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南漢山城)은 조선조 인조 14년(1637) 병자호란 때, 청나라의 10만 대군에 밀린 조정이
40여 일간 머물다가 굴욕적인 화친을 맺은 한 맺힌 역사의 현장이다. 화친의 조건으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포함한 주전파 군신들을 비롯해 50만 명의 부녀자가 볼모로 잡혀가 훗날 그 일부만이
되돌아왔다. 이같은 아픔을 겪으며 인조와 효종대에 걸쳐 국운을 걸고 쌓은 견고한 산성이다.
9km에 이르는 성채의 정상에는 왕실수호의 의지를 담은 수어장대(守御將臺)를 세우고, 성안에는
행궁과 관청은 물론 연무관(演武館)과 각종 무기고를 설치하고, 비상시 용수로 사용할 3개의 연못
까지 파놓았다. 그 밖에 성안에는 1천 여호에 달하는 도읍을 형성해 산성의 일상적인 관리를 하며
서울 동부지역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면모는 일제가 성안의 기구를 흐트러 광주(廣州)와
하남으로 분리해 이주시키기까지 3백년 가깝게 이어져 왔다.
따라서 남한산성은 북쪽의 개성(開城)과 서쪽의 강화성(江華城),남쪽의 수원성(水原城)과 더불어
서울 동쪽을 담당한 요새로, 전형적인 조선시대 산성 중 가장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25전란 등으로 다소 훼손되기도 했지만, 제5공화국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두 차례 찾은 것이
계기가 되어,일찍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거의 완벽한 모습을 되찾고 있다.
<10월 하순경이면 단풍이 절정을 이루게 된다는 성책길>
성벽에 올라서면 가파른 산 아래로 치옥적인 화친을 맺은 송파구 삼전동 일대와 유유히 흐르는
탄천이 손바닥처럼 내려다보이고, 멀리 굽이쳐 흐르는 한강을 따라 남산과 63빌딩 사이로 한강하
구가 아득하게 이어지며 서울 전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책을 따라 걷는 길이 부담 없이 완만해 한나절 나들이길로 더할 나위 없고,전철 남한산성역에서
성안까지 마을버스가 이어져 접근이 더욱 편하게 됐다.
해발 350~400m에 이르는 산성마을은 사방이 성책으로 둘러쌓인 아늑한 분지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요즘 같은 가을 날씨면 산 아래와 비교해 기온차가 3~4도까지 내려가기도 해, 선들선들 스치는 바
람결이 한결 상쾌하다.
복정역 사거리에서 남한산성역 삼거리를 거쳐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성안을 관통해 광주~
하남간 산업도로와 이어져 승용차로는 멋진 나들이코스를 엮어내고, 마을버스로 올라 수어장대를
거쳐 송파구 오금동과 강동구 천호동으로 내려서는 산행길은 1시간대로 크게 무리가 없다.
성안의 가을철 별미로 당도가 높기로 이름난 산성배와 머루포도를 비롯해 산성주먹두부와 산성
한정식, 산성닭백숙집 등 내력있는 토속 먹거리들도 구미를 돋우며 방문객들의 발길이 넘쳐나고
있다.
- 서리가 내려야 따는 산성배 -
남한산성의 첫 관문격인 남문을 들어서면 성안의 중심거리인 산성로타리에 닿는다. 로타리를 중
심으로 성안에서 내력이 가장 오래다는 벽제장을 비롯한 토박이 한식집들이 즐비하다.
특이한 것은 산성한정식과 산성닭백숙, 산성막걸리 등 어느것이든 "산성"이란 고유한 라벨이 앞에
나붙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어느 것이든 자랑할 만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겠지만, 남다르게 토속 별미집을 즐겨
찾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도 백제장의 산성한정식을 자녀들과 함께 두 차례나 찾았다고 한다.
