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시대는 어디 있는가?
인생에서 즐거운 시간들은 빛의 속도로 흘러가지만, 괴로운 시간들은 분초의 마디마디가 얼마나 긴지 모릅니다. 그렇게 보면 인생은 비극입니다. 인생에서 즐거웠던 시간과 괴로웠던 시간이 물리적으로는 반반이라고 하더라도 괴로울 때의 시간이 훨씬 더디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비극에서 희극으로 바꾸려고 망각이라는 선물을 주셨는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를 아름답게 추억합니다. 진홍빛처럼 괴롭고 힘들었던 일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망각과 착각의 금빛으로 채색됩니다. 그래서 ‘그땐 그랬지……’라는 말에는 아련한 미소가 따라붙는지도 모릅니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를 보면, 소설가인 길은 많은 천재 예술가들이 활동했던 1920년대의 파리를 동경합니다. 길이 동경하던 1920년대는 막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에 환멸을 느끼던 많은 예술가들이 파리로 모여 술과 파티를 벌이면서 교류하던 시절입니다. 이 시기를 ‘로스트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주인공 길에게는 ‘황금시대(Golden Age)’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는 길이 파리의 어느 골목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데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1920년대로 배경이 바뀝니다. 신데렐라의 호박마차처럼 자신 앞에 나타난 클래식 카를 타고 1920년대 파리에서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막심 레스토랑으로 갑니다. 그곳에서는 브로드웨이의 전설적인 작곡가 콜 포터가 피아노를 치고 있고, 한쪽 구석에서는 헤밍웨이가 술을 마시며 글쓰기에 고심하고 있으며, 『위대한 개츠비』를 쓴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 부인 젤다가 다투고 있습니다. 길에게는 위대한 역사의 현장 가운데 서게 된 것입니다. 소설가 길이 동경하던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의 시대에 온 것입니다. 그곳에서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와 같은 유명한 화가들도 만납니다. 그리고 피카소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아드리아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천박하고 속물적인 자신의 약혼녀에 비해 아드리아나는 기품이 있고 낭만적입니다. 길은 아드리아나와 함께 1920년대 파리에서 살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정작 아드리아나는 자신의 살고 있는 시대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녀가 보기에 자신의 시대는 천박하고 속물적입니다. 그녀가 황금시대로 동경하는 시대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라 불리던 1890년대입니다. 바로 이 시기부터 막심 레스토랑에 예술가들이 모이기 시작했으며 인상파 화가들이 활동하던 시기인 동시에 물랑루즈에서 캉캉춤을 공연하던 시기입니다. 길이 시간 여행으로 자신이 있는 시대로 온 것을 알게 된 아드리아나는 길과 함께 다시 자신이 그리던 황금시대 1890년대 파리로 시간 여행을 합니다. 이번에는 클래식 카가 아닌 마차를 타고 막심 레스토랑으로 향합니다. 그곳에는 무희들의 캉캉 공연이 한창입니다. 테이블에는 인상파 화가들인 폴 고갱, 에드가 드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이 앉아 공연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길은 그녀가 그토록 꿈꾸던 황금시기 속에서 황홀경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아드리아나를 만난 1920년대에 시간여행을 하며 넋을 잃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아드리아나는 길에게 다시 돌아가지 말고 여기서 함께 살자고 제안하지만 아드리아나를 통해 자신을 발견한 길은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합니다. 길은 자신이 사랑했던 시대가 1920년대라서 좋아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벗어나 추억으로 물든 과거이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있는 그대로의 과거가 아니라 우리의 망상과 착각이 빚어낸 과거라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열풍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름답게 채색된 과거에 대한 향수일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들이 노예 시절을 미화해서 회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를 탈출해서 식량난에 허덕이다가 처음 만나를 먹을 때는 꿀을 넣어 만든 과자처럼 맛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만나만 먹다 보니 그것도 지겨워졌나 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불평들을 했습니다.
“언제 고기를 먹어 볼까? 이집트에서는 공짜로 생선도 먹었고, 그 밖에도 오이, 부추, 수박, 파, 마늘과 같은 채소들도 마음껏 먹었는데…….”
자신들이 이집트에서 노예 신세로 강제노역을 하며 채찍을 맞던 비참한 일들은 까맣게 잊었나 봅니다. 신이 주신 망각으로 괴로운 것들은 지워지고 좋은 기억으로만 남은 과거로의 여행은 괴로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잠깐의 일탈이자 휴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왜곡된 기억만 붙들고 살면서 현실을 비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거로의 여행은 뜻하지 않게 다양한 매개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단순히 시대극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만 회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나 인상이 담긴 물건, 향기, 소리 같은 것들이 추억의 문을 여는 도구가 됩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마들렌이 구워지는 향기를 통해 과거를 경험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전에 듣고 부르던 노래가 그 시절 추억을 소환한다고도 했습니다. 저의 경우는 이른 봄 라일락 향기를 맡게 되면 대학에 다니던 시절이 떠오르곤 합니다. 이와 같이 채색된 과거는 치열한 일상 속에서 작은 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을 살아가는 새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국운이 쇠락해 가고 있던 남유다의 말기 요시야 왕 때 성전보수공사 중에 율법서를 발견한 사건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 율법서를 통해서 과거의 부흥기 때에 지켜 오던 믿음과 미덕을 다시 되새기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과거의 추억에만 빠져서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다만 과거를 통해 현실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일 습관처럼 ‘그때는……’, ‘그 시절에는……’, ‘왕년에는……’ 하는 말을 쓴다면 과거에 빠져 현실을 제대로 살아 내지 못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름다운 과거는 과거의 자리에 두고 와야 합니다. 가끔씩 쉼과 지혜를 얻고는 다시 오늘을 살아가야 합니다. 나의 실존이 내 몸이 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해야 합니다. 충실한 오늘이 쌓이고 쌓여 또 다른 추억이 될 것입니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년이 오면 오늘을 충실히 살아내며 쌓인 추억들이 마음의 연금이 될 것입니다.
- 책 <부드러운 예수님, 뻣뻣한 기독교인, 조현정, 김재현 지음> 중에서 조현정의 글
-CN드림 칼럼 <조현정의 시대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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