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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6.14. 21 일차 (카스트로헤리츠-프로미스타)
오늘 길을 걷다가 한 가족이 보였다. 아빠, 엄마부터 한 3살 정도로 보이는 애기까지. 다섯 식구가 사이좋고 화목하게 가고 있었다. 그 에너지에 큰 힘을 받고, 가족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어떤 생각도 들었는데, 저 3살 정도 되는 애기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걷고 있을까? 였다. 아마 힘들다, 배고프다. 이런 본능에 충실한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애기와 같은 생각을 하며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그렇게 걷는 게 가장 순례를 잘 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내가 힘들구나, 배가 고프구나와 같이 지금 나의 상태를 잘 인지하며 걷는 것. 물론 나는 더 성숙하게 그런 생각에 그치지 않고 그에 따른 반응을 잘 살펴야겠지만.
2023.6.15. 22 일차 (프로미스타-로스꼰데스)
오늘 인상 깊었던 것은 알베르게에서 있었다.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몇 명을 제외한 알베르게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홀에 모여서 미사 같은 것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 이 알베르게가 수녀님들이 하시는 거여서 이뤄진 모임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도 부르고 자기 이야기도 했다. 물론 난 거기에 끼지 않았지만, 굉장히 신기했다. 종교라는 이름 아래 저렇게 국적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사람들이 한 만음으로 뭉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들어보니 영어로 하지도 않았다. 다 자기 모국어로 하는데 사람들은 알아들은 것처럼 따뜻하게 박수도 쳐줬다. 그걸 보고 사람이 저래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23.6.16. 23 일차 (로스꼰데스-레디고스)
한 사람을 향한 관심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오늘은 좀 별로인 하루였다. 걷기도 힘들고 마을에 마트도 없어서 짜증이 난 상황이었는데 알베르게 주인분이 내가 낸 돈을 받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걸 듣고 기분이 확 좋아졌다. 그 이유는 내가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영어로 해도 됐을 말을, 내가 한국인인 걸 알아채고 한국말로 말해줬다. 다르게 말하자면 나는 그 사람에게 내 정체성 중 하나를 인정받은 셈이다. 그리고 내 정체성을 인정받기까지 저 사람이 얼마나 많은 관심을 내게 쏟았을지가 느껴지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따지고 보면 사람이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내가 인정 받거나 관심 받는다고 느껴서가 많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니까.
2023.6.17. 24 일차 (레디고스-칼사다데코토)
오늘 공동시 창작 작업에 들어갔다. 가장 큰 질문은 우리의 순례 의미를 관통하는 한 가지 단어는 뭘까? 였다. 생각을 해보다가 자립이라고 의견이 모아졌다. 좀 너무 식상한 것 같지만 이것 말고는 생각이 안 났다. 순례를 오는 이유 중 하나가 자립을 배우기 위해서인 것도 있었지만 지금 우리 상황에서 딱 떠오르는 건 진짜 이것뿐 이었다. 어른 한 명 없이 낮선 곳에 남겨진 상황, 게다가 연락 수단도 뭣도 없이 우리끼만 남겨진 상황이다. 후마가 굳이 우리끼리 있을 때 공동시를 지으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정말 진실로 느낀 것을 시로 표현하라는 의도로 받아들여졌기에 지금 상황에 제일 어울리는 자립을 시의 주제로 정했다.
2023.6.18. 25 일차 (칼사다데코토-렐리고스)
우리끼리만 지내는 마지막 날이다. 마냥 안정감에 맘 놓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어른들과 떨어져 지내며 생각보다 많은 감정이 오갔다. 처음에는 우리끼리만 떨어져 지낸다는 불안감, 그 다음은 어른들의 손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 그리고 지금은 그 두 가지 감정이 섞여있다. 처음 해방감을 느꼈을 때는 내가 그룹 중 하나의 중심이 되어서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 때문에 힘들다. 후마가 있을 때는 중심이 후마로 딱 모였지만, 지금은 각자가 중심이다. 힘이 다 분산되어 있어서 어느 하나도 제대로 힘을 낼 수 없다. 그런 만큼 우리가 잘 뭉쳐야 했지만, 그리 잘 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지난 일주일, 신도 났지만 많이 힘들었기에 내일이 더 기대가 된다.
2023.6.19. 26 일차 (렐리고스-레온)
오늘이 레온에 도착하는 날이다. 내일 하루 쉬기도 하고 후마와 일평도 만나는 터라 신이 났다. 그래서 오늘은 걸을 때 별로 안 지치고 왔다. 그렇게 레온에 도착해서 후마와 일평을 보니 굉장히 좋았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 한 명 생긴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엄마 아빠도 많이 보고 싶어졌다. 후마에게는 아무리 의지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지만 엄마와 아빠는 정말 내가 완전히 의지할 수 있는 존재다. 지금까지는 집이 별로 그립지 않았는데 이제 슬슬 집에 갈 날을 기다려지기 시작한다.
