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낮이 저물고 밤이 스며드는 찰나, 두 어린 소녀가 정원의 꽃들 사이에서 조심스레 저녁 등불을 밝힌다. 그순간 붉은빛이 소녀들의 뺨을 물들이며, 꽃잎처럼 순수한 천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황혼의 기운이 감도는 이 정원 풍경은 바로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의 대표작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다.
아름다운 여름날의 초저녁
사전트의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는 여름 초저녁, 낮게 스며드는 빛과 번져가는 어스름의 숨결을 붙잡은 작품이다.
템즈강에서 뱃놀이를 하던 중, 그는 물결 위로 부서지는 저녁 햇살 속에서 영감을 받았다. 어스름이 내려앉는 초저녁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기 위해 친구 화가 프레더릭 버나드의 두 딸을 떠올렸고, 단정한 금발 머리의 두 소녀에게 흰색 원피스를 입어 달라고 부탁했다.
누구나 초저녁의 빛이 얼마나 짧은 시간에 묻혀버리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빠른 붓놀림으로 유명했던 서전트 마저도 이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잠시 펼쳐졌다 사라져버리는 미묘한 빛의 효과를 포착하는 일이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시도와 인내 끝에 완성된 이 작품은 마침내 런던 로열 아카데미에 출품되어 큰 찬사를 받았다.
많은 이가 몽롱한 색채와 동심을 파고드는 분위기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테이트갤러리 역시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의 진가를 알아보았고 이 작품을 소장하는 데 바로 동의했다. 사전트의 작품 중에서 최초로 공립박물관이 소유한 작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스름한 저녁이 찾아오는가 싶으면 어느새 밤이 되어 버리는 짧은 순간을 이처럼 매혹적인 분위기로 그려낸 그림은 더이상 없을 것이다. 언제 봐도 여름 저녁의 빛처럼 고요하면서도 찬란한 감동을 주는 그림이다.
인상주의와 사전트
사전트의 예술세계는 인상주의의 자유로움과 고전적 완결미가 절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었다.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가 찰나의 빛을 붙잡은 시적 회화라면, 그의 다른 작품들은 그 빛이 강약 조절로 이어진 영혼의 그림들이다.
특히 초상화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사전트는 대상의 특징을 단번에 포착하여 우아하고 고결함을 그대로 살려냈다. 더군다나 인물의 시선은 존재가 지닌 기품과 고요한 생기가 흘러넘쳤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어쩌면 타고났을지도 모를 인물화에 대한 재능으로 사전트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명성을 얻었다.
그의 초상화 한 점은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1억 원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누구나 사전트에게 초상화를 의뢰할 수 없는 금액이었지만. 돈 많은 귀족과 상인, 정치가들이 그의 기품있는 초상화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앞다투어 줄을 섰다.
사전트가 처음부터 영국의 화가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복한 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인상주의 화가들과 깊은 우정을 쌓았다. 파리에서의 시절은 그의 예술에 자유로운 감각과 빛의 감수성을 이해하는데 큰 경험이 될 수 있었고, 인물화와 사실화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던 영국에서 그의 예술세계는 꾸준히 이어 잘 수 있었다
천사처럼 아름다운 아이들
대상에 대한 특징을 단번에 포착하는 재능이 남달랐던 사전트는 꽃과 아이가 지닌 순수함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던 사람이다. 그는 인물의 기품과 우아함을 그려내는 데 탁월했지만, 흰옷의 순수한 어린이를 마주할 때면 한층 더 섬세해졌다. 그의 시선에서 어린이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천사와도 같았다. 백합에 물을 주는 아이의 고요한 손짓이나 장난기 어린 소년의 눈빛 속에 그가 느꼈던 동심의 세계가 고스란히 스며있다.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를 비롯해 사전트는 꽃과 흰옷의 소녀를 함께 담은 작품을 여러 점 남겼다. 흰옷은 본래 죄 없는 자만이 입을 수 있는 순결의 상징이라 하지 않던가. 그에게 흰옷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마음의 빛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맑은 빛 앞에서, 잠시 잊고 있던 마음의 고요함을 되새기게 된다.
첫댓글 마치 도슨트?
큐레이터 같습니다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