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산에 가고싶어?"
언니는 내게 물어온다. 딱히 멋있게 대답할 말을 못찾았지만, 부산은 이번에 한번 보고야 말겠어, 그런 마음이 있었다. 한국에서 송출하는 뉴스나 시사프로그램등에서 부산에서 벌어지는 일이 꽤 많다. 기발하고 엽기적인 사건들의 주인공들도 있고, 유명한 정치인들도 부산 사람들이 많다. 캐나다에서 만난 친구중에도 부산 출신들이 있는데, 그들의 사투리는 언제나 좌중에 웃음을 안겨주고 성품이 끌리는 부분이 많다. "눈치보지 않는" 당당함 그런 것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런저런 이유로 부산땅을 이번에는 한번 밟아보리라 생각했다.
1박2일 부산행에는 둘째언니, 서울언니 그리고 나래가 동행했다. 숙박은 에어 비앤비를 구했고, 차편은 KTX을 당연히 타려고 했는데, 차편을 알아보던 언니에게서 수서에서 출발하는 SRT를 타면 되겠다고 했다. 서울역보다 수서역이 훨씬 가깝고 말이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KTX는 한국철도공사가 운영하며, SRT는 주식회사 에스알에서 운영하는 최근 개통한 수퍼고속열차라고 한다. 민영으로 운영되는 기차인가 본데, KTR과 제공하는 서비스가 비슷하고, 운임은 조금 싸다고. 지난번 순천갈때 KTX를 탔으니, 짧은 방문 기간 동안 대표적인 고속철도 두 종류를 다 탄 셈이다.
4명 모두 마스크를 쓰고 기차에 탔다. 1월 31일에 갔는데 여행을 취소할 정도로 코로나가 위협적이던 때는 아니었기에, 약간 고민하다가 다녀왔다. 나래의 퇴근시간에 맞춰 하오 4시차를 탔고, 그 다음날도 4시 차를 미리 예매해서 겨우 24시간 동안의 여행인지라, 그저 그땅을 밟는 정도에 그칠 공산이 컸다.
기차역에서 내리니, 이미 어둑어둑해질 때였던 것 같다. 택시를 타고 해운대 숙소를 가야했다. 기차역에서 가깝지는 않았다. 기사 아저씨는 구수하고 편안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수많은 치솟은 빌딩중 하나가 우리 속소였다. 모두의 마음에 들었다. 필요한 것만 있는 그런 곳. 무언가 먹으러 가야 하는데, 밤이 깊다. 아는 데도 없고, 일단 밖으로 나가서 걸어본다. 간신히 기웃거려 찾은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메뉴에 안주거리가 많다. 식당에 갈때마다 약간의 긴장이 된다. 나래가 먹을 것이 없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나래는 채식주의를 한국에서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라고 해서 주문해서 먹을라치면, 고기가 발견되기도 하고, 고기로 만든 국물로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면서. 자기에게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이모들은 나래에게 비건음식을 먹게 하려고 애쓴다.
녹두전을 시켰는데, 음식이 그다지 맛이 없는지, 둘째언니는 먼산을 바라본다. 식욕이 없다고 하면서. 녹두전에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시켰는데, 나래는 돼지고기 조각을 발견하고 만다. 설상가상 이상한 흰 것이 있어 그걸 끄집어냈더니 비닐봉투의 일부분이다. 아주머니를 불러서 이야기했다. 아주머니가 깨끗하게 사과하고, 옵션을 제안했으면 끝났으련만, "뭐 그런일 가지고" 그런 태도여서 서울 언니가 흥분해서, "아 그래서 이런 것이 여기에 있으면 되나요?" 따지게 됐다.
먹다말고 자리를 뜨고 일어서는데, 아주머니의 계산서에 녹두전값이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닌가? 결국 그 가격을 빼고 계산을 하고 나왔다. 첫날밤 저녁식사는 이렇게 끝났다. 먼 거리에 불이 휘황한 큰 빌딩이 있었다. 그 건물이 더 베이 101이다.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야외를 둘러싸고 있는 비닐텐트가 특이했다. 밖에서는 여러 포즈로 사진찍기를 시도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이곳은 부산야경이 유명한 곳이라는데, 만을 사이에 두고 솟은 고층빌딩들의 빛이 압도적이었다. 나래는 이곳에서 찍은 좋은 사진들을 봤다며, 시도해보자 하였다. 사람이 물위에 떠있는 것같이 찍을 수가 있다며. 그런 작업을 하는 이들이 눈에 띄인다. 바닥에 물을 뿌려 그 반사빛을 이용해서 하는가 보았다.우리도 물병의 물을 부어가며 시도해봤지만, 잘되지 않았다.
