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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경쟁/ 맹찬형/ 서해문집
2학기 독서모임 도서목록 중에서 단연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입니다. 경쟁을 사회적인 관점에서 조명해볼 수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경쟁 구조에 대해 개탄하고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몇 가지 조건만 갖춘다면 건강하고 따뜻한 경쟁을 설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 덕분에 맹찬형 기자님의 팬이 되었고, 페이스북으로 친구가 되기도 했죠. ^-^
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닌 지 일주일 좀 되었을까요? 저희 반 한 남자 아이가 묻습니다.
"선생님, 무슨 책 보세요?"
"응. 따뜻한 경쟁이란 책이야."
그러자 아이가 콧방귀를 끼며, "에이~ 선생님. 세상에 따뜻한 경쟁이 어딨어요. 경쟁은 어디까지나 차갑고 냉정한 거라구요." 합니다.
그 때 아이의 반응이 얼마나 신선하던지요. 왜 저는 이 책의 제목이 지극히 역설적이라는 생각을 못 했을까요? 아니, 생각하면서도 덮어두고 묻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 보내주는 이런 짜릿한 반응은 교사가 절대 놓칠 수 없는 순간이죠. 그래서 저는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어 보기로 했습니다.
"따뜻한 경쟁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칠판에 크게 썼습니다.
저는 가끔 아이들의 논리적인 글쓰기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바깔로레아 형식을 빌려오는데요, 이렇게 크게 칠판에 '그렇다/아니다'의 양반 논쟁이 가능한 주제를 주고, 주어진 시간 안에 적절한 근거를 들어 한편의 완성된 글을 쓰게 합니다. 정답은 없지만, 주장의 설득력에 따라 점수를 매긴다고도 이야기해줍니다. 물론 절대 평가이구요.
아이들이 쓴 몇 가지 글을 소개합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생각하는 힘을 짜내어 주장하는 글을 쓴 아이들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구은지
‘따뜻한 경쟁’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경쟁은 상대방이랑 겨뤄서 승자, 패배를 가리는 건데 사람들이 질라고 하진 않으니까 당연히 경쟁을 하면 서로 불타오른다고 할까...보이지 않는 불꽃이 이글이글 거리니깐 따뜻한 경쟁이라고 할 수 없다. 치열하고 냉정하게 경쟁을 하는거니깐. 경쟁하는 사람들 눈빛을 보면 차갑고 비장하다. 그래도 경쟁을 다 마치고 승자, 패배가 결정났을 때 그때는 서로 안으면서 악수하면서 훈훈하고 따뜻하게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이 따뜻함은 경쟁이 끝나고 나서야 생기는거지 경쟁하고 있는데 생기진 않다. 진지하고 이길려는 마음을 갖고 있어서 그만큼 더 경쟁이 격렬하고 차갑게 되는 거, 그런 걸 가지고 따뜻한 경쟁이라곤 할 수 없다. 승자가 되기 위해선 치열해야 하는거니까. 쉽게 이기는 경쟁은 없다.
임낙균
저는 따뜻한 경쟁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경기는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경쟁일 뿐입니다. 첫째, 예를 한 가지 들어봅시다. 어느 국제 테니스 대회에 나간 선수 두 명이 있었습니다. 만약에 두 명이 승리를 쟁취하려 하지 않고 서로 승리를 양보하려고 한다며, 그것은 더 이상 대회가 아닐 겁니다. 그것은 친선경기, 동네 테니스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감정, 욕구 중 승부욕이라는 감정이 왜 있는 걸까요? 어쩌면 따뜻한 경쟁을 하지 말라는 걸지도 모릅니다.
둘째, 우리 주변에는 경쟁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 500:1의 확률로 경쟁하는 것, 수능 시험에서 서로 시험을 잘 보려고 하는 것, 사소하게 달리기 경주까지,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경쟁에서 모두 다 서로 순위를 양보한다면 어떨까요. 그런 경우는 있을 수도 없을뿐더러, 경쟁의 정의가 뚜렷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친구와 같이 시험 준비를 하고, 시험을 보았는데 자기만 합격해서 친구가 불쌍해서 그 합격을 친구에게 준다? 이것은 열심히 공부한 사람만 손해를 보는 아주 나쁜 경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따뜻한 경쟁’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종민
내가 생각하기에는 없는 것 같다. 경쟁이란 다른 사람과 대결을 하는 것이다. 따뜻하게 대결을 하는 것은 아예 말 자체도 되지 않는다. 나와 보건이도 몇 개월 전만해도 공부경쟁을 하였다. 꼭 보건이를 이겨야 겠다는 마음, 지면 절대로 안된다는 마음... 그것이 따뜻한 경쟁일까? ‘따뜻한 경쟁’에 ‘따뜻한’의 뜻은 양보인 것 같다. 양보를 하면서 경쟁을 한다... 말이 안되는 것 같다. 경쟁은 양보를 하면 그 경쟁에서 져버린다. 차갑고 냉정한 경쟁이 따뜻한 경쟁이라고 말하는 것은 ‘차가운 달’이 ‘뜨거운 달’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나는 ‘따뜻한 경쟁’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손약문
따뜻한 경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생물들은 살아남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살아남으려면 경쟁을 해야한다. 그게 자신의 소중한 친구나 가족일 수도 있고 또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경쟁에 여러 가지가 있다. 뺏고 싸우고 무리지어서 다투는 등, 하지만 그 중 따뜻한 경쟁은 없다. 경쟁은 오직 차갑고 냉정해야만 된다고 생각한다. 동물도 그렇다. 암컷코끼리를 얻기 위해 수컷코끼리 2마리는 죽을 듯이 싸우며 경쟁을 한다.