<수확을 시작한 산성농원 배나무집> <서리를 맞춰가며 따내는 산성배> 배맛이 각별하기로 이름난 산성농원 배나무집(031-743-7399)은 산성로타리에서 5km쯤 길을 따라
내려간다. 5천여 평에 이르는 양지바른 배밭은 올해로 41년째 배농사를 짓고 있다는 주인 최경자
(62세)씨의 독특한 농사법이 한몫을 한다.
장심랑과 신고배 두가지 배나무가 고루 심어져 있는 배밭은 유기비료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수확
시기를 무서리가 내리는 10월 첫주~2번째주부터 따기 시작해 된서리가 내리는 11월 중순까로 잡고
있다.
나무에서 충분히 익힌 배는 껍질을 벗기는 순간, 넘치듯 흘러내리는 뱃물이 손을 다 적시고 남을
정도고, 농익은 연한 속살은 씹지 않아도 입안에 녹아들 정도로 부드럽다.
마치 설탕에 재운 듯 달고 시원한 뱃물이 참 배맛의 진수를 실감하게 해준다.
500여 그루에서 따내는 배가 결코 작은 양이 아니지만, 이미 소문이 나있어 매년 이맘때가 되면
단골 고객들이 직접 배를 사러 찾아오고, 선물용으로 미리 주문해 놓기도 해 시장에 출하할 것이
없다고 한다. 금년 시세는 1상자 18~30개를 등급에 따라, 3만~6만원까지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 한모씩 손으로 빚어내는 산성주먹두부 -
남한산성에서만 맛볼 수 있는 산성주먹두부는 100년 가까운 내력을 지니고 있다. 만드는 과정이
하도 정성스럽고 은밀해 누구나 흉내를 낼 수 없다는 남한산성의 고유한 토속 별미다.
가장 큰 특징은 두부를 빚을 때 두부모판을 사용하지 않고, 따끈한 순두부를 솥에서 한 주걱씩 떠
내 손수건 같은 하얀 면포에 싸서 한 모씩 손으로 빚는다. 주먹만한 크기의 손두부는 형체가 자연
스럽게 이뤄져, 생긴 모습이 주먹 같아 이름을 "주먹두부" 라 부른다.
올해로 66년째 두부를 빚고 있다는 오복손두부집 오창순(82세) 할머니는 16세 되던해 시집을 와
서 시어머니와 함께 손두부를 빚기 시작해 한평생을 성안 음식점들에 두부를 대주는 일로 생계를
이어왔고, 며느리 박명자(63세)씨에게 이 일을 대물림해 3대째 가업으로 잇고 있다.
산성주먹두부는 맛도 특이해 두부냄새가 전혀 없이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뛰어나, 마치 생크림을
뭉쳐놓은 듯 부드럽게 녹아드는 맛이 있다.
새벽 2시부터 시작해 하루 두 번 빚어내고 있다는 주먹두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여인의 손끝에
서 이뤄진다. 300개가 넘는 하얀 수건에 순두부를 한 주걱씩 떠내 조심스럽게 싸서 손으로 어루만
져 놓으면 간수가 서서히 빠져 나가며 두부모가 굳어지고, 식기를 기다려 수건을 풀고 찬물에 담
근다.
다행스럽게도 집 앞 텃밭에 공원주차장이 들어서면서 받은 보상금으로 새집을 짓게된 오씨 할머니
의 손자 박충환(34세)씨 부부가 오복손두부집(031-746-3567)을 열었다.
그 덕택으로 다른 손을 거치지 않고 100년 노하우를 지켜낸 주먹두부를 직접 맛볼 수 있게 됐다.
1~2층으로 이어지는 깔끔한 식당은 100석 남짓한 규모고, 산성주먹두부와 순두부를 전문으로 순수
한 참 두부맛을 선보인다.
