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일요일(Gloomy Sunday)
오래전에 보았던 ‘Gloomy Sunday’라는 영화를 다시 보았다. 한 고급식당의 아름다운 웨이트리스를 두고 세 남자가 안목 없이 마음을 조아리며 삼각 사랑을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상대인 보스는 유배로, 손님이던 독일청년은 증오의 대상으로, 직장 동료인 피안니스트는 자살로 그녀에게 아픔만 남긴다. 이들 중 피아니스트 레소 세레스(Rezso Seress, 1889-1968)는 이 영화의 주제 음악이기도 하고, 한 때 여러 젊은이를 자살로 몰았던 ‘우울한 일요일(1933)’이란 노래의 작곡자이기도 하다. 그의 삶을 통해 당시 부다페스트 사회 현상을 묘사한 영화다.
다뉴브 강을 사이에 두고 서쪽의 부다 시와 동쪽의 페스트 시가 통합하여 생긴 부다페스트, 강대국에 사이에서 수 많은 전쟁으로 사회혼란을 겪고 지금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어루만지며 사는 부다페스트 사람들, 나는 짧은 시간이나마 머무르는 동안 그들의 애환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음악적 자질을 가진 유대 청년 레소 세레스는 민족의 수난 속에서, 2차 대전 동안 그곳 모든 유대인이 그러했듯이 강제 수용소에서 모진 노동을 한다. 한 팔이 불편한 몸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곡을 쓰면서 젊은 시절을 보낸다. 그 후 음악공부를 하고 싶어 파리로 이주했지만, 풋내기 작곡가에게는 경제적,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특히 약혼녀와의 생활 불화는 그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였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일요일, 그는 파리의 작은 아파트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수심에 잠긴다. 그러던 중 문뜩 시상이 떠올라 오선지에 곡을 써 내려갔다. 그의 혼이 몽땅 실린 ‘Gloomy Sunday’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는 저명한 음반사를 찾아가 음반 제작을 타진했으나 가사와 곡이 너무 처절하다고 거절당한다. 실망스런 마음으로 다시 무명의 음반사를 설득하여 이 노래가 비로써 빛을 보게 한다. 이게 웬 일인가! 대박이었다. 영국 BBC 방송국은 연일 이 노래를 들려주었고 유럽은 물론 미주 지역까지 대 히트곡이 되었다.
그런데 이 음악에 심취한 젊은이들이 강다리에서 뒤이어 뛰어내리는 등 자살 소동이 연이어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극기야 방송을 중단시켰고 잠시 금지곡이 된 적도 있다. 아마도 사회혼란으로 좌절된 젊은이들의 심상과 맞아떨어진 결과일 것이다. 마침내 자신도 자살이란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이 노래를 헝가리 자살 노래(‘Hungarian Suicide Song)’이라 부르기도 했고, 지금은 여러 버전으로 불러지고 있다.