만약 경쟁이 따뜻하다면 겨룰경, 다툴쟁, 경쟁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채하늘
따뜻한 경쟁이란 뒤쳐진 경쟁자들을 돕고 격려해주는 것이 따뜻한 경쟁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것만이 따뜻한 경쟁이라 할 수 없지만 말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경쟁’이란 단어에 스포츠, 냉정과 같은 단어들이 생각날 것이다. 이건 그저 사람들의 생각 한 구석에 박혀있는 고정관념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나는 경쟁이 남을 도우는 것을 배우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은 ‘누가 이겼다’, ‘누가 졌다’를 가름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능력을 평가하고 ‘내 단점은 무엇인가?’, ‘내 잘못, 내 실수는 무엇인가?’,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 하고 나의 능력을 키우는 게 경쟁이라 생각한다. 흔히 학교 체육 시간에도 남 잘못만 보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다. 때때로 그 친구들에게 선의의 경쟁이 무엇인지, 따뜻한 경쟁은 무엇인지 말해주고 싶을 때도 있다.
“경쟁의 세계는 냉정해.”, “경쟁에서 뒤처지면 지는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어 보았다. 하지만 경쟁이란 단어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풀릴 단어가 아니다. ‘경쟁’은 모든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휴대 전화도, 우리가 항상 입고 있는 옷도, 우정도, 따뜻함도 경쟁이 만들 수 있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기업 간의 경쟁을 위해 교류도 하고 선의의 경쟁 즉, 따뜻한 경쟁을 위해 나라에서도 도와주고 있는 추세이다. 기업과 기업 간의 교류는 또 다른 제품을 만들어 내고, 기업 간 친분을 쌓을 수 있다. 이렇게 친분을 쌓고 쌓다보면 경쟁은 따뜻해 질 수밖에 없고 바로 따뜻한 경쟁이 되는 것이다.
경쟁이 냉정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경쟁의 특징이지만 이 경쟁은 냉정해질수록 더욱 따뜻한 경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난 ‘따뜻한 경쟁’은 존재할 수 있다 생각한다.
김해린
‘경쟁’이란 단어는 처음부터 무언가 접하기엔 차갑게 느껴진다. 하지만 ‘따뜻한 경쟁’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다 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뜻한 경쟁’의 반대는 ‘차가운 경쟁’이다. 흔히 말하는 차갑고 냉정한 세상이란 말과 비슷할 것 같다. 사람들은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친해지고 따뜻한 법을 배운다. 또는 차갑고 냉정한 법도 배운다. 경쟁을 할 때 무조건 차갑고 냉정하다는 것은 고정관념일 뿐이다. 세상이나 경쟁은 언제나 마음만 먹는다면 따뜻해질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스포츠로는 링 위에 복싱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A, 하나는 B, A는 B를 치고 박고 싸워서 이겼다. 그러고 그 상태로 나가버린다. 이것은 차갑게 냉정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TV로 봐도 이런 일은 없다. 다 일으켜주고 악수하고 나가지. 이렇게 끝에 손길을 내밀어주고 일으켜주는 것이 따뜻한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싸울 땐 차가운 경쟁이지만 그래도 끝에 따뜻하게 녹여줄 수 있는 게 따뜻한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싸울 땐 차가운 경쟁이지만 그래도 끝에 따뜻하게 녹여줄 수 있는 게 따뜻한 경쟁일 것 같다. 그러니까 따뜻한 경쟁은 언제든지 존재할 수 있고 사라질 수 있다. 사람들이 따뜻해지는 만큼의 경쟁이 중요하게 될 것이다.
최민정
따뜻한 지 차가운 지는 말 한마디에 바뀔 수 있다.