<100년 내력을 지닌 산성주먹두부> <오복순두부집의 정갈한 산성순두부정식> 가마에서 금방 떠낸 따끈한 순두부에 밥과 7~8가지의 찬을 곁들인 순두부백반이 5,000원, 주먹두
부 두 모에 김치를 곁들인 두부김치가 6,000원. 순두부백반에 주먹두부 두 모를 얹어 두부맛을 고
루 맛볼 수 있도록 한 오복순두부정식이 2인분을 기준해 2만5,000원이다.
식당문을 연지는 오래지 않았지만, 이곳의 두부맛을 본 고객들의 거의가 지금까지 맛볼 수 없었던
신비한 맛에 이제는 다른 두부를 먹을 수 없다며 계속 단골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 서울과 호남 양반집의 상차림이 맥을 이룬 산성한정식 -
<40년 내력을 지닌 백제장 한정식> 백제장(031-743-6551)은 남한산성 안에서 3대에
걸쳐 40년이 훨씬 넘는다는 한식집이다.
이 곳 음식은 조선시대부터 남한산성에서 대를 이
어 살아온 선친이 남한산성의 훈련도감을 지낼 때,
할머니가 왕실 출입을 하며 익힌 양밥집 상차림이
배어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의 주인 석남징(55세) 씨의 모친은 김제
부호집에서 태어나 석씨 가문으로 출가해와 서울
양반집 음식과 호남지방의 음식을 모두 손에 익혀
찬모들에게 물려주었다고 한다.
주방에는 주인 말고도 할머니와 모친의 손맛을 익히며 42년을 몸담고 있는 서애모(63세)씨가 상
차림을 맡고 있어 음식맛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내력을 알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두 차례나 찾아, 남한산성이 일찌감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
며 개발을 서두르게 된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2인상부터 차려내는 한정식은 어른 1만2,000원, 어린이는 8,000원에 내는데 15가지의 기본찬이 오
르고, 추가로 주문하는 일품요리로 숯불양념불고기(1접시) 1만2,000원과 더덕구이(1접시) 1만원,
도토리묵 7,000원 등이 있다.
고객들의 대부분이 10~20년씩 단골로 이어지고 있고, 예약손님들이 주를 이룬다.
- 남한산성의 별미로 꼽는 산성닭백숙 -
예로부터 남한산성하면 닭백숙을 떠올릴 만큼, 성 안은 물론 성 아래 남한산성 유원지에도 닭백
숙집들이 촌을 이루고 있다.
남문관(031-743-6560)은 성안으로 들어서면서 처음 만나는 산성로타리 주차장 우측으로 체모가 번
듯한 한옥 기와집이다. 70년대 후반에 개업해 25년 내력을 지니고 있다.
주인 이종화(46세)씨는 24대째, 성안에 살고 있다는 토박이 산성사람이다. 남한산성이 도립공원으
로 지정되고 관광객들이 찾아들면서 문을 열고 산채비빕밥과 닭백숙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지금은 어느것을 더 앞세울 수 없을 정도로 산성안의 명물로 자리잡혔고, 그밖의 고객들의 입맛을
따라 오리한방백숙과 시골청국장, 돌솥비빔밥, 산성동동주 등을 내는데, 역시 별미로 꼽힌다고 한
다.
<새로운 별미로 떠오른 오리백숙> 하지만 20년 넘는 내력을 지닌 산성닭백숙은 세월
이 흐르면서 닭볶음탕과 엄나무닭백숙 등으로 메
뉴가 몇가지로 늘어났고, 최근에는 오리고기가 인
기를 누리면서 산성닭백숙과 함께 오리한방백숙을
내고 있는데, 닭백숙 못지않은 새로운 별미로 자
리잡고 있다고 한다.
닭백숙과 닭도리탕은 모두 1마리 3만원으로, 어린
이를 포함한 3~4인 가족이 먹기에 알맞고, 오리한
방백숙은 3만5,000원 한다.
안주를 겸해 추가할 수 있는 별미로는 도토리묵과
파전, 감자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