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전 드디어 사피엔스를 다 읽었습니다. 휙 읽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정말 한꺼번에 읽기가 아까워 조금씩 읽었습니다. 한 장 한 장 마다 펼쳐지는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과 근거를 모으는 능력을
감탄하는 재미가 아주 컸는데.. 아쉽습니다. 주로 자연과학적 얘기가 될 거 같아 어떨까 싶긴 하지만..8월 책모임
발제 겸 해서 읽으면 생각났던 것을 몇 번 올려볼까 합니다.
이 책의 결론은 신이 되려 하는 사피엔스 입니다. 원숭이와 비슷한
과의 동물로 출발해 이제는 생명의 조작을 통해 신이 되려 하는 사피엔스.. 이 책에도 나오듯이, 이미 구글은 죽음과 노화라는 인간의 오래된 숙제를 정면으로 해결하려는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진시황의 숙원이 해결될 것인가?
생명공학이 아니라도, 얼마 전 알파고를 통해 보듯, 이미 사피엔스는 생명을 넘어서는 그 무엇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알파고를
만든 회사이름이 딥 마인드(deep mind) 인데, 저는
이 회사의 이름을 들으며 묘한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디지털의 산물인 알파고를 통해, 전형적인 아날로그인 인간의 마음(마인드) 마저도 깊게(deep) 접근하려는 사피엔스의 욕망…
과연 성공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내기를 좋아하는 저보고 걸라면, 성공한다에 걸 듯 합니다… 이유인 즉 이렇습니다.
이제는 너무 흔한 말이 되어 버린 디지털(digital) 은 실은 2진수(di-git) 로 모든 문제에 접근한다는 겁니다. 0 과 1.. 그래서 컴퓨터의 모든 연산과 모든 처리는 0 과 1 의 반복과 순서에 특정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해결됩니다. 예를 들어 000101000 은 ‘ㄱ’ 을 의미한다고 프로그램에 깔려있고, 그래서 제가 자판의 ‘ㄱ’ 을 치면 프로그램은
000101000 의 연산을 통해, 화면에 ‘ㄱ’ 을 표시합니다. 다만, 그 배열의 크기가 10 억을
의미하는 기가(Giga) 단위까지 확대되기 때문에, 이 글을
쓰게 해주는 워드 프로그램이 다양한 기능을 제공할 겁니다.
현대의 분자 생물학은 생명이라는 것도 디지털처럼 보게 만듭니다.
유전의 실체인 DNA 는 A(아데닌), T (티민), G(구아닌), C (시토신) 라는 4 종류의 염기의 배열순서로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DNA 는 4진수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AATCGGGGGGGAAACCC 이런 배열은 이빨의
송곳니 모양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식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간단한 4 종류의 염기가 어떻게 무한히 복잡하게 보이는 인간의 유전을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점 때문에, 1953년 왓슨과 크릭이 DNA 의 구조를 밝히기 전까지 상당수의 생물학자들은 DNA 가 별거
아닌 물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배열이 31억개가 연속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그 안에 2만-25000 개 정도의 유전자를 넣어놓고, 제 이빨과 제 아들의 이빨모양을 비슷하게 생기게 유전합니다. 알파고가 2진수의 무한배열을 통해 기능한다면, 인간의 DNA 는 4진수의 31억개
배열을 통해 유전자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런 생각을 연장하면 단백질은 20 진수입니다. 계란 흰자나 고기를 떠올리게 하는 단백질 이란말의 생물학적 의미는 너무나 심오하고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일단 단백질은 우리의 몸체를 이룹니다. 우리 몸은 뼈도, 근육도, 피부도, 심장도, 이빨도, 모두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만 그 단백질의 종류가 다를 뿐입니다. 케라틴이란 단백질은 머리털
피부 손톱등을 만드는 성분이고, 액틴은 근육이 수축하도록 하는 단백질이며, 항체는 외래 침입자들에 대항하는 면역계의 단백질이고, 적혈구에 존재하는
헤모글로빈은 산소를 인체 모든 세포들에 배달해 줍니다. 생물에게 가장 중요한 단백질은 실은 효소(enzyme) 라고 불리는 단백질입니다.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이 라는 두개의 단당류가 뭉친 2당류인데, 냉장고나 찬장에 아무리 오래 두어도 변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몸에 들어와 탄수화물 분해효소와 접촉하자 마자 바로 분해되어 세포속으로 흡수되어 에너지원으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등산갈 때 사탕이나 쵸코렛을 챙기는 것인데, 이 설탕도 효소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효소는 우리 몸에서 드라마틱한 생화학반응의 촉매역할을 합니다. 소화나 호흡, 에너지 대사등 우리 몸의 수많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인체는 수만가지 이상의 단백질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이 단백질의 기본 요소는 아미노산이고, 이 아미노산은 자연에 20종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단백질은 이 20개의
아미노산을 어떻게 갖다 붙이느냐에 따라 기능과 명칭이 달라집니다. 말하자면, 인체의 다양한 구성요소와 기능의 핵심물질인 단백질이 실은 20진수의
배열을 통해 결정된다는 겁니다.
탄수화물은 어떨까요?
