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과 머저리' 를 읽고(고민영)
병신과 머저리란 말은 간단히 말해 욕이다. 요즘 학생들은 쉽게(?) 하는 말이고 뜻의 차이가 별로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분명히 두 단어에는 차이가 있다. 병신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몸이 불구가 된 사람이다. 이는 환부가 뚜렷하게 있다는 말이고, 어려움에 대해 극복 가능성이 뚜렷하게 보이는 '치유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머저리란 말은, 영어로 a fool, 그러니까 멍청이를 말한다. 머저리는 정신 상태부터 정상인과 다르다. 다시 말해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는 자기보호 본능 또는 극복의지를 상실한 상태라는 것이다. 병신의 정신 상태는 나병환자의 그 것과 같다. 나병환자들은 자신들의 병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그 것이 정상일 테다.) 그렇다면 머저리는 나병환자들의 피부 감각이나 같다. 나병환자들은 그 들의 물렁한 피부가 걸어가다가 떨어져나가도 모른다. 그 것은 극복이고 자시고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는 '머저리'상태나 다름없다.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의 제목은 사전적 의미 그대로가 주제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주인공 '나'는 같이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계획대로 되기를 바라는 완벽주의자다. 이러한 인간유형은 계획이 틀어질 가능성이 보이면 깨끗이 털어버리고 좌절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주인공 '나'는 애인을 무기력하게 떠나보내고, 그림조차 완성시키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자신이 완벽한 그림을 완성시키지 못할 거라는 가능성이 보이자 손도 대지 못하고 썩히고만 있다. 가장 중요한 건 특별하고 절실한 경험도 없이 '인간의 얼굴'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스스로 소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말해 어디서부터 이런 무기력이 시작됐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 '머저리' 와 다름없다.
하지만 '형'은 참전 세대로서 전쟁의 '경험' 을 했고 살인으로 인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병신'으로 평생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온 인물이다. 의사인 그가 수술을 하다가 환자를 살려내지 못하자 그는 또 다시 절망하고 병원을 관두고 거의 자포자기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고 이를 승화시키기 위해 소설을 쓴 것이다. 따라서 그는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병신'의 특성을 뚜렷이 보여준 셈이다.
'나'와 '형'의 차이는 '나'가 형의 소설을 스스로 마무리 짓는 것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나중에 보면 '형'은 자신이 김 일병을 죽인 관모 중사를 죽이는 것으로 마무리 짓지만, 살아있는 관모를 예식장에서 보고 소설을 불태운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삶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김 일병을 죽여 버리는 결론을 지어버린다. 이 말은, 완벽주의자의 입장을 대변하자면, 관모라는 장애물이 있어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기 힘들 때, 자포자기 해 버리는 게 낫다는 말이다. 하지만 '형'은 자신의 의지를 지켜내기가 설사 불가능하달지언정, 지켜내기 위해 노력조차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나'를 병신, 머저리라고 욕한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경험'과'관념'의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