2023.6.20. 27 일차 (레온-레온)
저녁에 모여 앞으로의 계획과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나눴다. 계획만 들었을 뿐인데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힘들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냥 뭔가 내가 많이 온 것 같지가 않아서 힘이 빠졌다. 그러다 모임 마지막에 후마가 ‘어쨌든 지금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하루하루의 걸음에 충실하는 겁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자 정신이 확 들고 위안이 됐다. ‘그래, 앞으로의 계획이 뭐가 중요해. 나는 하루하루를 잘 살면 돼. 내일은 또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이렇게 속으로 나를 위로했다.
2023.6.21. 28 일차 (레온-산 마틴 데 까미노)
숙소에 도착해서 마트에 갔는데, 거기 주인 아주머니가 굉장히 친절하셨다. 인사 하나를 해도 환하게 웃으며 나의 눈을 보고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엄청 신기하게도 난 그 기운이 달갑지가 않았다. 짜증이 나고 이런 건 아니었는데 좀 버거웠다. 기운을 못 받아들였다고 하는 게 가장 적절한 것 같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계속 생각해보았다. ‘나는 왜 그 기운을 못 받아들인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기운으로만 채워진 기운이었다. 게속 생각을 해봐도 답이 안 나와서 그냥 내가 그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떻게 좋은 기운이 항상 좋은 기운일 수 있을까. 가끔은 버거운 날도 있고 한 법이지. 그래도 이 생각이 정답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어차피 계속 붙들고 있어봤자 정답이 올 것 같지도 않아서 이렇게 생각하려 한다. 뭐, 나한테 필요한 배움이면 언젠가는 오겠지.
2023.6.22. 29 일차 (산 마틴 데 까미노- 아스트라고스)
오늘은 걷기가 끝나면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할지를 고민하며 지냈다. 걸을 때도 그 생각, 알베르게에 와서도 그 생각만 했다. 그러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어차피 일정이 바뀌면 다 못 써먹을 계획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드니까 내가 보낸 시간들이 다 헛 되게 느껴졌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그렇게 헛된 것은 아닌 것 같다. 분명 보람되지 않게 쓰여진 것은 맞지만 헛될 정도는 아니다. 이 사건을 통해 미래에 대한 고민은 생각보다 쓸데없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2023.6.23. 30 일차 (아스트라고스-라바넬)
빨래를 하는데 한번 옷을 물에 헹구니 구정물이 많이 나왔다. 평소 같으면 ‘윽 드러’ 이러고 말았을텐데 오늘은 그 구정물이 내가 열심히 걸은 결과라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정말 항상 생각하지만 내 생각이 바뀌기만 해도 세상이 바뀐다는 게 참 신기하다.
오늘 알베르게에는 한국 사람이 많다. 여기에서 한식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왠 일인지 한식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끔씩 라면이 생각나기는 하는데 그때만 딱 그렇지 막상 시간이 지나면 또 싹 없어진다. 그런데 난 한국에서 느끼한 것 못 먹었기 때문에 지금 내 상태가 너무 신기하다. 내 생각에 내가 이렇게 적응을 잘한 이유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뭐든지 일단 먹고보자 라는 생각으로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이렇게 잘 적응하며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2023.6.24. 31 일차 (라바넬-롤리나셀까)
오늘은 산을 탔다. 한동안 산을 타지 않다가 갑자기 산을 타니 많이 힘든 하루였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이상하다. 분명 평지를 거를 때는 ‘진짜 그늘 하나 없고 풍경도 계속 똑같네. 차라리 산을 타는 게 낫겠어’ 이렇게 생각하다가 막상 산을 타면 ‘ 아, 힘들어 뒤지겠네, 평지가 훨씬 낫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 일이 지나간 후에 생각해보면 그런 쓸데없는 생각할 시간에 차라리 한걸음 더 내딛는 것이 나에게 훨씬 이득이란 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런다. 솔직히 말하면 이젠 후에 생각한 것도 학습이 되어서 걷는 도중에도 ‘아, 이런 생각은 쓸데없는데’ 이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쓸데없는 생각은 좀처럼 지워지질 않는다. 그래서 차라리 그 생각에 아무런 관심도 줘 보지 않기로 했다. 쓸데없는 생각이 나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놔둔 상태로 거기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아직 해 보진 않았지만 틀림없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감이 온다.
