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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일어나니 가랑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만큼 긴 거리는 아니지만 4천3백까지 고도를 올리는 여정입니다. 보슬비를 맞으며 출발(07:52). 언덕빼기를 오르자 마르카의 옛날 집들이 나타납니다. 중세의 모습을 아직도 그대로 간직한 집들입니다.
(오르막길에 되돌아본 마르카의 야영지)
30분쯤 가자 오늘의 첫 번째 도강지역이 나옵니다. 신발을 벗고 건너는데 물살이 만만치 않습니다. 곧이어 또 건너는데 아까 내 모습이 불안했던지 뜬둡이 한사코 자기 등에 업히랍니다. 할 수없이 업혔지만 내키지 않습니다. 좀 있다 세 번째로 건너는 곳이 나옵니다. 여기는 더 깊어 보입니다. 뜬둡이 다시 업어주겠다고 등을 내밉니다. 야, 나도 아직은 건장해.. 내 혼자 힘으로 건널거야.. 무사히 건너서 기념촬영.
날은 흐리지만 주변의 경치는 갈수록 멋있습니다. 까마득하게 높은 절벽 위에 집이 얹혀져 있습니다. 곰빠인가?
09:48분 umlung의 파라슈트 휴게소에서 휴식. 마르카에서 여기까지 5.18킬로 온 것으로 나옵니다. 한 떼의 프랑스인들이 몰려옵니다. 다들 휴게소의 할머니와 갓난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나도 끼어서 한 컷.
비가 계속 오는데 어제부터 빠담풍님 신발이 말썽입니다. 건조하고 더운 날씨에 연식이 좀 된 신발이라 밑창이 떨어져버린 겁니다. 솜씨좋은 원정대님이 정성스럽게 묶어줍니다.
길은 완전히 자연 그대로입니다. 따로 인공을 가미한 것이 아니고 물을 피해서 가다가, 불가피하면 건너서 갑니다. 그냥 생긴대로 갑니다.
11:40 Hankar에 도착. 현재고도는 3994m, 여기까지 10.47킬로 왔습니다. 비를 피해 민박집에 점심 차 들어갑니다. 선반에 가지런하게 놓인 그릇들과 달라이라마의 사진이 인상적입니다. 도시락은 오늘도 훌륭합니다. 좀 있다 아까 그 프랑스인들이 들어오는데 다들 신발을 벗었습니다. 아차, 그러고 보니 여기는 신발 벗고 들어오는 곳인데 깜박 했습니다. 우리도 슬그머니 신발을 벗었습니다. 키키..
(아.. 이 사진에서는 아직 신발을 벗고 있지 않군요.)
12:10 다시 출발합니다. 비가 오니 쉬지 않고 계속 갑니다. 그래도 경치는 계속 좋습니다. Upper Hankar쪽으로 가니 초르텐과 마니월 사이로 초록색 보리밭이 환상적입니다. 오른쪽으로는 절벽 저 높은 곳에 허물어진채 벽만 남은 곰빠가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천미터를 넘어서자 숨이 차기 시작합니다. 깊은 숨을 쉬되 최대한 자연스럽게 합니다. 허파가 주변환경에 스스로 적응하도록 내 의지는 자제하면서 자연스럽게 쉬어지는대로 따라갑니다. 내가 고소에 적응하는 방법입니다.
길은 이제 왼쪽으로 휘면서 점차 가파라집니다. 천천히.. 천천히.. 지금 컨디션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닙니다. 1:50경 나무다리가 나타납니다. 다리를 건너니 저 앞쪽으로 우리 키친팀이 텐트를 치고 있는게 보입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계곡 오른쪽을 따라 조금 가니 오늘의 숙영지인 Thachungche가 나옵니다. 정각 2시에 도착했고 고도는 4234미터로 찍힙니다. 마르카부터 여기까지는 15.5킬로 걸은 것으로 나옵니다. 길은 전체적으로는 순한 길이며 강바닥을 따라 걷는데가 많습니다. Hankar 이후 오르막이 나타나며 거기서부터는 해발 4천미터가 넘으므로 숨이 가빠집니다.
여기는 마을은 없고 그냥 풀밭입니다. 따라서 민박집에서 홈스테이하면서 트레킹하는 사람들은 여기 전의 Hankar에서 머무릅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보니 여름 한 철동안은 이곳에 텐트를 임시로 쳐놓고 홈스테이처럼 운영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짐을 풀고 보니 매트리스가 비에 젖었습니다. 저녁때가 되니 비가 개고 파란 하늘이 보입니다. 서둘러 젖은 매트리스랑 짐들을 주변 바위에 널어 말립니다. 원정대님과 빠담풍님은 밑의 계곡에서 빨래를 하는군요.
저녁먹고 텐트에서 나오는데 석양의 하늘이 너무 파랗고 멋지네요. 산에 석양노을이 비추다 사라지는 것을 한참동안 쳐다봅니다. 자연(自然)이란 있는 그대로.. 라는 표현이 실감나는 라다크입니다.
8.9.(목) 구름
5시에 깨서 이 생각 저 생각하다 6시에 일어납니다. 8시에 출발. 흙길인데 어제와 달리 경사는 좀 있는 편입니다. 그래도 천천히.. slow and steady.. 관세음보살을 외며 발바닥으로 흙의 촉감을 느끼며 천천히 걷습니다. 고도에 적응하려면 무리해서는 안되니까요. 좌우로 점차 산이 넓어지며 터지는 느낌입니다. 다만 날씨가 흐려 우측으로 보여야 할 탕야체(6400m) 봉우리가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습니다.
