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으로 돌아갑시다 (2018)
제7회 해양문학상 당선작
[우수상] 바지락을 캐면서 / 강성백
썰물이 빠져나간 천수만 갯벌 밭
농게 가족이 빈 구멍을 찾아 이사를 간다
바다는 하루도 거름 없이 이 길을 열어주었다
눅눅한 펄 밑에서 신음 한 번 내지 않는 조개들이
모래의 무늬를 입는 시간
나는 망망한 갯벌 위에 쪼그리고 앉아 바지락을 캔다
무릎을 달래가며 넓고 깊은 갯벌을 엎는다
오랜 궁이로 오랜 물음으로 갯벌을 더듬어 습지를
걸어온 맨발들
지난 해 시월 천리 밖 물길에서 데려온 종패들이
혹한을 견뎌내며 동글동글 영글었다
여섯 달이 넘는 동안 거친 파도를 넘었을 것이다
구중의 두께로 고요가 슬는 시각에 달이 바다를 어루만지듯
더러는 혼자서 더러는 쑥대처럼 서로 엉켜 적요를 어루만졌을 것이다
수없이 밀려가고 수없이 밀려오는 물결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여기까지 와 준 바지락조개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지 펄 묻은 입들을 연신 달막거린다
조용히, 낮은 생태계의 간절한 몸짓을 본다
저것들이, 하염없이 모래를 삼켜 온 저것들이
쓰라린 손바닥을 달래줄 것이다
닳을 만큼 닳은 호미날을 기억할 것이다
바다는 오늘도 천의 생을 끌어 안고
수유 중이다
[장려상] 바다를 지나는 항로 / 안승범
-오징어잡이
묵힌 마음과 여우비가 미끌려 떨어진다
불 꺼진 집어등 안에서 밤으로 가는 공기가 잔뜩 웅크린다
나의 오늘로 오지 않은 이름들은 지금 먼 바다에 걸려 있다
묵호항을 떠난 배는 10노트의 속도로 두고 온 생활을 밀어낼 것이다
선미에 부딪쳐 직립으로 고꾸라지는 파도를 등 뒤에 두고
저 먼 풍경 안 정처(定處)에 가 나의 심해를 수소문할 수 있다면
거긴 서로를 지난하게 했던 우리 사생활의 오지
얼마나 지났을까, 더는 쓸리지 않을 각오가 물풍*을 내린다
잴 수 없는 깊이에서 갈라지는 길들이 읽힌다
쉽게 띄운 부표들이 저들끼리 멀어지는 게 보인다
여덟 갈래 제 길을 더듬다 길어진 두 손을 잡아주기 위해
나는 지금 제 안의 어둠을 쏟을 오징어의 순간을 기다린다
아직 찾지 못한 것은 결국 찾지 못한다는 건 육지의 율법
밤에서 밤을 지나는 이 고통이 사소해지면
거쳐 간 밤까지 거슬러 환해지는 기적이 온다는 믿음
밤과 바다가 서로를 안고 한 구덩이에 엉켜든 때
출어를 포기한 배들이 일찍 접은 환희가 선주를 깨운다
선주가 선원을 깨우고 조상기가 잠든 물레를 깨운다
십초 전에 끊어진 기도가 섬광처럼 길 하나를 다시 가른다
이 순간에 몸을 데우기 위해 빛은 우리를 여기로 모았다
언젠가란 말에 반쯤 단념했던 두근거림이 부른 난장
이 기적을 살려서 포구에 옮기는 것도 숙제일 테지만
낮보다 밝은 이 밤에 아무 것도 아니었던 밤들을 오징어와 수셈한다
잘 가라, 우릴 지치게 했던 불신의 저녁이여
* 어선을 오랫동안 고기 떼 위에 머물게 하기 위하여 물속에 내리는 어로 장비
[장려상] 고래의 푸른 등을 보라 / 김미숙
장생포에서 고래바다여행선에 오른다
귀신고래, 참고래. 밍크고래, 쇠고래가 출몰했었다는
바다는 은사시 나뭇잎처럼 반짝거린다
코발트블루 바다와 하늘빛이 한통속이다
모두 같은 것을 바라며
서로 다른 곳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사람들
마음은 수평선 너머로 달려간다
떠나온 항구는 점점 멀어져가고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안타까움과
떠난다는 설렘이 온몸으로 파고든다
고래들도 이랬을까
선사시대부터 어미와 아비, 새끼들이 뛰어놀던 바다
고래의 숲에는 고래가 열리고
하늘에서는 고래가 날아다니던 바다
고래의 등에 올라타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을 누비다
가끔 미래로 수신불능의 그림문자를 송신하고
반구대 암각화로 걸어 들어간 어부들과 아이들
제 몸속의 지도를 따라 간 고래
지금 어디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까
가도 가도 만날 수 없는 오아시스처럼
갈증에 목이 마르다
종적이 묘연해진
고래가 지나온 아픈 길을 생각하며
간절한 마음 한 장을 띄워 보낸다
그러다 잔잔하게 펼쳐진 바다의 끝
저 멀리 물비늘 반짝이는 거대한 등
45억년동안 우주 속을 유영해온
푸른 고래 한 마리, 지구
우린 요나의 물고기 뱃속에 살고 있었음을
돌아오는 길 싱싱한 고래냄새
난 그의 푸른 등을 보았으므로
첫댓글 갯벌은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