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이산하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
우리 승무원은 마지막이야."
ㅡ故 박지영 승무원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
ㅡ故 남윤철 단원고 교사
"내 구명조끼 니가 입어."
ㅡ故 정차웅 단원고 학생
"지금 빨리 아이들 구하러 가야 되니
길게 통화 못해. 끊어."
ㅡ 故 양대홍 사무차장
"걱정하지 마. 너네들 먼저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
ㅡ故 최혜정 단원고 교사
'세월호 사건'에 대해 여러 번
시 청탁을 받았지만 결국 쓰지 못했다.
이 이상의 시를 어떻게 쓰겠는가.
나를 밟고 가라
이산하
『친일문학론』과 『일제침략과 친일파』등의 저자인
임종국 선생이 젊었을 때 일제시대의 신문을 뒤지다가
뜻밖에 자기 아버지 이름을 발견하고는 충격에 빠졌다.
혼자 며칠 고심하다가 마침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가 친일파 책을 쓰려고 옛날 부역자 자료를 찾다가
아버지 이름이 나온 신문기사를 봤어요. ... ..."
"... ..."
"아버지 이름을 ... ...뺄까요?"
아들 앞에서 고개 숙인 아버지가 오랜 침묵 끝에 대답했다.
"종국아, 나를 밟고 가라.
내 이름이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
-『악의 평범성』/이산하/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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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는 '극사실' '극적 장면의 인용 ' '실명' '실제적 역사' 표현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산하의 시에는 그런 류의 시가 많다. 그의 시를 살펴보면서 시적 은유와 상징의 범위에 대해 말하려 한다면 금세 할 말이 사라진다. 아니 그럴 필요가 도무지 없다. 역사와 인간 삶의 면면이 바로 시가 되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손을 모으고 그 자리에서 묵념을 하게 한다. 시는 깊은 내재적 운율을 지니는데 반해 넓은 통찰의 외피를 입고 나타난다. 통찰이란 깨달음을 주는 어떤 사태와 어깨동무를 하며 걸어간다. 그 사태가 이산하의 오감을 자극했을 것이다. 그의 시 '한라산'은 미제국주의의 욕망으로 빚어진 현대사적 이 땅의 비극을 고발한 시다. 오로지 진실을 진실되게 남긴 그런 오열이다. 그 시는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필화사건을 시인으로하여금 겪게 했다. 온몸이 필화의 상처로 얼룩진 이산하 시인의 시집, 『한라산』,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시대 진실의 언어로 우리를 깨우고 있는 『악의 평범성』, 시창작은 그렇게 사실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그 자체는 결코 아니다. 시는 시다! 그러므로 그런 시는 표현의 미를 넘어서는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