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사띠), 통찰명상(위빠사나), 집중명상(사마타)
알아차림 명상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사띠는 알아차림 명상이다.
사띠는 지금, 주의 기억, 현존등의 의미를 포괄하는 말이다. 즉 사띠는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에 지속적으로 주의를 두어 알아차리는 것을 의미한다. 대상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지금 여기서 지속적으로 펼쳐지고 있난 나의 경험을 매 순간에 놓치지 않고 계속 알아차리는 것이 사띠이다. *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은 인간의 뇌가 할수 없는 일이다....
사띠는 지금 여기서 알아차리는 것이긴 한데, 본래 사띠에는 기억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무엇인가를 알아차린다는 것은 이미 일어난 과거의 일에 관한 것이다. 즉, 지금 여기 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늘 "조금전"이다. 내가 조금전에 일어난 일을 알아차리는 것이기에 알아차림의 본질은 기억이다. 사실 모든 스토리텔링도 기억이며, 스토리텔링의 집적물인 일화기억의 덩어리가 곧
자아다..
내면 소통의 본질에도 기억이 자리 잡고 있다. 인간에게 기억의 능력이 없다면 어떠한 소통도 불가능하다. 능동적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 모델과 생성 모델의 본질 역시 기억의 덩어리들이다. 능동적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 모델과 생성모델의 본질 역시 기억의 덩어리들이다... 과거의 경험에서 오는 기억의 덩어리인 내적 모델이 새로 들어오는 감각자료들로 덮어 씌워질 때 예외적으로
삐져나오는 부분이 곧 예측 오류다. 능동적 추론 이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띠 명상은 바로 이 예측 오류에 집중하는 훈련이다.
2) 통찰 명상과 집중명상이 있다. 그런데 통찰과 집중이라는 말 때문에 자칫 오해하기 쉽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통찰이나 집중과는 상당히 다른 뜻을 지녔기 때문이다. 팔리어 위빠사나의 뜻 자체가 두루두루, 궤뚫어보다. 이다. 영어로는 보통 insight 로 번역하고 이를 우리말을 번역한 것이 통찰이다. 그래서 우리 말로는 통찰명상이다.
통찰 혹은 꿰뚫 본다는 것은 무엇을 본다는 뜻일까? 바로 내가 경험 하는 온갖 사물과 사건들의 실체로 본다는 것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결국 나에게 괴로움을 주게 마련이지만 (일체개고), 세상 만물이 모든 변하는 것이어서 고정된 실체란 없다는 것(제행무상) ,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경험하는 나 라는 의식의 주체 역시 텅빈 것이고 특정한 실체가 없다는 것(제법무아)을 꿰뜷어 보는 것이 위빠사나다.
3) 한편, 사마타는 마음이 고요한 상태를의미한다. 팔이어 사마타는 고요함, 평온함을 뜻하는 sma와 어떤 상태를 머물다. 지키다. 를 뜻하는 tha가 합쳐진 말이다. 즉 평온하고 고요한 상태에 무머는 것이 곧 사마타다. 영어로는 tranquility 혹은 calmness로 번역하고 평온한 알아차림 이라고 번역한다. 우리 말로는 보통 집중명상이라고 하는데, 사실 고요 명상 혹은 적정 명상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왜냐하면 알아차림 명상에서도 "주의를 집중한다" 는 등의 표현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서 펼쳐지는 나의 경험에 집중하는 것이 알아차림 명상이므로 사마타를 또한 집중 명상이라고 하면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아마튼 사마타 수행자가 처음부터 대상없이 고요한 상태에 이르기는 어려우므로 보통 호흡이나 몸 또는 내면에 집중함으로써 고요함에 이르는 방법에 쓴다. 그래서 사마타를 집중명상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사마타의 핵심은 집중보다는 고요함과 평온함에 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수행을 통해 두가지 마음상태에 다다를 수 있다고 했다. 하나가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인 사마타이고...
다른 하나가 사물을 꿰뚫어보는 통찰의 상태인 위빠사나 다. 고타마는 제자들에게 수행을 지도할 때 위빠사나를 떼어서 통찰 명상을 하라고 강조한 적이 없다. 제자들에게 수행을 권할때 항상 선정에 들라고 권했을 뿐이다.
초기 경전 전체를 살펴봐도 위빠사나를 명상의 한 방법으로 별도로 가르치거나 하는 부분이 없다. 위빠사나라는 말 자체가 간혹 언급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항상 사마타와 함께 언급되었다. 그것도 사마타 수행의 대안이나 별도의 수행 방법으로는 언급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마타 수행이 위빠사나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강조된 바도 없다.
<사마타 숫따>에서는 수행자는 스스로 사마타를 얻었다고 생각되면 사마타를 통해 위빠사나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만약 위빠사나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위빠사나를 통해 사마타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가르친다. 만약 둘다 못 얻은 상태라면 "자기 머리에 불이 붙은 사람이 당장 불을 끄기를 원하는 정도로 간절하고도 쉴 쌔 없이 적극적으로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얻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라고 강조한다.