2023.6.25. 32 일차 (롤리나셀까- 까까벨로)
오늘 하루종일 뭔가 허전한 듯 놓친 게 있는 것 같아서 ‘뭐지...?’ 하고 생각해 봤는데 오늘이 6.25 날이었다. 기억하고 나니까 내가 이 사실을 어떻게 까먹었나 싶을 정도로 뻔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게 아픈 역사는 많지만 6.25 만큼 아픈 역사는 또 없을 것이다. 우리는 도대체 왜 싸웠어야 했을까? 고민해 보았지만, 곧 그렇게 중요한 질문이 아니라는 것이 떠올랐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이다. 뭐, 이렇게 말해도 사실 답은 다 나와있다. ‘마음을 여는 것’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실천 그 하나가 안 돼서 우리는 아직도 아픔을 짊어지고 살아야한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흠... 지금 다른 사람들은 6.25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려나.
2023.6.26. 33 일차 (까까벨로-베가 데 발깔세)
걷다가 벽면에 ‘God is love’라고 쓰여져 있었다. 번역하면 ‘신은 사랑입니다’가 된다. 그러자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사랑이 신이면 우리는 사랑이 있는 곳 중 어디에 가도 신과 같이 있는 건데, 그럼 종교적 이유로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왜 이 길을 걷는 거지? 일상생활에서도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충분히 많을텐데’ 하지만 이 질문은 내가 아무리 혼자 고민해 봤자 물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질문이다. 그러나 주변에 딱히 물을 사람도 없어서 그냥 내 혼자 낸 결론은 이거다. ‘일상생활에서는 충분히 사랑을 못 느꼈으니까’ 사람은 자신이 편한 것에 익숙해지면 그것을 당연하다 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에서 사랑이 차고 넘쳐도 주위 환경이 너무 편하면 발견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순례는 다르다 순례는 자신의 한게와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뭐, 뻔하지만 그 과정이 편하지는 않다. 그리고 주위 환경이 불편하면 사람은 작은 사랑도 크게 받아들이는 법이다. 그렇기때문에 사람들이 순례를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질문으로 또 하나 알아챈 것이 있다. 순례는 깨달음의 과정이지 창조의 과정이 아니라는 것. 순례에서 뭘 느끼든, 어떤 배움을 얻든, 그것은 순례를 하니까 갑자기 생긴 게 아니라 원래부터 우리에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2023.6.27. 34 일차 (베가 데 발깔세- 폰플로나)
어제, 후마와 우리가 이 순례길에서 왜 시를 외우고 있고 어떤 마음으로 시를 외우면 좋겠는지를 이야기했다. 후마가 우리에게 시를 과제로 주며 바랐던 것은 우리가 외운 그 시들이 마치 한 노래 구절처럼 문득문득 떠올라 힘이 되는 것이 였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하면 나는 시를 하나의 과제로만 생각하고 외우기만 했다. 물론 꼭 후마의 바람대로 시를 외어야 할 의무는 없지만, 기왕 외우는 시, 후마 말처럼 의미 있게 외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미 없이 글자만 외울거면 차라리 안 외우는 게 더 낫다고 생각을 하지만, 시 외우기가 과제로 나온 이상 그건 내 관한이 아니고, 이왕 외우는 거 , 앞으로는 더 힘차고, 밝고, 뜻 깊게 외우려한다.
2023.6.28. 35 일차 (폰플로나-싸리아)
오늘 숙소에 세계지도가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무슨 심정이었는지 자꾸 눈길이 그쪽으로 갔다. 그러다 독도가 어떻게 표기되어있을까 궁금해져서 유심히 들여다 봤더니, 독도는 너무 작은 섬이었던 것인지 표기되어 있지 않고, 대신 동해가 ‘sea of japan’ 즉 일본의 바다라고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걸 또 앞서간 한국인이 보았는지 japan이란 글자에 엑스자 쓱쓱 그어놓고 그 옆에 한국어로 동해 이렇게 써놨었다. 그걸 보고 순식간에 많은 감정과 생각이 들었다. 아직 우리의 땅이 일본의 것으로 세계의 알려지고 있다는 안타까움, 잘못된 표기에 거침없이 모국어로 당당히 수정해 놓은 한국인의 용기와 그것에 대한 나의 동경심. 이런 생각과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정말 놀랍고 기쁘게도 그 중에 일본에 대한 증오나 복수심은 일말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것도 내가 의식하지 않았다면 그런 감정을 안 품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것이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로 다가와서 굉장히 기뻤고 내가 느끼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이 순례는 나를 변화시키고 있단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