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불빛을 따라 걷다 / 이 승희
소곤거리는 불빛이 주섬주섬 내어주는 골목길을 걷는다. 발목이 푹푹 젖는다.
걸음은 물속을 걷듯 한없이 느려지고, 잔물살로 번져간다. 이 저녁의 이야기 속을
걸어온 지는 아주 오래 되었다. 너무 오래되어 사실 내가 어디를 가는지도 모를 정도다.
햇살이 놀다간 자리, 아직 치워지지않은 온기가 전봇대에서 비틀거리는 동안에도 난
불빛을 따라 걷는다. 기차 칸처럼 불켜진 창을 따라 첩첩산중 도심의 산기슭을 올라간다.
비탈길을 오를수록 불빛이 더 정다워지는 것은 밤새 잠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 기차를 타고 싶다. 거기 잠들지 못하는 식구들의 머리맡에 이 길고 길었던 저녁 이야기를
한 그릇 밥으로 지어놓을 수만 있다면.
첫댓글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