담날, 모두가 잠든 사이 새벽에 나와봤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곳인지 알아보고 싶어서. 해 뜨기전이라 어디가 어딘지 잘 알 수가 없다. 다리를 건너 걷다가, 더 가야할까, 망설이다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더 갔으면 바다를 못만났을 수도 있다. 여행에서의 이런 묘미, 몸을 돌려 세워 왼쪽으로 꺾은, 나를 칭찬한다. 한참 들어가니, 옆에 조선호텔이 있고, 바다가 바라보였다. 그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동백섬가는 길인가 보다. 나는 숙소가 있는 쪽으로 걷기로 한다.
해변을 따라 걸으니, 정말 부산에 왔구나 싶다. 마침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일출을 보는 행운도 누려보고. 크리스마스 축제용이었는지, 전구장식이 되어있다. 불이 켜있긴 하나 그다지 눈을 끌진 않는다. 밤에 예쁜 성과 온바닥에 장식된 전구들이 켜진다면 무척 아름다울 것같다.
소나무 숲 산책로도 있고,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줄지어 늘어선 천막장터도 있고, 해운대 성수기에 모든 것이 활발하게 숨쉬겠지. 그런데 이제는 이런 일들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바이러스 시대에 살고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해진다.
다시 숙소로 들어가니 아직도 모두 침대에 있다. 커텐을 걷으니, 떠오르는 햇살이 우리의 눈을 찌른다. 에어 비 엔비 리뷰에 전망이 좋다고 하더니, 길 하나 건너서, 넘실대는 바다가 보인다.
내가 답사했던 곳으로 모두를 데리고 갔다. 걷기가 힘든 둘째언니는 처음엔 망설였지만, 힘을 내서 조금 걷기로 했다. 사실 그다지 먼 거리도 아닌데, 모두 자동차와 차에 익숙한지라 걷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많이 걸을 생각은 하지않는게 좋을 것 같았다. 동백섬으로 들어가는 구간쯤 와서, 둘째언니는 그곳에 서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우리 셋은 10여분 더 들어갔다가 나왔다. 바다와 바위와 파도와 고개가 꺽어질 것같이 솟은 빌딩까지, 부산에 와서 봐야할 것을 다 본 셈이다 .
다음 행선지는 국제시장으로 정했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깡통시장 근처에 내려주면서, 이곳을 보다보면 국제시장으로 가게 된다고 설명하셨다. 국제시장은 정말 오밀조밀하면서, 흥미로운 물건들이 많았다. 서울에서 볼수 없는 것이 많다는 게 언니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곳에서 부산 엿, 원피스처럼 생긴 앙징맞은 앞치마, 한복 옷감에 수놓은 지갑등을 샀다. 서울언니는 피부샵에 놓을 예쁜 받침등을 구입했고, 둘째언니와 나는 똑같은 제품, 면으로 된 풍성한 원피스를 샀다. 나는 조앤언니에게 주려고 샀는데, 성공작은 아니다.
음식점 찾아다니는 게 큰 일이었다. 결국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사람이 좀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부산의 명물이라는 밀면을 시켰다. 그런데 밀면은 여름에 먹는 차가운 면이라면서 비빔당면을 권했다. 비빔당면, 떡볶이, 오뎅, 김밥 등을 시켰다. 나래에 맞춤하게 비빔당면을 비벼주셔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떡하니 횟집요리를 먹을 생각이었는데, 결국엔 저렴한 음식으로다 해결하게 됐다. 돈의 문제라기보다는, 찾아댕기는 데 서툴러서 그렇게 됐다. 나는 원래 먹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고, 분식을 너무 좋아하는지라 별 불만이 없는데, 두 언니에게는 서운할 일이었을 것이다.
둘째언니는 이번 여행을 위해, 서산에서 이틀전 상경해서, 함께 지내는 중이었다. 언니는 형부 간병에 사적인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해서, 이런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하였다. 오랜만에 갖는 자유로움이었다고. 몇년전 둘째언니가 캐나다에 왔을때 네자매가 쿠바여행을 같이 했었다. 그때 노인이 되어가는 두 언니와 다리가 불편한 언니까지, 나는 가이드겸 따라갔는데, 그때 경험을 수시로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해주고, 제대로 여행의 맛을 알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내가 말이다. 그래서 언니 친구들에게 하도 자랑을 해서, 언니의 친구들도(모두 연세가 70이 넘으셨다) 언젠가 나의 도움을 받아서 쿠바를 가볼 수 있겠느냐는 희망을 가지게 됐고, 나는 서산에 갔을때 언니의 친구들을 만나기까지 했다.