경쟁은 말 그대로 서로 다투어 1위를 가려내는 것이다. 그래서 경쟁은 냉정하고 차갑다. 하지만 경쟁이 끝난 후에 따뜻할 지 차가울 지 알 수 있다. 1등했다고 으스대거나 혹은 졌다고 욕을 하면 그 경쟁은 계속 차가울 것이다. 하지만 너 정말 잘했다 아쉽다 다음에는 꼭 이겨야지!라는 칭찬과 노력을 하면 따뜻한 경쟁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경쟁할 때 나쁜 마음을 가지고 일부러 하거나 욕해도 말 한마디면 냉정하고 차가웠던 경쟁도 결국 말 한마디에 녹아 따뜻한 경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후 아이들은 자신이 쓴 글을 다듬어 열띈 찬반토론을 하였습니다.
다음은 교사인 제가 '따뜻한 경쟁은 존재할 수 있는가?'를 활용한 수업이 끝난 뒤 나름대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1. 논제를 ‘존재하는가?’로 정했다가, ‘존재할 수 있는가?’로 바꾸었다. ‘따뜻한 경쟁은 존재하는가?’에 ‘그렇다’고 글을 써갈 아이가 몇 없을 것 같았다. 이는 교사 본인의 자조적인 판단이었을 수도 있겠다. 우리 아이들이 경험하는 사회적 맥락 안에서 겪어온, 혹은 겪어 갈 경쟁이 따뜻한 경쟁이었다고, 혹은 일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상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논제를 설정하였다. ‘존재할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아이가 다섯 명만 나와도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2. 수치로만 보자면, 총 19의 참가자 중에 ‘존재할 수 있다’고 논의한 학생이 5명,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 학생이 12명, 중립적인 입장을 보인 학생이 2명이었다. 존재할 수 있다는 측의 아이들은 그야말로 감정에의 호소에 가깝다면,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의 학생들은 좀 더 확신을 가지고 주장하는 편에 가까웠다.
3. 존재할 수 없다 측의 아이들은 경쟁의 본성, 즉 경쟁은 차갑고 냉정하며, 결과적으로 승패가 존재한다는 점에 근거하였다. 학원 시험, 스포츠 경기, 수능, 입사 시험 등 예를 들어 뒷받침하였다. 경쟁을 만들어진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쉽다.
4. 존재할 수 있다 측의 아이들은 ‘양보’를 따뜻한 경쟁의 필수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사실 양보를 하는 순간, 이미 공정한 경쟁이 아닐 수도 있는데. 경쟁을 통해 스스로 부족한 점을 알 수 있고,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표현도 눈에 띈다. 이는 따뜻한 경쟁의 지표가 개인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5. 예상했던 대로 아이들은 따뜻한 경쟁의 필수 요소인 ‘패자부활의 기회’나 ‘출발선 상에서의 평등’, ‘기회의 다양성’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이야기해주었다. 맹찬형 기자의 책도 읽어주었다.
6. 이번 논제만큼은 아이들에게 보다 교사에게 유익한 토론이었던 것 같다. 교실에서 ‘만들어진 경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내가 교실에서 설계한 경쟁이 아이들이게 경쟁의 차가운 본성을 부추기는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한다. 이를테면, 계주 대표 선수를 뽑은 것이 떠오른다. 많은 아이들이 운동회에서 달리기 경주를 싫어한다는 것을 경험 상 잘 알고 있다. 특히 6학년 쯤 되면 누적적으로 증명된 각자의 달리기 실력이 있어, 잘 뛰는 서너 명의 아이를 제외하고는 달리기 경주를 다 싫어한다. 물론 대표 선수도 반의 명예를 실추시켜서는 안 된다는 부담을 가지기는 마찬가지다. 가장 잘 뛰는 단 한 명의 선수를 뽑기 위해 아이들에게 경주를 시킨 뒤, 순위를 매기는 것. 이것 말고 달리기를 더 즐기고 좋아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모두가 지금 뛰고 있는 것보다 조금씩 더 잘 뛰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나 달리기를 다 잘 해야만 할까?
여희숙 선생님의 <책 읽는 교실>을 보면 학급독서가 토론수업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여러 차례 말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경쟁>을 활용한 토론 수업은 아이의 사소한 반응에서 비롯된 뜻밖의 수확이자, 선생님의 의도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어떤 경쟁에 맞섰을 때, 오늘의 토론과 함께 나눈 이야기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
첫댓글 고마워요 햄맹샘. 정말 많은 도움이 돼요!^^
특히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어서 넘 좋네요.
쏭쏭 우리 정말 토론에 더 관심을 가지고 교실에서 해보자.
언니는 진짜 거짓말 안 보태고 우리모임의 복띵이!
꺄아아아 >_<
토론하는 법을 한 번 가르쳐 보시면 어떨까요?^^ 복띵이선생님^^
정말로요~~ 선생님의 조언을 자주 구하게 될 것 같습니다. <토론하는 교실>에 인용된 크리스마스 산타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동기를 유발하는데 짱짱이었습니다 :)
@복띵이 배현명 아!^^ 해보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