마찬가지 입니다. 탄수화물의 종류는 무수히 많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의 대부분과, 우리 몸에 저장되는 대부분의 탄수화물은
포도당과 과당이라는 두개의 단당류, 그중에서도 포도당이 여러개 엮여지며 만든 것입니다. 포도당과 과당이 한 개씩 묶이면 설탕이 됩니다. 포도당 수천개가
선(line) 처럼 이어져 있는 것이 녹말입니다. 포도당
분자들이 케이블 같은 형태로 꼬여져 있으면 식물의 세포벽을 이루는 셀룰로오즈가 됩니다. 포도당이 가지를
치며 체인처럼 엮여지면, 우리
몸에 여분의 당을 저장하는 글리코겐이 됩니다. 말하자면, 우리
몸의 탄수화물의 주요 구성 단위는 실은 1개나 2개 정도라는
겁니다..
DNA 가 ATGC 4개의
염기순서로 유전을 결정하고, 단백질이 20개의 아미노산으로
기능과 성질을 결정하듯, 탄수화물은 1-2개의 단당류의 종류와
배열로 그 성질을 결정합니다.
나아가 이런 구조는 모든 생명체에 공통입니다. 박테리아로부터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에 이르기 까지, 모든 생명체는 동일한 구조의 DNA 를 통해 다음세대에 자신의 특질을
전달합니다. 20가지 아미노산을 통해 다양한 단백질들을 만듭니다. 모든
생명체가 탄수화물을 대사해서 에너지원을 얻습니다. 그리고, 이런
물질들이 순환되고 공유되어 생태계를 구성합니다.
더 나아가 이 우주의 모든 물질은 원소주기율표에 나와있는 92개의
원소들에 의해 구성됩니다. 이 원소들이 화학적으로 어떻게 뭉치느냐에 따라 특정 분자가 만들어 지고, 그 분자들이 모여서, DNA와 아미노산과 단당류가 만들어지고, 또 이것들이 모여서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만듭니다. 또 산천초목의
모든 구성물질을 만듭니다. 대기권밖, 화성, 태양에너지 모두 이런 원소들로 구성됩니다. 말하자면 이 우주는 92진수로 해석됩니다.
이렇게 생명을 이루는 4진수
DNA, 20진수 단백질, 2
진수 탄수화물과 이 우주만물을 이루는 92진수와 디지털의
2진수는 비슷할까요 아닐까요? 제가 보기에 그 양적 차이는 어마어마 하지만, 그 질적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기본 물질이 있고, 그 기본물질의 다양한 구성과 배열을 통해 모든 게 결정된다는 면에서 말입니다.
그렇기 떄문에 아마도, DNA 구조를 밝힌 주역인 왓슨이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DNA 이중나선은 세포에 물질적인 사고방식이라는 계몽혁명을 일으켰다.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서 쫓아낸 코페르니쿠스에서 시작된 지적여행은 인간이 변형된 원숭이에 불과하는 다윈의 주장을
거쳐서 마침내 생명의 본질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지점까지 왔다. 그리고 거기에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이중나선은 아름다운 구조물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너무나
평범했다. 생명체는 화학의 산물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제임스
왓슨, DNA: 생명의 비밀, 2003)
다시..
사피엔스는 신이 되는데 성공할까요?
저는 성공한다에 10만원 겁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99.99% 동감하나 저는 실패한다에 10만원 겁니다. 그 이유는 (1) 베팅 성립 (2) 0.01%의 자유 의지, 또는 확률(not 확정) 운동, (3) 인공지능이 경험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미생물(생태계)의 반란, 또는 돌연변이...
믿고 싶습니다. 힘내 미생물!
ㅋㅋ 감사합니다. 사피엔스 아직 다 못 읽고 있는데 발제 내용 미리 올려 주시네요. ^^
심정적으로는 성공한다에 걸고 싶습니다만, 그 결과를 우리가 함께 확인할 수 있을지 …
내기 판돈은 누가 챙길 수 있을지 …
해서 진호님 말씀에도 혹하고 … ^^;;;
그리고 그간 혜성님의 내기 승률에도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기에는 … ^^;;;
ㅋㅋ 진호,.. 나도 궁금해~^^ 귀희님, 저 지난번 월출산 다녀올때 빼놓곤..승률 괜챦습니다~^^
이 생각의 여진이 얼마나 갈진 모르겠는데, 사피엔스를 읽고 나선, 또 알파고를 보고 나선, 우리 시대의 특별함이 훨씬 크게 느껴져요. 얼마전 손정의 회장이 자신의 은퇴를 미루면서 우리 시대의 특이점들을 현장에서 관찰하고 싶다는 뉘앙스의 얘길 하던데..그 심정에 조금은 공감도 되고요..모든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곘지만..~^^
인체를 이루는 그리고 이 세상의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종류를 이리도 쉽게 설명해 주시다니~~~
잠 재미납니다.
저도 성공한다에 걸랍니다.
이미 많은 부분 성공했으나 윤리적인 측면이라는 핑게로 또 인간 개인의 욕심에 의해 악용될까봐 공개되지 않은 부분이 많으리라고 생각되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