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두개의 나가 있어요
두명의 나 라고 닉네임을 쓰신 분, 자신의 양가감정에 대해 잘 인식하고 계신점이 우선 다행스럽습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생존 욕망과 죽음욕망, 자기보존욕구와 자기 파괴욕구, 현실 원칙을 따르는 본능과 쾌락 원칙을 따르는 본능 등의 상반된 힘이 공존합니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죽음욕망,,,,
정신분석에서 죽음의 욕망에 대한 개념은 주로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비롯됩니다. 그의 주장 중 하나는 에로스(생명력, 성욕적 욕망)와 탄토스(죽음의 욕망)가 개인의 심리적 활동을 조절하는 두 가지 기본적인 충동이 있다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생명력 충동인 에로스가 자극을 받으면 삶을 유지하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죽음의 욕망인 탄토스는 에너지의 소모를 줄이고 평화로운 상태로 돌아가려는 충동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두 충동이 계속 상호 작용하면서 개인의 행동과 정신적인 과정을 조절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죽음의 욕망이 의도적인 자살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에로스와 상충되어 충돌하며 표출된다고 봤습니다. 이 개념은 프로이트의 후속 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확장되었습니다.
뇌과학적으로는 분명 뇌는 신나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알로테시스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즐겁든, 슬픈든.. 평형된 상태를 원한다.
프로이트의 죽음의 욕망 개념은 후속 학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었습니다. 여러 이론가들은 이를 자신의 연구와 관점에 맞게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예를 들면:
멜라니 클라인 (Melanie Klein): 클라인은 죽음의 욕망을 주로 초소적 이론에 적용했습니다. 그녀는 아기가 어머니의 유방에 대한 양성적 욕망과 함께 부정적인 측면, 즉 파괴적인 욕망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죽음의 욕망은 이러한 파괴적 욕망을 나타낸다고 해석되었습니다.
위니콧 (Wilfred Bion): Bion은 죽음의 욕망을 현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의 방어 메커니즘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는 이를 "파괴적 욕망"이 아닌 "파괴적 욕망을 극복하는 노력"으로 이해했습니다.
헤이맨 (Heinz Hartmann): 헤이맨은 죽음의 욕망을 에로스와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라, 에로스의 한 형태로 간주했습니다. 그는 죽음의 욕망을 생명력이 조절되고 재조직되는 과정으로 이해했습니다.
자기파괴욕구는 정신분석에서 사용되는 개념 중 하나로, 개인이 자신을 손상시키거나 파괴하려는 욕망을 나타냅니다. 이는 주로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작용하며 정신적인 고통, 갈등, 또는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자기파괴욕구는 프로이트의 죽음의 욕구와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이 자기를 파괴하려는 욕구는 종종 불안, 우울, 자아 면역의 부족, 또는 정서적인 고통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자기에 대한 부정적인 자아 이미지, 내적 갈등, 또는 외부적인 스트레스와 상호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자기파괴욕구를 탐구하고 이해함으로써 개인의 정신적인 고통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이해를 토대로 정신분석 치료는 클라이언트가 자기에게 해로운 행동이나 패턴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중점을 둡니다.
프로이트 학파 정신분석학에서는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감정의 어두운 측면이 밝은 측면과 짝을 이룬다고 해서 "양가감정"이라 일컫습니다. 융 학파 정신분석학에서는 그런 측면을 밝은 의식의 반대편에 있는 어두운 면이라는 뜻에서 "그림자"라고 부릅니다. 앞장에서 내면에 억압된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과정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내면에 쌓아 둔 감정은 대체로 분노, 불안, 질투, 시기심 같은 부정적인 것들입니다.=> 이것은 왜 발생했을까요......
이제는 바로 그 못나고 추악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면의 어두운 측면들을 하나씩 꺼내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보살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 못나고 추악한의 기준은 이것은 어디에서........
두명의 나 님,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두 가지 감정을 짐작하신다면 우선 아버지에 대한 사랑뿐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분노도 알아차리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행동 속에 존재하는 사랑과 학대를 구분하실수 있었야 합니다. 자녀에 대해 높은 기대를 갖는 것은 자녀의 능력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자녀를 통해 자신의 실패를 보상받고자 하는 행위입니다. 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할때 뼈가 부러지지 않도록 파이프에 테이프를 감았다면 그것은 충동적인 행동이 아니라 치밀하고 계획적인 폭력입니다. 다른 가족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자신에게만 폭력을 행사했다고 해서 자신만을 더 사랑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초등학교 6학년짜리 딸을 성추행했다는 것은 아버지의 통제력에 문제가 많았다는 말입니다.
학대받은 아동들은 믿을수 없겠지만, 자신을 학대하는 부모에게조차 강한 애착과 충성심을 갖습니다. 부모가 즐거움과 만족을 주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 사이의 유대관계가 약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아이들은 부모와 더욱 강한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부모가 주었던 것과 똑 같은 종류의 고통을 추구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두명의나 님처럼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은 꾹꾹 눌러 참고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면서 부당한 관계나 우울을 감수하게 됩니다.
착한 여자의 뒷면에 있는 나쁜여자는 분노뿐 아니라 맞는 행위에 대한 공포와 불안, 맞지 않는 동생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 맞으면서 형성된 자기 비하감과 자기 파과적 성향들을 두루 가지고 있습니다. 그 여자는 술을 많이 먹어 필름이 끊기면 행동이 180도 변하면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냅니다. 두명의 나 님이 우선 하실 일은 술취하지 않은 맨정신으로도 나쁜 여자의 감정역을 알아차리고 느끼는 일입니다. 그 어둡고 부정적인 감정들 역시 자신의 것임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끌어 안아야만 합니다.
또 한가지 권해 드리고 싶은 것은 연인을 만들고 사랑을 하시라는 점입니다. 내면에 억압된 '탕녀'의 측면, 그래서 함께 술 먹는 사람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욕망을 현실속에서 구체적인 대상과 나누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두명의 님은 여전히 아버지에게 정서적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연인을 만들고 그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을 해보지 않으셨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 상대와 몸과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경험을 하신다면 "술에 취해 남자를 가만두지 못하는 " 행동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그런 욕망들이 내면에 억압되어 있기 때무에 술이 취했을 때에만 표출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할 때는 꼭 주의하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두명의나 님은 무의식적으로 고통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대상을 선택할 때도 만족과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 아니라 (아버지처럼) 고통을 주는 사람에게 끌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점을 유념하셔서 즐거움, 만족감, 편암하을 주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사랑뿐 아니라 다른 인간관계나 세상살이에서도 자기 파괴적으로 행동하지 않도록 늘 유의하셔야 합니다. 조금만 마음이 삐긋하면 죽음 욕망이 생존 욕망을 이겨 버릴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면에 억압해 둔 어둡고 위험한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고 밝고 건강한 의식속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양가감정을 통합한다고 일컫습니다. 양가감정을 통합하면 자아가 강해집니다. 내면에 억압하는데 쏟던 에너지를 거두어 자아가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양가감정을 통합하면 또한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사람이 됩니다. 억압하고 외면해 둔 내면에는 엄청난 지혜와 창조성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한 인간으로는 존엄하고 사랑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게되면, 그때 진정한 마음의 치료가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