도읍으로 정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백두산에서 시작된 땅의 기운(地氣)이 단 한 번도 물에 끊기지 않고 고스란히 한양의 중심까지 이어지는 완벽한 '기맥의 바톤 터치' 지형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을 타고 남쪽으로 내달리던 거대한 기운은 함경도와 강원도의 경계에서 '한북정맥'이라는 거대한 줄기로 갈라져 나온다. 이 한북정맥은 경기도를 가로지르며 운악산과 도봉산을 거쳐, 한양 도성의 거대한 할아버지 산인 북한산(삼각산)이라는 조산(祖山)을 우뚝 일으킨다. 북한산에 맺힌 웅장한 기운은 다시 남쪽으로 맥을 이어 뻗어 내리며 한양의 어머니 산이자 주산(主山)인 북악산(백악산)을 형성하고, 바로 이 북악산 아래 땅의 기운이 가장 조화롭게 응집된 '혈(穴)'자리에 경복궁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즉, 지형학적으로 백두산의 태초 원기가 막힘없이 경복궁 뒷마당까지 직통으로 연결되는 구조이다. 이렇게 흘러 들어온 지기(地氣)를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가두는 한양의 독보적인 지형 특성이 바로 '사신사(四神砂)'의 완벽한 배치다.
풍수지리에서는 "기(氣)가 바람을 만나면 흩어진다(氣乘風則散)" 하여 사방에서 병풍처럼 바람을 막아주는 지형을 최고의 명당으로 꼽는데, 한양은 동서남북이 네 개의 산으로 아늑하게 둘러싸여 있다.
◐. 북쪽 (현무 – 북악산) : 주산으로서 뒤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북풍을 든든하게 막아주는 천연 장벽이다.
◐. 좌측/동쪽(청룡 – 낙산) : 명당의 왼쪽을 부드럽게 감싸안으며 가문의 번창과 장자의 기상을 의미한다.
◐. 우측/서쪽 (백호 – 인왕산) : 웅장한 바위산으로 솟구쳐 오른쪽을 굳건히 지키며 재물과 군사력을 상징한다.
◐. 남쪽(주작 – 남산/목멱산) : 앞을 지켜주는 안산(案山)으로서 시야를 아늑하게 가로막아 기운이 정면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차단한다.
여기에 명당 안쪽을 흐르는 명당수이자 안수가 되는 청계천(내수)이 내부의 기운을 묶어주고, 그 바깥을 거대하게 휘감아 도는 한강(외수)이 외연의 기운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겹겹이 잠그는 형세를 완성한다. 이것이 바로 배산임수(背山臨水)와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정석을 보여주는 한양 도성의 지형적 실체이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을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 역사적인 대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무학대사는 불꽃 모양을 닮아 강한 화기(火氣)를 품은 서남쪽의 관악산을 두려워하여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아 동향(東向)으로 궁궐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유교적 예법인 남면(南面)을 중시한 정도전의 남향론이 채택되었다. 이에 따라 지형적 약점(관악산의 화기)을 보완하고자 광화문 앞에 해태상을 세우고, 숭례문 밖에 남지(연목)를 팠으며, 숭례문 현판을 세로로 길게 써서 맞불로 대응하는 등 인위적으로 氣의 흐름을 조절하는 '비보(裨補) 풍수'가 도성 곳곳에 투영되었다.
반면 산세는 훌륭했으나 서남쪽 물길이 훤히 열려 지기와 재물이 빠져나가는 지형적 한계 때문에 도읍지에서 탈락한 계룡산 신도안의 사례는, 산줄기뿐만 아니라 물길의 흐름(수세)까지 조화로워야 완벽한 터가 된다는 선조들의 엄격한 지리 인식을 잘 보여준 사례다.
4. 삶의 이정표이자 문화적 나침반이 된 지리적 지혜처럼 산자분수령에 기반한 유기체적 지형 인식은 선조들의 삶 전반에 깊은 발자국을 남겼다. 거대한 산줄기는 인위적인 장벽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경계선이 되어 사람들의 삶을 규정했다. 백두대간의 험준한 고갯길은 영동과 영서의 방언을 갈라놓았고, 소백산맥은 영남과 호남이라는 서로 다른 언어와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장벽이 되었다. 반면, 산줄기가 가두어 둔 안쪽의 분지들은 하나의 거대한 물길 공동체, 즉 수계(水系) 중심의 경제권을 형성했다. 8도 행정구역 역시 '고개의 남쪽'이라는 뜻의 영남(嶺南)이나 금강 남쪽을 뜻하는 호남(湖南)처럼 자연적 분수계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물이다. 더 나아가, 대자연의 허한 곳을 인간의 손으로 보완하는 '비보 풍수'는 국토를 대하는 선조들의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다.
지리산의 정기가 일본 후지산 쪽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들판 한가운데 평지에 실상사를 세우고, 천왕봉과 일직선상이 되는 자리에 2.4톤의 철조여래좌상을 세워 지맥을 꼭 눌러둔 호국 설화가 대표적이다.
예불 때마다 일본 지도가 그려진 범종의 당좌를 두드린 것, 역시 땅의 기운을 다스려 나라를 지키고자 한 염원의 발로였다. 또한 물과 재물이 빠져나가는 길목(수구)에 흙을 쌓아 조산(造山)을 만들거나 나무를 심어 조성한 '비보 숲(수구막이 숲)'은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인간과 대지가 상생하고자 했던 지혜로운 기술의 산물이다.
결론적으로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를 읽고 산에 오르는 것은, 단순히 지형도상의 등고선을 따라 걷는 고단한 노동이 아니라 국토라는 살아 숨 쉬는 유기체의 맥박을 짚어보고 그 속에 깃든 이야기를 읽어내는 경이로운 인문학적 체험이다. 과학적 장비와 고도화된 학문으로 과거의 기록을 객관적으로 비교·검증하는 현대적 답사 역시, 이 땅을 세포와 혈맥이 흐르는 생명체로 바라보았던 선조들의 생태적 시선 위에서 진행될 때 비로소 온전한 가치를 지닌다.
한양이 품은 완벽한 사신사의 지형적 포용력과 백두대간의 척추 라인을 따라 국토의 안녕을 기도했던 5대 적멸보궁의 지리적 배치는 우리에게 땅을 바라보는 다각적인 혜안을 열어준다.
『산경표』와 산자분수령의 법칙은 차후 선조들이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걷게 될 모든 답사자에게 국토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하고, 대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최고의 '문화적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