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제정신, 혹은 정신이 온전함'이란 뜻을 지닌 'sanity'란 단어가 있다. 돈 매클린이 부른 <빈센트>의 노랫말에 이 단어가 나오다. 나는 팝송으로 수업을 자주 하는 편인데, 해마다 이 노래를 고르면서 이 곡을 넣을까 말까 망설이곤 한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이 노래를 소개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빈센트>를 목록에 넣고 만다. 마치 어떤 슬픈 운명에 이끌리는 사람처럼. 그리고 그 운명의 날에 나는 평소와는 다른 조금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입을 연다.
"여러분,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아시지요? 그는 스물일곱 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서른일곱 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약 10년 동안 1만6천 점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중 팔린 작품은 단 한 작품. 그가 죽은 뒤 10년이 지나서야 그의 그림은 진가를 발휘하지요. 그리고 약 100년이 지난 뒤에 한 가수가 그의 고독했던 영혼을 달래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빈센트'란 아름다운 노래를 지어 바칩니다."
여기까지 단숨에 말하고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누른다. 곧이어 노래가 흐르고 잠시 후 그 문제적인 가사가 내 귀에 들려온다.
'당신이 뭘 말하려 했는지 나는 이제 알 것 같군요.
온전한 정신을 갈구하며 당신이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
그리고 사람을 자유롭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고 어떻게 듣는지도 모르죠.
아마도 지금은 귀 기울여 들을 거예요.
노래가 끝나면 모니터에 수업자료를 띄워놓고 단어를 먼저 공부한 다음, 칠판에 적어놓은 영어가사를 우리말로 풀어서 설명해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맨 뒤에 앉아 있는 두 아이가 장난을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할까? 모른 체하고 내버려둘까? 아니면 혼을 내줄까? 잠깐 생각하다가 두 아이를 앞으로 불러냈다. 두 아이는 화들짝 놀라 앞으로 나왔다가 곧바로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리 좋은 말도 길어지면 잔소리가 된다. 비난은 절대 금물이고, 꾸중도 절제가 필요하다. 대신 아이들의 인격을 키워줄 방도를 마련한 필요가 있다. 나에게 모든 수업 장면은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전체 학생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 온전한 정신을 갈구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그리고 온전하게 사는 것이 왜 고통스러운 일이 되는 걸까요?"
아이들은 얼른 대답을 못했다. 나는 다행히 쉬운 예를 하나 생각해 냈다.
"만약 우리 나라가 과거처럼 다시 일본의 속국이 된다면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괴로워할까요?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 괴로워할까요?"
"온전한 사람이요."
"맞아요. 정신이 온전한 사람들은 나라 잃은 슬픔에 고통을 겪을 테지만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들은 오히려 그 기회를 자신의 출세를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 하겠지요. 그런데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더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서 온전한 정신을 가지지 말아야 할까요?"
"아니요. 가져야 합니다."
"그럼 고통을 겪게 되는데도요?"
아이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쪽이든 문제가 없지는 않을 테니까.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빵 굽는 기술자가 있었어요. 하루는 사장이 빵에 설탕을 넣지 말고 사카린을 넣으라고 해요. 사카린은 설탕에 비해서 값도 싸고 당도도 높지만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지요.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치명적이어서 정신이 온전한 기술자로서는 사장의 명을 따를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사장의 말을 거역했고, 사장은 기술자에게 회사를 그만 두라고 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왜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이상과 현실, 그 선택의 기로에 미리 서 보게 하려는 것이다. 인간의 온전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연습 말이다. 지금의 입시 위주 교육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나는 빵 굽는 기술자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만약 제가 빵 굽는 기술자라면 우선 빵에 사카린을 넣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거예요. 그것은 많은 어린이들을 서서히 죽이는 일이고, 그런 흉악한 짓을 하려고 세상에 태어나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렇다면 회사를 그만 두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고 싶지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돈을 못 버는 것은 아니에요. 직종을 바꿀 수도 있고, 아니면 작은 빵집 사장이 되어 직접 빵을 만들어 팔수도 있겠지요.
물론 사카린이 아닌 설탕을 넣어서 빵을 만들어야지요. 그러면 생산비가 너무 많이 들어 장사가 안 될까요? 그런 착한 생각만으로는 현실 사회에서 적응하기 어려울까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지금은 과거와는 달리 빵에 사카린을 넣지 않아요. 그런 빵을 만드는 사람은 감옥으로 가고 말지요. 그만큼 사회가 발전한 거지요.
그런데 사회가 그냥 발전했을까요?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고통을 겪으면서 얻어낸 소중한 결실이지요. 어때요? 고통이란 말이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나요?"
첫댓글 준한아, 이 글 언젠가 읽은 적이 있을 거다. 이 글이 너의 고민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올려본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그렇더구나. 한꺼번에 뭔가를 다 할 수는 없다는 거지. 하지만 하나씩 풀어가다보면 풀리기도 하더라. 그것이 어쩌면 내가 살아 있는 가장 즐거운 일이기도 하고. 물론 즐거움 속에 고통은 반쯤 섞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고통이 너무 힘드니깐.......온전한 정신을 버려야 할까요? 나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요즘..........
@天上仁 그건 너의 선택이다만 니가 그럴 수 있겠냐? 그리고 네가 언급했던 타협이라는 거 말이다. 그걸 잘 해보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구나. 왕창 무너지느니 조금은 살리는 것이 실시구시적이 아니겠냐? 너무 관념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문제일 수 있다는 것 잊지말고.
@안준철 하하 샘의 그 말씀에 울컥하네요....... 내가 그럴 수 있을까? 하하 정말 물어보게 되네요.... 샘이 계서셔 참 다행입니다... 샘이 계셔서 외롭지 않네요.. 긍게 저보다 쭉 오래 사세요........
@天上仁 알긋다~♡
아니 대답해놓고 보니 그게 아니구나. 이눔아 니가 나보다 오래 살아야지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