언니의 친구들이 오면 캐나다도 보여주고 쿠바도 보여주고, 그러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이 깊게 가라앉고 말았다. 둘째언니의 의도는 "직업적으로" 그런 가이드를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는데, 직업이든, 한번 도와주는 것이든, 그런 생각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서울언니는 없는 시간을 내서 나를 전적으로 챔임지려고 했다. 나의 빈시간이 있으면 피부샵에 오라고 해서 피부 맛사지를 받게 해줘서 한국에서 내가 턱을 들고 다닐 만큼, 나의 미모(?)를 업그레이드 시켜줬고, 고객이 소개해준 발디톡스 하는 데를 둘이 가서, 흥미로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언니는 이번에 뷰티 디자인학과 특임교수로까지 임용되어,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미에 대한 일가견에다가 비지니스 경영에 새로운 리더쉽 마인드로 직원들에게 동기부여 하는 모습과, 진정어린 고객 서비스에 많이 놀라게 됐다. 언니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일분일초를 유용하게 사용하는 우먼으로 성장해 있었다. 이번 코로나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어서 마음아프다. 잘 이겨내기를 바래본다.
나래는 이모들과 하는 여행인지라, 자신과 크게 맞지 않으면서도, 이모들이 원할 때 사진을 많이 찍어주고, 함께 해줘서 이모들이 너무 이뻐했다. 굳이 같이 가지 않아도 된다고 몇번 이야기했는데, 주말에 엄마와 함께 보내야 한다며 동행해줘서, 나는 여행비를 부담해주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첫댓글 부산은 제가 나고 자란 제 고향이기도 한 곳인데 저는 부산을 잘 몰라요 ㅎ 고등학교때까지는 학교아니면 동네에서 놀고 19살부터는 서울에서 혼자 살았으니 모든게 빠르게 변해버리고 지하철도 막 더 생기고 엄마는 자꾸 이사를 다니시고 ㅎㅎ 제가 적응을 못 하겠더라구요 부산에서 회 먹어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구요. 사람들이 사투리로 막 빨리 말하면 못 알아듣고 그래요 ㅋㅋㅋㅋㅋ
부산 지하철역 출구로 나오면 바다냄새가 확 나더라고요. 타지에 오래 살아야 그걸 느낄 수 있나봐요 그 전에는 전혀 몰랐거든요 ㅎㅎ 서울살다 유럽살다 부산가니까 바다냄새가 났던 기억이 나요. 부산이라고 하니 반가워서 수다를 떠네요 ㅎㅎ
부산은 우리 시댁이 있는 곳이라
제2의 고향이랑까.. 친숙한 생각이 들어요
남편 사귈때 처음으로 시댁에 인사하러 부산에 갔었지요
태종대도 가 봤고
어디선가 회도 먹고 그랬어요
결혼하고 나서 캐나다로 떠나기전 몇번 갔었고
몇년전 한국에 갔을때 부산에 가 봤었지요. 친구들도 만나고...
따님이 엄마와 이모들 여행에 비용도 내주고
동참해 주고
정말 맏딸 다웁네요
ㅎㅎ 아니에요.
모두 각자의 회비를 냈구요, 제가 제딸것을 부담했어요.
딸이 이모들 여행경비까지 부담해주는 그런 기적은 언제 일어날지 알수 없네요.
저도 제 동생이 부산으로 시집간 덕에 그곳에서 몇 개월 지나봤습니다. 맛난 곳도 많고 볼거리도 많고 참 좋았는데~
지금은 또 많이 변했겠지요?^^
해운대 바다앞에 있는 초고층 빌딩이 주변빌딩들과 스카이 라인도 맞지 않고,
옥에 티 같으네요. 바로 바다 앞에 그렇게 높은 빌딩을 허가했다니 참.
나중에 초대형 태풍으로 인한 천재지변이 생길까 우려도 되네요.
부산엔 맛집들도 많은데, 음식점에서의 좋지않은 일은 경험을 하셔서 그렇네요.
음식점을 잘 모를땐 사람많은 집을 가면 실패하지않는데, 한적한 곳을 가셨군요.
부산에서의 시간들이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