부다페스트의 다뉴브 강 다리에는 자살 방지용 철조망이 지금도 남아있다. 세계 자살 순위 1위 라는증거이다. 또한 이곳에는 베토벤의 사랑 이야기도 있다. 사랑하는 여성이 불치의 병으로 사망하자 그녀를 그리며 이곳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엘리자를 위하여’라는 곡을 썼다. 베토벤이 곡을 직접 연주했던 다뉴뷰강가변 한 콘서트홀에는 방문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헝가리인은 우리와 같은 몽골 피가 흐르는 마자르족의 후예들이다. 그들의 언어, 이름구조, 신체에 있는 반점 등으로 학자들은 증거를 제시한다. 이들은 과거 기나긴 세월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많은 고초를 겪었고, 근세에 와서는 여러 전쟁에 휩쓸려 아픔이 많은 민족이다. ‘Gloomy Sunday’라는 노래가 그곳 젊은이들의 가슴을 자극했던 모양이다. 최근 자살 1위 자리를 한국에 넘겨주었다는 소식이다.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은 빠른 사회변화에 따른 가치관의 혼돈으로 많은 고충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심리적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 자해로 연결되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하루 평균 45명 정도가 자살한다고 한다. 이 숫자는 한국전쟁 후 가난한 시절보다 더 많은 숫자라니, 삶이란 참말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순간의 선택이 인연이 되어 지금의 삶이 되고, 다시 원인이 되는 순환이 연속인 삶, 비록 만남이 숙명적이라 하더라도 각자의 가치관 여하에 따라서 삶이 긍정적, 희망적일 수 있고 부정적, 절망적일 수도 있다. 일상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자기 성찰과 개인 또는 사회 가치관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경쟁이 경쟁을 유발하는 사회,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이 있다’고 보는 이 사회의 현실이 젊은이들을 그토록 압박하는 것 같다. 세상이란 '뛰는 사람도 있고, 기는 사람도 있고, 나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면 좀 숨통이 트일 것 같다.이 영화를 통해서 한국 젊은이들의 자살사유를 다시 생각해 본다. 하루빨리 멎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현상을 공유하는 우리 모두가 두 손을 포개 가슴에 놓으면 답이 나오리라 믿는다.
첫댓글 "Groomy Sunday" 구르미 썬데이 젊어서 많이부르고 듣던 음악...
"엘리쟈를 위하여" 고등학교 교정이 그리운...
다시보고 들으니 새롭군요. 영화도 다시본듯 새롭고요.
감사합니다. 두번 읽고 듣고 갑니다.
살다보면 살아있기 보단 죽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여겨지는 날들이 꼭 끼여있게 마련입니다.
그 또한 친숙한 걸어가는 한 과정이거늘,
숨차게 참으로 견딜 수 없다 여기며 그 안개를 벗어나서 보면
머물다 간 자리 옹이가 보입니다.
자랑일순 없으나 지나기 전에 결코 간직하지 못했던 지긋이 견디는 힘이 악센 힘줄을 닮은.
어찌보면 살 이유보다, 살수 없는 이유 더 많을지 모르나
둘다 우리들의 찬란한 생입니다.
달샘님 안녕하세요.
날씨가 따끈해서 수박과 팟 빙수가 제 맛이 나네요.
일전에 흑백 사진전을 보았는데 색채의 단순함에 정감이 가던데요.
그래서 Casablanca 등 옛날 흑백 영화를 몇 편 보았지요. 이곳에서도
색에 화려함과 고도기술보다 투박한 색, 느스한 자연스러움에 푸근함이 느껴젔습니다.
영화 장면의 현장을 다녀와서 그러한지 한 장면 한 장면 세세하게.
방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도 고맙습니다.
물방울님 연일 수고 많습니다.
공감 합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있음이 진실이고
모두는 마음이 지어낸 허상' 이라는 선사가르침에
'그렇치'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좋은 나날 되세요
제가
한 노래를 좋아하는 편이지요. 음율이 마음에 쏙 드네요. 아, 참 좋다
레인님
살라야하는지 살려지는지는 몰라도,
생명의 존재는 늘
괴로움과 고통의 연속이라고 말을 하지 않습니까.
산등성이 홀로선 나무도 따스한 해를 맞고 있지만 비 바람과 눈보라에 견디어야 하고,
꽃은 피면 지게 마련인데 시들면 아쉬워하고.
보고 싶은 님도 늘 옆에 있으면 짜증이 날 때도 있고.
그래서 ‘모든 것이 마음이 짓는 바다’라고...
하지만
존재의 실상은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라서
그 욕심이 결국 괴로움과 고통을 만드는 연속,
기쁨은 잠시뿐...,
그래서
우울한 음악이 흐르면 공감되어 좋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님의 댓글을 대하니
동감되어 넉두리가 꼬리를 물고 있네요.
좋은 글들 많이 Tha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