군데군데 마니석들이 몰려있는 마니월이 있습니다. 이 높은 곳까지 마니석들을 쌓다니.. 참 대단한 정성입니다. 마니석 사이로 핀 꽃이 아름답습니다. 옴마니밧메훔의 정성이 꽃으로 나타난 것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티케라는 작은 몰모트가 보입니다. 도망가다 서서 여기를 돌아보는데 아주 귀여운 모습입니다. 애완동물로도 귀여움 받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자유롭게 사는게 훨씬 좋겠지요..
아까부터 젊은 처녀 둘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갑니다. 여성 가이드들이랍니다. 우리와 보조를 맞추는 것인지는 몰라도 앞서가다가는 멈춥니다. 음양의 이치가 그런가 봅니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것인지.. 마침내 스물 넷 총각 뜬둡이 말을 걸자수줍게 그러나 또렷하게 답하는 처녀 가이드의 목소리가 예쁩니다. 나는 앞질러 감으로써 이들에게 기회를 내 줍니다.
점차 시야가 넓어지며 부드럽게 경사진 길을 올라가자 멀리 넓은 초원에 소와 양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흰 텐트도 보입니다. 오늘의 목적지 Nimaling에 왔습니다. tea-tent에 도착하니 싸라기가 내립니다. black tea 한잔에 몸을 녹이며 기록을 정리합니다. 오늘 타충체(4233m)에서 여기까지(4853m) 7.14km 왔고 현재 시각이 10:49이니 약 3시간 걸린 셈입니다.
해발고도가 높아서인지 싸라기가 내립니다. 텐트에서 나가기 싫습니다. 13:30경 부지런한 원정대님이 캉야체 베이스캠프(5200m)까지 고소적응차 싸이드트레킹 가자고 합니다. 날씨봐서 개면 가겠다고 먼저 보냅니다. 2시경 날씨가 좀 개이는 것 같습니다. 나도 나섭니다. 동남쪽 언덕을 올라갑니다. 언덕에 오르니 반대편 서북쪽으로 내일 올라갈 꽁마루 고개(Gongmaru La, 5200m)가 보입니다. 완만한 경사지만 돌이 많은 곳을 표지석을 따라 길을 찾아 걷는데 저 멀리서 원정대님과 가이드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다시 싸래기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고도를 측정하니 딱 5101m입니다. 싸래기도 더 심해지고 당초에 고소적응차 나선 길이라 이제 그만 되돌아 갑니다. 캠프에 오니 3시 반입니다. 오고 간 거리는 3킬로입니다. 햇빛이 나기 시작합니다. 얼른 젖은 옷과 배낭을 꺼내 말립니다.
창공을 배경으로 점프를 하면서 사진을 찍자고 하길래 따라서 해보는데 점프 두 번 하고나니 힘이 쏙 빠집니다. 역시 고소는 고소입니다. 해가 나오자 그동안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납니다. 구름이 걷히니 주변 풍광이 멋집니다. 널따란 평원을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며 일부는 산머리에 하얀 눈을 이고 있습니다.
해질 녁이 되자 염소떼가 산에서 내려오는데 장관입니다. 수백, 수천마리의 염소떼를 한 사람의 몰이꾼이 솜씨좋게 몰아옵니다. 염소떼들은 우리 텐트촌을 가로질러 다리를 건너 개울 저쪽에 있는 자신들의 쉼터로 갑니다. 뒤이어 검은 소들이 나타나서 천방지축 뛰어노는데 이것 또한 가관이군요. 이리뛰고 저리뛰다가 한 놈은 도망가고 다른 놈은 쫓아가고... 누가 소더러 점잖다고 했던가요? 내 생전에 소가 이렇게 빨리 뛰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자연 속에 마음껏 뛰어노는 이들 모습이 석양의 파란 하늘과 함께 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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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이고 조기 있을 때는 엄청 숨이 차고 힘이 들더만...
요로코롬 구경하며 졸졸 따라가니께 참 좋심더!
수고시럽지만 계속 수고 쫌 해 주이소... ^^*
숨차고 힘든 순간이 있었기어 편한 순간도 실감을 하는 것 아닙니까?^^
잔스카르 지역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곳인 듯합니다~
멋진 사진과 글을 좀 더 크게 올려 주시면 보는게 훨씬 더 편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컴 실력이 별로 없어서요.. 글자는 크게 할 수 있겠는데 사진도 크게 할 수 있나요?
글씨체가 커졌네요~ 감사합니다.
사진 올릴실 때 크기 조절이 가능하니 시도해 보세요^^
송구하오나 K2와 스톡캉그리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은데 쪽지나 멜로 여쭤봐도 될련지요...?
제가 알기로 일정기간 이후에 개설된 카페는 사진이 이정도 크기 밖에는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100% 정확한 정보는 아닙니다.
마하님 답이 늦었습니다. sinadaum@gmail.com으로 메일 주십시오
오랫만입니다.저도2달여정끝내고 들어온지얼마안됐는데 무사히 돌아오시니 반갑습니다
마르카밸리 트랰 사진 잘 감상했읍니다 건강한모습보니 더욱 좋구요
네. 잘 다녀오셨군요. 사전에 좋은 정보 주신 덕에 준비를 잘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